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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개월의 새
황 석 영
마지막 군장검열이 끝난 막사 안은 들뜬 병사들로 술렁거리고 있었다. 이층 침상의 위칸에는 새로 지급받은 의낭과 단독무장이 차례대로 놓여 있었고, 아래칸에는 자정이 가까워오는데도 침구를 펴놓은 자리가 한 군데도 없었다. 그들은 모두 정글복 차림에다 수색대 모자인 붉은 운동모를 쓰고 우쭐댔다. 군화를 닦아 광을 내는 병사들, 일 년 치를 앞당겨 받은 봉급을 침 발라 헤는 병사들도 있었고, 벌써 주보로 달려가 일차를 걸친 축도 있었다. 대부분은 이 마지막 밤을 잠들어 보낸다는 것이 몹시 어리석은 짓이라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내게는 이틀 전에 무단이탈로 다녀온 서울에서의 하룻밤이 애매하게나마 남아 있었다. 나는 침상의 위칸에서 일렬로 놓여진 의낭 위에 드러누워 있었다. 동료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잘 내려다보였다. 군가 소리가 사방에서 제각기 다른 곡조로 들려왔다.
일 년 반 만에 서울을 찾아가 다시 확인했던 것은 나의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파충류의 허물과도 같은 것이고, 나는 그 허물을 주워서 다시 뒤집어쓰고 돌아온 건 아닌가. 어깨를 늘어뜨리고 싸돌아다니던 골목에는 아직도 같은 또래의 젊은이들이 어두운 얼굴로 서 있었다. 나도 언제나 끼이고 싶어 하던, 머리 좋은 치들의 비밀결사는 여전히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그들은 성공한 신사들 같았다. 모친의 식료품 가게는 문을 닫았다. 그 어두운 가게의 천장 위에 내 ‘잠수함’은 뚜껑을 닫고 선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뚜껑을 젖히고 머리를 내밀자 나는 다시 심해에 잠기는 것 같았다. 내 다락방의 벽에는 떠나오던 날의 낙서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밤새껏 승냥이는 울부짖는 다― 라고. 지붕 건너편에서 솜틀집의 활차 돌아가는 소리가 여전히 들렸고,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이발소 집 형제는 유행가를 합창하고, 야채장수 부부는 또 한바탕 두들기고 울었다.
나는 특교대의 출국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내 소속이 이제는 허공에 붕 떠버린 것을 알아차렸다. 전쟁터로 나가는 놈을 영창에 넣으랴, 하고는 철조망을 타 넘었던 것이다. 밤기차의 승강구에서 나는 소주를 두 병이나 비웠다. 그러자 새벽의 어스름 속에 화냥년 같은 서울이 갑자기 나타났다. 이 짧은 밤의 여행은 군인이 되기 전 나의 온갖 외로움을 모아놓은 것과 같았고, 미친년처럼 얼룩덜룩하게 화장한 육십 년대의 축축한 습기가 배어 있는 듯했다. 그러나 고따위 물기로는 감자 한 알 적시지 못할 것이다. 아무튼 나는 열차 조역처럼 망치를 들고 하나씩 그곳을 두드려보았다.
한참이나 역 광장을 맴돌았다. 먼저 어디로 가서 나를 만날 것인가. 내 흔적이, 내 그림자가 어디에 남아 있는가. 나는 가족들의 식탁 뒤편에서 앓고 있다가 방금 일어나 끼어든 환자처럼, 도시의 활기가 어쩐지 분했다. 전화를 걸었다.
아…… 그런 사람 없습니다. 오래전에 그만두었는데요. 글쎄요, 알 수 없군요.
다시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로 음악소리가 들리고 아직 잠에서 덜 깬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오랜만인데, 방금 깼다. 음, 그렇게 됐니? 많이 죽이지 마라. 연합군한테 술 살까? 저녁에 안 돼? 겨우 하루라니. 그치가 누구야…… 누굴 말하는 거야, 아, 사라졌지. 물론 누가 꿰어찼겠지. 청춘이 다 그런 거다.
