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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뿐인 인생, 그 인생 전부를 걸고라고 꼭 해보고 싶은 것이 있으신가요?
무엇을 위해 매일의 삶이 집중하나요?
나의 시간, 관심, 재정은 어디를 향하고 있나요?
결국 인생은 제 좋아하는 것을 하고 삽니다.
좋아하는 것
내 안에서부터 땡기는 것
깊게 갈망하는 것, 간절히 소원하는 것,
슬쩍 슬쩍 지나가지만 내 마음에 남는 것,
그것이 우리 인생을 끌고 갑니다.
무엇에 반응하며 살아갑니까?
무엇이 당신의 시선을 뺏습니까?
무엇이 당신의 마음을 뺏습니까?
무엇이 당신의 걸음을 멈추게 합니까?
그것이 당신의 꿈이 되고, 운명이 되고, 당신의 삶이 됩니다.
그것은 취미가 되고, 즐거움이 되기도 하고, 오락이 되기도 하고, 중독이 되기도 하고,
일상의 고정된 틀, 곧 습관이 되기로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에 주리고 목말라해야 겠습니까?
“의(義)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마 5:6)
의(義)란 무엇일까요? 옳은 것, 바른 것, 절대적인 것, 영원한 것, 완전한 것, 변함이 없는 것, 모든 사물의 본질이며, 중심이며, 핵심입니다. 모든 것을 존재케 하고, 유지케 하는 절대 원칙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유일한 것, 세상 모든 것이 사라져도 영원한 유일한 것, 그것이 의(義)입니다.
의(義)는 금보다 은보다 더 소중한 것입니다. 우리를 별처럼 가치있게 소중하게 하고, 당당하게 하고, 만족과 기쁨, 샘솟는 즐거움을 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시선을 유혹하는 휘황찬란 것들이 있지만, 그것은 허상, 욕망, 탐욕, 쾌락입니다. 사막의 신기루와 같은 것들입니다. 잠시 후에 사라지는 것들입니다. 그것을 따라가면 멸망입니다. 참된 의(義)를 추구하고 따르는 자들은 의(義)의 특성처럼 영원케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의(義)는 무엇입니까?
의(義)는 곧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예레미야 23장 6절에 보면 "그의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본질적 성품이 의입니다. 증언도 이렇게 말합니다. "의는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이다." (산상보훈 18페이지) 의는 하나님 자신이요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의란 하나님의 율법에 일치하게 행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막히지 않고 올바로 되어 있는 상태를 의라고 합니다. "의는 하나님의 율법과 일치되는 것이다. 의는 사랑이다." (산상보훈 18페이지)
그러므로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는 것은 하나님과 그분의 사랑에 대해 주리고 목마르다는 것과 같습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시편 42편 1절) 뜨거운 여름날 사슴이 숨을 가쁘게 내쉬면서 물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다가 마침내 시냇물을 발견하고 미친듯이 물을 들이킵니다. 이것이 하나님에 대해서 주리고 목마른 자의 모습입니다.
본문에서 "주리고", "주리다"라는 말은 헬라어로 '페이나오'인데 이 단어는 음식이 공급되지 않으면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즉 오랜 굶주림으로 먹지 않으면 죽게 되는 배고픔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40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마태복음 4장 2절)에서 '주리신지라'가 바로 이 단어입니다. 오랫동안 음식을 먹지 않아 완전히 기진맥진한 상태를 말합니다.
