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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영의 컬처 스토리] 왜 명절이 재미 없어졌을까
출처 중앙일보: http://news.joins.com/article/21966739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추석·설보다 크리스마스·핼러윈을 좋아하는 사람을 개탄하는 글이 해마다 올라온다. 그런데 그에 대한 반박의 목소리도 소셜미디어에서 해마다 커진다. “외국 명절은 볼거리·즐길 거리가 있는데, 우리 명절은 재미가 없다.” “차례 음식 만드느라 뼈 빠지게 일하고 그다음엔 친지 잔소리 듣는 게 다잖아?” 올해 추석은 긴 황금연휴라 여행 계획하며 들뜬 사람도 많지만, 기혼여성 중에는 “시댁에서 일할 날짜만 늘어나지 않을까” 걱정하는 이도 많다.
그런데 이렇게 재미없고 스트레스받는 게 과연 우리나라 명절의 전통일까? 조선 후기 명절 풍속을 집대성한 『동국세시기』를 보면 흥미진진한 놀이와 행사로 가득하다. 예를 들어 사월초파일에는 집집이 마치 크리스마스트리 세우듯 기둥을 세워 형형색색 연등을 달았다. 특히 저잣거리에는 기묘한 등이 잔뜩 진열돼 구경꾼이 몰렸다고 한다. “어떤 이들은 퉁소나 거문고 들고 거리를 돌아다니며 논다. (조선 버스킹?) 장안은 불야성이 된다.” 이렇게 현대인의 축제와 다를 바 없고, 그래서 부활한 이곳저곳 연등축제는 내·외국인 불문하고 인기를 누린다.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추석 역시 본래 축제일이다. 추수기에 한숨 쉬어가며 ‘닭 잡고 술 빚어 온 동네가 취하고 배부르게 먹으면서 즐기는’ 날이었지, 조상 제사상 차리는 게 주된 일이 아니었다. 국립민속박물관과 성균관에 따르면, 조상의 기일에 지내는 기제사와 달리, 명절에 지내는 차례는 즐겁게 먹고 놀면서 그 김에 조상님께도 인사하는 것이다. 따라서 차례상도 간소해서 술과 과일·포 정도에 송편 같은 절식 하나만 추가해 올렸다고 한다. 따라서 큰 차례상 부담 없이 쉴 수 있었다.
정약용의 아들 정학유가 지은 ‘농가월령가’ 노래에 따르면, 심지어 추석은 며느리가 친정으로 ‘휴가’ 가는 날이었다. “초록장옷 반물(짙은 남색) 치마 장속하고 다시 보니 여름지어 지친 얼굴 소복(원기회복)이 되었느냐. 중추야 밝은 달에 지기 펴고 놀고 오소.”
현대 한국인이 전통명절에서 멀어지는 건, 놀고 즐기자는 진정한 전통이 사라져서다. 성평등의 명절문화 만들기가 화두인데, 명절의 근본 의미로 돌아가면 이게 더 쉬워진다. 차례를 한층 간소화하고 집 밖에서 축제 즐기는 시간이 늘어나도록 변해야 한다.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
효, 근원에 대한 감사
설은 비단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한다는 의미만이 아니다.
‘나’라는 존재의 근간이 되는 가족들과 선조들을 되돌아 보는 시간이다.
일 년 이라는 긴 여정을 시작하기에 앞서 먼저 나 자신과 가족들을 점검하는 것이다.
그래서 새해 첫날 아침,
가장 먼저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선조들께
정성을 다해 차례를 지내고 부모님께 세배를 드린다.
이것을 효孝 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말로 하면 내 생명의 ‘근원에 대한 감사함’을 갖는 것이다.
‘근원에 대한 감사’는
어떤 일이나 물질에 대한 대가가 아닌,
지금 내 생명이 살아 숨 쉬는 그 자체에 대한 순수의 감사다.
부모님과 선조님이 나에게 무엇 무엇을 해주셨고
어떤 것을 베풀어주셨기 때문이 아닌,
지금의 ‘나’라고 하는 존재가 있기까지 뿌리가 되는 그분들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것이다.
출처 : 향기와 빛명상이 있는 그림찻방 P 96
죽은 자와 산자의 주고받음
영적인 존재가 단지 몇몇 특수한 병을 가지고 있는 환자들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우리 모두는 알게 모르게 영 혹은 신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고 있다. 많은 삶들이 이를 모른 채 넘어가지만 짐작하는 것보다 상당히 많은 수의 사람들이 이 영적인 존재와의 관계로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을 보아왔다.