저녁에 기차를 타기 전에 전화를 걸었다. 그쪽에서 뒤늦게 알았다면서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나는 전화를 걸었다. 소리가 아주 가까웠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딸깍, 끊기고 나도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높은 소리의 마디가 맑고 가늘게 갈라지는 것이 그 목소리의 특징이었다. 약한 것, 부드러운 것, 포근한 것, 따뜻한 것, 누이 어머니 여선생 할머니 간호원 보모 그리고 어린애 비둘기……그것이 숨 쉬는 가슴. 나는 정글모가 코를 가리도록 깊숙이 눌러썼다.
마침 일요일 저녁 이라 플랫폼에는 떠나고 배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서울 근교의 병영에서 외출 나왔던 장병들이 서둘러 귀대하고 있었다. 내 바로 앞에 공군 중위가 여자와 나란히 걷고 있었다. 그 팔에 매달릴 듯이 걸어가는 여자의 짧은 머리카락이 목덜미에서 나풀거렸다. 나는 군용열차칸의 승강구에 기대어 서 있었다. 그들은 기둥 앞에 나란히 서서 내려다보고 올려다보며 뭐라고 지껄이고 웃고 했다. 중위가 여자의 머리카락을 건드리면서 입을 벌리고 웃었다. 기차가 천천히 움직일 때에야 중위는 손을 흔들어주고는 내 옆칸의 승강구 위로 뛰어올랐다. 여자가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며 몇 걸음 따르더니 그 자리에 서서 고무줄을 하는 계집아이처럼 깡충깡충 뛰었다. 내가 그 여자와 시선이 부딪쳤던 것 같다. 그러나 그 여자는 열차의 불빛에 막연히 시선을 던졌겠지. 그 두 사람은 어찌될까. 내가 전쟁터에서 돌아올 즈음에는, 아니 내주 주말에는…… 플랫폼의 등불 빛이 재빨리 미끄러져 갔다. 중위는 곧 안으로 들어갔고 나는 승강구에 걸터앉았다. 저이들은 나를 모르고, 기억조차 하지 않으며, 불빛이나 소음이나 바람의 부분으로 나를 끼워 넣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시 만나지 못할지라도 그들을 오래 기억할 것이다. 여자의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리던 키 큰 중위의 웃음을 나는 생생히 떠올릴 것이다. 그 여자의 깡충거리던 작별의 동작을 잊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 순간에 회한덩어리였던 나의 시대와 작별하면서, 내가 얼마나 그것을 사랑하고 있는가를 알았다. 내가 가끔 못 견디도록 시달리는 것은 삶의 그러한 비늘 같은 파편들 때문이다.
누군가 이층 침상의 사닥다리를 오르고 있었다. 코가 길쭉해서 추장이란 별명이 붙은 이 상병이 역시 그 기다란 코를 침상 가녘에 쑥 내밀었다.
“뭐 하니…… 몰개월 나가자.”
“잠이나 자야겠어 .”
내가 드러누운 채 심드렁하게 지껄이는 것이 그는 놀라운 모양이었다.
“헛…… 야, 너 미쳤구나. 다섯 시에 출동이야. 지금 벌써 한 시 가까이 되었다. 마지막인데 잠이 오냐?”
“졸려…….”
“돈 아까워서 그러니? 이제부턴 휴지나 다름없는데 뭐 할래…… 너 의리가 형편 없구나.”
나는 대답이 없는데 밑에서 또 하나 올라왔다. 벌써 취기가 웬만큼 오른 안 병장이었다.
“몰개월 동기끼리 이제 와서 배신하기냐? 야, 일어나. 쫄병이 기합이 빠져가지구 선임 수병을 뭘로 아는 거야.”
나는 농기를 싹 빼고 말했다.
“몸이 불편합니다.”
“인마, 술 먹으면 다 나을 병이야. 갈매기집 빠꿈이가 사타구니를 열구 기다린다.”
“조용히 누워 있을라구 그래요. 둘이서들 갔다 오슈.”
안 병장은 착 갈앉은 내 말에 김이 새버렸는지 틀툴거리며 내려갔다.
“야야, 집어쳐 인마, 아무리 매미*지만 그런 법이 어딨냐.”
나는 잇달아 내려가려는 추장을 불렀다.
“이 상병, 이거 갖다 줘라. 탁 털은 거야.”
그는 내가 내민 돈을 몇 번이나 훑어보았다.
