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9 일 - 마지막 날
호텔에서 맛있는 아침 식사를 하고
8시 반에 이틀 밤을 지낸 도원 호텔을 떠나
공자 사당인 공묘 (孔廟) 명륜당으로 향하다.
이제 구경 그만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라는 듯 가랑비가 약간 차창에 스친다.
테이프의 음악은 92 번 비 내리는 영동교, 93 번 짝사랑, 94 번 허공 등이 흐른다.
진도가 많이 나갔다.
9시 20 분 공묘 도착.
예수, 석가와 더불어 인류가 낳은 3대 성인의 한 분이라는 공자.
공자상을 모신 대성전 주위는 분위기가 엄숙하다.
공자는 제자가 3,000 명
역사에 이름을 남긴 제자 70 여명
행적이 잘 알려진 유명한 제자 10 여명
공자에 버금가는 성인급 제자 4명
공자야말로 사상 가장 위대한 교육자가 아니겠는가.
“배우고 때대로 익히면 그 아니 즐거운가” - (學而時習 不亦悅互)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니 그 아니 즐거운가” - (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
학문의 즐거움과 우정을 찬양한 공자님 말씀 - 바로 우리들에게 주는 말이 아닌가.
장개석 총통이 공묘를 방문하고 남긴 휘호도 보인다.
대성전 전면에 쓰인 유교무류 (有敎無類)
친구들이 이리 저리 해석을 시도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해석은 거의 정확했다.
휘호를 쓴 분은 장개석이지만 이는 공자의 학이편에 나오는 공자님의 말씀이다.
배움에는 류가 없다 - 배울 뜻이 있는 자는 신분을 구분하지 말고 ( No Distinction) 가르쳐 주어라.
공자의 10 대 제자중의 한 명이며 특히 공자가 그 인간성을 사랑했던 자로는 변(卞) 이라는 소국의 별 볼 없는 野人 이었다.
2,000 년 이상 동아시아의 정신적인 지주였던 공자
다가오는 추석에 조상 묘에 성묘하고 제를 지내는 것도 다 공자의 유교사상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니
우리의 마음속에, 생활속에 공자는 여전히 살아있다고 할 수 있다.
공묘를 떠나 버스는 중정기념당으로.
中正은 장개석의 이름, 介石은 자(字)다.
보통 장개석으로 통칭하지만 본명은 장 중정. (1887 - 1975)
장개석은 신해혁명으로 청조를 무너뜨리고 중화민국을 세운 손문의 계승자.
남부의 지주, 자본가의 세력을 업고 자본주의 국가를 세우려고 한 장개석과 노동자, 농민의 세력을 업고 공산주의 정부를 세우려는 모택동과의 권력 싸움에서 끝내는 패퇴하여 대만으로 도주하여 오늘의 타이완이 있게 한 장본인.
대륙을 잃은 패배자였지만 1949 년부터 1975 년까지 26 년간 대만을 통치.
그의 사후 국내외 중국인들의 자발적인 헌금에 의해
1980 년 총면적 25만 평방미터의 거대한 중정 기념당이 완공되었다.
우리는 차편 때문에 정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후문으로 들어가서 관람하게 되었다.
그래서 글의 편리상 필름을 거꾸로 돌리기로 한다.
정문은 다섯 기와지붕을 가진 반원형의 다섯 개의 입구를 가졌다.
가운데 현판은 대중지정 (大中至正) -
지도자는 마음을 바루고 덕을 닦으라는 유교의 이념이자
장개석의 본명인 중정의 해자 (解字) 이기도 하다.
정문 양측에는 국립 극장과 국립 음악당
멋진 중국식 정원을 지나면 삼각형 모양으로 3개의 산을 포진한 것처럼 형성한 웅장한
기세의 본관 건물.
평지에서 본관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89 개
이는 장개석이 89세를 누렸다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
전망 좋은 가운데에 장개석 좌상이 높이 앉아 타이페이 시가지를 굽어본다.
그의 사거 30 년 - 아직도 그는 대만인들에게 군림하고 있다.
내부는 온통 그의 흔적들로 가득하다.
젊었을 적부터의 사진들, 집무실 모습, 사용하던 물건, 글씨.
각국 원수들과 찍은 사진 (박정희 대통령, 죤슨 대통령과 찍은 사진도 보인다.)
생전 모습 그대로인 밀랍인형 등.
