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교 철학자 **아브라함 헤셸(Abraham Joshua Heschel)**의 명언으로,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혜가 어디서 비롯되는지를 단계적으로 설명하는 글입니다.
1. 경외의 시작은 경이로움이다
하나님이나 창조 세계를 접할 때 느아는 순수한 놀라움과 감탄(경이로움)이 있어야 비로소 하나님을 향한 두렵고 떨리는 존경심(경외)이 싹튼다는 뜻입니다.
세상을 분석의 대상이나 통속적인 호기심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광대함 앞에 감탄하는 마음이 경외심의 첫걸음입니다.
2. 지혜의 시작은 경외다
성경 잠언의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는 말씀과 통하는 구절입니다.
인간의 머리로 세상을 분석하려는 지식 이전에, 하나님을 높이고 두려워하는 겸손한 마음(경외)이 있어야 참된 삶의 지혜가 시작됩니다.
참된 신앙과 지혜는 지적 탐구나 호기심을 넘어 **"놀라움(경이) \rightarrow 거룩한 두려움(경외) \rightarrow 참된 깨달음(지혜)"**의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는 점을 일깨워 줍니다.
창세기는 "하나님이 어디서 왔는가?"라는 질문에 답하지 않고,
하나님의 실존을 당연한 전제로 시작합니다.
이스라엘이 경험한 하나님은 신화 속 상상이 아닌 실제적이고 두려운 현실이었습니다.
따라서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를 사람들에게 설득하거나 변명하려 하지 않으며, 그 그분의 위엄을 자명한 사실로 선포합니다.
**‘히브리어 첫 글자(베트)에 담긴 의미’**를 통해 **‘성경을 읽는 올바른 태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1. 첫 글자 '베트(ב)'가 두 번째 알파벳인 이유
성경은 히브리어 첫 글자가 아닌 두 번째 글자인 '베트'로 시작합니다. 이는 인간이 세상의 모든 지식을 알 수 없으며, 어떤 영역은 오직 하나님께만 속해 있음을 보여줍니다.
2. 글자 모양에 담긴 영적 의미
앞(왼쪽)으로 열린 구조: 히브리오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는데, 베트 글자는 진행 방향(왼쪽)으로만 열려 있고 뒤쪽(오른쪽)은 닫혀 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라는 신호: 창조 이전에 무엇이 있었는지, 성경이 말하지 않는 영역을 지레 추측하기보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하라는 '일방통행 표지판'입니다.
3. 성경을 대하는 바른 자세
성경을 끝없는 지적 탐구나 호기심 채우기용으로 억지로 쥐어짜거나 비틀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모든 질문에 답을 제시하지 않기로 작정하셨으므로, 계시되지 않은 비밀을 무리하게 추측하는 것은 눈을 누르고 헛잔상을 보는 것과 같은 상상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이 감추신 비밀과 메시아를 통해 열릴 온전한 계시’**입니다. 핵심 내용을 정리해 드립니다.
1. 하나님이 남겨두신 비밀
감추어진 영역: 하나님은 모든 질문이나 미래에 대해 다 알려주지 않으십니다. 다니엘에게 마지막 때까지 말을 봉함하라고 하셨듯, 어떤 지식은 하나님만의 영역으로 남겨두셨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 제자들이 회복이나 재림의 시기를 물었을 때도 예수님은 "그때는 오직 하나님만 아신다"며 한계를 분명히 하셨습니다.
2. 알레프(א)로 시작할 새 토라의 예언
유대 랍비들의 예언: 현세의 성경(토라)은 두 번째 글자인 '베트'로 시작하여 한계가 있지만, 장차 메시아가 오시면 첫 번째 글자인 '알레프'로 시작하는 완벽한 새 토라를 직접 가르쳐 주실 것이라 예언했습니다.