“외상값이냐?”
“휴지나 마찬가지 잖아.”
“빠꿈이 수지 맞았는걸.”
추장은 돈을 구겨 넣고 내려갔다. 막사가 잠시 동안에 텅 빈 것 같았다. 그들은 이곳저곳에 터진 철조망 구멍을 기어 나갈 것이다. 간혹 막사를 거니는 발소리와 담뱃불이 보이는 것으로 미루어, 오지 않는 잠을 청하는 체하고 있는 병사들이 더러 있는 모양이었다. 한참이나 뒤척거리다가 나도 그들을 따라 나갈 걸 그랬다고 후회하기 시작했다.
추장과 내가 가까워진 것은 야간전투 훈련장에서였다. 그는 이인용 덴트를 나와 함께 썼던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배가 고팠고, 밤마다 나란히 드러누워 사회에서 먹던 음식 얘기를 늘어놓곤 했다. 추장은 주계병인지라 무슨 음식이든지 얘기만 나오면 처음부터 차근차근 입으로 요리해나갔다. 그의 얘기에 빨려 들면 드디어 그럴듯한 요리가 나오는 장면에 이르러 우리는 거의 환장할 지경이었다. 그는 보급병인 데다 사회에서 고생을 많이 해본 친구라, 멘손 가지고도 입을 달랠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야간전투 훈련장에서 나머지 사흘을 영계백숙으로 포식했다. 추장이 십여 리나 되는 주변 마을의 양계장으로 원정을 가서, 여섯 마리의 닭을 산 채로 사냥해 왔던 것이다. 그는 그것을 우리 분대의 비밀보급창에다 숨겨두었다. 작은 소나무 사이에 구두끈으로 닭의 발목을 매어놓고는 우의를 덮어놓았던 것이다. 분대원들에게는 무차별 급식을 해준다는 약속을 하고 교대로 감시를 시켰다. 우리는 한밤중에 일어나 철모에다 닭을 튀겨 먹곤 했다. 밤에 독도법 훈련이며 야간매복 훈련을 나갔다가 돌아오면 추장이 먹을 것을 닥치는 대로 보급해 왔다. 팔뚝만 한 무, 설익은 수박, 고구마 따위였다. 추장은 늘 전우의 영양상태를 걱정했다. 하루는 폭우가 쏟아지는 밤인데 추장이 나를 깨웠다. 그는 무릎에까지 치렁치렁 내려오는 판초 우의를 걸치고 있었다.
“한잔 빨러 가자.”
“먹구 튀는 건 자신 없는데.”
그는 우의를 슬쩍 쳐들어 보였다. 흙 한 번 묻히지 않은 새 군화가 세 켤레나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나는 반듯하게 각이 진 군화의 뒤창 모서리를 만져보면서, 추장이 사단 보급창을 거덜 내는 게 아닌가 놀랐다.
“오늘 통신대에 워커 보급이 있더라.”
통신대는 특수교육대와 길 하나 사이였다. 추장이 내무반의 혼잡 속으로 들어가 새로 받은 그들의 군화를 슬쩍 걷어 온 모양이었다.
“침상 널빤지 밑에 감춰뒀는데, 들킬까봐 하루 내내 밥을 못 먹었다.”
추장이 널빤지를 깔고 누워 환자 시늉을 한 것이 그 밑에 들어 있던 군화 때문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우리는 비가 퍼붓는 특교대 연병장을 나란히 구보했다. 버젓하게 뛰어가야 동초*가 아무 말 없다는 그의 주장이었다. 우리는 철조망을 무사히 통과했다. 개구리 소리에 귀가 멍멍했다. 논두렁을 지나면 한길이 나오게 되어 있었다.
“불빛 보이니?”
“응, 몰개월이다.”
