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이한 말로 이루어진 예술의 작가, 린량
린량은 1924년생으로 타이완 아동문학의 거목으로 불린다. 왕수펀 아동문학가가 말하길, 린량의 동화는 따뜻하고, 산문은 유머가 넘치며, 문학론은 예리하고, 인품은 돈후하다고 했다. 60여 년간 어린이 책을 쓰고 번역하고 연구한 린량의 작품들은 선善과 미美를 향해 힘차게 내달린다. ‘선’과 ‘미’라는 말은 그의 생활을 돋보기로 들여다본 관찰자가 뽑아낸 너무 추상적인 낱말이지 않을까. 하지만 독자들은 그의 글과 삶에서 이렇게 귀납시킬 수밖에 없다. 구체적 세계들이 다른 어떤 단어로도 집약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린량이 보여주는 건 세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놀아주고 이야기 나누고, 유치원과 학교에 데려다주는 것이다. 그는 그저 이런 일상생활을 충실히 재현하는 글을 쓴다.
이를테면 막내 웨이웨이는 ‘텔레비전 고아’가 되는 것을 극혐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TV를 켜자마자 아이는 자기가 ‘심하게 교양 없다’는 사실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바지에 오줌을 싸거나 바닥에 똥을 누고, 벌러덩 드러누워 잠든 척하거나 꽃병을 부순다. 막내는 결코 TV를 용납하지 않는다. TV 앞에서 어른들이 목을 쭉 뺀 채 커다란 상자에만 정신이 팔려 있고 자신한테 관심을 안 두면 이 ‘텔레비전 고아’는 참는 방법을 모른다. TV뿐만이 아니다. 책을 볼라치면 막내가 책을 빼앗는다. 글을 쓸라치면 펜을 빼앗는다. 누군가와 이야기라도 나눌라치면 그 사람을 몰아내버린다. 집을 좀 치울라치면 오줌을 싼다. 책상을 정리할라치면 똥이 마렵단다.
하지만 TV는 막내의 어휘력을 늘려준 주역이기도 하다. O형의 이 아이는 TV 속 말들을 그대로 빨아들여 다음과 같은 말을 곧장 쏟아놓는다. “나 오늘 엄청 신나.” “엄마, 무지무지 사랑해요.” “작은언니가 날 학대해.” “큰언니가 최고로 귀엽다니까.” “아빠, 저리 좀 가주세요.” “꼬마 친구들, 어린이 세상에 잘 오셨습니다. 다 같이 즐겨요!” 이게 좋은 일이다 아니다를 판단하지 않고 아빠로서 저자는 입에서 텔레비전 말이 흘러나오고, 머릿속에 텔레비전 사고를 장착하고, 즐기는 취미도 텔레비전의 영향을 받는 의심할 수 없는 현실을 인생 문제로 받아들인다.
첫째 잉잉의 생활 묘사도 들여다보자. 잉잉이 아침에 일어나면 저자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어젯밤에 다 못 풀고 잔 수학 교과서를 가지고 또 서재로 올 것이기 때문이다. “형 나이가 동생 나이의 두 배보다 여섯 살 적으면…….” 저자의 대뇌는 다시 첫째의 계산기가 돼주어야 한다. 하나같이 목욕을 싫어하는 아이들이지만, 수학 마니아(?) 첫째는 목욕하라는 말에도 수학 핑계를 댄다. “근데 조금만 기다려 주실래요? 수학 문제를 반밖에 못 풀어서요.” 이 말을 내뱉고 나서도 다시 백 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 더는 늦출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놓으면 아이는 몽유병자처럼 휘적휘적 욕실로 들어간다. 잉잉이 수학 문제를 들고 낑낑거리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지만 부모는 잉잉이 자기 운명의 주인공이 되게끔 ‘크게’ 만들기로 결심한다. 즉 일체의 간섭을 거둔 채 아이에게 ‘책임감’을 모조리 떠넘긴다. 아이가 제 운명과 싸우는 모습을 보노라면 부모로서 무척 괴롭다. 마음이 쓰라리기보다는 ‘가렵’달까. 걸핏하면 공짜로 ‘시범’을 보이고 싶고, 걸핏하면 아이들 앞에서 아빠의 수학 솜씨를 자랑하고 싶은 것이다.
