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거스트 투랙이라는 경영인은 17년 동안 미국의 한
트라피스트 수도원을 자주 방문하여 그곳에서 생활하고 일하는 남다른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는 수도원의 생활 방식과 인생에 대한 관점을 점차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능률과 영리, 양적 측정과 인물 본위 등 현대 경영에서 당연시되는 기본 전제들이 얼마나 위험하며 많은 중요한 가치를
희생시키는지를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이 수도원에서 얻은 귀한 경험을 나누고, 수도원 생활의 중심 가치가 세상 사람들이 직업 세계의 삶을
행복하고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데에도 매우 의미 있다는 점을 보여 주고자 책을 냈습니다. 『수도원에 간
CEO』입니다.
이 책에서 매우
인상적인 부분은 '삶의 변화'라는 과제에 대한 성찰입니다. 그는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고 탈바꿈시키려는 열망이 있었으나, 수사들의 삶에서 체득한
사실은 그 변화의 갈망이 존재 깊은 곳과 닿아 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는 수사들이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서원의 과정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죽는' 수준의 존재의 탈바꿈을 지향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 반면 많은 사람은 다른 차원의 변화가 이러한 존재의 변화를
대신할 수 있다며 착각한다고 지적합니다.
"모든 인간의 동기는 탈바꿈에 대한 갈망에서 비롯되지만,
탈바꿈에는 세 가지 다른 유형이 있다. 목마른 사람이 물을 마실 때, 그는 자신의 '상태'를 탈바꿈시킨다. 가난한 사람이 복권에 당첨되면, 그는
자신의 환경을 탈바꿈시킨다. 그리고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에 나오는) 스크루지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크리스마스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 그는 존재의 탈바꿈을 경험한 것이다. 이 세 가지 유형의 탈바꿈이 모두 필요하다. 문제는 우리가 한 유형의 탈바꿈을
다른 유형의 탈바꿈으로 대체하려고 할 때 비로소 생긴다."
먼저 사랑하기
-김현준 신부-
오 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많은 사람이 취업을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입사 면접에서는 모두들 어떻게든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회사를 선택한 이유를 조리 있게 제시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만약 면접 도중에 면접관이, “여러분이 이 회사를 선택하기 이전에 이미 우리가 여러분을 점찍어 두었습니다. 합격을 축하합니다.”라고 이야기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안도의 한숨과 해냈다는 성취감, 자기 자신에 대한 자긍심까지…. 더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면접관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이처럼 아무런 조건 없이 뽑아 세우셨습니다. 아니, 단 하나의 조건이 있다면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 조건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뽑으셨다는 말씀은 이처럼, 그분께서 우리를 먼저, 더 많이 사랑하신다는 점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하느님 나라의 합격 통지서가 이미 배달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스스로 신앙을 선택했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간혹 신앙생활을 하면서 교만에 빠집니다. 내 기준으로 하느님의 모습을 설정하고 그 모습에 따라 이웃을 판단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 나라의 인턴사원일 따름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예수님의 조건 없는 사랑, 먼저 사랑해 주심에 감사하며, 우리도 다른 이들을 그렇게 조건 없이, 먼저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하고 싶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맡겨진 이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조명연신부-
어 제 제 아버지를 위해 기도해달라는 부탁을 새벽 묵상 글에 썼었지요. 그리고 정말로 많은 분들이 기도해주셨습니다. 새벽 카페와 각종 SNS[Social Networking Service]를 통해 제게 많은 기도와 응원의 메시지를 전달해주셨습니다. 일일이 감사의 인사를 드리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너무나 많은 분들이라 이렇게 부족하지만 새벽 묵상 글을 통해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사 실 기도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 지를 크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85세의 고령에, 연속 두 번이나 수술해야 하는 그래서 의사선생님께서 직접 ‘죽음’을 이야기 할 정도로 많이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또한 지난주에 수술하셨던 허리에만 신경을 써서 정작 시급한 치료를 해야 할 부분을 찾지 못할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지요. 그러나 비교적 빨리 찾아 수술을 할 수 있었던 점, 그리고 그 힘든 수술을 이겨내신 점 모두 기도의 힘이며 주님께서 지켜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지금도 중환자실에 계시지만, 많이 회복하셔서 곧 일반병실로 옮기실 것이라 하더군요. 글쎄 당신 심심하시다고 안경과 신문을 가져다 달라고 하실 정도니까요.