몰개월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특교대가 생겨나자 서너 채의 초가가 있던 외진 곳에 하나 둘씩 주막이 들어섰는데, 거의가 슬레이트 지붕에 흙벽돌이나 블록으로 지은 바라크들이었다. 비슷한 꼴의 나지막한 집 이십여 채가 울퉁불퉁한 자갈길 양쪽에 늘어서 있었다. 원래의 몰개월 마을은 이 킬로쯤 더 가야 있었으나, 이곳을 모두 몰개월이라 불렀는데 바다가 바로 그 뒤편에서 철썩 이고 있었다. 어디서 흘러왔는지도 모를 작부들이 집마다 두세 명씩 기거했다. 낮에는 모두들 깊이 자는지, 과외출장을 나가는 때에 몇 번 지나가보았으나 모래먼지만 뽀얗게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특교대에서는 몰개월의 똥까이들이 전국에서 가장 깡다구가 센 년들이람 소문이 자자했다. 갈 데 없어 막판까지 밀려와, 전장에 나가려는 병사들의 시달림을 받으니 그럴 법도 했다. 우리는 드문드문 남폿불이 새어 나오는 몰개월로 들어섰다. 밤도 늦었고 비가 워낙에 억수로 퍼부어서 어느 년도 내다보질 않았다.
“가만있어…… 저게 뭐야.”
나는 길옆의 허엽스레한 것을 보고 다가갔다. 시궁창에 하반신을 담그고 엎드린 여자였다. 얇은 슈미즈만 입었으며, 비에 흠뻑 젖어있었다.
“비도 오구 공치는데, 한잔 꺾었다 이건가.”
“가만있어.”
내가 여자를 들어 올렸으나, 그 여자는 고개와 팔을 아래로 툭 떨어뜨렸다. 정말 억병으로 마신 듯했다. 간간이 으응, 하면서 신음소리를 냈다. 몸이 형편없이 야위었고 키만 멀쑥했다. 빗속에 내던져진 벌거숭이의 여자를 그냥 두고 가기에는 좀 언짢은 일이었다. 공연히 우리가 먼 벽지나 부둣가의 어둠 속에 콱 처박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실 그랬지만, 나는 서부의 노다지 광산을 찾아든 건달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궁창에 처박힌 여자의 그런 모양이 내 욕정을 일으켰다. 몇 번 위로 추켜 보면서 나는 곤죽이 된 여자와 자고 싶었던 것이다.
“생각 있니?”
곁에서 추장이 눈치 빠르게 속삭였다.
“그쪽에서 좀 맞들어라.”
우리는 송장을 치울 때처럼 그 여자를 들고 남포 불빛 쪽으로 다가섰다.
“이 집 여자 아뇨?”
주인 남자인 듯한 사내가 연탄불을 갈고 있다가 얼굴을 내밀고 여자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미자로구만. 얘는 갈매기집 앤데, 술만 먹으면 개차반이라 아예 내놨지. 누구하구 또 싸웠을 게요. 댁에들한테 시비 걸지 않습디까?”
“갈매기집이 어디요?”
우리는 사내가 가르쳐준, 바른편의 길 뒤편에 약간 외져서 있는 술집으로 찾아갔다. 여자를 떠메고 들어서는 우리를 보자 방에서 화투로 재수패를 떼던 주인 여자가 어리둥절한 모양이었다.
“아니 이년이 정말…… 어디 옆집에 놀러 간 줄 알았더니.”
“또랑물이 넘었으면 아마 코를 박고 죽었을 거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외상이오.”
“그 방으루 들어가요. 술 처먹구 약까지 처먹었을 텐데…… 나 참, 영업자치구 애인 삼아 망하지 않은 년 없다더라.”
“애인이라니, 시내에서 여기까지 술 먹으러 오는 사람두 있소?”
“댁에 같은 군바리 애인이지 뭐. 당신들 특교대 있지요?”
“한 보름 뒤엔 떠나요.”
“이 쓸개 빠진 년들이 모두들 애인 하나씩 골라서는 편지질을 하는데, 어떤 년들은 열 사람 스무 사람에게 쓴다우. 한 달에 한 명씩 골라잡아두 열 달이면 열 명이 꽉 찬다구. 미자 년이나 옆집 애란이나 가끔 술 처먹구 지랄을 하는데, 아마 상대편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리는 모양이지. 그뿐야? 제대하구 가면서 몰개월에 찾아와 들여다보는 놈들은 한 번두 못 봤다니까. 자 이래 놓으면, 오늘 비가 오니 다행이지만 손님 못 받지, 내일 조시 나빠서 장사에 지장 있지, 심난하니까 노래도 안 나오지, 이년들을 그저 정신 바짝 차리게 해줘야지.”