죽으면 모든 게 끝이고 고통도 기쁨도 없다고들 이야기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죽음은 육체와 마음(영혼)이 분리되는 현상인데 육체로부터 벗어난 마음은 일종의 에너지 혹은 파장의 형태로 존재하게 된다. 사람은 부모로부터 몸을 얻지만 마음, 즉 영혼은 우주의 근원, ‘빛viit’ 으로부터 온 것이다. 죽음이 일어나고 육체가 땅으로 돌아가면 마음도 원래 온 곳, 마음의 고향, 우주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이 순리이다. 그러나 살아서 이를 알지 못하고 마음이 갈 길을 알지 못하면 죽어서도 그 길을 몰라 헤매게 된다. 이것은 아이가 길을 잃고 미아가 되는 것과 같다.
이 미아와 같은 슬픈 마음들을 주위에서 종종 만나게 된다. 대형 교통사고와 같은 갑작스러운 사고로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혹은 젊고 이상이 높았지만 그 뜻을 온전히 펼치지 못하고 억울함을 안고 죽은 마음이 그러하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여학교의 교장으로 계시는 한 회원이 꼭 상의하고 싶은 일이 있다며 나를 찾았다. 자신이 부임해 있는 학교에 때 아닌 귀신소동이 일어나 아이들은 물론 선생님들까지 공포에 떨고 있다는 것이다. 학습 분위기가 엉망이 된 것은 물론 학부모들의 항의도 이만 저만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 귀신 소동의 발단은 도서관이었다. 늦게 자율학습을 하고 돌아가는 아이들 사이에서 언제부터인가 도서관에 귀신이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이다. 직접 귀신의 모습을 보았다는 목격자에는 당직 선생님 몇 명도 포함되어 있었다. 소문에 소문이 꼬리를 물고 그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게 되자 학교 측은 아예 도서관을 폐쇄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이제는 학교 운동장 한 켠에 있는 백년 된 커다란 느티나무에서 이상한 울음소리 같은 것이 난다는 것이었다. 특히 그 나무가 바로 마주보이는 기숙사 학생들이 공포에 질려있었다. 밤이 되면 그 소리가 커진다는 이야기에 보다 못한 교장 선생님이 직접 당직으로 남아 지켜보기로 했다.
결국 본의의 귀로 직접 그 소리를 듣게 된 교장 선생님은 문제를 더 이상 쉬쉬 하거나 학생들을 처벌해서 될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다 못해 무당을 불러 굿을 해 보았다. 무당은 원한에 맺힌 처녀의 혼령이 붙어 생긴 일이니 크게 굿을 해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굿을 해도 그 때만 잠사일 뿐 얼마 지나면 다시 소리가 나고 또 굿을 하는 일이 서너 차례 반복되었다. 그것도 새로 굿을 할 때는 이전보다 더 크고 성대하게 해주어야 했다. 견디다 못해 나무를 베어버리기로 했는데 나무를 베고 난 둥치에서 여전히 소리가 계속 난다는 것이다.
살아서 풀지 못한 일오 한이 맺혀 죽은 자의 파장이 자신의 아픔을 호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직접 그 귀신이 나타났다는 느티나무 그루터기와 도서관을 찾아가 우주의 에너지 초광력을 보냈다. 이 빛viit'을 받아 마음의 응어리를 풀고 원래의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 더 이상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 주변의 에너지를 정화해야했었기에 작은 광력씰 하나를 붙여주고 돌아왔다. 광력씰은 한동안 ‘빛viit’과 교류하는 안테나 역할을 하여 나쁜 파장이 침입하는 것을 물리치는 방패막이 역할을 할 것이었다. 한동안 학생들을 괴롭혔던 여고괴담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학교의 여학생들이 고마움의 인사로 한가득 몰려와 내게 사인을 해 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바람에 잠시 머쓱했던 기억이 난다.
또 한 번은 낙태로 인해 세상에 태어나지도 못하고 사라진 태아 영가가 그 어머니의 딸에게 붙어 크게 괴롭히는 경우를 보았다. 어린 영가를 향해 ‘너는 이곳에 있으면 안 된다. 어서 빛을 따라 가거라’ 하였더니 징징거리며 떼를 쓰기도 하고 자신의 억울함을 알아달라며 울고 보채면서 끈질기게 버티다가 결국 떠났다. 이러한 어린 영가들의 억울함은 가장 한스럽게 들려온다. 제대로 한 번 태어나 보지도 못하고 무참히 낙태된 태아들의 영들이 보내는 파장이 한데 뭉쳐 괴질을 일으키고 세상에 어려움을 더하고 있음을 가끔 명상 중에 느낄 때가 있다.