수 술 직전, 아버지께서는 계속해서 “미안하다. 사랑한다.”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솔직히 이런 말을 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항상 당당하게 사셨고, 전통적인 유교 관습이 젖어 있으시는 분이라 조금이라도 낯 뜨거운 말도 해 본 적도 없으신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말을 하고 계시니 얼마나 약해지셨다는 것입니까?
주님 앞에서 강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가 주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낮출 수밖에 없으며, 나약하고 부족한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 내어 맡기고,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오 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주체는 내가 아니라 주님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알아서 이 세상에 났고, 내가 알아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처럼 생각되지요.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셨고, 주님의 뜻에 맞게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한 사람의 삶은 결국 불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 자신만을 높이려고 하다 보니 물질과 권력에 자유롭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경쟁상대로만 보기 때문에 사랑보다는 미움과 이기심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뜻을 철저하게 외면하기에 악에 쉽게 기울어지게 됩니다.
이 러한 삶이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요? 따라서 나를 움직이는 주체가 바로 주님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철저히 주님께 내 자신을 맡기는 삶이 필요합니다. 물의 흐름에 반대로 수영을 하면 어떨까요? 너무나 힘듭니다.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면서 자전거를 타면 어떨까요? 당연히 앞으로 나아가기 힘듭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물이 흘러가는 방향으로, 바람을 등에 지고 가야 앞으로 쭉쭉 나아갈 수 있음을 기억하면서, 우리 역시 주님께 모든 것을 맡겨야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기도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인사를 다시금 올리며, 여러분들을 위해 저 역시 기도로 응답하겠습니다.
인생이란 또 사랑이란, 우리 마음을 처음에는 나에게, 그 다음에는 다른 사람에게 조금씩 열어 나가는 과정이다(대니얼 고틀립).
내 주변을 잘 바라보세요.
지 난번에 서울 인사동에 갔다가 길에서 연주하며 노래하는 분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허름하고 초라해 보이는 옷을 입었지만 멋진 연주와 아름다운 노래였습니다. 그래서 잠시 길을 멈추고 음악을 감상했지요. 한 곡을 다 감상한 뒤에, 잘 들었다는 의미도 그분들이 준비한 기부함에 약간의 돈을 넣은 뒤에 다시 제 갈 길을 갔지요.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이 사람들이 아주 유명한 가수에 연주자들이라면 어떨까요? 이렇게 한곡만 듣고서 제 갈 길을 갔을까요? 어쩌면 끝까지 남아서 싸인(Sign) 이라도 받으려고 했을 것입니다.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하지요.
어느 추운 1월, 미국의 어떤 기차역에서 어떤 한 남자가 바이올린을 들고 바흐의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날이 추워서 그런지 아무도 그의 연주에 집중하지 않았습니다. 불쌍해보여서인지 음악도 듣지 않고 1달러 지폐 하나 던지고 지나간 것이 전부였습니다. 바흐의 곡을 한 시간 동안 연주했지만, 그의 앞에 멈춰 섰던 사람은 단 6명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한 시간 동안 벌은 돈은 32달러였지요. 연주를 듣고 박수를 쳐준 사람 역시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 바이올리니스트는 세상에서 가장 재능 있는 뮤지션으로 평가받는 조슈아 벨(Joshua Bell)이었습니다. 불과 이틀 전 콘서트에서 최하 13만원부터 시작하는 표가 모두 매진될 정도였는데, 그 좋은 연주를 기차역에서는 그 누구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지 못하는 우리들입니다. 진짜 주님께서 우리 곁에서 이야기하시고 활동하시는데도 눈치 채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제 주변을 더욱 더 유심히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거룩한 부르심(聖召)
-김대열신부-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요한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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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 세례가 아닌 성인(成人)세례를 받은 이들이 세례를 받게 된 동기는 다양하다.
그리고 그 동기의 주체는 자신이라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나는 세례성사를 집전할 때마다 잊지 않고 하는 말이 있다.
“여러분께서는 스스로의 결심으로 이 자리에 섰다고 생각하실 겁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여러분이 예수님을 선택했다는 생각을 버리셔야 합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즉, 여러분께서는 부르심에 응답하셨을 뿐입니다.
이를 거룩한 부르심(聖召)이라고 합니다.”
그렇다. 우리 모두는 그분의 부르심을 받은 자녀들이다.
그분께서 먼저 손을 내미셨다.
가장 좋은 것을 주시려고 그 사랑의 손을 내미신 것이다.
우리는 부르셨으니 책임져주시리라 믿어야 한다.
그리고 그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만들고자 노력해야 한다.
