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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대표적 예언서인 법화경과 기독교의 예언서인 요한계시록을 비교해 보면 두 종교간의 이질감이 사라지고 서로 하나라는 사실을 공감할 수 있다. 두 경전은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전에 쓰인 예언서들인데 그 내용은 미래에 출현할 천국과 극락에 대한 것이요 사람들이 신(하나님)이 되고 부처님이 되어버리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예언이다.
그 예언은 비사와 비유로 말하고 빙자(憑藉)한 은유법으로 기록되어 있어서 그 뜻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 결과 신앙인들이 예수와 같은 하나님이 되고 석가와 같은 부처님이 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누구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예수가 계시되면서 세상의 모든 예언서들의 실체가 다 밝혀지게 되었고 그 숨은 뜻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성서가 계시되면서 불서와 다른 예언서들도 그 목적과 주제가 다 같다는 것도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그 목적은 사람들마다 신이었고 다 신들이 되어버리는 천국과 극락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각기 서로 다른 시대에 다른 사람들에 의하여 기록된 두 경전의 목적과 주제가 서로 같다는 것은 두 경전이 우연이 아님을 증거하고 있으며 서로 상생할 수 있는 관계가 되고 기록된 내용이 사실이란 것을 더 확신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성서는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예언과 성취가 반복되면서 영적 성장을 이루고 있는 역사책이다. 그런데 불서와 성서의 주제가 동일하다는 것은 경전의 예언들이 확실히 이루어진다는 것이요 기독교와 불교가 서로 하나가 되어 사람들마다 똑같은 신들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독교와 불교의 예언들이 하나로 해석되고 풀어지게 되면 서로 합류하게 되어 있고 두 종교는 통일될 수밖에 없다. 두 종교의 통일은 곧 세계 종교통일로 이어지게 되어 있고 그때 사람들은 하나의 신들이 되면서 모두 똑같은 신들로 살 수 있게 되니 이것이 천국이요 극락이며 새 하늘과 새 땅이다.
종교 통일은 영적 통일이요 정신 통일이며 신들의 통일이다. 이것을 지상천국, 지상극락, 지상낙원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을 말한다.
지금 세상에는 천국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불교인들은 다른 극락을 기다리고 있고, 세상에는 극락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기독교인들은 다른 천국을 기다리고 있다면 정말 웃기는 코미디가 아닌가?
천국과 극락의 반대말은 지옥인데 한쪽이 천국이나 극락을 간다고 할 때 다른 한쪽은 지옥을 가게 되어 있으니 기독교인이 말하는 지옥을 불교인들이 가고, 불교인들이 말하는 지옥을 기독교인들이 간다면 이런 세상 자체가 지옥이지 않는가?
그러므로 불교의 극락이나 기독교의 천국은 동일한 실체임을 알 수 있다. 이런 해프닝들은 모두 오늘날의 신앙인들이 경서를 외면한 결과요 깨닫지 못한 데서 와전된 것이다. 그래서 종교의 예언이 성취되면 자연히 세계 종교는 하나로 통일될 수밖에 없다.
종교의 목적이 이루어지기 전에 세상을 주관하던 신은 음신(陰神)이고, 종교의 목적이 성취되었을 때, 세상과 인간을 주관하는 신은 양신(陽神)이다. 천국과 극락의 정의는 음신(陰神)의 세상에서 양신(陽神)의 세상으로 이동하는 것을 말한다.
음신(陰神)은 양신의 모방신, 짝뚱신이며 마귀, 마구니, 사탄, 악령, 뱀, 용, 귀신 등으로 표현되어 왔고, 양신(良神)은 창조주, 하나님, 부처님, 성령, 옥황상제, 봉황 등으로 사람들의 입에서 회자되어 왔다.
따라서 종교의 목적이 이루어지기 전(前) 사람들의 가장 큰 특성은 영혼이 음신(陰神)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요 종교의 목적이 이루어진 후의 인간의 특성은 그들의 영혼이 양신(陽神)으로 거듭난다는 것이다.
