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홍선사의 승탑과 섭진교를 건너면 석축(石築) 위에 터를 다진 석남사의 모습이 떠오르듯 보이
기 시작한다. 잔잔한 물소리의 계곡을 길동무로 삼으며 조금 더 들어가면 경내로 인도하는 침계
루가 마중한다.
침계루는 2층 건물로 1974년 주지 인홍이 중건했다. 1984년 법희(法希)가 중수했으며, 대중의식
과 좌석, 공양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원래 1층은 건물로 막혀있었으나 가운데 칸을
뚫어 경내로 통하는 문으로 삼았다. 침계루 현판은 청남 오제봉(靑南 吳濟峯)의 글씨이다.
침계루로 가는 길 주변 돌난간과 난간줄, 꽃과 풀에는 잠자리가 가득했다. 심심해서 절을 앞둔
시점에서 잠자리
사냥을 잠시 즐기니 어이가 없을 정도로 쉽게 잡힌다. 물론 어린 시절부터 단
양(丹陽) 시골에서 갈고 닦은 잠자리 사냥 기술도 한몫 한다. 그들을 잡으면 미련 없이 바로 풀
어주고 다시 사냥에 들어가는 식으로 약간의 시간 만에 50마리를 넘게 잡았다. 물론 잡힌 것들
이 또
잡힌 경우도 있을 것이다. 다 비슷해서 생겼으니 말이다.
몇몇 잠자리들은 높은 곳 대신 땅바닥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데, 길바닥에 처참하게 뭉게진 잠자
리 시체가 여기저기 보인다. 그들은 빠르게 다가오는 수레의 바퀴를 피하지 못하여 참변을 당했
는데, 빈대떡이 된 그들의 비참한 말로를 보니 어두운 기분이 잠시 나를 엄습한다. 잠자리들이
좀더 깨어있었더라면 그 피해는 훨씬 줄일 수 있었을텐데, 그렇다고 절에서 그들의 안전까지 지
켜주는 것은 힘든 일이다. (관심도 없을테고..)
그들의 극락왕생을 마음 속으로 기원하며
침계루의 아랫도리로 경내로 들어서면 담장과 침계루
에 가려진 석남사의 속살이 펼쳐진다.
그럼 여기서 석남사의 내력을 간단히
짚어보도록 하자.
※ 우리나라 최대의 비구니 도량, 가지산 석남사(迦智山 石南寺)
가지산에 안긴 석남사는 우리나라 비구니 사찰의 중심지이자 비구니 수행도량의 성지로 공부가
매우 엄하기로 유명하다.
이 절은 신라가 한참 기울어가던 824년<신라 헌덕왕(憲德王) 16년> 도의선사(道義禪師)가 창건
했다고 한다. 도의는 이 땅에 처음으로 선종(禪宗)을 들인 인물로 784년 당(唐)나라로 넘어가
오랫동안 선종을 익히고 821년에
귀국했다.
그는 이곳에 석남사를 세웠는데, 경내에 만든 화관보탑(華觀寶塔)의 빼어남과 각로자탑(覺路慈
塔)의 아름다움이 영남 제일이라 하여 절 이름을 석남사(石南寺)라 했다고 하며, 다른 설로는
가지산의
별명이 석안산(碩眼山)이기 때문에 그 이름을 따서 석안사라 칭했다고도 한다. 허나
도의의 창건설은 신뢰하기가 어려운 실정으로 울산시에서 펴낸 '울산광역시시사(市史)'에는 도
의의 제자이자 진골(眞骨) 출신인 진공(眞空, 855~937)이 창건했다고 나와있다.
다만 경내에 도의국사승탑이라 우기고 있는 신라 후기 승탑과 3층석탑이 있어 적어도 신라 말기
에 창건되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으며, 도의의 제자나 도의와 관련된 가지산문(迦智山門) 파에
서 세운 것으로 여겨진다.
창건 이후 700년 동안 적당한 바퀴자국을 남기지 못했으며, 임진왜란 때 파괴된 것을 1674년(현
종 15년)에 언양현감 강옹(姜甕)의 시주로 탁령(卓靈), 자운(慈雲), 의철(義哲)이
다시 일으켜
세웠다. 이때 진혜(振慧), 쌍원(雙遠), 익의(益儀) 등이 단청을 칠하고 종과 북을 만들었다.
1736년(영조 12년) 김언창(金彦昌)의 시주로 대웅전 영산회상도가 조성되었으며, 1803년(순조 3
년)에는 침허(枕虛)와 수일(守一)이 가람을 중수하고 미타탱과 지장탱을 조성했다. 1863년(철종
14년)에는 대웅전의 신중탱과 산신탱을 봉안했으며, 1889년에는 독성탱을 만들었다.