이 간단한 그분과 나의 관계를 의식하면서 사는 것이 신앙생활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부르심은 우리의 삶이 다할 때까지 지속될 것이다.
끊임없이 우리가 제대로 살 수 있기를 바라시는 부르심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수없이 넘어질 것이고 다시 일어설 것이며 응답하려 할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어차피 삶이란 굴곡이 있기 마련이고 걸려 넘어짐은 자연스러운 우리의 모습이다.
그러한 우리의 조건을 하느님께서 모르실 리 없다.
잊지 말아야 한다.
그분께서 우리를 선택하셨음을
주님께서 나에게 맡기시는 그 일을 받아들여 봅시다.
-김기현신부-
지난 주일에 본당 성지 순례를 다녀왔습니다. 남양 성모 성지에 갔었는데요. 조금 빡빡한 일
정이었던 거 같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성지 신부님과 묵주기도 하고, 길게 미사하고, 점심 먹
고, 구역별로 십자가의 길을 했는데요. 저는 점심을 먹고 나서 생각해 보고 싶은 게 있어서
혼자 조용히 걸었습니다. 그런데 성지에 오신 신자분들이 저를 가만히 두질 않으시더라고요.
^^;
‘신부님 안녕하세요~ 이거 과자 드세요~ 신부님 고해성사 좀 볼 수 있을까요~ 신부님, 어떤
책을 읽는 게 신앙생활 하는데 도움이 될까요? 신부님, 잠깐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하고 신부인 저를 원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인사하고, 얘기 나누고, 성사 주고.. 하면서 제 시
간이 아니라 신부로서 시간을 보냈던 거 같은데요.
오늘도 저를 찾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방에서 성경공부 준비 좀 해야겠다.. 하는데, 오전에
전화가 오더라고요. 부회장님이셨는데요. 전해 줄 게 있다고 하시면서 성당에 올라오셔서,
‘앞 집 할머님이 신부님 얼굴 안 좋아 보이신다고 이거 좀 드시래요...’ 하고 홍삼을 전해주셨
습니다. 그리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올라온 김에 텃밭을 정리하고, 관상용 박 심을
자리를 준비해 놓는 것이 좋을 거 같다고 하셔서.. 그 때부터 시다로 일을 했죠. 긁고 모으고
거름 뿌리고.. 일을 마무리할 때쯤 보니 벌써 점심 먹을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함께 일
한 분들과 식사를 하러 가려고 손을 씻는데, 물이 졸졸 나옵니다. 이상해서 물탱크에 가보니
수도 전기가 자꾸 떨어집니다.
형제님도 보시더니 원인을 알 수 없다고.. 일단 식사하고 다시 올라오자.. 하셨는데요. 그 이
야기를 들으면서 감사한 마음이 드는 한편 ‘오후에도 공부는 물 건너 갔구나...’ ^^; 하는 생
각이 들더라고요. 어쨌든 점심을 먹고 올라와서 점검을 하는데 형제님이 보시기에 수위 조절
기에는 문제가 없었던 거 같았습니다. 조금 떨어져 있는 곳에 물을 퍼 올리는 모타에 이상이
있나.. 하고 그쪽으로 가보셨는데요. 안 봤으면 큰일 날 뻔했었습니다. 모타가 다 탔더라고
요. 하마터면 불날 뻔 했었습니다. 아마 며칠 전에 수도 공사를 할 때 물 없이 모타가 돌아서
탔던 거 같은데요. 다행히 발견하여 큰 문제 없이 수리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일을 마무리 짓고 형제님은 약 뿌리러 가시고, 저는 방에 들어가 성경공부 준비를 하려다
가 이왕 나온 김에 냄새나고 더러워진 개장 좀 청소하고 들어가자.. 해서 옥상 물청소를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또 ‘신부님~’ 하고 부르더라고요.
