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 무어·마돈나 그리고 폴라 압둘의 공통점은 모두 미모에 부와 명성을 겸비한 미국의 연예인이다. 최근 이들이 새삼 화제가 된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자신보다 나이 어린 남성과 데이트를 하거나 결혼을 해서 유명세가 따랐다. 주위를 둘러보라. 이들처럼 유명하지는 않더라도 연상녀·연하남 커플이 눈에 띄게 늘었다. 이런 추세는 더 이상 할리우드나 미국 쇼 비즈니스계의 전유물이 아니다.
학원강사 차미경(29)씨는 최근 세 살 어린 남편(한재경)을 맞았다. 직장 1년차인 남편은 모아둔 돈이 거의 없었다. 차씨는 자신이 모은 돈으로도 부족해 대출까지 받아 어렵사리 결혼식을 치렀다. 말 그대로 남편을 맞은 셈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었다. 데이트 기간 내내 그는 자신을 더할 나위 없이 세심하게 배려하고 존중해줬다. 연상인 자신의 어떤 점이 좋으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을 정도다. “너를 함부로 대할 수 없어서 좋아.” 반면 3~5세 연상과 결혼한 친구들의 남편은 대개 가르치려 드는 경향이 있었다. 차씨는 남자들의 그런 권위주의를 유독 싫어했다.
북미에서 시작된 쿠거혁명
연상녀·연하남 커플의 폭발적 증가를 흔히 쿠거혁명이라고 부른다. 쿠거혁명은2003년 미국은퇴자협회(AARP)의 여론조사 결과로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당시 조사 결과 40~69세의 여성 중 34%가 연하의 남자와 데이트를 하거나 결혼했다고 응답했다. 쿠거혁명을 다룬 단행본 『연상녀, 연하남』에서 저자 털레시아 브링스와 스잔 윈터는 과거 연상녀·연하남 커플은 나쁘거나 일시적인 관계로 치부됐지만, 오늘날은 (쿠거혁명 덕에)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는 일이 됐다고 말한다.
미국과 한국의 쿠거혁명 사이에는 다른 점도 있다. 미국의 연상녀·연하남 커플 붐을 주도한 것은 주로 30대 이상의 여성이다. 이혼 후 싱글이 된 이들은 데이트 상대를 구하는 데 애를 먹어야 했다. 또래 남자들이 나이 어린 여자들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대신 이들은 나이 어린 남자들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이혼이 본격화한 탓에 30, 40대의 싱글들이 전례 없이 무더기로 데이트 시장에 뛰어든 게 쿠거족이 급격히 늘어난 배경이었다.
반면 아직 한국에선 2535세대의 트렌드에 머물러 있다. 연기자 박해미·김보연 같은 예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다. 이 점은 통계청 분석 자료로도 확인된다. 이전에는 희귀한 경우로 치부됐던 연상녀·연하남 커플은 최근 20, 30대의 신혼부부 10쌍 가운데 한 쌍으로 늘어났다. 이런 커플을 다루는 TV 프로그램도 늘고 있다. KBS 인기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에는 김나운·김정현이라는 비중 있는 연상녀·연하남 커플이 등장한다. 애완남 키우기, 나는 펫은 케이블 채널 프로그램으로는 드물게 시즌 3까지 제작될 정도다. 나이 말고는 빠질 것 없는 연상녀와 나이 말고는 내세울 것이 없는 연하녀가 한 남성을 놓고 경쟁하는 미국 리얼리티 쇼 에이지 오브 러브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경제적 이유가 가장 커다
한국과 미국의 공통점도 있다. 쿠거혁명이 여성의 경제적 독립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이다. 연애 칼럼니스트이자 TV 쇼 사랑의 기술 진행자인 루시아는 쿠거혁명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글에서 쿠거혁명의 배경을 이렇게 설명한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남자들이 젊은 여자를 선호하듯, 경제적으로 독립적인 여자들이 젊은 남자를 좋아한다.” 경제적으로 독립적이지 못한 연하들은 성별에 무관하게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연상에게 끌린다는 주장이다. 결혼정보업체 듀오가 지난해 7~9월 남녀 1462명을 조사한 결과도 이 발언을 뒷받침한다. 연상녀·연하남 커플에 대해 남성 응답자의 절반 가까이(46.1%)가 여성의 경제력에 끌린다고 답했다. 반면 여성들은 연하남의 애교(37.5%)나 서로 존중해주는 평등한 관계(32.5%)라는 장점이 있다고 봤다.
