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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선생님의 시를 몇편 실어 봅니다. 어린이날 특집은 아니구요. ^^ http://25duk.cyworld.com/ (이오덕학교) 에서 퍼왔네요. 퍼가도 된다고 게시가 되어있어서 몇점 실어봅
니다. 여기 올려놓은 시보다 더 많은 시가 있습니다만 사서 보는 수 밖에는 없겠지요. ^^ 근래에 시 모음집으로 '고든박골 가는 길'(실천문학사)가 나와있네요. 이분의 시를 보면서 이런 분이 진짜 시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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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달새에게 오늘도 새벽부터 검푸른 하늘에 올라가 일하는 사람들의 머리 위에 무지개빛 희망을 뿌려주고 붉은 생채기 곳곳이 드러난 산과 들을 내려다보며 온종일 지치지도 않고 어서 보리가 자라나라고 보리 이삭이 피어나라고 가냘픈(*) 두 날개를 파닥거리며 울어대는구나. 종달새야! 너의 노래에 피가 맺혀 너의 노래에 눈물이 스며 메마른 이 땅에 보리가 피어나나 보다. 보리가 익어가나 보다. 네가 보얀 하늘에서 쉬지 않고 노래할 때 산기슭에는 마을의 어머니들이 누우런 얼굴로 나물을 뜯고 땀 흘리며 밭 갈던 일꾼들이 있어 이따금 손을 쉬어 흐릿한(**) 눈동자로 너의 모습을 더듬으면 보이지 않는 하늘에서 너는 다만 못견디는 소리 못견디게 무엇을 부르는 소리 숨가쁘게 무엇을 부르는 소리. 새벽을 부르고 아침을 부르고 해(***)를 부르고 보리알이 하나하나 여물어 가는 하늘에서 그래도 사람들의 얼굴에 시름이 가시지 않으면 너는 그만 쏜살같이 땅에 내려오고 하느냐? 종달새야, 보얀 하늘에서 너는 몸부림쳐라! 네 노랫소리에 이마의 땀을 닦고 허리띠를 졸라매는 사람들이 있다. 네 노랫소리에 슬픔을 잊고 내일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종달새야, 헐벗은 이 땅을 지켜주는 시인아! 1958.4 (*) '잔약(孱弱)'이라는 말로 되어 있어서 말뜻 그대로 '가냘픈'으로 고쳤습니다. (**) '희미한'이라 되어 있는데 '흐릿한'으로 고쳤습니다. (***) '태양'이라 되어 있기에 '해'로 바로잡았습니다. ↑위로가기 비를 내려 주소서 비를 내려 주소서. 바작바작 타 들어가는 풀과 나무와 골목마다 길바닥에 새까맣게 타 죽은 소똥벌레와 못 속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붕어들을 위해 비를 내려 주소서. 저 포학한(*) 해를 가리어 주소서. 푸른 하늘을 덮어 주소서. 거북이등같이 마구 갈라진 땅바닥을 가느라고 불꽃을 마시며 채찍에 맞으며 쟁기를 끌다가 어미 소는 드디어 숨이 막혀 쓰러졌습니다. 불쌍한 어미 소를 위해 빗방울이 떨어지게 하소서. 뻐꾸기조차 목이 말라 울지 못하는 산속에서 어린 것을 거느린 어미 사슴이 사냥꾼(**)을 피해 목을 축이러 찾아온 바윗틈 그 바윗틈에 샘물이 고이게 하소서. 온갖 풀과 나무와 벌레들과 짐승들의 목을 축여 주고 마지막으로 사람들 가슴을 흠씬히 젖어 내리게 하소서. 그러하지 못하면 비바람(***)이라도 쏟아지게 하소서. 높은 성과 집들을 모조리 쓸어가는 비바람이라도 좋습니다. 