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안암캠퍼스 중앙광장 스모킹룸 옆에서 학생들이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다. 고려대는 지난해 11월 2000여만원을 들여 스모킹룸을 설치했지만 정작 학생들은 사용을 꺼리고 있다. ⓒ News1
지난 17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에 위치한 고려대 우당교양관 앞.
강의가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자 20여명 학생들이 무리지어 약속이나 한 듯 담배를 꺼내 든다. 뿌연 담배 연기가 피어오르자 벤치에 앉아 있던 학생들은 서둘러 자리를 옮긴다.
건물 입구와 벤치 주변 곳곳마다 금연 푯말이 붙어있지만 무용지물이다. 도리어 비흡연자 학생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옷소매로 코를 막은 채 건물 안으로 들어선다.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으로 지난해 12월 150㎡ 이상 식당, 호프집 등 공중이용시설이 전면금연구역으로 지정되는 등 사회적으로 금연 열풍이 거세지고 있다.
지난 7월 보건복지부와 각 시도 자치단체가 실시한 합동단속에서는 금연구역 위반 적발건수 663건, 과태료 6459만원이 부가되고 주의·시정 명령도 1452건이나 됐다.
전 사회적인 금연구역 지정과 단속은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지만 유독 흡연이 자유로운 '금연 무풍지대'가 바로 대학교 캠퍼스다.
실제로 기자가 서울 소재 대학교를 돌아본 결과 금연구역이 무색할 정도로 학생들은 무분별한 흡연을 하고 있었다.
성균관대는 지난 5월 서울 인문사회과학캠퍼스와 수원 자연과학캠퍼스 내 보행도로를 금연거리로 지정하고 각각 7곳, 9곳 등의 흡연구역을 설치했다.
그러나 학생 대부분은 이를 무시한 채 흡연이 용이한 건물 입구와 자판기 근처에 모여 담배를 피웠다.
출입문 앞에서 담배를 피던 박모씨(23·경영학과)에게 금연구역임을 알고 있는지 묻자 "이곳이 금연구역인 것은 알고 있다"며 "그렇지만 다들 여기서 담배를 피우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을 지나가던 윤모씨(21·경영학과)는 "여기가 금연구역인지 전혀 몰랐다"며 "모두 이곳에 모여 담배를 피기 때문에 당연히 흡연구역이라 생각했다"고 당황했다.
그는 "지금처럼 금연구역에서 흡연이 이뤄지면 학교 측에서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불쾌함을 드러냈다.
흡연구역이 지켜지지 않는 문제에 대해 박재흠 성균관대 학생지원팀 과장은 "질서의식이 자리 잡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기존 흡연자들도 혼란이 있을 것"이라며 "학생들의 의식 자체가 바뀌어야 문화가 정착되듯 장기적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캠퍼스에 흡연부스 등 별도 시설을 설치한 경우도 사정은 같았다.
고려대는 지난해 11월 총학생회와 협의해 2000여만원을 들여 중앙광장과 과학도서관 앞 두 곳에 스모킹룸을 설치했다.
스모킹룸은 7명 정도가 동시에 흡연할 수 있는 공간으로 냉방시설, 공기청정기 등을 갖추고 섬유탈취제도 비치돼 있다.
그러나 내부는 환기가 잘 되지 않아 냄새가 지독하고 의자 곳곳에 담뱃재가 떨어져있어 실제로 사용하기는 꺼려졌다.
중앙광장에 마련된 스모킹룸을 2시간 가량 지켜본 결과 흡연자 60여명 중 4명이 부스를 이용했다.
이들 중 3명이 관리인 등 일반인임을 감안하면 단 1명의 학생만이 스모킹룸을 이용한 것이다.
다른 학생들은 흡연구역이 없다는 듯 아무 거리낌없이 열람실 입구와 계단, 심지어 스모킹룸 앞에 모여 담배를 피웠다.
광장에 앉아 담배를 피던 박모씨(23)는 "오히려 스모킹룸을 이용하고 강의실에 들어가면 냄새가 심해 다른 학생들이 싫어한다"며 "내부에 찌든 담배냄새가 싫어 이용을 안 한다"고 밝혔다.
◇"캠퍼스 전면금연 지정하거나 엄격히 구분해야"
이처럼 흡연구역 지정이 아무런 효과를 거두지 못해 생기는 피해는 고스란히 비흡연자 학생에게 돌아가고 있다.
김모씨(21)는 "지하광장 문을 열고 나오면 처음 느끼는 것이 담배냄새"라며 "스모킹룸이 있는지도 몰랐고 사람들이 담배를 많이 피우는 입구가 흡연구역인지 알았다"고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 "금연구역, 흡연구역 등을 계속 만드는 것보다 단속하고 정착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고 지금은 단속이 필요해 보인다"며 지적했다.
무분별한 흡연이 대학교 캠퍼스에서 이뤄지는데 대해 신성례 삼육대 간호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대학교는 금연구역 지정이 상당히 자율적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학교 측이 교내 음주와 흡연에 대한 심각성을 깨달아야 한다"며 우려를 표했다.
이어 "현재 성인 비흡연자는 60% 정도인 반면 흡연자의 비율은 40% 밖에 안된다"며 "철저한 규정으로 간접흡연을 막아 다수 비흡연자의 건강권을 지켜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미국 대학들의 경우 캠퍼스를 전면 금연구역으로 지정하는 학교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며 "대학교 캠퍼스를 전면 금연구역으로 지정하거나 엄격하게 금연구역, 흡연구역을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스1 2013.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