그날 길가엔 노란 개나리꽃이 청명한 봄 날씨를 맞이하고, 들판엔 어머니를 닮은 산수유꽃이 잔바람에 나풀거렸다. 국군 최정예 부대원인 5공수 특전사여단 대원들의 가슴에도 따뜻한 봄빛이 와 닿았다. 김광석 대위(충남대 ROTC 30기)는 대원들에게 장비를 챙기라고 지시한 뒤 기상청 예보를 확인했다. 약간의 비가 내릴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행군하기 좋은 날이었다.
1998년 4월 1일 오후 1시께 천리행군 중인 특전사 대원들은 잠시 뒤 일어날 비극을 상상도 하지 못한 채 그렇게 영동군 용화면 민주지산으로 전진했다. 오후 2시께 예상과 달리 많은 비가 내렸지만, 특전사 대원들에게 이 정도 기후는 전혀 문제 될 일이 아니었다. 산악 훈련에 능숙한 대원들은 빠르게 민주지산을 올랐다.
그러나 1시간 정도 지난 오후 3시께 대원들이 6부 능선을 통과하면서 예상치 못한 기후변화가 일어났다. 기온이 급격하게 내려가면서 비가 눈으로 변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원들은 눈 내리는 산하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기도 하며 행군을 이어갔다. 하지만 오후 4시께 8부 능선을 지나자 강한 바람을 타고 내리는 폭설이 대원들의 시야를 가렸다.
김 대위는 순간 불안감을 느꼈다. 비에 흠뻑 젖은 대원들이 강풍을 동반한 폭설 속에서 저체온증을 견디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의 이런 불안감은 50여 분이 지나서 현실로 나타났다. 일부 대원들이 탈진 증세를 보였다. 김 대위는 즉각 통신장비를 이용해 '훈련 일정을 멈추고 휴식을 취해도 좋을지' 훈련을 지휘하던 대대장에게 문의했다. 그러나 돌아온 명령은 '훈련강행'. 이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이 무렵 민주지산의 체감온도는 영하 30도에 달했다. 바람은 시속 55km로 불었다. 어느새 30㎝ 이상 쌓인 눈 때문에 등산로마저 찾을 수 없었고, 전우들의 얼굴조차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두운 밤으로 변해갔다. 이미 인간이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상태가 된 것이었다.
김대위는 부하들이 위험하다고 판단해 구조요청을 하려고 했으나, 급격히 떨어진 기온 때문에 무전기 배터리마저 작동하지 않아 더는 외부와 교신마저 할 수 없었다.
결국 오후 6시 30분께 혹한과 강풍을 견디지 못한 대원 1명이 숨을 거두고 말았다. 탈진상태서 전우들의 응급구호를 받다가 끝내 그가 지키고 싶었던 조국의 품속에서 눈을 감은 것이다.
오후 7시 10분께부터 탈진 대원은 더 늘어났다. 1시간 뒤 상태가 괜찮은 일부 병력이 하산에 성공해 민가에 도착했다. 그리고 영동소방서 119에 구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긴급 요청한 구조헬기는 악천후로 현장에 접근할 수 없었고, 오후 9시10분께 현장에 도착한 119구조대원들도 강풍과 폭설을 뚫고 산으로 올라갈 수 없는 상황이어서 구조를 미룰 수밖에 없었다.
결국 김대위를 비롯한 6명의 특전사 대원이 저체온증으로 사망하게 되었고 이후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었다.
민주지산 정상에서 300여m 아래 지점 그 자리에 자그마한 대피소가 생겼다. 8평 남짓 대피소 안에는 등산객들이 버린 것으로 보이는 쓰레기들이 뒹굴고 있었다. 국립공원외 지역에서의 유일한 무인대피소인 만큼 등산객들의 세심한 배려가 필요할 텐데…
작은 것 하나라도 나누고 배려하는 마음이 날 선 추위도 막고 눈보라도 견뎌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됨을 항상 상기했으면 하는 마음이 밀려왔다. 서럽도록 시린 바람이 시퍼런 사슬을 휘두르며 다가오는 것처럼 두렵던 그날과 같은 날이 더 이상 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은 비단 필자만의 생각이었을까.
동료들이 쓰러져 가는 모습을 지켜 보던 안타까운 특전사 장병들을 추모하며 끝없이 이어지던 민주지산 상고대 속을 걸어갔던 2024년 1월26일의 산행기록이다.