이처럼 죽어서도 자신이 돌아갈 고향으로 갈 줄 모르고 한과 집착으로 고통받는 마음들은 계속해서 자신의 고통을 호소하며 평소 자신과 가까웠던 사람 혹은 파장이 맞는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고자 한다. 그러나 육체가 없고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원인 모를 우환, 관재구설수, 가족 간의 불화, 비명황사와도 같이 산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것으로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위령을 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산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고 달래듯, 죽은 사람의 마음도 본래의 맑고 밝은 모습을 찾아 우주의 근원으로 돌아가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또한 위령을 통해 산 사람의 삶이 죽은 자의 마음으로 인해 탁해지거나 불행해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위령은 누군가에게 배워서, 혹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닌, 해야 하기 때문에, 인간이기에 하는 것이다. 부모에게 효도를 하고 가족을 돌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위령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문화, 종교, 풍습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행해져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제사 혹은 추석, 설날과 같은 명절도 죽은 자들을 기리고 생각하며 그 분들의 마음을 위해 우리의 정성과 마음을 전하기 위해 생긴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위령의 의미는 이 과정을 통해 살아있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경천(敬天)과 겸손의 마음을 되새기는 것이다. 조상을 생각하며 그 분들의 마음을 위해 진심을 보내는 것은 현실 속에서 감사와 겸손의 마음을 갖고 주어진 삶을 올바르게 살고자 하는 다짐과도 같다.
처음 이 ‘빛viit’ 을 사람들에게 전할 때에는 당장 눈앞에 닥친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안타까워 단번에 ‘빛viit’ 의 에너지를 통해 영의 파장을 쫒아버리거나 없애주었다. 그러나 그것이 순간의 고통만 수그러들게 할 뿐 결국은 교만한 마음을 키워주어 본연의 순수한 마음을 보는 데는 방해가 될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위령을 하는 사람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스스로의 마음에 대한 관조와 반성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위령은 단순히 잘 먹고 잘 살기위해, 혹은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행하는 의식이 아닌, 내 마음을 돌보는 과정, 순수의 마음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사람이 죽고 나면 자신이 살아서 배운 대로, 생각한 바대로 간다. 죽어서 천당에 간다고 생각한 사람은 천당으로, 극락에 간다고 배운 사람은 극락으로, 그것도 아니라면 무엇이든 자신이 지금 생각하고 있는 바대로 그 생각의 창조물 혹은 에너지의 응집체를 향해 갈 것이다. 그러나 그곳을 ‘빛viit’ 이라 할 수 없으며 다만 본래의 근원을 향해 가는 한 단계로 볼 수 있다. ‘빛viit’은 있는 그대로 이며 어떠한 관념이나 생각에 묶여 있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민족과 종교와 국가를 초월하고 나와 남을 뛰어 넘는다. 그저 해가 저물면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듯 내가 원래 온 곳으로 돌아가는 것뿐이다.
죽은 이후의 세계를 생각하는 것은 종교적 · 철학적 · 사고 혹은 정신세계의 이상을 추구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하루하루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삶을 위해서임을 강조하고 싶다. 즉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 우리의 실존을 위해 이 문제를 새겨본다는 뜻이다. 내가 왜 세상에 태어났으며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해답을 찾아나가는데 있어 이 죽음이라는 필연의 사건이 하나의 작은 실마리를 제공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신과 인간의 관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영들 사이에도 차이가 있다. 다만 그 차이가 살아있을 때처럼 돈이나 권력, 외모, 학력이 아닌 마음의 밝기로 구분된다. 살아있을 때 자신의 마음 한 번 돌보지 않고 욕심과 집착에 사로잡혀 있던 마음은 탁한 에너지로 남아 저급영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한편 살아서 자신을 관조하고 반성하며 겸손한 마음을 가졌던 사람의 마음은 밝고 아름다우며 그 정도에 따라 고급 신의 영역에 닫를 수도 있다. 우리는 영적인 존재를 부정할 필요도, 지나치게 두려워하거나 어려워할 필요도 없다. 이성의 논리 혹은 과학으로 입증 할 수 없다고하여 이러한 세계를 부인하는 것은 인간의 지극한 교만심인 동시에 무지이다. 또한 이에 맹목적으로 메달려 모든 것을 바라기만 하는 것은 인간의 엄청난 특권인 행(行)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놓쳐버리는 어리석음이다.