아아, 비! 비를 내려 주소서. 1958 (*) '포학(暴虐)'이란 "잔인하고 난폭한"을 뜻하는 말입니다. (**) '포수(砲手)'로 되었으나 "총으로 사냥하는 사람"이 '포수'인 만큼 '사냥꾼'으로 고칩니다. (***) '폭풍우(暴風雨)'로 쓰셨으나, '비바람'으로 다듬습니다. ↑위로가기 진달래 이즈러진 초가집들이 깔려 있는 골짝이면 나무꾼들의 슬픈 산타령이 울리는 고개면 너는 어디든지 피어 있었다.(*) 진달래야! 그리도 이 땅이 좋더냐? 아무것도 남지 않은 헐벗은 이 땅이 그리도 좋더냐? 찬바람 불고 먼지 나는 산마다 골짝마다 온통 붉게 꾸며 놓고 이른봄, 너는 누구를 기다리느냐? 밤이면 두견이 피울음만 들려오고 낮이면 흰옷 입은 사람들 무거운 짐 등에 지고 넘어가고 넘어오는 산고개마다 누구를 위해 그렇게 붉게 타느냐? 아무리 기다려도 뿌연 하늘이요, 안개요, 바람 소리뿐인데 그래도 너는 해마다 보릿고개 넘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갈 때 배가 고파 비탈길을 넘어질 뻔하면서 너를 두 손으로 마구 따먹던 것이 좋았더냐? 진달래야, 무더운 여름이 오기 전에 차라리 시들어지는(**) 너무나 순진한 어린이 같은 꽃아! 내 마음속 환히 피어 있거라. 영원히 붉게 붉게 피어 있거라. 1953.4 (*) 1966년에는 '피었었다'로 되어 있음. '-었었-'은 잘못 쓴 말투임을 깨닫고 고치신 듯합니다. (**) 1966년에는 '져 버리는'으로 되어 있음 ↑위로가기 툐요일 순단아, 기다리던 토요일이다. 청소는 그만두고 어서 집에 가거라. 아침에 나물죽 한 그릇 먹고 점심도 굶고 날마다 얼마나 배가 고프겠니? 그래도 너는 "배 고프냐!" 물으면 가느다란 목소리로 "아니요" 하지만 그렇게 묻는 내가 우습구나. 어서 집에 가서 나물 바구니 들고 뒷산으로 가거라. 산에는 그래도 먹을 것이 많더라지? 잔대도 캐어 먹고 딱주도 캐어 먹고 참꽃도 따 먹고 송기도 벗겨 먹고 삘기도 뽑아 먹고 그러다가 해가 지면 나물 바구니 속에 동생 몫으로 참꽃이랑 송기랑 꺾어 담아 집에 돌아가면 어머니가 끓여 주신 나물죽이 얼마나 맛이 있겠니? 그리고 너는 마루에 앉아 흐린(*)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다가 자리에 누워 또 내일을 기다려야지. 내일은 일요일 어머니랑 산에 가서 송기를 벗겨 떡을 해 먹자던 동생은 벌써 잠이 들었는데 동생과 나란히 누워 송기떡 먹는 꿈이라도 꾸어라. 순단아, 오늘은 기다리던 토요일 청소는 그만두고 어서 집에 가거라. 1958 (*) '희미한'을 '흐린'으로 고쳤습니다. 그 뒤에 '별들'이란 말이 있습니다. 사실 이오덕 선생님은 이런 자리에 쓰는 '별-들'에서 '- 들'은 군말이라서 빼야 한다는 말씀도 하셨기에, 빼야 옳으냐 그냥 두어야 옳으냐로 갈피를 잡기 어렵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그냥 두 기로 합니다. ↑위로가기 봄아 오너라 먼 남쪽 하늘 눈 덮인 산봉우리를 넘고 따스한 입김으로 내 이마에 불어오너라. 양지쪽 돌담 밑(*) 소꿉놀이하던 사금파리 밑에서 새파란 것들아, 돋아나거라. 발가벗은 도토리들 가랑잎 속에 묻힌 산기슭 가시덤불 밑에서 달래야, 새파란 달래야, 돋아나거라. 종달새야, 하늘 높이 솟아올라라. 잊었던 노래를 들려다오. 아른아른 흐르는 여울물 가에서 버들피리를 불게 해다오. 쑥을 캐게 해다오. 