1912년 우운(友雲)이 중수했으나 6.25전쟁 때 폭격으로 폐허가 되고 만다. 1957년 인홍(仁弘)이
주지로 부임하면서 망해가던 석남사는 중흥의 기운을 맞게 된다. 1958년 청화당을
짓는 것을 시
작으로 대웅전과 극락전 등을 일으켰으며, 1963년 심검당과 침계루 등을 신축했다.
그리고 꾸준히 불사를 벌여나가 20여 동의 건물을 싹틔웠으며, 우리나라 으뜸의 비구니 선원도
량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2001년에는 옛 동인암터에 금당(金堂)을 지어 선원을 늘렸으며, 100여 명이 넘는 비구니들이 상
주하면서 엄격한 계율을 지키는 종립특별선원(宗立特別禪院)이 되었다.
석남사는 다양한 방식의 선원(禪房)을 운영하는데, 그중의 하나인 정수원(正受院)은 보통의 선
방처럼 결제와 해제를 지키지만, 금당은 해제가 따로 없이 1년과 3년씩 정진하는 수좌(首座)들
만 모여 있다. 또한 심검당(尋劒堂)은 노승(老僧)들이 자유롭게 수행하는 곳이다.
경내에는 대웅전과 극락전, 조사전, 금당, 심검당, 강선당 등 20여 동의 건물이 있으며, 보물로
지정된 승탑을 비롯하여 지방문화재인 3층석탑과 수조 등의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다. 비록 건
물들은 고색의 내음이 싹 씻겨 내려갔지만 승탑과 3층석탑은 신라 후기 석조물이며, 수조는 고
려 후기(또는 조선 초기) 것이라 석남사의 오랜 내력을 가늠케 한다. 또한 비구니 사찰이라 경
내가 무척 깔끔하고 정갈하며, 지세를 이용해 건물들이 알맞게 배치된 점이 눈에 띈다.
가지산의 첩첩한 산주름에 묻힌 심산유곡의 절집으로 경관이 아름답고 석남사계곡이 절의 곁을
감돌아 그야말로 명당이다. 속세와도 적당히 거리를 두고 있어 복잡한 마음이나 번뇌를 가다듬
기에 좋다. 또한 얼음골과 호박소계곡을 비롯하여 배내계곡, 간월산 등이 가까운 곳에 포진해
있어 이들을 겯드리면 정말 배부른 나들이가 될 것이다.
석남사에서 가지산 정상까지는 2시간 30분 정도 걸리며, 운문산이나 남명, 호박소계곡으로 내려
갈 수 있다.
※ 석남사 찾아가기 (2013년 9월 기준)
* 태화강역(옛 울산역), 울산시외터미널(터미널4거리 서쪽 정류장), 공업탑, 신복로터리, 언양
터미널(내부)에서 석남사행 1713번 좌석버스 이용 (15~40분 간격)
* 태화강역, 울산시외터미널(터미널4거리 서쪽 정류장), 울산시청, 울산역(고속전철), 언양터미
널(바깥)에서 807번 시내버스 이용 (20~30분 간격)
* 울산시내에서 갈 경우에는 1713번이 807번보다 훨씬 빠르다.
* 울산역(고속전철)에서 328, 807번 시내버스 이용
* 밀양터미널에서 석남사행 직행버스가 60~90분 간격으로 운행
* 승용차로 가는 경우
① 경부고속도로 → 언양나들목에서 밀양 방면 24번 국도 → 궁근정 → 석남사주차장
② 대구~부산고속도로 → 밀양나들목에서 울산 방면 24번 국도 → 산내 → 호박소터널 → 덕현
교차로에서 석남사 방면 → 석남사주차장
★ 석남사 관람정보 (2013년 9월 기준)
* 입장료 : 어른 1,700원 (단체 1,500원) / 청소년과 군인 1,300원 (단체 1,000원)
/ 어린이
1,000원 (단체 800원) <단체는 30인 이상>
* 소재지 -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덕현리 1064 (☎ 052-264-8900)
* 석남사 홈페이지는 아래 사진을 클릭한다. |
첫댓글 인용한 이영도 시인의 시 중 법탈法脫이란 단어는 혹시 법열法悅의 오타가 아닐까 싶네요. ^^*
석남사,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라, 미지의 곳에 대한 설렘이 모락모락 피어오릅니다.
()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있는 그대로 인용한 시이다보니. 아마 법탈이 맞을듯요. 글 작성 전에는 저런 시인과 시가 있는 것도 몰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