말대꾸를 하던 추장도 주인 여자의 얘기가 제법 솔깃했던 모양이었다. 나는 주인 여자의 시선은 아랑곳 않고, 미자를 끌어다 우리가 들어가는 방의 아랫목에 누이고 캐시미어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주었다. 온돌방에 궁등이를 대고 앉으니 마치 집에 돌아온 기분이었다. 머리가 부스스한 금복이란 여자가 하품을 하면서 들어왔다. 그 여자는 우리의 술시중도 들어주고 노래박자도 맞춰주었다. 장맛비가 밤새도록 내렸고, 유리창 대신 막아놓은 비닐 들창이 끊임없이 펄럭거렸다.
해병대 연애는 아이구찌* 연앤데 붙기만 붙으면 고탯골* 가누나, 으스름달밤에 쭐쭐이를 마시고 그 많은 주먹에다 완투 뽑는 해병대, 그 이름 남남하다 인상조차 험했건만…… 돌리지 마라 썅, 돌리지 마라 썅, 내 앞에서 돌리지 마라아, 살살 돌리는 그 바람에 신세 조진 사나이다.
우리는 악을 쓰고 노래를 불렀다. 기상나팔이 울릴 즈음에야 벌겋게 충혈된 눈을 하고서 그 집에서 나왔다. 뒤에 처져서 따라오던 추장이 낄낄거리면서 말했다.
“넌 찍혔다, 찍혔어.”
“누구한테 찍혀……”
“나오려는데 그 빠꿈이가 네 소속 계급을 묻더라. 가르쳐줬지.”
미자는 그때 완전히 깨어 있었다. 가끔 캐시미어 이불을 들치고 미자는 고개를 내빌어 우리들의 술자리를 퀭한 눈으로 건너다보곤 했다. 그러나 우리는 셋이 모두 모른 척했던 것이다. 추장이 빠꿈이라고 별명을 붙였을 정도로 미자는 마른 얼굴에 눈만 컸다. 나는 사흘이 못 가서 그 똥치를 기억도 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정글전 교장에서 가상 늪지역을 허우적거리던 토요일이었다. 우리는 진흙탕 물에 전신을 담그고 총을 받쳐 들고서 무릎걸음으로 건너다가, 물이 얕아지면 포복을 했다. 늪지역을 지나서 다시 부비트랩*이 밀집한 숲 속을 지났다. 땅에 함정이 있기도 하고, 인계철선이 가로질러 있으며, 죽창이 튀어나오기도 했는데, 당한 병사는 모두 전사자로 취급되었다. 전사자들은 따로 추려져서 기합을 받고 나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되었다. 나는 인계철선을 발로 차서 폭약을 터뜨렸으므로 전사 분대로 끌려갔다. 한참 쪼그려뛰기 기합을 받느라고 헐떡이는데 십 분간 휴식의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왔다. 멀리서 말쑥한 군복을 입은 주보병 이 뛰어와서 교관에게 쪽지를 전했다. 면회신청 용지가 틀림없었다. 면회자로 뽑히기만 하면 토요일 오후 과업은 끝이었다. 하나 둘씩 뽑힌 놈들이 입을 찢으면서 달려 나갔고, 남은 놈들은 십 분 뒤에 치를 고역 때문에 전부 우거지상이었다. 교관이 전사 분대 쪽으로 다가왔다. 두 놈이 뽑혔다. 우리는 제각기 가장 자신 있는 저주의 욕을 그 두 놈의 뒤통수에다 퍼부었는데, 교관의 입에서 엉뚱하게 내 이름이 떨어졌다. 다시 한 번 부르면서 덧붙였다.
“애인이 면회다.”
나는 좌우간에 전사 분대를 빠져나갔고, 면회자 옆에 서자마자 도대체 알 수가 없는 노릇이라, 곧 잘못이 시정될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우리는 발을 맞추어 번호를 붙이면서 걸었다. 면회소인 퀀셋 안에는 제법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나는 틀림없이 누구 대신 잘못 불리어 나왔으므로, 라면이나 한 그릇 사 먹고 적당히 시간을 때우리라 작정하고 주보* 앞에 걸터앉았다.
“한 상병님…….”