셋째 부인이자 그의 훌륭한 외교 참모이기도 한 송미령도 기념관의 한 축을 이룬다.
송미령은 광동성의 기업인이자 기독교 신자 집안의 딸.
( 1899 - 2003 )
두 언니 애령, 경령 (손문의 아내) 과 더불어
미모와 재주가 뛰어난
20 세기 중국의 가장 걸출한 여형제들이다.
대담하기 그지없는 미령은 일찍이 조지아주 위슬리 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하여 기독교 여자 청년 운동, 소년 노동자 운동 등을 통하여 사회 개혁 운동을 하다가 장개석을 만나 권력의 정점에서 장개석을 도왔다.
남편의 사후까지 중국인들의 존경을 받으며 최근까지 미국에서 살다가 104 세 되던 2003 년에 죽었다.
중정 기념당의 두 주인공, 장개석과 송미령, 둘 다 개인적으로 재주 있고 인물 좋은 풍운아들 -
저승에서도 만나 중국 본토 회복의 꿈을 꾸고 있을까?
중정 기념당 구경을 마친 우리들은 운한지 (雲漢池) 라는 연못 가 반석 위에 앉아 쉬었다.
한 번 씩 누런 잉어들이 훌쩍 물위로 솟구친다.
잉어는 재물과 권력을 상징하는 고기라는데 저놈들도 꿈을 이루지 못하고 죽은 장개석이 어굴한가?
11시 20 분에 중정 기념관을 뜨다.
이제 우리들의 여행은 그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타이페이 역에서 빨간 옷을 입고 평화롭게 데모하는 광경을 보고
玉 가게 Formosa Star 에서 옥 세공품 구경
( Formosa 라는 탐험가가 서양인으로서는 타이완을 처음으로 발견했다고 한다.
그래서 타이완을 영어로는 Formosa 라고 한다.)
12시 40 분
한국 음식을 파는 식당에서 순 한식으로 점심 식사.
마지막 식사를 한식으로 한 것 - 이런 것을 탁월한 선택이라고 하지. 양귀비, 고맙소.)
식사 후 달리는 차내에서 총무의 결산 보고
2 사람 분의 여행비 DC 받은 돈의 사용처 내역이라.
68 만 X 2 = 136 만 -> $ 1,415
아이스크림 2 회 46불
생수 2일분 32
온천탕 라커 7
26 일 맥주 40
고량주 20
27일 호텔앞 골목 136
28일 중식시 맥주 20
저녁 맥주 45
쫑파티 225
죽암 연수책 간행 50
1인당 20씩 환불 20 X 32 = 640
총공동 경비 1,261
잔액 154 불 -> 약 140,000 원
잔액은 산삼회 조정 회장님과 정상조 총무님께 상의하여 집행하겠습니다.
시간이 남아 시내 면세점에 가서 눈요기 쇼핑 ( eye - shopping. )
3시 - 드디어 버스는 공항으로 간다.
노래 곡목은 100 번으로 진입
99 번 김상진의 고향이 좋아
100 번 고향 아줌마
마지막으로 간단한 소감 발표 몇 가지.
정말 멋진 여행단입니다. 너무 잘 해서 제가 할 게 없습니다. - 오희주 부사장
이제 4박 정도의 여행에는 자신이 생겼습니다. 친구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 죽암
시종 다정한 모습으로 남편 곁을 떠나지 않은 죽암 부인에게 베스트 와이프상,
부인의 커피 서빙에도 합장 감사하는 여항에게 베스트 허즈상을 드립니다 - 남계
날씨 괜찮고, 볼 거 다 보고, 아픈 사람 하나 없고, 특히 사모님들 서로 친해지고,
정말 우리 회원 32 명 모두에게 뜨거운 감사를 보냅니다 - 여항
수고한 운전기사에게는 젓가락 한두 통 사줌으로서 팁을 대신하고
공항에서 마지막으로 우리의 대장 양귀비에게 악수.
수고 많았어요. 세세.
17 : 50 (대만 시각) - 부흥 항공기 탑승.
눈을 감고 지난 3 박 4일을 그려본다.
다정한 친구들 모습, 멋진 광경들, 고마운 사모님들 모습.
며칠 떨어져 있었다고 새삼
빨리 가고 싶은 내 나라.
뭐니 뭐니 해도 나에게는 코리아 - 당신이 최고야.
