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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매력 (마5:14-16절)
‘ 착한 행실 ’
‘매력’이라는 말은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묘한 힘’ 이라고 사전에 정의되어 있습니다. ‘최고’라는 말과 다르면서도 무언가 알 수 없는 힘이 작용하는 ‘이끌림’이 매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강남에서 세금을 제일 많이 낸다는 주식회사 이롬 대표 황성주 사장은 여성으로서 세계를 향한 글로벌 기업으로 성공한 입지의 인물입니다.
그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 시대의 재앙은 꿈이 없다는 것이다. 꿈이 없는 세대는 현재의 혼란을 초래한다. 꿈이 없는 차세대는 미래의 비극을 예고한다. 꿈이 없는 문화는 이중성을 가진 천박한 사람들을 양산해낸다. 성취 지향적인 삶은 현대인들을 스트레스로 찌들게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탈출’을 염두에 둔다. 최근 휘몰아치고 있는 30대 이민열풍은 그 상황을 반영한다. 그래서 안락함은 이 시대의 최대의 유혹이다. 진짜 꿈을 회복하는 것만이 안락함의 사슬을 끊는 유일한 길이다.
꿈은 깊이 있는 사람들을 키워내는 훈련장이다. 꿈을 가진 사람은 안락함의 작은 야망을 내던진다. 꿈꾸는 자여! 이제 자신의 꿈을 팔아라. 진짜 드림 케팅의 전문가가 되라. 꿈꾸는 자는 꿈을 전염시키는 자이며 저항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진 사람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사람 낚는 어부’에 대한 원대한 비전을 주셨다. 사람을 낚으려면 매력이 있어야 한다. 보통 매력으로는 안 된다. 매력이 철철 넘쳐야 한다. 영적 감동을 주어야 한다. 인격적 흡인력이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품는 영적 역량의 소유자라야 한다.
그녀의 말을 듣고 보니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리스도인인 황성주 사장은 사업가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사람 낚는 어부’ 교훈을 자신의 사업 철학에 적용시킴으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매력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헬라시대의 저 유명했던 헤로드투스는 그의 글에서 말하기를 ‘칸테울레스 황제는 그의 왕후가 이 세상의 모든 여성들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믿었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가장 아름답다.’라는 헬라어는 ‘칼린스테’라는 말인데 ‘매력’이라고 하는 말 ‘칼로스’의 최상급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그의 왕후는 매력이 철철 넘치는 대단한 여인이었다는 말이 됩니다.
이것은 그녀의 생김새의 아름다움 곧 매력에 대한 표현이었습니다. 이런 경우에 매력(칼로스)는 생김새가 좋은 얼굴과 균형 잡힌 몸매를 가진 사람을 뜻합니다.
헤로도투스는 이어서 말하기를 ‘인생을 특징짓는 필수적인 것은 겸손이다. 이것은 사람들이 옛날부터 배워야 할 칼로스(매력)적인 습관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매력’이라는 말은 드러나고 보이는 모습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 숨어있는 정신적이요 도덕적이며 영적인 면까지도 포함된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의 외모가 아무리 아름답다고 하여도 그의 인격이 교만하다면 사람들에게 인정받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진정한 겸손에서 나오는 미모만이 칼로스(매력)적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철학자 핀다르는 말하기를 ‘사람은 영원까지 이를, 꺼지지 않는 칼로스의 행동적인 빛을 가져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매력이 순간적이거나 한 때를 풍미하는 것이라면 그것도 큰 의미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영원까지 이르는 매력의 빛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헬라 말에 있어서 이 칼로스라는 말은 전인격적 의미에서 ‘고상하고, 아름답고, 명예스러운’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단어입니다.
우리 신약성경에 이러한 의미를 담고 있는 ‘칼로스’라는 단어가 무려 100회 이상이나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목회서신 가운데 디모데 전후서, 디도서에 약 24회가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에 유념해야 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적어도 복음을 전하는 목회자는 ‘매력’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확실히 예수 그리스도 자신은 칼로스의 본체였습니다. 실로 그는 우리의 영원한 칼로스(매력)입니다. 그래서 인류 역사의 대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매력에 이끌린 사람들에 의하여 만들어졌다고 하여도 지나친 말은 아닌 것입니다.
