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 에서 만난 하나님
2004. 6. 4. 오후 2시 5분
나는 조용히 펜을 들었다.
내가 이곳 양평 천사원에 온지도 어느덧 두달하고 4일이 지났다.
내가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생각해보니
그리 좋은 광경은 아닌것 같다.
난 지금까지 힘들면서도 좋은일 보다는
좋지않은 일들을 더 많이 보고 살았던것 같다
그렇지만 지금은 내가 살면서 힘들고 견디기 어려운 일은
다 지나간 것 같고 앞으로는 좋을 일만 있기를 바란다.
목발을 집고 다니는 나는
어려서 부터 장애에 대한 원망과
정상인에 대한 부러움을가지고 살았다
사춘기 때 이성에 대해 눈을 뜨면서
앞으로 나의 인생을 설계하는 시기에 방황하기 시작하더니
차츰 차츰 나의 삶은 바른 길이 아닌 나쁜 길로 가게 되었다.
술, 담배 등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다 해보고
즐겼던 내 인생을 지금 와서 뒤돌아보니 너무 후회되고 한심스럽다.
2000년 4월, 내 인생에서 지울수 없는 오점을 남기는 사고가 났다.
평상시 나는 공원에서 불량한 사람들과 어울려 술을 즐겨 마시며
나도 모르게 타성에 젖어서 그곳을 종종 찾았다.
그날은 직장에서 퇴근한 뒤 다음날이 휴일이라
늘 그랬듯이 집으로 바로 안가고 파고다 공원으로 갔다.
그곳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이 오고갔지만
내가 자라고 생활한 곳이라 나에게는 아무 거리낌이 없었다.
그날도 집으로 안가고 공원에서 놀다갈 마음으로 갔는데
평상시 자주 만나는 동생을 만나게 되어 벤치에서 소주 한잔 하게 되었다.
내 주머니에 있던 6000원으로 편의점에서 소주를 사다가
이 이야기, 저이야기 하면서 마시고 있는데
같이 술먹던 동생이 아는 사람이라며 2명이 오길래
나는 소주를 권했고 그들은 한잔하고 그곳을 떠났다.
그런데 술한잔 먹고 떠났던 사람들이
얼마안가 저 앞에서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와 같이 있던 동생은 그곳으로 가서 싸움을 말렸는데
한참 싸움을 말리다보니
동생과 또 안다고 해서 같이 술 마셨던 두사람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그들과 싸우던 싸움의 상대편 사람과 나만 남게 되었다.
그런데 황당한 일은 그가 내게 다가와
"너도 같은 일행이지!"하며 내가 짚고 다니는 목발로
나를 때린 후 목발을 멀리 던져버렸다.
나는 술기운도 있고 가만히 있으면 더 맞겠기에
같이 멱살을 잡고 싸웠다.
피가 사방에 튀고 내 옷과 팔뚝은 피투성이가 되었다.
피가 튀니까 나도 모르게 흥분하여 이성을 잃고 싸운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때리는 대로 맞고 있을껄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한참을 싸우니까
119 와 경찰이 와서 싸운 경위를 조사하고 나는 귀가 조치되었다.
그러나 상대방은 장애인에게 맞은 것이 억울해서 인지 몰라도
엉뚱하게도 내게 강도를 당했다고 신고했고
나는 경찰서에 긴급체포되었다.
그 싸움이 있은지 15일 정도 지난 후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체포가 되니
나는 "죄없으면 나오겠지" 하는 마음으로 지냈다.
그러나 알고보니 나와 같이 술먹던 동생도
아리랑 전과가 있는 자였고
나머지 3명 모두 2, 3범의 전과자들이였다.
나는 모든 사건의 주범이 되어
강도상해죄로 4년의 실형을 받았다.
피해자가 내가 지갑을 뺏아서
다른 사람에게 주었다고 주장하니까
재판부도 어쩔 수 없었나보다.
나는 외로이 항소와 상고, 재심을 해보았지만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정말 미칠 것 같았고
밥도 못먹겠고 죽고 싶단 생각 뿐이었으나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리고 나니,
43개월의 시간이 지나갔다.
나의 억울함을 어떻게 해명해야 할지 답답했다.
피해자는 안면좌부상 전치 5주의 부상을 입었다.