그리고 "목마름"이란 말은 헬라어로 '딥사오'인데 이것은 생존의 위협을 줄 정도의 갈증을 말합니다. 즉 사막에서 물을 찾지 못해서 목이 타들어 가는 갈증을 말할 때 쓰는 단어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내가 목마르다" (요한복음 19장 28절) 외쳤을 때 이 말이 쓰였습니다. 오랜 시간 피를 흘려 몸의 수분이 다 빠져 완전히 탈진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 주림과 목마름은 앞서 가난함과 애통에서처럼 최상급으로 쓰였습니다. 그저 조금 배고픈 상태나 그저 조금 목마른 상태가 아니라 최고의 배고픔과 최고의 목마름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두 단어는 모두 현재분사인데 이것은 계속해서 극도로 배고픔과 목마음을 겪는 상태를 말합니다. 배고파 죽어 가는 자가 먹을 것을 찾듯이 목이 말라 죽어 가는 자가 물을 애걸하듯이 그렇게 의를 구하는 자가 배부름과 해탈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의를 갈망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받을 복은 무엇입니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이요." (마태복음 5장 6절) 이곳에 "배부르다"는 헬라어로 '코르타조'인데 이 말의 뜻은 배부르게 먹이다, 흘러넘치도록 채우다입니다. 오병이어 사건에서 무리가 예수님이 주시는 떡을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마태복음 14장 20절에서 '배불리 먹다'가 바로 이 단어입니다. 이 말도 현재분사로 쓰였는데 이 헬라어에서 현재는 계속적인 동작을 가리킬 때 쓰이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음식을 먹여 주시고 생수를 주심으로 계속해서 만족해 주심을 의미합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시키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시편 107편 9절)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편 34편 10절) 하나님과 그분의 사랑에 주리고 목마르게 갈급하는 사람은 흘러넘치도록 채움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은 바쁨과 양립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너무 바쁘면 하나님의 사랑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바쁨을 가르치는 영어 단어를 보면 흥미롭습니다. 바쁨이라는 허리는 돌진을 의미하는 헐(Hurry)이나 장애물 뛰어넘기라는 허들(Hurdle), 그리고 야단법석이라는 허리벌리(Hully-gully), 강력한 태풍을 가리키는 허리케인(Hurricane) 같은 단어와 관련이 있습니다. 현대 심리학자들은 바쁨을 질병으로 규정합니다. 그들은 삶에서 바쁨을 가차없이 제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은 "바쁨은 악마적인 것이 아니라 악마 자체다"라고 했습니다. 토마스 머튼이라는 영성학자도 "현대 삶의 바쁨은 만연한 현대의 폭력이다"라고 지적합니다.
왜 바쁨이 문제가 될까요? 가장 심각한 문제는 바쁨이 우리 삶에 소중한 것들을 파괴한다는 것입니다. 우선 바쁨은 사랑의 관계를 망가뜨립니다. 모든 관계에는 시간이 필요한데 바쁘면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또한 바쁨은 기쁨과 감사, 그리고 건강을 파괴합니다. 특별히 삶을 성찰하는 지혜를 얻지 못하게 합니다. 지혜를 얻으려면 기다려야 하는데 바쁨은 인생의 지혜와 영성을 얻을 수 없게 만듭니다. 디지털 문명은 삶의 중요한 것에 집중하는 능력을 빼앗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대인의 집중력이 해마다 떨어지고 있습니다. 최근 사람의 집중력이 금붕어보다 못하다고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바쁜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바쁜 삶의 해법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 해결책은 삶의 속도를 늦추고 가장 중요한 것을 중심에 두는 것입니다. 이런 삶을 슬로우 영성(Slow Spirituality)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슬로우 영성을 삶의 현장에서 실천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모범이신 예수님에게서 그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보면 그분은 서두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슬로우 영성의 지혜는 하나님과 함께 단둘이 보내는 시간을 삶의 최우선에 두신 것입니다. 그 후에 다른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삶이 더 바빠지면 바빠질수록 더 자주 한적한 곳으로 가서 기도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예수님의 슬로우 영성을 본받을 수 있을까요? 저는 세 가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로, 기도에 대한 목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때 기도에 대한 목마음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매우 바쁜 삶을 사셨지만 그분은 매일 아침 아버지와 교제하는 일에 대한 깊은 갈망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증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매일 아침 여러 시간 동안 아버지와 교통하심으로 하늘의 빛을 사람에게 나누어 줄 준비를 하셨다. 그는 날마다 성령의 새로운 침례를 받으셨다." (실물교훈 139페이지)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는 것은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런 기도를 드리는 것이 잘 안 될까요?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 마귀는 우리가 기도하는 것을 제일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가 기도하는 것을 매우 두려워합니다. 