웬 한복 차림의 여자가 마주 앉는 것이었다.
“누구시더라…….”
여자는 가져온 보퉁이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고, 뒷전에서 킥킥대는 소리가 들렸다. 주보 안의 기간사병들인 듯한 병사들이 낄낄거리며 놀려댔다. 몰개월이 어쩌구, 똥까이가 나들이를 나왔다 어쩌구·…… 그제야 나는 어렴풋이 짐작이 가는 데가 있었다. 어느 결엔가 귓전이 뜨뜻해졌다.
“요 아래서 오셨군.”
그러나 미자는 당당하게 말했다.
“갈매기집이에요. 이거 잡수세요.”
풀어헤친 보퉁이 속에는 김밥이 들어 있었고 삶은 고구마가 네댓 알 보였다. 나는 기간사병들 쪽으로 연방 흘끔거리면서 김밥을 집어넣었다. 이 난처한 장면에서 빠져나가려고 나는 김밥을 입속에 아귀아귀 처넣었다.
“걸리겠어요. 천천히 드셔요.”
미자가 두리번거리더니 낄낄거리는 기간사병들에게로 걸어갔다. 나는 뒤통수가 근질거려서 안달이 났다. 그러나 미자의 여염집 여자 같은 얌전하고 예의 바른 음성이 들려왔다.
“실례지만 이 주전자 좀 가져갈까요?”
그들이 네 그러쇼, 하는 소리가 들리고 미자가 주전자를 들고 돌아왔다.
“물 좀 마시면서 드셔요.”
하면서 물을 따르고 미자는 저도 김밥 한 덩이를 집어먹었다.
“밥에 뜸이 좀 덜 들었죠? 꼭꼭 씹으면 괜찮아요.”
나는 찍소리도 없이 오랜만에 포식을 했다. 물을 마시고 나서 쑥스러워진 내가 물었다.
“장사는…… 안 하구…….”
“낮에두 하나요?”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내 언제…… 찾아가지.”
“이따가 담치기 해서 나오세요. 밤참 해놓을게요.”
나는 머쓱하게 앉아 있다가 일어섰다. 내 뒷주머니에 미자가 뭔가 찔러주면서 말했다.
“노랑 띠니까 혼자 아껴 피세요.”
필터 달린 담배 한 갑이었다. 과업이 끝난 뒤에 벌써 우리들의 소문은 자자하게 퍼져 있었고, 나는 억울하게도 기둥서방의 누명을 쓰고야 말았다.
나는 미자의 지시대로 담치기를 감행했다. 추장에게 같이 나오자고 했지만, 그는 빙글대면서 극구 사양했다. 갈매기집에는 아직 돌아가지 않은 패거리들이 술상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텅 빈 홀의 드럼통 앞에 앉아서 약주를 마셨다. 방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미닫이문이 삐걱이며 밖으로 넘어졌고, 누군가 술상을 들어엎었는지 술잔과 주전자와 접시가 요란한 소리로 떨어져서 박살이 났다. 세 사람의 군인과 두 여자가 보였다.
“이 쌍년이 미쳤나!”
“야야, 드럽게 어따가 손을 대…… 매미라구 눈에 뵈는 게 없어?”
다른 사람들은 말리는데 군인이 미자의 뺨을 철썩철썩 갈겼다. 비틀거리며 넘어졌던 미자가 벌떡 일어서더니 그자의 팔을 물고 늘어졌다. 그가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중상사급인 데다 나는 무단이탈자여서 나설 수도 없었고, 정말 기둥서방이 되는 것 같아서 얼른 갈매기집을 나오고 말았다. 한길을 터벅터먹 걸어서 논두렁으로 들어서는데 ,
“증말 그러기야?”
뒤에서 고함을 치며 달려오는 것은 만취한 빠꿈이였다.
“좋은 구경 했는데…….”
나는 어둠 속에다 대고 말했다. 어이없게도 미자가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더니 다리질을 하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개새끼들, 즈이들이 뭘 잘났다구…… 야야, 나두 살아야잖아, 밤엔 벌어먹구 살아야잖아.”