그렇다면 매력의 본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들 역시 매력적인 사람, 아름다운 사람, 좋은 사람, 선한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성경에 이 사실을 수없이 언급하고 있음에 우리는 눈을 열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그리스도인의 매력’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받도록 하겠습니다.
1. 그리스도인의 매력은 착한 행실 곧 빛이라고 하였습니다.
*마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여기서 ‘착한 행실’이라는 말 헬라어‘타 카라 엘가’ 는 바로 ‘선한 행실’‘좋은 행실’‘아름다운 행실’을 뜻합니다. 곧 매력적인 행실을 뜻합니다. 이 ‘착한 행실’을 ‘빛’이라고 하였습니다.
*마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이런 경우 ‘빛’과 ‘착한 행실’을 동일시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빛이십니다. 그리스도도 빛이십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 된 신자들도 빛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그리스도는 빛의 본체시오 참 빛이십니다. 반면에 그리스도인들은 그 빛의 반사체인 것입니다. 마치 햇빛에 반사된 달빛이 어둠을 은은히 밝히듯이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영광을 반사하는 빛인 것입니다.
그 반사체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는 ‘착한 행실’ 곧 매력적인 행동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매력적 행동들을 세상에 드러내 보이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을 마치 ‘산 위에 있는 동네’처럼 드러나 보이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집집마다 등불을 켜서 등경 위에 두어 모든 사람에게 비취게 하는 것처럼 비취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여러 가지 선한 일로 사람들에게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요10:32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선한 일로 너희에게 보였거늘 그 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 하느냐.
그런데 그 ‘선한 일’로 인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돌로 치려하였습니다. 예수께서 저들에게 나타내신 매력적인 일이 저들에게는 오히려 악하게 보였다는 말입니다. 그 여러 가지 선한 일 중에 하나가 바로 목자의 삶이었습니다.
*요10:14-15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선한 목자는 자기 양을 압니다. 양의 연약한 것을 아는 것입니다. 양은 자기 방어 능력이 약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을 사역의 길로 내어 보내실 때에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라고 염려하셨습니다. 양으로 비유되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연약하기 때문에 범죄하기 쉽습니다.
목자를 배반하기 쉽습니다. 길을 가다가 기진하여 길 가에 쓰러질 수도 있습니다. 질병에도 아주 약합니다. 그래서 목자 없이 혼자 살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만 먹는 이스라엘 목자는 양떼를 돌보지 아니하였습니다.
*겔34:4 너희가 그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 주지 아니하며 쫓기는 자를 돌아오게 하지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 다만 포악으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
그러나 주님은 가시는 곳마다 끊임없이 좇아오는 무리를 보시고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마9:36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양은 목자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합니다. 유리하며 고생하며 쓰러집니다. 그래서 양으로 비유되는 이스라엘을 위해 모세는 그의 사명이 다하는 순간에도 하나님께 간구를 드렸습니다.
*민27:16-17 여호와,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시여 원하건대 한 사람을 이 회중 위에 세워서 그로 그들 앞에 출입하며 그들을 인도하여 출입하게 하사 여호와의 회중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에스겔 선지자는 목자 없는 양떼의 처참함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겔34:5 목자가 없으므로 그것들이 흩어지고 흩어져서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되었도다.
그래서 주님은 비록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제자들을 그를 배반하고 흩어졌으나 갈릴리 해변에서 그들을 만나주시고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당부하셨던 것입니다.
선한 목자는 양떼를 위해 목숨을 버리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여기에는 너무나 진한 사랑이 깔려 있습니다. 사랑하기에, 내 것이기에, 내 목숨을 바쳐 다시 살려 내시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알고 사랑하듯이, 선한 목자 예수는 그의 양떼를 이토록 소중히 여기시고 목숨을 바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나라로 들어가는 문이 되셨습니다. 이제 큰 목자로서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다시 살아나셔서 새 생명을 모든 양떼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셨습니다. 장래의 기업을 받도록 하셨습니다.
이런 일들이 유대인들에게 걸림돌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돌로 쳐서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자신은 버림받은 자 같을 지라도 교인들이 선을 행하게 하고자 한다고 하였습니다.