개나리꽃 물고 가는 노랑 벼아리 새로 받은 교과서의 아, 그 책 냄새 같은 봄아, 오너라. 봄아, 오너라. 1966 별들의 합창 中 (*) 1966년에는 '앞에'라고 쓰심 ↑위로가기 뻐꾸기 뻐꾸기 울어 쌓는 한낮이 되면 쑥 뜯는 칼자루에 손이 아프다. 찔레꽃 따먹자 누나야, 찔레꽃! 바람 부는 냇가에 바구닐랑 버려 두고 꽃잎을 따서 물면 달싹한 맛…… 돌아가신 어머니 멀리 떠난 동무 생각 ……(*) 꽃잎은 떨어져 물 위에 뜨고 뻐꾸기는 뻐꾸기는 저리 우는데, 재 너머 비탈밭엔 보리 이삭이 피는가?(**) 도라짓골 감자가 새끼손가락만큼 굵었는가? 찔레꽃은 따먹어도 배는 고프고 뻐꾸기는 어디서 자꾸 우네. 1966 별들의 합창 中 (*) 1966년에는 "돌아가신 어머니 / 멀리 떠난 동무 생각 ……" 연이 있으나 1981년 책에는 빠졌습니다. 짐작이지만, 1981년에는 그때가 때인지라 이 연이 빠질 수밖에 없다고 보고 되살려 놓았습니다. (**) 1966년에는 "보리 이삭 오늘은 다 피어나는가?"로 되어 있습니다. ↑위로가기 철이에게 철아, 우리들이 놓아 준 그 피라미와 모래무지 새끼들이 지금쯤 시원한 여울물을 꼬리치며 오르고 있을까? 물이 자꾸 새어나 쭈그러드는 비닐봉지 속(*) 고기들이 불쌍해서 "앵두 사 주께, 놓아 주자!" 했지만 모래밭에 앉아 먼 산기슭에서 산허리까지 누렇게 익은 보리밭을 바라보니 내 어릴 적(**) 보리 익을 무렵이면 담 모롱이에 새빨간 보석으로 알알이 익어가던 그 앵두 생각, 너만큼 한 내가 흙담에 기어올라 앵두를 따던 생각이 났단다. 그리고 그 앵두나무 밑에, 냇가에서 잡아 고무신짝에 담아 온 붕어 새끼를 깡통에 옮겨 넣고 앵두나무 잎을 따서 덮어 둔 일이 생각났단다. 그런데 철아, 남이랑 손 잡고 다리 건너 시장까지 앵두 사러 갔을 때 하필 그날에서 아무리 찾아도 애두 장수가 없었지? "에이, 참 재수 없다!" 너는 말했지만 그러나 철아, 우리 앵두 안 먹어도 유월 파란 하늘(***) 아래 앵두처럼 동글동글 예쁜 마음 붙잡힌 것, 갇혀 있는 것을 풀어 놓아 주는 마음 가슴속 고이 숨겨 두면 좋지. 앵두 먹은 것보다 더 좋지. 철아, 지금쯤 우리들이 놓아 준 그 피라미와 모래무지 새끼들이 시원한 감천 여울을 마구 헤엄치고 있을까? 1966 별들의 합창 中 (*) "비닐 봉지 속의 고기"로 되어 있습니다. 나중에 시를 고치실 때 토씨 '-의'가 없어도 될 자리에서는 빼셨습니다. 이 시는 고쳐 서 다시 내놓은 1981년 책에 빠져 있기에, 다른 작품에서 손본 잣대에 따라 고쳤습니다. 여기서도 그냥 "비닐봉지 속 고기"라 하는 편이 우리 말 바로쓰기에 알맞다고 보았습니다. (**) "내 어린 시절"로 되어 있으나, "내 어릴 적"으로 고치는 편이 알맞다고 봅니다. (***) "푸른 하늘"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오덕 선생님은 '파랗다-푸르다'를 사람들이 잘못 쓰고, 동시와 동화와 동요에서도 잘 못 쓴다며, 하늘은 '파란빛'이지 '푸른빛'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파란 하늘'로 고칩니다. ↑위로가기 용이, 너의 소매에서 용이, 너의 소매에서 찔레꽃 냄새가 난다. 너의 책보자기에서 감꽃 냄새가 난다. 바지가랭이에서도 무슨 풀 냄새, 꽃 냄새가 난다. 용이, 너의 두 손바닥은 오디 물이 들었구나. 입술 언저리에도 보랏빛이 들었구나. 귀에는 뻐꾹채꽃(*)이 꽂히고. 