더욱 난처하게 되어서 나는 차마 모른 척하고 돌아갈 수가 없었다. 미자는 코피가 터져서 얼굴이 피투성이였다. 짜증이 솟아서 해골 속이 터질 것 같았지만 어금니를 지그시 물고는 미자를 논가에 데리고 가서 얼굴을 씻어주었다. 미자는 고분고분했다. 미자는 젖은 얼굴을 치맛자락에 닦고 홀쩍거리며 코를 들이마셨다. 우리는 같이 갈매기집의 술청 뒤꼍에 있는 관만 한 방으로 스며들었다. 신문지로 바른 벽이 군데군데 떨어져서 흙덩이가 드러나 있었고, 천장 바로 아래 널빤지로 선반을 가로질러 놓았는데 그 위에는 빠꿈이의 찌그러진 밤색 트렁크가 얹혀 있었다. 미자가 내 군화를 얹었다. 벽에는 붉은색 잠옷이 걸려 있었다. 미자는 푸우, 하고 웃었다. 어깨를 위로 쑥 올리면서 빠꿈이는 웃었다. 들켰다는 모양이었다. 목침 위에 더께로 앉은 촛농 사이에 몽당초가 밝혀져 있었다.
“초가 다 타면 자요.”
신통한 것은 미자가 여기 오기 전에 어떻게 살았다거나, 하여간 과거의 영광에 대하여는 일언반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쫑알거리지도, 주접을 떨지도 않고 그 여자는 군인들의 얘기와 갈매기집에서 일어난 일들만 얘기했다. 촛불이 까무룩 하다가 잦아든 다음에 나는 은근히 조바심이 나서 빠꿈이를 건드렸다. 그러나 이상하게 손짓만 그럴 뿐이지 몸에 도통 기별이 가지 않았다. 바람 소리에 뒤섞여서 이상한 높은 소리가 먼 곳에서 들려왔다.
“내다봐요, 고깃배가 보일 거야.”
나는 한 뼘 크기의 창으로, 뒷전에 툭 터진 바다 쪽을 바라보았다. 빛이 어둠 속에서 가물거리고 있었다. 불빛은 점점이 여러 곳에 흩어져 있었는데, 소리가 더욱 또렷이 들렸다.
“고기 떼가 지나가나봐. 갈매기들이 많이 울지요?”
저 깊은 어둠 속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들은 어떤 사람들일까를 생각했다. 또한 갈매기들은 어디서 왔을까.
“어디서 왔지?”
“대전서……”
어부나 갈매기가 대전서 왔다는 대답처럼 들렸다. 나는 빠꿈이를 먹지 못했다. 낯을 씻길 때부터 먹지 못하게 무관한 사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식구를 먹어주는 놈이 어디 있겠는가. 오지게 걸려든 것이다. 그 뒤로 갈매기집에 갈 적마다 안 병장까지 끼어들었고, 나는 절대로 혼자서는 가지 않았다.
기차에서 내리는 길로 서둘러 귀대하는 길에 나는 시간이 늦어서 천상 담치기를 해야 할 처지였으므로 몰개월을 거쳐 왔다. 갈매기집에서 아침을 먹고 들어갈 궁리로 잠깐 들여다보았다. 미자는 빨래를 하러 가고 없었다. 나는 바다로 흘러 내려가는 찬내의 아래로 미자를 보러 갔다. 머리에 수건을 쓰고 쪼그려 앉아 방망이를 두드리는 모양이 제법이었다. 그곳은 서울의 활기에서 너무나도 멀었다. 빠꿈이는 먼 데로 온 것이다. 그 여자가 비누 묻은 손으로 머리를 올리는 것이 무슨 가정주부나 된 것 같았다;
“집에 갔었다며요?”
“응…… 우린 내일모레 떠난다.”
“밥 먹었어요?”
하다가 미자는 얼른 속옷 나부랭이들을 대야에 재빨리 챙겨 넣었다.
“한 상병, 서울에…… 좋은 사람 있어요?”
“있었는데 시집 갔더라야.”
“저런…… 그럼 허탕 쳤겠네.”
미자가 대야를 들고 앞장을 섰다. 내가 아침을 먹는 동안 미자는 시중을 들어주었다. 나는 식사를 마치고 담배를 태우면서 언덕 모퉁이로 드러난 바다를 내다보았다. 피로했다. 또 돌아온 것이다. 아무도 모르게 죽으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빠꿈이가 나직하게 웃었다.