*고후13:7 우리가 하나님께서 너희로 악을 조금도 행하지 않게 하시기를 구하노니 이는 우리가 옳은 자임을 나타내고자 함이 아니라 오직 우리는 버림받은 자 같을지라도 너희는 선을 행하게 하고자 함이라.
또 그는 갈라디아 교회를 향하여 선을 행할 때 낙심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갈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향하여는 모든 사물을 식별하여 ‘선한 것’을 굳게 잡고 지켜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살전5:21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그는 또 사랑하는 제자 디도를 향하여 ‘선한 일’에 모범이 되어 그것에 열심을 내라고 하였습니다.
*딛2:7 범사에 네 자신이 선한 일의 본을 보이며 교훈에 부패하지 아니함과 단정함과..
*딛2: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또한 그리스도인들이 ‘선한 일’을 힘쓰게 하고 또 그것을 배우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딛3:8 이 말이 미쁘도다. 원하건대 너는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 이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이것이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니라.
*딛3:14 또 우리 사람들도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을 준비하는 좋은 일에 힘쓰기를 배우게 하라.
히브리서 기자는 교인들끼리 서로 돌아보고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라고 하였습니다.
*히10: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또 자신들이 선을 행할 수 있도록 자기들을 위하여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히13:18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우리가 모든 일에 선하게 행하려 하므로 우리에게 선한 양심이 있는 줄을 확신하노니..
이 모든 성경에서 말하는 선 즉‘카로스’는 어떤 사색적이고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인간의 계율이 아닙니다. 오히려 행동하는 사랑의 매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특성은 행동하는 것입니다. 잠잠하지 않고 가슴에 담겨 있는 아가페적 사랑을 행동으로 나타낼 때 그것은 선 즉 ‘카로스’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진 삶의 특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착한 행실의 빛인 것입니다.
2. 그렇다면 착한 행실은 어떤 것일까요.
미국 텍사스 주에 '벼락부자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그 할머니는 어느 부자의 유산을 모두 물려받아 하루아침에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 내용을 잠시 살펴보면, 택사스의 한 부호가 유서를 남기지 않고 갑자기 사망을 했습니다.
그 부호는 30년 전에 가출한 외아들을 끝내 만나지 못하고 외롭게 숨을 거두었습니다. 부호는 재산을 물려받을 가족이 없었기 때문에 그가 소유한 재산과 집기들은 모두 국고에 환수되었고 법원에서 차례차례 경매에 붙여졌습니다. 마지막으로 경매원이 작고 오래된 사진액자 하나를 5달러에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이 낡고 보잘 것 없는 사진 액자를 아무도 사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때 수십 년 동안 그 부호의 집에서 가정부로 일했던 한 노인이 손을 들었습니다. 경매원은 노인이 너무 불쌍해서 1달러에 사진 액자를 팔았습니다. 노인은 사진틀에 욕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속에 한 때 자신이 돌보았던 주인 아들의 사진이 꽂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가출한 아들에 대한 부모를 대신할 사랑이 남아 있었습니다.
노인은 자기 집에 와서 액자에 덮인 먼지를 닦기 위해 액자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액자의 뒤편에서 종이쪽지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대부호가 남긴 유서였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아들 사진을 소유한 사람에게 모든 재산을 주라' 수백억 대의 재산이 마음 착한 할머니에게 돌아갔습니다.
선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가끔 뜻밖의 선물이 주어집니다.
오늘 본문에서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라고 하였습니다. 그 결과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는 실제적인 선행의 열매가 많은 사람들을 옳은 데로, 곧 예수 구원으로 돌아오게 하는 결정적인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사실을 여러 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1)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입니다.
*마3:10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눅6:43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여기 ‘좋은 나무’란 신실한 그리스도인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좋은 열매’란 그리스도인의 매력적인 행동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낸다.’고 한 것입니다.
2) 좋은 땅, 풍성한 결실입니다.
*마13: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마13:23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여기 ‘좋은 땅’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귀, 깨닫는 마음, 결실하는 행동을 말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영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옳게 분변하고 말씀의 중심에 바로 서서 전진하는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3) 밭에 뿌려진 좋은 씨입니다.