중국 요리 산해진미도 쌀밥에 김치, 된장찌개만 하랴.
해운대나 간절곶의 해돋이가 아리산의 해돋이 만 못할 리가 있나.
이에류 해상공원 못지않게 태종대, 거제도, 홍도의 해벽미도 훌륭하다.
가을은 여행의 계절 - 이제는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다녀봅시다.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실례된 표현이나 옹졸한 생각이 보이면 양해해주십시오.
추석 잘 쇠시고 언제나 건강해야 합니다.
첫댓글 여행 일자와 여행지를 상세히 기록하여 다시 음미 할 수 있게 해 주신 남계 정말 대단한 기억과 솜씨입니다. 우정이 더욱 돈독해 지는 뜻있는 행사 주선해 주신 여러 수고하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07년은 일본 북 알프스로 계획해 봅시다.
남계선생의 대단한 수고와 헌신적 노력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정확한 기억과 유창한 글솜씨에다 역사적 사실과 어원 등등까지를 정확히 밝혀 주어 좋은 공부까지 되게 해 주어 더 감사합니다. 중정기념당을 보면서 서안사변을 일으킨 장학량의 훼방이 없었다면 장개석이 모택동을 제거하고 민주국가를 건설하였을 것이고 그러면 6.25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인한 방해도 없어 우리는 통일 국가를 건설하여 번영되고 발전된 국가를 누리고 있을 것이란 생각에 아쉬움이 많았답니다.
멋쟁이 남계선생! 그동안 수고 많았소. 당신의 여행기로 우리 대만아리산 여행단 32인은 너무너무 행복했다오. 셰셰..
시월 중순 이후에 국내 이름난 단풍 관광 3박으로 8명 정도 해서 자가 용으로 한바퀴 돌아 볼 의향있는 분 연락주세요 016.830 3386 부부동반으로
아리산 기행문 대장정의 막을 드디어 내렸군요. 그동안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남계가 기행문을 올리므로해서 교대3기의, 특히 산삼회의 응집력이 더욱 강화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아리산 여행도 더욱 돋보인 것 같습니다. 남계의 수고도 컸지만 뒤에서 알게 모르게 후원한 친구들의 힘 때문에 더욱 빛난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친구 여러분들, 감사합니다. 사실 기행문을 또닥또닥 치면서 재미 제일 많이 본 사람은 접니다. 글자들이 연결되어 이미지를 만들고 --- 친구들이 읽어주시니 더욱 신나고. 카페지기 청송 정경권 친구에게도 우리 모두 감사드립시다. 이 모든 것이 청송이 있어 가능하니까요.
대만 아리산 3박4일 기행문 마지막회까지 잘 읽었습니다. 버드나무님의 부산교대 3회와 산삼회에 대한 남다른 사랑과 관심이 정성들여 기록한 기행분에 잘 묻어있음은 물론 여행 참여회원님들의 화합된 분위기와 정년퇴임 후 자칫 잊기쉬운 미래의 새 인생 지평을 열어가는 계기를 마련해 준 가치로운 여행이었음을 보여주는 좋은 기록이군요. 비록 여행에 함께 참여는 못했지만 마음만은 함 늘 함께하고 있던 중 기록을 통해서나마 아리산을 중심으로한 대만의 풍물을 엿볼수 있어 매우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불과 4일 조국을 떠난 몸이지만 마지막날에는 대한민국의 위대함 그리움이 흠뻑묻어있는 듯하여 더욱 반갑습니다.
여행 중 보고 들은 내용 뿐만 아니라 역사적 고증, 기타 정사 및 야사를 통해서만 인지할 수 있는 일화들을 희귀 서적을 통해 자료를 수집하여 글을 읽는 독자로하여금 흥미와 지적만족도를 높여 준 점 더욱 돋보이고 여행 그 자체도 매우 가치있는 일이지만 버드나무님의 기행문을 통해 평소 알지못했던 대만의 역사 중국본토와의 관계 및 오늘으 대만이 있기까지 숨은 이들의 공신이야기가 매우 흥미로왔습니다. 감사합니다.
멋진 여행기 잘 읽었습니다. 기록은 영원히 남는것---- 물 흐르듯이 쓰내려가는 南溪의 문장력은 언제나 가슴을 적셔 줍니다.등려군 노래도 한번 들어봅니다. 맛있는 글이었습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