린량은 아동문학을 ‘평이한 말로 이루어진 예술淺語的藝術’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동명의 책에서 아동문학은 이해하기 쉽고 통속적인 언어로 써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는 후대의 아동문학 창작자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한평생 아이의 마음을 간직한 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세상을 탐색하던 사람으로 그의 펜 끝에서는 어떤 평범한 일도 흥미롭고 특별하게 재탄생된다.
아이들은 부모 마음에 품은 작은 태양이다
이 책은 ‘단칸방’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창문 밖은 세상, 창문 안은 집. 우리 집에는 방이 딱 한 칸 있고, 우리 방에는 빈 벽이 두 개 있다.” 저자는 나무판자로 된 벽 하나에 담홍색 꽃무늬 벽지를 바른다. 열쇠를 꺼내 자물쇠를 따고 문을 열 때마다 새삼 느낀다. ‘참 작기도 하지, 우리 집!’ 부부 두 사람이 방 한가운데서 마주 보고 선다. 공간은 꽉 찬다. 그들의 작은 방은 세상없이 안쓰러운 고아처럼 느껴져 두 사람은 작은 마음을 보태 그 모든 결핍감을 채우겠노라 다짐한다. 다행히 타이완의 음습한 우기를 뚫고 작은 태양 셋이 태어난다.
작은 태양 셋은 육아 기계인 아빠를 배려하려고 나름껏 노력한다. 저자가 원고를 쓰느라 밤을 새우면 손가락 세 개가 저마다 세 개의 입에 갖다 대고 “쉿, 쉿, 쉿” 소리를 낸다. 이 애가 저 애한테 조용히 하라 하고 저 애가 이 애한테 조용히 하라 한다. 차르르, 커튼이 드리워진다. 첫째가 말한다. “커튼 치면 햇빛이 안 들어와서 아빠가 더 오래 주무실 수 있어.” 두 살 막내가 돌돌 말린 이불을 펴주겠다며 침대로 기어오르다 주르르 미끄러진다. “떨어졌어! 떨어졌어!” 막내의 탄식이 들린다. 첫째와 둘째가 다시 손가락으로 입단속을 한다. “방문 잘 닫고 가자. 누가 들어와서 시끄럽게 하면 안 되니까!” 둘째 목소리다. 작은 발 여섯 개가 쿵쾅거리더니 문이 쾅 하고 닫힌다. 고운 마음씨들이 만들어준 ‘수면 환경’ 속에서 저자는 잠이 확 깬다. 서로의 배려가 흘러넘쳐 샛길로 새버린 진풍경이다.
이 책에서 주목할 것 중 하나는 표현력이다. 축축한 빗속에서 살아가는 타이완인들을 저자는 물고기로 묘사한다. “올해 춘절은 ‘비 오는 명절’이다. ‘행인들을 말 없는 물고기로 만드는’ 궂은비가 쉬지 않고 내린다.” 가오슝으로 여행을 떠나면서는 “주룩주룩 내리는 빗속에서 타이베이를 떠난 우리는 가오슝에서 태양을 따라잡았다”라는 빛나는 표현을 구사한다. 태양이 길동무가 돼주어 실컷 여행을 잘하고 온 아빠와 세 딸은 다시금 진창길로, 음습한 도시로, 영원히 끝나지 않을 일더미 속으로 돌아왔지만 마음만은 달라져 있다. 이들 가족은 남쪽에서 태양을 만났고, 마음속에 작은 태양을 품고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게다가 하얀 개 스노까지 합세해 일상에는 따사로운 볕이 드리운다. 윗세대와 아랫세대, 인생과 인간성, 역사와 현실을 응집해 더 높은 곳을 향해 가려는 힘이 이들 가족에게서 뿜어져 나온다. 그리고 그 에너지는 눈부신 단어와 문장들 속에 담겨 작은 태양처럼 빛을 발한다.