용이, 네 눈동자는 산 그림자 비친 파란 못물. 못물 속 팔딱팔딱 고기들이 뛰듯이 할딱거리며 금방 너는 고개를 넘어왔겠지. 용이, 재를 넘다가 네 조그만 가슴에 안고 온 것은 꾀꼬리의 고 차랑차랑한 목소리. 수다스런 멧새, 딱새들(**) 얘기. 그리고 용이, 너의 마음속에는 눈부신 노래. 오늘도 너의 키만큼 아무도 몰래 자라난 노래. 그것은 아침마다 마을 앞 숲길에 늘어선 그 훤칠한 포플러들을 하나, 둘 손꼽으며 걸어올 때 네 머리 위에서 푸른 수수만의 잎들이 하늘거리며 마구 하늘거리며 부르던 것. 파도 소리보다 더 찬란한 하늘과 바람과 초록빛(***) 잎새들의 합창. 1966 별들의 합창 中 (*) 1966년에는 '뻐꾸기꽃'으로 되어 있습니다. (**) 1966년에는 '딱새들의 얘기'로 되어 있는데, 토씨 '-의'는 안 써도 좋음을 깨닫고 빼신 듯합니다. (***) 이오덕 선생님은 우리 말 운동을 한참 하시던 2000년대 첫머리에 '녹색-초록' 모두 '풀빛'으로 고쳐 써야 한다는 글을 쓰셨습 니다. 선생님이 살아 계실 때 이 시를 다시 손보셨다면 '초록빛'이라는 낱말을 '풀빛'으로 고치셨을 겁니다. 그 위에 있는 '파도'도 '물결'로 고치셨을 거고요. ↑위로가기 하늘과 아이들 하늘은 운동장에 찍힌 무수한 발자국마다 고여 넘치고 새까만 그림자들과 함께 출렁거렸다. 미끄럼틀에 기어오르고, 그네 위에서 치마자락에 팔랑거리고, 줄넘기 줄에 감기고, 펑! 공과 함께 발길에 채이다 보면 더욱 새파래져 서, 교실에 들어간 하늘은 아이들 눈동자에 고이고, 넘기는 책장마다 쏟아지고, 가슴마다 넘쳐서 노래가 되고, 그림이 되다가 결국엔 창 밖으로 다시 튀어나와, 국기 게양대를 타고 올라가 미루나무 꼭대기나 철봉대 같은 데서 멀리 바라보면서 아이들이 다시 운동장으로 뛰어 나오기를 손짓하며 기다린다. 아이들은 하늘을 마시고 살아가는 물고기. 하늘은 아이들이 있어 즐거운 바다. 1978년, 월간문학,190쪽 꾀꼬리 꾀꼬리야! 군청 뜰 앞 버드나무 높은 가지 끝에 혼자(*) 앉아 아침 햇빛 받쳐 이고 울고 있는 금빛 새야, 어깨에 멘 통을 땅에 내려놓고 두 손 활짝 펴 들어 주마. 내려오너라, 두 손바닥 위에. 내(**) 어깨에 내려오너라. 네(***) 노래는 무지개처럼 곱고 네 노래는 바람처럼 맑고 네 노래는 햇빛처럼 눈부시다만, 지금 내 배는 강냉이죽으로 한결 시장하고 어깨는 구두닦이통으로 축 처지고 마음은 또 어둡다. 오너라, 내 곁으로 단 한 번이라도 너와 함께 하늘 같고 햇빛 같은 노래를 푸른 산 푸른 들이 쩌르릉하도록 불러 볼 수는 없느냐? 높은 나뭇가지 끝에서 혼자 노래하는 꾀꼬리야! 1981 (*) '올연(兀然)히'란 말은 "홀로 우뚝"을 뜻합니다. 시 뒤에 '혼자'란 말을 쓰셨기에 '혼자'로 고칩니다. (**) '나의'로 되어 있기에 '내'로 고칩니다. (***) '너의'로 되어 있기에 '네'로 고칩니다. ↑위로가기 누나야, 잘 있거라 저기 끝없이 뻗친 신작로를 따라 내일이면 우리는 떠나야 한다. 덜거덕거리는 달구지에 그릇이랑 궤짝이랑 싣고 우리는 도시로 찾아간다. 해마다 봄이면 누나와 쑥을 뜯던 냇가엔 양버들도 연두빛 잎이 나고 바로 며칠 전 땀 흘리며 김매던 보리밭 언덕 위에 종달이도 저렇게 울어 쌓는데, 그 보리가 누렇게 익을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이제는 남의 밭, 남의 땅을 떠나야 한다. 누나야! 누나야! 지난 봄 이맘때 한 달을 두고 사뭇 앓다가 쑥죽만 먹고 앓다가 잉크병에 꽂아 둔 진달래 꽃잎과 함께 져 버린 누나야! 