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당신의 성채인 것처럼/최하림
우리가 당신의 성채인 것처럼
우리의 성채인 말들을 위해 기도해주소서
말들은 오래 전에 집을 나가 객지를 떠돌고
있습니다 딱딱한 침상도 그를 위해서는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삼류 여인숙에서 등을
돌리고 누울 시간도 없습니다
우유도 없습니다. 희미한
미소와 손짓과
공복의 이미지들이
저문 강에 말뚝을
박고 있습니다
(이 시간 공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게
꿈같습니다 숨쉴 수 있다는 게 꿈같습니다)
등뼈가 휘도록 추운 길로 여인들이 가고
있습니다 붉은 소방차가 가고 있습니다
꽁꽁 언 말들을 위해 기도해주소서
우리가 당신의 성채이듯이
말들은 우리 성채입니다
*최하림1939~2010
시집으로 『우리들을 위하여』 『작은 마을에서』 『겨울 깊은 물소리』 『풍경 뒤의 풍경』 등이 있으며, 수필집 『숲이 아름다운 것은 그곳이 비어 있기 때문이다』 등이 있다. 이산문학상, 올해의 예술상 등을 수상했다.
<시 읽기> 우리가 당신의 성채인 것처럼/최하림
가난한 존재들이 지닌 선함
북미 인디언들은 사람이 눈을 깜빡이면 시도 눈을 깜빡인다고 믿는다. 신은 우리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는 자기 자신을 공경하고 자기 안의 선함을 사랑해야 한다. 신에게 사람은 든든한 성채이다. 그렇다면 말言은 시인의 성채이다. 시인은 가난한 말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본다. 가난한 존재들이 지닌 선함을 이 세계 속에 꺼내놓는 신의 종복이다.
―박형준 엮음, 『당신에게 그 어떤 위로보다』, 사흘,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