불교에서 음신(陰神)의 정신과 영을 가진 사람들을 중생(衆生)이라 하고, 양신(陽神)의 사람들을 부처 또는 여래라 하며 기독교에서 음신(陰神)의 사람들을 죄인, 육체, 악령, 마귀, 사탄으로 표현하였고 양신(陽神)의 사람들을 인자, 성도, 천사, 의인, 온전한 사람,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 등으로 표현하였다.
그러므로 종교의 목적이 이루어지기 전의 악령 또는 마귀의 세상을 선천(先天), 혹은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라 하고, 목적이 이루어진 이 후의 성령 또는 신명(神明) 세상을 후천(後天), 또는 새 하늘과 새 땅이라 하였다.
종교의 목적이 이루어지기 전의 세상을 현세(現世)라 할 수 있고 종교의 목적을 이루고 난 후의 세상을 내세(來世)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흔히 내세를 죽어서 가는 천국, 극락이라 하는 것은 세월이 흘러가 언젠가 내세(來歲)에 천국, 극락, 낙원이 세워지기 때문이며 내세가 죽어서 가는 세상이라 보는 견해는 곡해요, 오해이며, 내세(來世)란 후천 세상을 의미하고 있다.
사람으로부터 하나님의 신성이 점점 사라지고 사람들의 정신을 귀신들이 점령하면서 천국이나 극락을 말하면 하나같이 모두 현실성이 없는 허상이라며 무시한다. 그러나 인간과 자연의 섭리를 진리의 눈으로 바라볼 줄 아는 사람들은 이 세상은 영의 세계요, 신의 세계이며 새 하늘과 새 땅이 환하게 보인다.
인간의 육체 속에 들어있는 영혼과 정신이 그것을 잘 설명해 주고 있으며 인간 영혼의 속성이 영(靈)이요 신(神)이기 때문이다.
현세 인간들의 육체에 들어가 있는 영을 마귀, 사탄, 귀신, 더러운 영, 마구니 이기 때문에 사람이 신이요 하나님이며 부처님이라 말하면 미친놈들 잘 놀고 있다며 욕한다. 불교에서는 이런 영으로 이루어진 육체를 중생(衆生)이라 하였고 성서에는 이런 영을 가진 사람들을 죄인이요 악한 사람들이라 하였다.
불경의 목적은 중생이 부처로 성불하는 일이라 하였고 성경의 목적은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 하나님의 자녀들, 예수의 분량까지 장성한 사람들, 예수와 레벨이 같은 어린양의 아내들, 예수와 같은 하나님들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현시대의 사람들을 종교적으로 표현하면 중생이고 짐승이며 죄인들이다. 그런 중생들이나 짐승 같은 죄인들이지만 깨달으면 부처로 성불하게 되어 있고 성령으로 거듭나 예수와 같은 하나님들이 된다는 것이 경전이 가지고 있는 목적이다.
불자들이 말하는 세상은 중생들이 사는 사바세상이라는 것이요, 사바세상을 마구니의 세상이라 하였고 이것을 기독교 성도들은 사단, 마귀가 지배하는 세상이요 죄인들이며 짐승들이요 지옥이라 하였다. 이런 세상을 가리켜 선천이라 하였고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라 하였으며 / 내세는 의인들의 세상이요 신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세상이니 천국이요 후천이며 새 하늘과 새 땅이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바라는 천국이나 극락은 현시대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시대가 가고 다시 오는 새 시대에 나타나는 세상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세(來世)를 천국이나 극락이라 하였다. 그렇다면 천국이라는 극락은 반드시 언젠가 우리들에게 주어질 세상을 말한다. 왜냐하면 시간은 계속 흐를 수밖에 없고 내세는 오고야 말며 천국과 극락의 정의는 영(靈)이고 신이며 그 영과 신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갱신되고 그 영의 존재성은 우리들의 육체 속에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악신(惡神)도 사람들에게서 발견되고 선신(善神)도 사람들에게서 발견된다. 악신이 악인을 낳고 선신은 의인을 낳은데 사람들의 영이 모두 신(神)이라는 것을 말한다. 귀신도, 마귀도 사람이요 하나님이 되셨던 예수도 사람이며 부처님이 되었던 석가도 사람이다. 사람이 귀신이지만 영이 살고 신이 살면 그 사람은 하나님이요 부처님이다.