“왜 웃어?”
“가엾어서……”
나는 코웃음이 나왔고, 더욱 크게 웃기 시작했다. 미자는 정말 작부답게 담배연기를 길게 한숨을 섞어서 토해냈다.
“안됐지 뭐……”
“뭐가……”
“사는 게 그냥, 다…….”
나는 더욱 크게 웃었다. 미자는 여전히 웃을 듯 말 듯한 얼굴이었다. 미자가 내 앞으로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내일 밤에 나와요. 전부 몰려나올 거야. 꼭…… 한 코 주께.”
나는 잠들지 못하고 뒤척거렸다. 자동차의 엔진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수송대에서 트럭이 들어오는 모양이었다. 헤드라이트가 막사 안을 훤히 비추면서 차례로 지나갔다. 나는 일어나서 단독무장을 새로 점검하고 잠도 오지 않아 엽서를 몇 장 썼다. 부두에서 부칠 작정이었다.
“총원 집합, 총원 집합.”
막사마다 뛰며 전달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배낭과 총을 메고 철모도 썼다. 자고 있던 병사들이 하나씩 깨어났다. 그러고도 십 분이 지날 때까지 점호는 시작하지 않았다. 마을로 몰려나갔던 병사들이 아주 조용히 돌아오고 있었다. 그들은 속삭이고 툭툭 치면서 얌전하게 주사를 부렸다. 우리는 막사 안에서 인원이 차는 순서대로 보고했다. 안 병장과 이 상병도 돌아왔다. 추장은 내게 농을 걸었으나 나는 받아주지 않았다. 술 취한 그들은 침상에 앉아서 머리를 끄덕이며 졸았다. 부옇게 밝았을 즈음에야 출동명령이 떨어졌다. 우리들은 트럭에 올라탔다. 트럭들이 연병장을 한 바퀴 빙 돌면서 대열을 짓더니 차례로 사단구역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헤드라이트를 컨 트럭의 행렬들은 천천히 움직였다. 군가가 연달아 들려왔다. 군가 소리는 후렴에서 뒤받아 연달아 뒤차로 이어졌다. 안개가 부연 몰개월 입구에서 나는 여자들이 길 좌우에 늘어서 있는 것을 보았다. 모두들 제일 좋은 옷을 입고, 꽃이며 손수건이며를 흔들고 있었다. 수송대열은 천천히 나아갔다. 여자들은 거의가 한복 차림이었다. 병사들도 고개를 내밀고 손을 흔들었다. 뛰어서 쫓아오는 여자들도 있었다. 추장이 내 등을 찔렀다. 나는 트럭 뒷전에 가서 상반신을 내밀구 소리 질렀다. 미자가 면회 왔을 적의 모습대로 치마를 펄럭이며 쫓아왔다. 뭐라고 떠드는 것 같았으나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하얀 것이 차 속으로 날아와 떨어졌다. 내가 그것을 주워들었을 적에는 미자는 벌써 뒤차에 가려져서 보이질 않았다. 여자들이 무엇인가를 차 속으로 계속해서 던지고 있었다. 그것들은 무수하게 날아왔다. 몰개월 가로는 금방 지나갔다. 군가 소리는 여전했다.
나는 승선해서 손수건에 싼 것을 풀어보았다. 플라스틱으로 조잡하게 만든 오뚝이 한 쌍이었다. 그 무렵에는 아직 어렸던 모양이라, 나는 그것을 남지나해* 속에 던져버렸다. 그리고 작전에 나가서 비로소 인생에는 유치한 일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서울역에서 두 연인들이 헤어지는 장면을 내가 깊은 연민을 가지고 소중히 간직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미자는 우리들 모두를 제 것으로 간직한 것이다. 몰개월 여자들이 달마다 연출하던 이별의 연극은, 살아가는 게 얼마나 소중한가를 아는 자들의 자기표현임을 내가 눈치 챈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그것은 나뿐만 아니라, 몰개월을 거쳐 먼 나라의 전장에서 죽어간 모든 병사들이 알고 있었던 일이다.
『세계의 문학』 1호(1976년 가을); 『황석영 중단편전집j 3권(창비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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