누나의 얼굴처럼 노란 민들레꽃이 둘러 핀 여기 동그란 무덤 속에서 바람 소리만 듣고 있느냐? 나는 도시에 가서 낮이면 신문팔이, 밤이면 야학을 할 게다. 씩씩하게 살아갈 게다. 잘 있거라, 바람 속에 꽃잎 속에, 풀잎 속에 편히 쉬거라. 밤이면 반짝이는 별빛 속에서 쳐다보는 나를 눈짓해 다오. 눈부신 햇빛 속에 살아 다오, 누나야! 1981 ↑위로가기 교회당 뾰족탑 하늘을 찔러 가장 높이 솟은 우리 말을 제1교회 예배당 뾰족탑. 하느님, 조심하세요. 제발 여기는 내려오지 마세요. 1991.3.21 ↑위로가기 내가 행복을 느끼는 때 내가 행복을 느끼는 때는 오후의 햇빛이 창문으로 들어왔을 때다. 햇볕은 내가 앉아 있는 책상 위에 찾아와 아이들이 적어 놓은 글자 한 자 한 자를 환히 비쳐 보인다. 그러면 그 글자들은 모두 살아나 귀여운 병아리가 되고 팔딱팔딱 뛰어다니는 아기염소가 되고, 여울을 헤엄치는 피라미가 되고 별같이 반짝이는 눈망울이 된다. 오후의 해님이 비스듬히 기울어져 내가 보는 책장이 더욱 환하게 되면 아, 나는 이 세상에서 행복한 시간을 살고 있구나 싶어 눈물이 난다. 1991.3.21 ↑위로가기 지하도의 강아지 저녁마다 전철역 지하도를 지날라치면 귤상자에 담긴 강아지들을 보게 된다. 다섯 마리나 예닐곱 마리씩 그 강아지들은 상자 안에서 한데 뭉쳐 있었다. 아직 봄날의 저녁이 추워서 그러겠지. 서로 몸을 기대고 머리를 쑤셔 넣고 그 속에 못 들어간 놈은 덩어리진 그 위에 기어올라가 머리를 쑤셔 박고 그러다가 한 사람이 와서 그 무더기를 싹 헤치고는 이놈을 들어 보고 저놈을 걸려 보고 그리고 가 버리면 다시 또 저희끼리 한 무더기로 엉키어 서로 이불이 되고 요가 되고… 아, 너희들은 어디서 왔느냐? 어디서 났느냐? 오늘은 무엇을 먹었느냐? 어미도 잃고 집도 잃고 어디를 가려느냐? 어디를 가도 너희들을 자유로 놓아줄 사람은 이 땅에 없고, 너희들이 즐겁게 뛰어다닐 들판도 산도 없는데, 그래도 너희들은 그다지 조심이 없는 천진한 눈이구나. 그러나 이건 내가 그 강아지들 곁에 가서 물어 본 것이 아니고 지하도를 나와 계단을 오르면서, 버스를 기다리면서 생각한 것이다. 나는 거리를 지날 때마다 늘 그 강아지들 머리라도 한번 쓰다듬어 주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못하고 지난 것이다. 오늘은 꼭 그 강아지들을 한번 만져 봐야지.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손가락을 입에 갖다대면 내 손가락을 혀로 핥아 줄까? 나는 그 강아지를 사다 기를 수도 없고 그 귀여운 생명을 구할 수도 없지만 이 세상에서 숨쉬고 함께 살아 있는 목숨으로서 어느 한 순간 내 생명의 창을 그에게 열어주고 그 생명을 내가 받아들이는 것, 이것밖에 오직 이것밖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겠지. 저녁마다 전철역 지하도를 지나면서 또 어느 시장길을 지나면서, 나는 참 얼마나 많은 세월을 죽은 사람으로 걸어나뎠는가 생각해 본다. 1991.4.28. ↑위로가기 얘들아, 너희들의 노래를 불러라 얘들아, 너희들의 노래를 불러라! 나도 너희들의 노래를 부르며 살아왔단다. 그까짓 어른들의 노래, 알 수 없는 말 맛도 향기도 없고 신명도 안나는 소리 더러는 엉터리 거짓도 있고 고약한 냄새 풍기는 것도 많아 듣기에도 역겨워 귀를 막고 살았지. 