사람들마다 악신을 몰아내고 선신이 되어버리는 방법이 예언서에 기록되어 있고 사람들은 모두 선신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예언서들을 진리라 하였는데 진리는 참이다. 사람들은 모두 좋은 신이 되어버릴 수 있는 세상이 열리게 되어 있으니 사람들은 예수와 같은 하나님이 되고 석가와 같은 부처님이 되는 것이 사필귀정(事必歸正)이다.
그러므로 경전에 기록된 천국도 극락도 반드시 존재하며 새 하늘과 새 땅은 열린다. 천국 극락은 허상이 아니라 신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세상을 말한다. 귀신, 마귀, 사단, 마구니에서 벗어난 사람들에게 양신(陽神), 성령, 성신, 하나님, 부처님의 영과 신이 들어간 사람들로부터 시작된다.
계시록과 법화경의 예언들은 사람들이 신이 되어버리는 지상낙원(地上樂園)이 이루어지는 과정과 결과를 적나라하게 기록하고 있다. 계시록 1장은 영적으로 음(陰)의 시대가 심판을 받아 끝나는 주제로 서술되었으니 선천 시대가 끝나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으며 계시록 2장은 음의 시대가 언제 어떻게 누구에 의하여 끝나게 되어 있는가를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모든 인류(사람들)는 신성(神性)을 가진 영혼의 소유자이며 그 영혼의 모체는 세상과 인류를 창조하신 유일한 창조의 신성이 깃들어 있고 모든 인간들은 큰 의미에서 공통적 정신, 신성, 영혼, 신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인류의 공통적인 의식은 잠재적이나 무의식중에도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으며 천국에 대한 소망은 종교인들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가 무의식 속에서 암암리에 가지고 있는 의식이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천국, 극락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정의를 내린 성현들도 없고 세상의 어떤 훌륭한 책도 그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 없다. 따라서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천국에 대한 소망은 매우 추상적이고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그저 막연하고 불확실한 소망, 그것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천국 극락에 대한 개념이다.
하지만 예언서에는 천국에 대한 매우 확실하고 객관적이며 구체적인 내용들이 숨겨져 있다. 성경과 불경이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선천의 사람들은 모두 영적인 소경들이기 때문에 천국과 극락에 대하여 기록된 경전을 읽어도 그 의미를 깨달 수 없어 불가사이한 일로 여기고 있다. 사실 천국과 극락의 실체가 이 땅 위에 세워져서 그 모습을 나타낼 때까지 사람들의 육안으로는 절대로 볼 수 없고 오로지 진리로만 찾을 수 있으며 진리는 길이요 길은 도(道)다. 도(道)란 결국 천국, 극락을 찾아가는 길이다. 서울에서 부산을 가려면 지도를 보고 길을 따라 그곳에 도착할 수 있다. 지도는 경전이요 길은 예수와 석가이며 천국과 극락은 목적지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불경은 부처님의 말씀이다. 성경과 불경을 보면서 길이 되신 예수와 석가를 발로 밟고 길로 만들어야 목적지에 갈 수 있는데 그 목적지에 도착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하나님이 되고 부처님이 되어 신들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신이 되어버린 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천국이요 극락이라 하였다.
경전들을 보면 천국과 극락은 현재의 것이 아니라 내세의 것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것을 예언(豫言)이라고 한다. 예언이란 말은 미리 예(豫) 자와 말씀 언(言)으로 미래에 이루어질 일을 말로 미리 기록해 두었다는 것이다. 천국과 극락에 대하여 예언된 후 많은 시간이 흘렀다.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끊임없이 흘러왔고 이제 그 미래가 현재가 되었다.