우주마음의 뜻에 따라 영과 신의 단게나 구분을 모두 뛰어넘는 것이 우리 마음 속 우주근원의 ‘빛viit’ 이다. ‘빛viit’ 은 있는 그대로의 순수한 마음이기 때문에 단계를 구분하지 않고 너와 나를 따로 담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우주마음 안에 있다. 살아서 순수한 ‘빛viit ’의 마음이었던 사람은 죽은 뒤에도 그 ‘빛viit’ 으로 돌아가게 된다. 우리의 마음이 왔던 바로 그 곳이기 때문이다.
출처 : 물음표(?) 2005/07/05 초판1쇄 P. 205 ~ 210
빛명상하면은?
명절 때 가족 분위기가 가볍고 화기애애합니다.
김종희 http://cafe.daum.net/webucs/8HiT/10040
명절에 평소 뿔뿔이 흩어져 살던 가족들이 오랜만에 만나다보면
자칫 오해나 감정트러블이 생길 수도 있고 묵은 감정들이 올라와서 서로 얼굴 붉히는 일도 있을 것 같습니다.
집안에 빛명상하는 사람은 우리 가족외에는 없지만 선조정화를 명절 때마다 반복하니 가족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지 않고 서로 편하게 이야기하고 지냅니다.
서로 염려해주고 걱정해주기도 하구요. 집안 분위기가 밝아지고 화목해지는 것에 감사드립니다.
명절에 대한 마음가짐이 달라집니다.
김외숙 http://cafe.daum.net/webucs/8HiT/10025
해마다 다가오는 명절이 이러저러한 스트레스로 은근히 피곤하였습니다..
여러 번의 선조마음 정화식을 통해 조상을 모시는 마음가짐도달라 지고 빛과 함께 하는 가족들간의 인간관계도 편안해져서
이제는 다가오는 명절을 큰 부담없이 편안하게 준비하게 됩니다..
빛명상을 통해 명절스트레스를 날려주신 우주마음과 학회장님께 감사드립니다..
간소한 묘사상차림
민들레(강현순) http://cafe.daum.net/webucs/8HiT/10211
우주근원과 학회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어제 집안 종중 묘사 잘 모시고 왔습니다,
이번이 우리형님집에서 재물을 준비하는차례라 미리부터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절묘하게도 우리차례가되니 간소하게 차리자는 의견이 나와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작년까지만해도 5,6십명분들 먹을 음식 준비해야되고 재물도 명절상차림으로 준비 해야하니 점점 젊은 사람들은 오지않고 하니 간소하게 줄였다고 하십니다,
재물은 간단히 마른 재물만 준비하고 밥은 식당에서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학회장님께서 주신 정화수와 빛향으로 윗대조상님들을 모신 (무릉원) 주위를 남들보다 먼저 가서 깨끗히 정화하고 묘사 잘 모시고 올 수 있었음에 우주근원과 학회장님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첫댓글 "왜 명절이재미없어졌을까"의논단글과 귀한 빛글 감사드립니다.
귀한문장 차분하게 살펴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운영진님 빛과함께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귀한 글 올려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신과 인간의 곤계 " 감사드릷니다.
효 근원에 대한 감사 !! 죽은자와 산자의 주고 받는 대화 !! 소중한 말씀 주시어 감사드립니다.!!
빛은 있는 그대로의 순수한 마음이기 때문에 단계를 구분하지 않고 너와 나를 따로 담지 않는다. 귀중한 말씀 감사합니다.
명절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귀한글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자세한 내용 잘보고갑니다
명절의 의미를 한 번 되새겨보는 귀한 글 올려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효, 근원에 대한 감사, 죽은 지와 산자의
주고받음 (물음표)
감사한 마음으로 잘 읽었습니다. ..
명절이 닥아와도 전에는 어쩔수 없이
음식 장만 했지만 빛을 알고부터는 마음에서
우러나 정성껏 하게 됩니다....
올려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추석명절을 앞두고 좋은 글 올려주셔서 잘 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
우주마음의 뜻에 따라 영과 신의 단계나 구분을 모두 뛰어넘는 것이
우리 마음 속 우주근원의 빛 viit 이다.
감사합니다.
명절에 대한 우리의 마음가짐에 대해 잘 읽고 갑니다. 점점 형식에 치우치는 우리의 자세에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합니다. 감사합니다.
글을 읽으면서 탄생과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니다.
우주안의 생과 사
그안에 깨어 살아있는 저 자신이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지 알고,
주변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에 더 겸손해집니다.
가질 수 있는 시간에 감사하고, 식구들이 함께 모여있을 수 있음에 또 감사드립니다.
빛안에서 살아있는 동안 관조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많은것을 마음에 담아 반성하게됩니다 감사합니다
귀한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