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팔당대교를 지나 청평으로 가는 길, 45번 국도변의 조안면 ‘기와집순두부’는 30년 가까이 명성을 쌓은 두부 요리의 명가다. 근처의 두물머리와 운길산, 다산묘 등 운치 있는 풍경과 어우러지는 한옥으로, 정갈하고 담백한 식사를 즐기기에 그만이다.
옥호처럼 아주 오래되고 넉넉한 기와집을 들어서면 고소한 냄새가 가득하다. 주방에서는 하얀 콩물을 젓느라 분주하고 입구에는 서비스로 주는 비지가 함지박 가득 담겨 있어 두부 전문집에 온 기분이 물씬 난다. 바람 솔솔 통하는 마당 테이블엔 두부와 녹두전에 막걸리를 먹는 손님들로 북적인다. 마치 잔칫집 같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벽에 걸린 메뉴판을 보면 주로 두부 요리와 부침류, 제육 등 몇 가지가 있는데 이 중에서 순두부백반이 제일 인기가 좋다.
순두부라면 뚝배기에 보글보글 끓고 있는 빨간 양념에 달걀을 얹어 나오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 집 순두부는 다르다. 하얀 대접에 양념이나 고명이 전혀 첨가되지 않은 순백의 순두부만 가득 담겨 나온다. 곁들인 간장을 조금 끼얹어 한입 맛보면 마치 달걀찜이나 푸딩 감촉이랄까? 아주 미세한 콩 알갱이가 느껴지면서도 부드러운 촉감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첫맛이 콩 자체의 달달함이라면 뒷맛은 고소함이다. 이렇게 맛있는 건강식이 또 있을까! 신기하게도 간수의 씁쓸한 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 두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다. 순한 맛의 이 집 순두부는 환자들의 보양식으로도 인기가 좋아 포장을 해가는 사람이 많다.
얼큰한 순두부를 먹고 싶다면 콩탕을 시키면 된다. 신 김치와 돼지고기를 볶다가 생콩을 갈아 넣어 끓인 것으로 구수하고 칼칼한 맛이 좋다. 이외에 따끈한 두부에 돼지고기 삶은 것을 곁들인 제육생두부도 많이 찾는다. 단백질 만점으로 든든한 식사는 물론 술안주로도 훌륭하다. 녹두를 아주 곱게 갈아 파삭하게 지져낸 녹두전도 인기 사이드 메뉴다. 이 집은 특히 반찬이 맛깔스럽고 두부와 궁합이 잘 맞는다. 매콤하고 아삭아삭한 배추겉절이, 새콤한 물미역무침, 향긋한 취나물이나 깻잎나물 등 가짓수는 많지 않지만 하나같이 깊은 손맛을 자랑한다.
화려한 요리는 아니지만 이 집 음식은 한옥에서 먹는 맛이 여느 식당과는 차원이 다르다. 처마 밑에 제비집이 수십 개가 쪼르르 붙어 있는 이 한옥은 조상 대대로 살던 집으로 창업주 정인숙(58)씨의 남편이 태어나 자란 곳이기도 하다. 만석지기였던 정씨의 시댁은 할아버지 때부터 경기도 퇴촌에서 크게 콩 농사와 콩 장사를 하면서 자연스레 콩으로 만든 여러 가지 음식을 즐겨왔다. 정씨는 결혼 후 콩 요리에 일가견이 있던 시어머니의 음식 솜씨를 전수받아 1989년 이 자리에 순두부집을 열었다. 몇 년 전부터 대물림시킬 정씨의 아들 김민우(33)씨가 카운터를 지키고 있으니 대대로 이어지는 콩 가문을 일군 셈이다.
▲ 대표 정인숙씨와 아들 김민우씨.