인터넷 뉴스 기자 임은경(26)씨는 한 살 연하의 대학생 남자친구를 두고 있다. 남자친구가 아직 벌이가 없는 탓에 차를 몰거나 비싼 음식점에 들를 수 없다.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싼 식당을 찾는다. 그나마 데이트 비용도 주로 자신이 부담한다. 임씨는 정신적 안정감에 비하면 육체적으로 조금 불편한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임씨가 유일하게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다면 주위 시선이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다. 어린 여자를 사귈수록 오히려 인정받는 남자에 비해 연하남을 사귀는 여자는 간혹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일종의 이중적 태도다. 『쿠거』라는 책을 쓴 여성학자 발레리 깁슨은 이를 나이 든 남성들의 자기방어 심리 탓이라고 설명한다. “나이 지긋한 남자들은 자신의 뜻대로, 원하는 나이대의 파트너를 고르고 또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쿠거가 그들의 영역에서 어슬렁거리기 시작하자 상황은 바뀌었다. 그들은 위협받고 있다고 느끼고, 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쿠거(cougar)혁명 = 연상녀·연하남 커플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현상을 뜻하는 북미지역 신조어. 쿠거는 북미에 서식하는 고양잇과의 동물로 먹잇감을 찾을 때까지 어슬렁거리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쿠거족이라는 말이 나와 한때, 밤늦게 파트너를 찾아 헤매는 나이 든 여성을 뜻하는 속어로 쓰였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어린 남자와 데이트하거나 결혼하는 나이 지긋한 여성을 의미한다.
연하남 사귀기 수칙 6선
인터넷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연상녀·연하남이라는 키워드를 쳐보라. 실제 연상녀나 연하남를 사귀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그런 상대를 만나려는 사람들의 고민이 끝없이 펼쳐진다. 척척박사 네티즌에게서 연하남을 만날 때 마음에 새겨야할 수칙들을 알아보자.
1. 우선 어떻게 하면 연하남과 사귈 수 있을까. 마음에 둔 연하남을 유혹하는 방법을 묻는 질문들이 많이 올라와 있다. 네티즌 cjstk8245가 제시한 대답이 인기 답변이다. "부담스럽게 다가가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누나처럼, 엄마처럼 대하세요. 착하다, 착하다 하다 보면 정도 들고 해서 좋은 관계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연하남들은 감싸주는 스타일을 좋아하거든요. 그러나 때로는 누나처럼 느껴지지 않는 여자가 좋죠."
2. 누나처럼, 엄마같이가 연하남을 유혹하는 유일한 전략일까. hsmdream은 그래도 외모는 어려보이는 게 좋다고 조언해 공감을 얻고 있다. "연상녀를 좋아한다고 나이 든 외모까지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연하남을 차지한 대부분의 연상녀가 실제 나이보다 한참 어려 보이는 동안이라는 사실을 아는지? 최대한 어려 보이는 게 좋다. 그렇다고 어이없이 스쿨걸 룩을 입고 데이트하지는 말 것. 데님 팬츠에 당신의 몸매를 돋보이게 하는 타이트한 면 티셔츠 등 캐주얼한 차림이 연하남이 가장 좋아하는 옷차림. 블러셔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메이크업 제품이라는 것도 잊지 말자."
3. 어린 여자와 경쟁할 때 연상녀의 대처방법도 있다. "중간에 어린 여자가 끼어 있어도 다급해하지 말자. 연륜 있는 당신과 경쟁한다는 생각에 그녀가 더욱 조바심을 내고 있을 것이다. 그녀의 질투심을 역으로 이용할 것." (아이디 못난오리S)
4. 연하남들이 연상녀에게서 가장 듣기 싫은 말은 무엇일까. 바로 연상녀와 만나는 연하남 네티즌들은 어른스럽게 행동해~라는 말을 꼽았다. 연하남일수록 강해 보이고 싶은 마음이 큰데, 그런 말을 들으면 자신이 남자가 아니라 마치 아들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런 말을 듣는 연하남은 여자가 아줌마 같다는 말을 들었을 때와 비슷한 모멸감을 느끼게 된다.
5. 연상녀에 비해 연하남들의 고민에 진지함이 한결 부족하다는 점도 명심하자. ID kallki가 남긴 연상녀 사귀기 노하우가 좋은 예다. "남녀가 사귀면 남자가 보호자적 역할을, 여자가 피보호자적 역할을 하는데, 연상녀를 사귀게 되면 관계가 뒤바뀔 확률이 높지요. 편안하게 해주는 거 받으면서 가끔 애교나 부려주면 된다는 약간 애정결핍이 있는 분이라면 아주 좋은 궁합."
6. 연상녀·연하남의 이별에는 공식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 연상녀 네티즌은 헤어질 때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사귈 때는 이름 부르고 반말 써가며 오빠인 척 하던 연하남들. 헤어질 땐 꼭 고마웠어, 누나~라는 인사를 남긴다.” 마치 누나가 사준 것들과 엄마 같은 마음은 고마웠지만 나이가 많은 사람을 상대하기는 지루했어~라는 식의 느낌을 갖도록 한다는 것이다. 역시 나이는 제 값을 하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