그래서 내려다보니 도배 하시는 자매님이 오셨습니다. 지난번에 제 차를 타셨었는데, 그 뒤
에 도배지가 있는 걸 보시고, ‘웬 도배지에요?’ 하고 물어보셨었습니다. 그래서 ‘별관 벽에 물
이 흘러서 지저분한 부분만 도배하려한다..’ 고 했더니, ‘신부님, 제가 도배하잖아요. 제가 시
간나면 올라가서 해 드릴께요...’ 했었는데, 그 시간에 올라오셨더라고요. 그래서 내려갔는데
요. 내려가면서 ‘성경공부 준비는 물 건너 갔구나...’ 했죠. 물론 그분 덕분에 도배는 깔끔하게 할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사제로서, 특별히 시골 본당 신부로서 해야 할 일들이 있는 거 같은데요. ‘내가 생각하기에
이건 아니야..’ 하면 더 힘들어지는 거 같습니다. ‘이거야...’ 할 때 그분이 원하시는 일을 할
수 있는 거 같습니다. 왜냐하면 뽑으신 분은 그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나를 뽑은 것
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사제로 뽑아 세우셨는데 신자들을 멀리하고, 시골
본당 신부로 뽑으셨는데 도시에 나가야 한다고 떼를 쓰면, 아마도 그분의 일을 할 수 없을 겁
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이겠죠. ‘내가 하고 싶은 게 더 중요해~’ 한다면 유다처럼 직무를 버리고
떠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님 안에서 그분의 지체로 살아가려면 뽑으신 분이 맡기시는
그 일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리라 생각합니다.
< "너라는 꽃이 피는 계절" >
-전삼용신부-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란 책에서 함께 나누고 싶은 내용이 있어서 옮기려 합니다. 단락 제목이 ‘너라는 꽃이 피는 계절’인데, 여러 종류의 꽃이 피는 시기가 다르듯이 각자의 꽃이 피는 시기도 다르니 남들처럼 일찍 성공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실망하지 말고 기다릴 줄 알라는 내용입니다.
저자는 먼저 학교에 계절마다 피는 꽃들을 열거합니다. 봄에 가장 먼저 매화가 피고, 그 다음에 화려한 벚꽃, 그리고 여름이 되면 해바라기, 그리고 가을엔 코스모스와 국화가 핀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독자에게 어떤 꽃이 가장 ‘훌륭하냐’고 질문을 던집니다. 저는 은근슬쩍 ‘겨울을 이겨내고 처음 피는 매화가 가장 훌륭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는데, 사실 꽃은 다 훌륭하고 예쁘다는 것입니다. 각자의 아름다움이 있는데 어떤 것이 더 훌륭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아마 저도 가장 먼저 피고 싶은 조바심이 있는가봅니다.
저자는 대학생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친구들이 같은 나이에 승승장구하고 있다고 해서 실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생으로서 저자가 제자들에게 바라는 것은 ‘일찍’ 출세하는 것이 아니라, ‘크게’ 성공하는 것이랍니다.
예로부터 소년등과(少年登科)라 하여 어린 나이에 과거급제를 하면 가장 부러움을 받는 것으로 여겼었는데, 동시에 인간의 세 가지 불행 중 첫 번째로 소년등과를 뽑았다고 합니다. (나머지 두 가지는 아버지 덕으로 좋은 벼슬에 이르는 것과, 재주가 좋은데 글까지 잘 쓰는 것이랍니다) ‘소년등과를 하면 불행이 크다’거나 ‘소년등과한 사람치고 좋게 죽는 사람이 없다’는 말도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뉴스에서 종종 갑자기 잘나갔다가 좋지 않은 죽음을 맞는 연예인들이나 재벌 2세, 혹은 정치인들을 봅니다. 예전에 저도 어떤 선생님이 로마의 폐망을 이야기하시면서, “태양이 가장 높이 솟으면 떨어지는 일만 남은 것이다. 너희 인생에서도 떨어지고 싶지 않으면 정오의 시간이 빨리 오게 하지 마라”라는 말씀을 하신 것이 기억에 많이 남았습니다.
가리옷 유다의 꽃이 피는 시간은 그리스도의 제자로 뽑힘을 받은 때였습니다. 꽃으로 친다면 매화처럼 매우 빠른 성공을 한 것입니다. 교회의 열두 주춧돌의 하나로 뽑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유다에게는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더 이상 성취할 수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이후엔 박해만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계속 밑으로 떨어져 결국 가야 할 길로 가고 말았습니다.