파주·양구 콩만으로 만든다
이 집 음식 맛은 첫째도 정성, 둘째도 정성에서 비롯된다. 우선 재료인 콩을 준비하는 것부터 남다르다. 매년 콩을 수확하는 가을, 경기도 파주와 강원도 양구 등에서 질 좋은 국산 콩을 수매한다. “산지마다 콩 맛이 달라요.” 두부 만드는 백태는 전국에서 양구와 파주 콩이 가장 부드럽고 고소하면서 달착지근한 맛이 좋다고 한다. 1년치 콩을 여러 농가에서 사들이는데 맛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가차 없이 거래선에서 제외한다. 두부의 맛은 콩 맛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간수는 신안군 염전에서 공수해와 몇 날 며칠 불순물을 가라앉히고 고운 망에 걸러 깨끗하게 준비한다.
두부를 만드는 방법은 시어머니로부터 전수받은 옛 방식 그대로 오늘까지 이어오고 있다. 콩을 씻어서 12시간 불린 다음 기계식 맷돌에 갈아 커다란 가마솥에 넣고 저으면서 끓인다. 약 40분 정도 끓인 뒤 불을 끄고 고운 체에 거른다. 곱게 걸러낸 콩물에 염도 12도의 간수를 넣어 응고시켜 순두부를 만들어낸다. 이때 온도를 잘 맞추고 간수의 양을 적절히 넣는 것이 비결이란다. 두부는 매우 예민해서 조금만 간수를 더 넣어도 맛을 버린다. 모두부는 순두부보다 센 간수를 넣는다. 순두부와 마찬가지로 단백질이 응고되면서 몽글몽글해지면 상자에 보자기를 깔고 눌러 굳힌다. 체에 거르고 남은 비지는 고객들이 가져갈 수 있도록 제공하고 보자기를 통해 흘러나온 물은 모두부 낼 때 살짝 데쳐내는 물로 사용한다. 그래야 두부가 더 고소하다.
“매일 염 들일 때 두부가 예쁘게 나오라고 기를 넣어요.” 염 들인다는 것은 콩물에 간수를 넣어 응고시키는 과정을 말한다. 정씨는 30년 가까이 두부를 만들었지만 만들 때마다 새롭다고 한다. 정성을 기울이지 않으면 어느 땐 순두부가 안 만들어질 때도 있다. 그만큼 두부 만드는 작업은 섬세하고 정성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일까. 그동안 여러 사람이 배워갔는데 이 집 순두부와 똑같은 맛을 내지 못한다. 그러니 아무리 손님이 많아도 체인점은 생각도 할 수 없다. 전국에 기와집순두부라는 이름을 쓰는 집이 수도 없지만 이 집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유일하게 서울 서초동 법원 앞 기와집순두부만이 정씨의 친척이 하는 집으로 분점인 셈이다.
보통 한 가마솥에 콩 8㎏을 삶는데 순두부 23~25인분과 모두부 15모가 나오는 것이 전부다. 순두부는 끓여서 오래 두면 맛이 덜하다. 이 집에서는 회전율이 빨라 두부를 수시로 만들기 때문에 더욱 신선하고 맛있게 즐길 수 있다. 손님이 끊이지 않는 주말에는 13~15회 정도로 여러 번 콩을 삶는다 하니 두부 맛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순두부 맛을 더욱 특별하게 해주는 간장은 대파와 고추로 양념하는데, 달콤짭조름하면서 개운하다. 그 비법은 진간장에 이 집에서 직접 담근 집간장을 적절한 비율로 섞기 때문이다. 순두부와 잘 어울리는 배추겉절이는 절이지 않은 생배추에 미리 만든 양념을 넣고 즉석에서 버무려내기 때문에 상큼하고 아삭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롯해서 수많은 유명인들이 이 집을 다녀갔다. 일본의 유명한 잡지 ‘프레셔스’에 유명 배우 겸 모델 고유키씨가 이 집을 소개한 뒤로 일본 손님들도 꽤 온다. 일본 항공사인 잘(JAL)의 기내 잡지에도 실렸다. 사실 일본은 두부 요리가 우리나라보다 유명한 나라다. 그곳에서 알아주는 한국의 두부집이니 어깨가 으쓱할 만도 한데 정씨는 겸손함을 잃지 않는다. “저희 집을 찾는 어느 분에게나 제대로 된 맛있는 두부 요리를 대접하고 싶어요.” 오랜 세월 함께 해온 주방 식구들과 오늘도 두부 만들기에 정성을 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