마귀는 우리가 한 시간 기도하는 것보다 하루 종일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바쁘게 뛰어다니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우리가 한 시간 기도하면 두려워서 떠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가 기도하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기독교 역사를 통해 검증된 영적 훈련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고독과 침묵입니다. 고독이란 하나님과 단둘이 있는 것을 말합니다. 교회 역사에서 예수의 길을 가르치는 영적 선생들은 하나같이 이 침묵과 고독을 가장 중요한 영적 훈련으로 꼽았습니다. 어느 영성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독 없이는 영적 삶을 사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나님과 함께하며 그분의 음성을 듣는 시간을 따로 떼어놓지 않는다면 영적 삶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단둘이 있는 시간을 내지 않으면 영적인 삶은 시들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 단둘이 보내는 시간이 없이 일에 몰두하면 그 삶은 지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예외가 없습니다. 바쁘게 쫓기는 삶에는 불만족과 걱정, 분노와 우울이 따르게 됩니다. 반면 우리가 슬로우 영성을 실천하면 삶의 여유와 평안을 경험하게 됩니다. 감사와 만족, 사랑과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가 아침에 예수님처럼 하나님과 단둘이 시간을 보내고 하루를 시작하면 사랑과 기쁨과 평안 속에서 하루를 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단둘이 보내는 시간을 삶의 최우선에 두신 이유는 그 시간을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아침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며 아버지께서 나를 기뻐하신다"라는 음성을 들으셨습니다. 기도라는 것은 "나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다"라는 음성을 듣는 시간입니다. 아침마다 그 음성을 듣고 붙들지 않으면 우리는 세상으로 당당히 나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매일 아침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야"라는 아버지의 음성을 들으셨기에 거친 세상을 담대하게 헤쳐 나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그 음성이 필요합니다. 조용한 기도 시간을 통해서 "너는 내 사랑하는 딸이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야"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입니다. 삶의 자유를 누리려면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 음성을 듣는 시간이 바로 기도 시간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기도에 대한 목마름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둘째로, 성령에 대한 목마름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누가복음 11장 13절) 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그 배에서 성령의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게 된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의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요한복음 7장 37절~39절)
우리 인생은 광야와 같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은 마치 사막과 같습니다. 인간의 삶이란 사막에 장막을 친 것과 같습니다. 그런 인생에 생수가 터져 흘러넘친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사건입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광야에서 반석을 쪼개시고 매우 깊은 곳에서 나오는 물처럼 흡족하게 마시게 하셨으며 또 바위에서 시내를 내사 물이 강같이 흐르게 하셨으나" (시편 78편 15절, 16절)
우리가 성령 충만을 확인하는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도를 목말라한다면 그 사람은 성령 충만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조금이라도 시간이 나면 기도하기를 즐거워합니다. 다른 것을 희생하더라도 더 많이 기도하기를 좋아합니다. 성령 충만을 받으면 우리는 더 이상 세상에 대한 목마름이 아니라 예수님으로 만족하게 됩니다.
성령의 불이 우리 마음에 떨어질 때 우리 기도의 열정과 능력이 주어집니다. 이런 성령의 불은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가난하고 겸손한 심령으로 엎드려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불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심령을 가진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말씀 묵상도 성령과 함께하는 침묵이 없이는 결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성령은 이 성경 말씀을 우리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게 합니다. 성령의 은혜가 없으면 말씀이 내면의 길잡이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 삶에 성령이 함께하지 않는다면 조그만한 갈등에도 금방 격해지고 쓰라린 상처를 받게 됩니다. 대화로 문제를 푸는 일이 어려워집니다. 자의식에 찌들어 더불어 사는 일이 거의 불가능해집니다. 그리고 남을 내 기준에 따라 넘치거나 모자람을 따지는 소모적인 의심에 시달리게 됩니다.