마티아의 경우는 가장 늦게 선택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순교의 월계관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유다 대신 천상교회의 열두 기둥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결국 죽을 때가 나의 꽃이 가장 아름다울 때이고, 나의 태양이 가장 높이 치솟았을 때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와서, 저자는 우리나라 영화제에는 있는데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는 없는 상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냐고 질문합니다. 그것은 ‘신인상’입니다. 그리고 평생 한 번밖에 받을 수 없는 상이기에 우리나라 배우들이 그렇게 열망하지만, 미국에 신인상이 없는 이유는 영화배우로서 성공한 사람치고 신인은 있을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일 것이라고 합니다. 신인처럼 보여도 그 이전에 반드시 고생한 세월이 있는데 어느 때를 신인으로 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생에서의 신인상을 노리려고 하지 말고 ‘주연상’을 받기 위해 노력하라고 합니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별명은 인동초(忍冬草)였다고 합니다. 겨울을 이겨내고 피어났다는 뜻입니다. 그가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한 해는 2000년, 그의 나이 76세 때입니다. 그는 환갑이 넘을 때까지도 최악의 핍박을 견뎌야 했고, 젊어서부터 사형선고만 3번을 받았으며, 인생의 대부분을 감옥이나 자택에 연금된 상태로 지내야 했습니다. 그는 젊은 나이에 국회의원이 되었는데, 만약 그렇게 끝났다면 소년등과하여 좋게 죽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 맞아 떨어질 뻔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꽃은 그 때 필 시기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아직 피지 않았었기에 하느님께서 오랜 시간 기다려 주신 것입니다.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고 했습니다. 큰 그릇은 빨리 완성되지 않고 빨리 차지도 않습니다. 우리의 삶은 그릇을 만드는 과정이고 그 그릇을 채우는 과정입니다. 가장 큰 그릇에 가장 많은 것을 채워 하느님께 나아가는 사람이 가장 잘 산 사람입니다. 작은 그릇은 금방 차지만 무엇이 들어있는 상태에서 그릇을 다시 크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유다처럼 조급해하지 말고, 마티아처럼 대기만성의 삶을 사는 우리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세상에서 뽑히어 다시 세상으로
-김찬선신부-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우리가 주님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선택하는 거라는 것을
마티아 사도만큼 더 잘 보여주는 사도가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너를”이 아니라 “너희를” 뽑으셨다고 오늘 주님 말씀하시니
마티아 사도뿐 아니라 사도들 모두를 주님이 뽑으신 것이지만
마티아 사도는 마치 로또에 당첨되듯 제비뽑기로 뽑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위의 말씀을 묵상 주제로 뽑았습니다.
우리가 무엇 또는 누구를 선택하고 뽑는다는 것은 두 가지 경우입니다.
하나를 놓고 그것을 선택하든지 포기하든지 하거나, 아니면
여럿을 놓고 그 중 이것을 선택하든지 저것을 하든지입니다.
한자어 선택과는 달리 뽑는다는 우리말은 그러나 여럿 중에서 뽑는 거지요.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주님을 뽑을 수가 있겠습니까?
만일 우리가 주님을 뽑는다면
신들이 여럿 있는데 그중 어떤 신을 나의 주님으로 뽑는 게 되는데
이는 한 분이신 하느님이라는 우리 신앙과 어긋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분 하느님께 대한 올바른 신앙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가 하느님을 뽑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오히려 하느님께서 우리를 뽑으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뽑는 것이 아니고 주님께서 우리를 뽑으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뽑으시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입니까?
영광으로 받아들입니까, 재수 없이 귀찮은 일에 얽히는 거로 받아들입니까?
여기에 우리의 신앙과 주님 사랑의 정도가 나타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영광으로 받아들이면 우리는 주님을 진정 사랑하는 것일 거고
귀찮은 일에 걸려들은 거로 받아들이면 세상을 사랑하는 것일 겁니다.
그제는 햇볕도 좋고 날씨도 화창하여
찾아오신 손님들을 앞뜰로 모시고 가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그때 저희 수련형제 중 하나가 잔디에 수북이 난 토끼풀을 뽑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제 잠자기 전 오늘 복음말씀을 미리 묵상하다가
내가 너희를 뽑았다는 주님 말씀이 토끼풀 뽑기와 겹쳐졌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뽑으심은 세상에서 나를 뽑으심이라고 묵상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토끼풀처럼 세상에서 뽑힌 존재입니다.
더 이상 세상에 섞여 살아서는 아니 될 운명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나를 뽑으심이 토끼풀 뽑기와 다르다면
토끼풀은 잔디를 위해 뽑아 버림을 당하는 것인데 반해
나는 하느님 백성을 위해 주님께서 뽑아 세우시는 거라는 점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분명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고 하셨습니다.
가서 많은 열매를 맺으라고 당신 제자요 사도로 나를 뽑아 세우시는 겁니다.
세상에서 뽑아내어 당신의 제자요 사도로 세우신 다음
다시 세상으로 보내어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뽑히어 떠나온 세상으로 재 파견되어야 할 운명입니다.
오늘 이 말씀은 들은 우리는,
그리고 이 말씀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우리는
또 하나의 마티아 사도가 되어야 함을 묵상하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