*마13:24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여기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 곧 참된 신자를 가리킵니다. 그는 세상이라고 하는 밭에서 하나님의 말씀 곧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좋은 땅’인 동시에 ‘좋은 씨’인 것입니다. 말하자면 축복의 사람들입니다. 그 자체가 매력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의 매력인 것입니다.
4) 좋은 포도주입니다.
*요2: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예수님께서 물로 만드신 포도주입니다. 그것은 처음 포도주보다 더 좋은 포도주라고 하였습니다. 더 맛있고, 더 진하고, 더 향기로운 매력적인 포도주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질이 좋고, 양이 많고, 기분 좋게 취하는 포도주를 가리킵니다. 이것은 표적이었습니다.
이 좋은 포도주는 바로 새 부대에 담을 새 술이요, 천국을 알려 주는 새 복음이었습니다.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구약이 아니라 새 술로 맺은 신약이었습니다.
4) 좋은 소금입니다.
*막9:50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소금의 매력은 그 짠맛에 있습니다. 소금의 소금된 맛과 멋, 그리고 그 생명성은 그 특유한 짠맛입니다. 온갖 부패를 막고 맛을 창조하는 매력입니다. 말하자면 방부제, 조미료, 의료제, 비료, 제물 등에 쓰이며 특히 소금은 물이 녹으므로 독특한 자기희생을 통하여 맛을 내는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소금의 칼로스라고 하였습니다.
5) 선악을 분별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라고 하였습니다.
*히5:14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선악을 분별하는 결정적인 착도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생활에 유일무이한 법칙이 됩니다. 그 말씀의 척도에 따라 전 삶을 걸어놓은 그리스도인이 매력적인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 존재하는 교회가 지닌 최대, 최귀, 최고의 복음 전도와 선교의 무기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교회가 던지는 매력입니다. 칼로스입니다. 외적 자태의 아름다움입니다. 그 아름다운 자태의 근원이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적 아가페 사랑입니다.
사람들이 기독교에 이끌림을 받는 매력은 보다 훌륭한 논쟁이 아닙니다. 교양적 강좌나 시대의 첨단을 소개하는 세련된 유행이나 아니면 사회적, 정치적 흐름을 주도하는 대형 이슈가 아닙니다. 교회가 세상에 던지는 매력은 바로 어둠을 비추는 빛, 곧 선한 행실, 매력적 행실인 것입니다.
그 매력적 행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인격이 거듭나는 새 마음의 토양, 곧 좋은 땅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구속인의 마음에서 맺어지는 새 삶의 열매라고 하였습니다. 마침내 세상 가운데 희망을 주는 좋은 씨와 같은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세상 잔치의 맛과 멋을 주는 새 포도주와 같은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온갖 삶의 새 창조의 힘을 가진 소금의 맛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기록된 말씀에 의지하여 사고하고 행동하는 선한 말씀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놀랍게도 이 모든 경우에 칼로스가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매력적 행실, 선하고 아름다운 나무, 매력적인 땅, 매력적인 열매, 매력적인 씨앗, 매력적인 소금, 매력적인 말씀이 그것입니다.
기독교 초기 박해 300년은 로마 제국의 황제들과 시민들에게 정말 그리스도의 매력을 던져준 순교의 시대였습니다. 물론 그 중에는 많은 변절자도 있었으나 사실상 박해 300년 어간에도 로마 황제의 통치와 시민권에서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들에게 돌아온 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박해 속에서도 꾸준히 성장하여 갔습니다. 그 이유는 온갖 박해와 압제와 심지어 생명을 유린하는 로마 황제의 박해 속에서도 한 분 뿐인 예수만을 주로 고백하는 기독 신자들의 신앙고백의 매력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 로마 제국이 아닌 영원한 그리스도의 통치를 열망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불타는 내세 소망 때문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박해자를 향한 고요한 사랑의 표정과 죽음의 고난 속에서 감수하는 그 얼굴의 인내, 그리고 신자들끼리 나누는 뜨거운 형제애의 매력이 박해 속에서도 교회가 성장하는 비결이 되었습니다.
착한 행실의 빛, 좋은 땅, 좋은 열매, 좋은 씨, 좋은 포도주, 좋은 소금, 좋은 말씀,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매력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