들머리는 해발 843m의 도마령이었습니다. 이후 각호산(1186m), 민주지산(1241m), 석기봉(1200m), 삼도봉(1177m)을 올랐다가 삼마골을 거쳐 물한계곡을 날머리로한 약 14km의 산행 기록입니다. 소요시간은 약 6시간 정도 됩니다.
들머리인 도마령입니다. 화장실및 편의 시설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한파로 가동이 중단된 곳이 많았습니다.
관광객들을 위한 전망대가 조성되어 있는데 오늘 산행로의 건너편에 세워져 있어 민주지산을 조망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지난 계절의 흔적을 모두 뒤덮은 흰 눈이 가득한 길이었습니다. 찬바람이 밤새 나뭇가지에도 하얗게 매달려 아침햇살에 부서지는 가운데 도마령(840m)을 오르는 버스의 행렬이 힘겨워 보이기까지 합니다. 얼마나 꼬불꼬불 길을 달리는지 일부는 버스 멀리를 하는 이들도 생깁니다.
버스에서 내리자 바깥 공기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젖은 바짓가랑이 잡고 오르듯 어기적거리는 발걸음으로 산행들머리인 계단을 오릅니다. 등산로는 이미 사람이 지나간 터라 발목을 덮는 눈길이어도 어려워 보이지는 않습니다.
도마령을 출발하여 각호산을 향해 조금 오르니 남태평양 어디쯤 있는 산호섬 부근인 듯 아름답게 피어난 상고대가 나타납니다. 파란 겨울 하늘과의 조화가 아름답기만 합니다. 다소 가파른 산길을 따라 한 시간 가까이 오르는 동안 능선 곳곳에서 등산객들의 탄성이 약속이나 한 듯 한결같습니다. 하지만 각호산까지의 상고대는 이후에 만날 것에 비하면 아마츄어 수준이었습니다. 고도를 높이며 상고대에 대한 기대가 더욱 부풀어 오릅니다.
숨차게 오르막을 1시간쯤 올라서니 탁 트인 하늘과 겹겹이 쌓인 산의 능선이 그림처럼 펼쳐집니다. 햇살이 뽀얗게 내려앉는 민주지산으로 가는 길의 능선이 한눈에 들어와 겨울 왕국은 황홀하기까지 합니다. 멀리 대둔산이 보이고 앞으로 가야 할 민주지산과 석기봉이 눈에 들어 옵니다.
무거운 발을 옮길 때마다 사슴뿔 모양의 상고대들이 가슴 설레게 합니다. 겨울 산행은 날이 춥고 눈이 많이 쌓여있어 봄, 가을 산행보다 에너지가 소모되지만 이런 순백의 눈꽃을 볼 수 있는 가슴 뛰는 순간을 선물해줍니다. 그래서 산행중에 겨울 눈꽃 산행이 등산의 백미라 꼽게 되는 것 같습니다.
1,186m의 각호산 정상에 도착합니다. 도마령에서 각호산까지 거리가 멀지 않지만 은근한 오르막이라서 조금은 멀게 느껴집니다. 옛날에 뿔 달린 호랑이가 살았다는 전설에서 산의 이름이 유래됐다고 합니다.
각호산 정상에서 아름다운 설경이 주는 자연의 신비로움을 감상하고 민주지산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자연은 갈망하는 자에게 그만큼의 선물을 주는 것 같습니다. 산 정상을 으르니 행복한 시간 속에 설국의 아름다움을 만끽합니다.
각호산을 출발해 민주지산으로 향하는 3.4km는 눈꽃터널입니다. 아름다운 설경 속에 추억을 남기느라 진행이 더딜 정도입니다. 날은 차갑지만 햇살이 좋아 추위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오르막을 걷다 보니 등에 땀도 흐르고 뒷머리가 촉촉이 젖어듭니다. 그러나 온통 순백의 풍경을 보니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 듯 눈이 부시기만 합니다.
밤새도록 바람이 빚어낸 자연의 작품들 속에 갇혀 산행을 하니 마치 꿈속을 거니는 듯합니다. 오르막으로 이어지지만 구간을 만나도 눈꽃을 보면서 걸어가니 힘든 줄도 모릅니다.
1998년 4월 1일 혹한의 추위 속에서 숨진 국군 최정예 5공수 특전사여단 대원 6명을 기리기 위해 등산로에 건립된 추모비와 무대피소.