나는 내가 안 맞기 위해 싸운 것인데...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평상시 그런 부류의 사람들과 술을 즐겨 먹었던
내 방탕했던 모습을 알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벌을 주신 것 같다.
난 처음으로 교도소에서
하나님에 대해 알게 되었다
하나님을 알고부터 마음이 평안했다
나를 주범으로 만든 피해자나
또 4명의 공범들 나는 그들 모두를 용서하기로 했다.
의정부 교도소에서 하나님을 처음 접하였고
많은 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셨다.
아픔의 시간들이 지나 2003. 11. 29일에
나는 보호관찰로 4개월의 가석방을 얻어서
출소하였지만 모든 것이 다 막막하기만 했다.
옛날에 다녔던 직장은 하향길을 걷고 있어 일거리가 없었고
마음잡고 새출발하고 싶었지만 현실은 너무 힘들었다.
정상인도 취업을 못하고 백수로 지내는 현실에서
지체장애 2급의 장애인이 설 자리는 없었다.
출감 후 5개월 가까이 또 술, 담배를 시작했고
노숙자들과 술을 먹으며 막 살았다.
그러다가 의정부 교도소에서 전도해주셨던 윤혜정 집사님의 소개로
이곳 양평천사원에 오게 되었다.
처음에 이곳에 와서 마음을 비우고
새로 시작해보자는 생각으로 왔는데
이곳은 내가 살던 곳과는 완전히 다른 별천지였다.
이제까지 해왔던 모든 것들은 하나도 할수 없고
모든것을 절제해야 하는 부분이 힘들었다.
이곳은 신선들이 사는 곳 같았다.
아침저녁 예배,맑은 공기,
좋은 음식, 때묻지 않은 순수함...
나는 이곳에서 잃어버렸던 웃음을 찾았고
천사원 가족들처럼 순진했던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오랜동안 세상풍파에 찌들고
못된 습관에 푹~젖어 있었기 때문에
순수함을 되찾기가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다.
이곳 천사원으로 나의 주소를 이전하던 날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 많은 시간을 나를 위해 썼지만
앞으로는 나를 위해 썼던 시간을 남을 위하여 쓰자고...
건방진 생각인가?
하지만 진심이다.
부모님과 형제들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이곳에 새로운 삶을 정착 시키겠다.
내가 집에 있더라도
가족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가족의 아픔은 모르고 나의 상처만 생각하며
내 몸 하나 간수하지 못하고
방탕한 생활을 해왔던 것이 후회된다.
이제는 세상에서 가졌던 바램들을 모두 잊고
내가 이곳에서 건강하게 잘 지내는 것이
부모님께 대한 효도라고 생각한다.
두달의 시간동안 좋지못했던 과거를
청산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또한 많은 형제, 자매들이 나를 잘 따라주었고
좋아해줘서 너무 감사드린다.
38년의 시간은 나를 위해 썼지만
남은 인생은 우리 천사원 가족들과 함께 할 것이다.
아직은 하나님의 사랑을 확실히는 못느끼겠지만
내가 이곳에 왔다는 사실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며
범사에 감사하면서 작은 봉사부터 다시 시작하겠다.
이 마음이 변하지 않도록
주님께서 지켜주실 것을 믿는다
첫댓글 희준님의 ~`` 간증이~`` 무척이나~ 애틋하네요~`` ^-^* 억울한 교도소 생활속에서도``오히려~`` 하나님을 알게되고~`` 캔디님의 봉사를 통한~`` 아름다운 결실이 맺어지게 됨을 보면서~```희준님의 장래를 주께서 축복해 주시길 빌어요~`` ^-^*
어제밤에서야 재림마을에 올려져있는 이 글을 발견하고 가져온겁니다....천사처럼 변해 있는 그친구의 얼굴에 이유가 있더라구요.....이런 감동 때문에 이런일 하는것이 즐겁고 감사하답니다...
캔디(윤혜정)님의 수고가 크오~ 당신을 축복합니다 ~ 희준님 억울했겠네요 뭐~ 하나님앞에 떳떳하면 되지 않겠소 당신을 축복합니다^^
담에 만나면 여러분들의 답글을 전해 드릴께요......
그래요 축복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