비밀의 성취: 예수님은 지상에서 삶의 본을 보이시고, 죽음과 부활을 통해 성경에 숨겨졌던 비밀을 밝히 드러내심으로 이 예언을 이루어 가셨습니다.
3. 현재를 살아가는 자세
재림 때까지는 여전히 우리가 거울을 보듯 희미하고 부분적으로만 알 수밖에 없습니다.
마지막 날 그리스도께서 봉인된 두루마리를 열고 보좌에 앉으실 때, 비로소 모든 비밀이 온전히 밝혀지게 됩니다.
**‘인간의 지적 한계와 욥기를 통해 보는 하나님의 지혜’**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1. 모든 질문에 답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의구심이나 고통의 이유를 완벽하게 해명해 주지 않으십니다.
욥이 고난의 이유를 물었을 때도 직접적인 답을 주시는 대신 우주의 신비와 광대함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는 인간의 지능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다 이해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2. 하나님의 광대함과 인간의 티끌 같은 존재감
하늘이 땅보다 높듯 하나님의 생각은 인간의 생각을 뛰어넘습니다.
인간 세포 하나, 우주 하나를 설명하기에도 인간의 지식은 턱없이 부족하며, 광대한 하나님 앞에 인간은 작은 티끌 같은 존재일 뿐입니다.
3. 핵심 지혜: 겸손한 인정
"난 몰라요"의 고백: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모른다"고 인정하는 겸손함이 필요합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모든 것을 아신다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데서 참된 지혜가 시작됩니다.
본문은 **‘욥과 친구들의 차이’**를 통해 성경이 말하는 참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무엇인지 설명합니다.
1. 친구들의 정교한 논리 vs 하나님의 분노
친구들의 주장: 빌닷, 엘리바스, 소발은 "하나님은 의로우시니 욥이 죄를 지어 벌을 받는 것"이라며 완벽한 신학적 논리로 욥을 몰아세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옳고 바른말만 한 친구들에게 크게 분노하셨고, 오히려 불평과 울분을 토해낸 욥의 말이 옳다고 하셨습니다.
2. 머리의 지식 vs 관계의 친밀함 (히브리적 '앎')
친구들의 지식 (머리의 지식): 이론적 교리와 논리로 하나님을 설명하려 한 ‘차가운 신학’에 불과했습니다.
히브리어에서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부부처럼 친밀한 관계, 헌신, 경험을 뜻합니다.
욥은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과 솔직하게 부딪히며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3. 하나님 마음과의 공감
욥은 가난하고 고통받는 자들의 현실에 분노하며 항변했는데,
이는 고통당하는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의 마음'과 맞아떨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차가운 교리적 변호보다, 고통 앞에서 울부짖는 솔직함과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마음을 더 기뻐하십니다.
4. 핵심 메시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은 그분에 관한 모든 지식을 분석하고 파헤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처럼 우리도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말세와 예수님의 재림을 대하는 잘못된 태도와 올바른 자세’**를 다루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말세 예언을 영화 속 스펙터클이나 자극적인 뉴스거리로 소비하며 지적 호기심을 채우는 데 집중합니다.
전쟁이나 재앙 소식을 접할 때 실제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긍휼보다는 '예언이 들어맞는다'는 지적 유희에 빠져 냉담한 구경꾼이 되기 쉽습니다.
재림의 시기가 더디게 느껴지는 것은 하나님이 한 사람이라도 더 회개하고 구원받기를 기다리시는 ‘오래 참으심(자비)’ 때문입니다.
재림의 양면성: 재림은 믿는 자에게는 승리이지만,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는 끔찍한 심판과 어둠의 날이 됩니다.
3. 말세를 대하는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자세
영혼에 대한 관심: 끝없는 예언 추측과 논쟁에 빠지기보다,
잃어버린 영혼과 이웃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일상에서의 회개와 충성: 재림의 때를 파헤치려 하지 말고,
아무도 모르게 찾아올 그날을 대비해 매 순간 삶의 자리에서 회개하며 하나님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