반면에 성령의 충만을 받고 사역을 감당하면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함께 기뻐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서로 의심하다가 지독히 해로운 결과를 당할 일이 없어집니다. 삶이 곧 기도가 됩니다. 많은 삶의 폭풍도 견딜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성령의 음성을 듣고 성령과 함께하는 공간을 마련하면 삶의 행복과 효율이 향상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에 대한 목마름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마지막 셋째로, 영혼에 대한 목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은 그 복을 다른 사람과 나누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대상이 나와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인 경우가 많습니다. 파커 파머가 지적한 바와 같이 이 공동체란, 함께 사는 공동체란 가장 함께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항상 살고 있는 곳입니다. "그 사람만 없으면 참 좋겠는데" 하는 그 사람이 늘 존재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사람이 우리에게 서로 불쌍히 여기는 긍휼의 소명을 상기시켜 줍니다. 긍휼이란 아파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살며 함께 아파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는 치열하게 경쟁하는 세상에서 낙오되어 가난과 외로움과 고통 중에 있는 이들을 긍휼히 여기도록 보냄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분명하게 드러난 하나님의 뜻은 이런 영혼을 돌보고 구원하는 것입니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요한복음 6장 39절, 40절)
영혼을 얻으려면 먼저 한 영혼의 가치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는 한 영혼의 가치가 온 천하보다 귀합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마가복음 8장 36절) 영원한 나라에 대한 놀라운 약속, 영원한 생명이 걸린 문제인데 우리는 영혼 구원에 힘을 다하고 있습니까?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까? 예전보다 더 기도하고 더 겸손하게 사랑으로 정성을 다해 복음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단둘이 보내는 시간을 통해 날마다 성령으로 서로 이해하고 용납할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경쟁이 아닌 긍휼로 이웃에게 그 사랑을 나누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슬로우 영성을 실천함으로써 우리 모두 영혼 구원의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영혼에 대한 목마름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도의 중요한 특징은 배고픔과 목마름입니다. 의에 주리고 갈급한 심령입니다. 이런 목마름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 주님은 넘치는 은혜로 우리에게 채워 주십니다. 그 은혜를 받고 나면 우리는 또다시 새로운 배고픔과 목마름이 생깁니다. 다른 사람들도 그 은혜를 누리게 하고 싶은 갈망이 일어나 그들을 돕는 사랑의 실천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더 많이 채워 주십니다. 증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한번 맛본 사람은 그 사랑을 더욱 많이 받고자 끊임없이 부르짖는다. 그리고 나누어 주게 되면 더욱 풍성하고 더욱 많이 받게 될 것이다." (산상보훈 20페이지)
사랑하는 여러분, 날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에 대한 목마름, 성령에 대한 목마름, 영혼에 대한 목마름이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개인과 가정과 교회에 이런 축복이 넘쳐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의를 갈망하고 추구한다면 우리 삶이 얼마나 더 거룩하고 밝아지겠습니까?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목마름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가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찾을 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복을 크게 누리게 되기를 바라면서 말씀을 마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오늘 귀한 말씀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세상에는 영원한 만족이 없음을 깨닫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삶을 살도록 도와주옵소서. 그래서 주님이 나와 함께하는 부족함이 없는 삶, 넘치는 삶, 배부른 삶을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우리 가운데 몸이 아픈 이들, 또 마음이 상한 분들에게 하늘의 치유와 위로의 은총을 부어 주옵소서. 우리의 가정과 교회를 복 주시고 우리 나라를 지켜 주옵소서. 특별히 한국 재림교회에 약속하신 늦은비 성령의 부흥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우리 각자가 그 일에 헌신하도록 은혜를 부어 주옵소서. 다가오는 한 주의 삶도 주님의 은혜로 선히 인도해 주시기를 비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https://youtu.be/YNqviUCN_b8?list=RDYNqviUCN_b8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나날이 은혜롭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