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주 52시간 지켜주세요 / 박정훈
풋살팀 덕분에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과 이야기할 기회가 생긴다. 마침 7월부터 시작된 주 52시간제 이야기가 나와서 풋살보다 재미있는 토론판이 벌어질 것 같았다. 논쟁의 휘슬이 울렸지만 경기는 시시하게 끝났다.
개발자로 일하는 팀원은 52시간제가 비현실적이라고 말할 줄 알았는데, 52시간 일하는 게 말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주말 빼고 아침 9시 출근해서 밤 9시까지 야근을 매일 해야 52시간이 채워진다는 거다. 출퇴근 시간까지 합치면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회사를 위해서만 살아야 한다. 제품설계 일을 하는 다른 팀원도 거들었다. 전에 다니던 회사 상사가 야근을 좋아해서 직원들이 근무시간에 웹툰이나 유튜브 보면서 시간을 때웠다고 한다. 이 모습이 한심했던 그는 야근을 금지하는 회사로 직장을 옮겼다. 새 직장에서는 근무시간에 집중적으로 일하고 칼퇴를 할 수 있어, 능률도 오르고 가족도 행복해했다.
이렇게 보면, 기업을 망하게 할 것 같은 노동시간 단축은 노동자만을 위한 정책이 아니다. 기업은 노동강도를 높여 노동생산성을 높일 수 있고, 직원을 ‘칼퇴’시키면 불필요한 야근수당을 줄일 수 있다. 노동자를 일찍 집에 돌려보내 회사에서 받은 피로와 스트레스를 풀게 해주면 다음날 생생한 노동자를 쓸 수 있는 이득도 생긴다. 노동시간 제한은 자본주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A회사 사장은 노동자를 하루 10시간씩 일 시키고 B회사 사장은 15시간씩 일 시켜도 아무런 제재가 없다면 사장끼리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없다. 최소한의 룰과 규칙이 없다면 사장들이 지나친 경쟁을 벌여 산업화 초기처럼 노동자가 일찍 죽거나 과로사를 한다. 200년 전으로 돌아갈 필요도 없다. 대한민국은 그동안 노동시간을 규율하는 심판이 없어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을 기록했고 ‘과로사’라는 단어가 있는 유일한 나라다. 사실 일방적으로 기업에 불리한 정책이었다면, 광범위한 사회적 동의가 필요한 입법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노동자의 입장이 법에 반영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동법은 수많은 노동자가 죽고 나서야 만들어진다.
그럼에도 시대의 변화를 거스르는 사람들이 있다. 한 스타트업 대표가 스타트업 같은 지식노동은 일과 공부를 구분하기 힘들기 때문에 주 70시간, 100시간도 일하고 싶어 하므로 52시간 제한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노동자의 생계를 위해 노동시간 제한을 반대했던 200년 전 산업혁명가와 2021년 혁신가의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사장 밑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위해 법을 만들었지만, 우리가 흥미롭게 읽어야 할 부분은 따로 있다. 노동자들은 필요하면 퇴근 후 자기계발을 위해 공부한다. 자격증을 따고 어학공부를 하고 학위도 취득한다. 사장님이 공부가 일과 다르지 않다고 믿는다면 퇴근은 일찍 시키고 노동자의 자기계발에 보너스를 주면 된다.
우리나라 법정근로시간은 주 40시간이다. 우리는 그동안 노동자를 주 60시간씩 일 시키면 성공할 수 있다는 사장의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었다. 경기에서 반칙으로 이기려는 선수에겐 경고를 줘야 하고, 경고에 항의해 심판에게 달려드는 사람은 퇴장시켜야 한다. 그래야 정직하게 땀 흘리는 사람을 보호할 수 있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입력 : 2021.07.13 03:00 수정 : 2021.07.13 03:03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107130300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