만약 시간의 흐름이 없다면 천국이나 극락도 일장춘몽에 불과할 것이고 종교 신앙 또한 그럴 것이다. 만약에 시간이 흐르지 않고, 예언이 미래가 되어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지구촌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종교와 신앙은 뜬구름이요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시기와 질투, 미움과 무정, 이별과 기아, 전쟁과 죽음 같은 오늘날의 이 현실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소망이 없는 그 미래의 끝에는 도대체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러나 성경과 불경은 인류에게 소망을 주고 있으니 천국과 극락이 예언되어 있고 그 예언들은 여지없이 이루어져왔으며 남은 예언 또한 정확히 이루어지고 있다. 그것은 인류가 참담한 전쟁과 불행의 늪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가지고 오늘날에 이를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그 희망은 지금 지상에 이루어질 천국과 극락이다.
지상에는 참 많은 종교도 있고 경전들도 있다. 그 경전들은 하나같이 천국과 극락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예언하고 있다. 모든 종교인들의 희망과 목적은 그 예언들이 다 이루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종교인들은 그 희망과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먼저 그 목적과 희망이 무엇이며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열게 되어 있는지 예언서들을 통하여 확인할 줄 알아야 한다.
많은 종교와 경전들 중에 가장 오래된 경전은 성경이다. 구약성서는 지금으로부터 약 3500년 전에 기록되었고 기록된 사건의 때는 6000년 전의 일부터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천국과 극락으로 구원되는 일이 그때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불경은 지금으로부터 약 2500년 전부터 기록되기 시작하였다. 불서의 주제는 사람이 석가처럼 부처님이 되는 것이다. 천국과 극락은 언제 어떻게 누구에 의하여 다시 시작되고 있는지 알아야 신들이다.
1. 요한 계시록과 법화경
기독교나 불교는 예언의 종교이다! 그 예언의 핵심은 사람이 부처(如來)로 성불하는 일이요 성불에 대하여 법화경에 잘 예언되어 있고 기독교는 성도들이 예수와 레벨이 같은 어린양의 아내들이 되어 예수와 같은 하나님이 되는 일인데 요한계시록에 잘 예언되어 있다.
법화경 제 8편 오백제자 수기품(五百弟子授記品)에는 5백 제자 아라한들이 여래(부처)가 될 것이라 기록하고 있다. 석가로부터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기뻐하는 부루나가 전생에서도 설법의 제 일인자였다고 알리면서 미래에는 법명이 여래가 될 것이라 수기한다. 이어서 교진여를 비롯한 1천 2백의 아라한과 우루빈라 가섭을 비롯한 5백의 아라한도 보명 여래가 될 것이라 수기한다. 이에 감동한 5백의 아라한들은 자신들의 과오를 반성하고 ‘옷 속의 구슬’을 비유로 들어 그간 깨우친 것들을 토로한다.
이 내용들은 석존께서 사람이 여래로 성불한다고 예언을 하고 있는 장면이다. 이 부분이 수 천 권의 불서들 중, 또한 28품 법화경 중,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이며 최고요, 최대의 예언이라 말할 수 있다. 석존께서 5백 아라한도 부루나도 미래에 여래로 성불한다고 분명이 예언하고 있다.
법화경 1편에 기록된 성불(成佛)은 성서에서의 부활(復活)이요 예수의 몸으로 변화되는 모습이며(빌3:21) 어린양의 아내가 되어버리는 과정이다(계19:7-8). 불서에서 미래의 사람들이 여래로 성불할 수 있다고 예언하는데 성서에도 예수가 계시되는 날 사람들이 무덤에서 부활하게 되고 사람들마다 예수와 레벨이 같은 어린양의 아내들이 되며 어린양의 아내들은 예수와 같은 하나님이라 예언하고 있다(계21:3, 계21:22).