26년이 지난 현재 이들의 유해는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돼 있습니다. 국방부는 1999년 특전대원들의 천리행군과 사망 순간까지 전우와 조국에 관한 사랑을 보여준 이들을 소재로 한 영화 '아! 민주지산'을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특전사령부는 매년 3월 말께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사고 현장 아래(물한리) 세워진 위령탑에서 추모행사를 열고 있습니다.
당시 대대장은 무리한 훈련으로 참사를 냈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한국 최강 부대의 천리행군을 극한 날씨라고 멈췄다면 군의 사기는 크게 떨어졌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군인으로서 목숨 대신 '중단 없는 전진'을 택한 불굴의 특전대원들은 26년이 지난 지금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했습니다.
민주지산 정상으로 향하는 곳에도 훈련중 이곳에서 순직한 장병들을 추모하듯 하얀 상고대가 곳곳에서 빛나고 있었습니다.
민주지산 정상에 도착합니다. 사방이 상고대 천국입니다. 힘들게 땀 흘리며 올라온 보람이 느껴집니다.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유난히도 파란 하늘과 하얀 상고대의 조화가 환상적입니다. 해발 1241m의 민주지산 정상석입니다. 예전에는 검은빛의 나지막한 정상석이었는데 새겨 놓은 것을 보니 2018년에 새롭게 바뀐 듯 합니다. 시야가 확 트인 정상에 서니 쾌감이 올라옵니다. 부드러운 능선들, 하나로 엮어진 자연, 모든 것이 제 발아래있습니다.
민주지산은 봉우리 높이가 비슷하고 산세가 밋밋해 민두름산 이라고 부르던 것을 한자로 표기한데서 유래됐다고 합니다. 이런 설경 앞에 어떤 말로 극찬한들 이 찬란하고 눈부신 민주지산을 노래할 수 있을까요. 벅차고 떨렸던 순간의 소중함을 품고 석기봉으로 향합니다.
민주지산 정상에 서니 상고대로 장식된 가야할 뽀족한 석기봉과 그 뒤로 다소 뭉뚝한 삼도봉이 눈에 들어 옵니다. 민주지산까지 도착하느라 발이 무겁기는 하지만 전열을 재정비하고 출발합니다. 사방으로 막힘없이 달려가는 시야가 가슴을 활짝 열게 하여 문을 없애니 바람이 걸림 없이 마실을 드나듭니다. 석기봉 방향에서 올라오는 등산객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눕니다.
석기봉을 향하는 산행로도 상고대 천국입니다. 이런 멋진 상고대 속을 걸을 수 있는 것은 커다란 축복입니다. 석기봉으로 향하다 뒤를 돌아보니 높다란 민주지산이 눈에 들어 옵니다. 멋집니다.
석기봉 주변입니다. 지나온 민주지산과 이곳 석기봉에서 물한계곡으로 하산하는 탈출로가 있습니다. 함께 운두령을 출발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곳 석기봉에서 물한계곡으로 하산합니다. 물론 민주지산에서 하산한 이들도 일부 있고요. 저도 이곳에서 하산 할 것인가를 잠시, 아주 잠시 고민을 했지만 삼도봉까지 가기로 마음을 잡습니다.
그런 이유로 이후에는 산행로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석기봉으로 향하는 산행로입니다. 바위, 나무 전체가 상고대로 무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아무나 만날 수 있는 그런 풍광이 아니지요. 삼도봉으로 가는 결정을 잘 했다고 스스로 칭찬을 해 봅니다.
삼도봉입니다. 충북,경북,전북의 도 경계를 이루는 곳인데 1년에 한번씩 이곳에서 3도의 시민들이 만나는 행사를 하기도 합니다. 정상석이 그 어떤 것보다 화려하고 웅장합니다.
삼도봉 정상에도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이곳에서 보이는 전망도 대단합니다.
삼도봉에서 급하게 하산하면 삼마골재를 만납니다. 이곳에서 좌회전을 하면 물한계곡으로 내려가고 직진을 하면 백두대간 밀목령으로 이여집니다. 여기서 부터 날머리인 물한계곡까지는 지속적인 하산길이어서 큰 어려움없이 걸을 수 있습니다.
첫댓글 민주지산 사진후기 감사합니다.
이런 날씨 만나기 힘든데 멋진 상고대 만나셔서 축하드립니다.
저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산행내내 즐겁고 기쁘게 걸었답니다.
겨울 산행은 역시 눈꽃산행이 최고인데 바로 그런 날이었습니다.
좋은 추억을 만든 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