막내에게는 작은 욕망이 하나 있다. 이 집에서 자기 말고 다른 사람들, 그러니까 자기보다 일찍 태어난 첫째와 둘째는 군더더기라는 사실을 자꾸만 알리려 한다. 그리하여 막내는 자기보다 일찍 세상에 나온 두 ‘장애물’을 모방해 그들의 모든 특장점을 자기 몸에 새기려고 온 힘을 다한다. ‘백과사전’처럼 모든 걸 다 아는 유일한 아이가 되어 일찍 태어난 자들의 ‘무가치’를 폭로하려는 거다.
--- p.24
아빠가 ‘일찍 태어난 자들’의 수중에 들어가는 걸 막고자 막내는 아빠를 바쁘게 할 방법, 1초도 쉬지 못하게 만들 방법을 끊임없이 궁리한다. 퇴근한 아빠가 문에 들어서는 순간, 막내는 일식집에서 손님이 스시를 주문하려고 종업원을 부르듯 손뼉을 탁탁 친다. 그러고는 “안아줘, 안아줘” 하면서 일단 아빠를 옭아맨다. 막내는 진즉에 조그만 파충류에서 인류로 진화했지만, 아빠를 ‘점령’하는 첫 단계는 아빠를 다시금 ‘안아주는 기계’로 만드는 것임을 잘 안다. 이제 막내는 높은 곳에 군림해 일찍 태어난 자들을 내려다보며 잔뜩 우쭐해 있다. ‘인간 배’에 승선한 막내는 키잡이가 되어 아빠를 멋대로 조종하며 쉴 새 없이 움직이게 한다. 높이 높이, 봐봐, 씻자, 물, 과자, 얼음, 마실 것, 가져와…… 선장처럼 끊임없이 명령을 내린다.
--- pp.25~26
자기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며 쓸쓸히 하루를 보낸 막내는 드디어 ‘혼잣말’ 수업을 마치고 앞으로 나아가 환영사를 외친다. “언니들아, 집에는 뭐 하러 왔는데!” 막내는 다가가서 언니들 옷을 잡아끌고, 언니들 도시락통을 받아들고, 언니들 책가방을 끌어내리다가 ‘무거운’ 책가방과 함께 엉덩방아를 찧는다. 세 아이는 세 마리 강아지처럼 야단법석을 떤다. 웃기도 하고 떠들기도 하고 옥신각신 다투기도 한다. 시간도 잠시 아이들을 놓아준다.
--- pp.62~63
아이들은 다들 물장난을 좋아한다. 우리 집 첫째, 둘째, 막내도 제각각 ‘물장난 시기’가 있었다. 첫째가 ‘어릴 적에’ 좋아한 일은 세숫대야에 물을 가득 채우고 집에 있는 모든 구두를 담가 ‘깨끗이 목욕시키는’ 것이었다. 그 결과 엄마 아빠는 이튿날 축축한 신발을 신고 출근해야 했다. 둘째가 깨끗이 씻긴 걸작품은 아빠의 책과 엄마의 립스틱이었다. 지금 막내는 수도꼭지 아래서 크레용, 종이, 휴대용 라디오를 목욕시키는 일을 가장 좋아한다. 막내가 씻으면 안 되는 물건을 씻는 것을 막고자 우리 집 카메라와 망원경은 다 2미터 높이의 장롱 위에 올려놓았다.
--- p.65
흥정을 좋아하는 막내는 언제나 “아빠가 씻겨줘” 하고 지정한다. 이 ‘두 살 반’ 꼬맹이를 목욕시키는 일은 나도 사우나에서 땀으로 목욕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요 녀석은 모든 ‘가격표’를 붙인다. 옷 벗는 일은 ‘목욕 다 하면 과자 하나 주기’란다. 욕조에 들어가는 것도 과자 하나, 비누칠하려면 또 과자 하나, 욕조에서 나오려면 또 과자 하나. 한 번 목욕하고 나면 과자 네 개를 얻는다. 매 단계마다 일단 안 하겠다고 거절하고 본다. 그다음에는 뭔가를 요구하고, 요구가 안 먹히면 또 거절이다. 이렇게 서로 양보 없이 버텨도 요 녀석은 손해가 없고 나는 시간을 손해 본다. 어쩔 수 없이 과자 네 개를 시간과 바꾼다.
--- p.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