이것만으로도 불경이 미래에 여래로 성불할 것을 예언한 예언서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불교의 목적은 사람들이 여래로 성불하는 것이다. 사람이 여래로 성불하는 세상이 도래해서 많은 사람들이 여래로 성불하게 되면 불교의 예언들이 성취되는 세상인데 이것을 극락이라 하였다. 사람들이 여래가 되어 무량수불(無量壽佛)이 되면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윤회가 끝나게 되니 이것이 ‘극도로 즐거운 세상’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더러운 영을 가지고 있는 중생들이 부처가 되고 여래가 되며 성불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이것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불교의 성불을 이해하기 위하여 먼저 기독교의 예언서인 계시록을 통하여 예수가 어떻게 계시되어 사람들마다 예수와 레벨이 같은 어린양의 아내가 되는지 알아야 성불(成佛)도 사람이 부처님이 되는 법을 알 수 있다. 예수가 계시되어 예수 안에 있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들을 알게 되면(골2:3) 저절로 예수의 분량까지 장성하게 되고 예수의 영광된 몸으로 변화되니 이것이 예수와 레벨이 같은 어린양의 아내들이다. 어린양의 아내들은 예수와 같은 신이요 예수와 같은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예수가 계시되어 일곱 영과 일곱 눈을 가진 사람이 되어서 계시록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세상이다(후론하기로 하고) 기독교의 부활을 가지고 말하겠다.
부활은 다시 ‘살아난다 거듭난다’라는 의미로 중생이 진리를 깨달을 때 부처가 되는 것을 말한다. 이때 중생은 살아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부처로의 성불이 부활과 같다면 부활도 산 사람에게서 이루어진다. 물론 성경을 자세히 알면 두 종류의 부활이 있다. 여기서는 산 사람의 부활을 설명하고 있다. 사람이 부처로 성불한다는 것도 변하는 것은 사람의 내면이다. 사람의 내면이란 영혼을 말한다. 성불하는 사람이 바뀌는 것은 영혼이다. 악령에서 성령으로 바뀌는 것이다. 악령은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지만 성령은 영원한 생명이다. 따라서 죽음의 영에서 산 영으로 바뀌는 것이 성불이고, 산 자의 부활이다.
부활하면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는 2천 년 전에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태어나 갈리리 나사렛이란 동네에서 살았던 실존인물이었다. 예수는 30세 이후에 공생을 시작하여 33세에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다는 이유로 유대교의 대제사장들의 고발로 빌라도 법정에서 십자가형을 받게 되는데 시편의 예언처럼 죽었다가 3일 만에 부활하여 40일간 제자들과 동거동락(同居同樂)하면서 지내다가 40일 후에 승천하였다.
동서고금을 통하여 사람의 몸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 40여 일을 지속하여 살았다는 사실은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할 충분한 이야기꺼리가 된다. 기독교를 흔히 부활의 종교라 하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리스도 신앙을 하는 사람들에게 그 부활이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참다운 믿음을 통하여 그와 같은 부활에 참여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은 자의 부활이었다. 즉 예수의 육체가 죽었지만 다시 살아난 사건이다. 이것을 흔히 죽은 자의 부활이라고 한다. 그런데 산 자의 부활도 있다. 산 자의 부활은 예수그리스도가 다시 세상에 오실 때 사람 안의 영혼이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인데 예수의 영광된 몸으로 살아는 것을 말한다. 부활이전의 사람들은 악한 영의 침입으로 죽은 자들이요 그 영을 흔히 사망의 영이라 한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면 계시된 예수의 영으로 악령에서 성령 즉 사망의 영에서 생명의 영으로 거듭나게 되어 있다. 그렇게 될 때, 이것을 산 자의 부활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살아서 자신의 영이 성령으로 다시 나기 때문에 이 사람들은 육체의 사망을 면하게 되어 있다. 이것을 산 자의 부활이라 하였다.
고린도 전서 15장절에는 그리스도처럼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부활이 있다고 잘 설명하고 있다. 51~55절까지는 산 자의 부활을 더 설명해주고 있다. 이 부활은 기독교의 근본 목적이라 할 수 있는 구원과 천국과 영생에 대하여 잘 말하고 있다. 이것은 예수가 계시될 때 그 실체를 완전히 깨달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