그래서 아이들의 노래만 부르면서 살아왔단다. 내가 어렸을 때는 들과 산에서 뛰놀면서 일하면서 노래로 살았지. 봄이면 할미꽃, 진달래, 살구꽃 노래, 보리밭 종달새, 빨랫줄의 제비들도 함께 부르고, 여름이면 냇물에서 버들치와 피라미와 함께 부르고, 풀밭에서 송아지와 염소들과 뛰놀면서, 꼴을 베면서, 꼴망태 지고 오면서 개굴개굴 개구리 노래 부르고, 물새 소리, 바람 소리 따라 휘파람으로 부르고, 꾀꼬리 장난 소리, 뻐꾸기 흥겨운 장단, 산비둘기 구성진 노래 맞춰 부르고, 감자를 캐면서 감자 구워먹는 소리, 옥수수를 꺾으면서 고소한 옥수수 먹는 노래 부르고, 가을이면 가을 바람 시원해진 수수밭 조밭에서, 허수아비 서 있는 논에서 후여 후이 새 쫓는 노래, 산에 올라 머루 다래 따먹다가 해가 지면 새빨간 구름을 쳐다보며 노을 노래 부르고, 겨울이면 하늘에서 쏟아지는 떡가루 눈, 눈을 받으며, 쌓인 눈을 밟으며, 눈을 뭉치며 눈 노래 부르고, 얼음을 타면서 처마 끝 고드름 쳐다보면서도 부르고, 밤에는 호롱불 밑에서 옛이야기 듣다가 부엉이 부엉부엉 함께 부르고 이렇게 사시장춘 노래로 살았단다. 마을에는 가는 곳마다 아이들 소리 골목마다 아이들 노래. 그런데 지금은 아이들이 없구나. 노래 소리가 없구나. 아이들이 모두 어디로 갔지? 그렇지, 모두 모두 방 안에 갇혀 있구나. 방 안에서 노래도 없이 살아가는구나. 들풀의 향기 다 잃어버리고 방 안에 갇혀 몸도 마음도 그 무엇에 짓눌려 노래가 나오지도 않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귀다툼으로 살아가는구나 어제도 오늘도. 그래도 음악시간이 있다고? 그렇지, 음악책에 나오는 노래를 선생님 따라 부르지. 그러나 그 노래는 너희들 것이 아니지. 너희들의 몸에서 터져나온 노래가 아니지. 그래서 음악 시간에만 부르는 것으로 되어 있지. 너희들은 노래를 잃어버리고 노래를 빼앗겨 버리고 그래서 괴상한 어른들 노래를 부르기도 하면서 괴상한 어른들이 되어가고 있단다. 이 세상에 노래 없이 자라나는 아이들보다 가엾은 아이들이 있을까. 이 세상에 노래를 빼앗긴 아이들보다 불행한 아이들이 있을까. 그러나 여기 천만 다행히도 너희들의 노래가 나왔구나. 너희들의 노래가 터져나왔구나 살아 있는 싱싱한 너희들의 말, 온몸에서 터져나온 너희들의 시. ↑위로가기 밤을 까먹으면서 벌레 소리를 들으면서 햇밤을 까먹는다. 오늘 주워 온 풋밤은 아직 껍질이 채 밤빛으로 다 물들지 않아 한쪽에 엷은 연두 빛이 들어 있는 것도 있다. 가져오자마자 솥에다가 쪘더니 껍질도 연해서 잘 벗겨지고 보늬도 연분홍으로 아주 보드랍다. 밤알을 다 까니 샛노란 속살 향긋한 풋밤 향기 입에 넣으니 낭랑하게 씹히는 맛 달고소한 맛 한약냄새 같기도 한 맛 그 맛을 말로는 나타낼 수 없다. 그저 풋밤 맛이라고 할 밖에 이 밤맛은 어디서 어떻게 생겨났을까? 누가 이 밤맛을 만들었을까? 다람쥐가 겨우내 굴속에서 까먹으면서 하늘에 빌고 빌어서 요런 맛이 나왔을까? 온갖 벌레들이 여름부터 밤 낮 없이 울어 주어서 그 소리가 요런 맛으로 바뀌었을까? 온갖 새들의 노래가 이 밤맛으로 되었을까? 고 뻐꾸기란 놈이 밤꽃 피기 전부터 밤나무 근처에서 그렇게 울더니 그 뻐꾹 소리가 이 맛을 냈나? 산비둘기, 고 조그만 산비둘기가 새벽부터 그렇게 굶직한 목청으로 온 산을 울리더니 그 소리가 밤알 속에 꽉꽉 들어차서 이런 맛이 되었나? 고 꾀꾀리, 고놈이 또 온 산을 날아다니면서 새 잎이 눈부시게 될 무렵부터 금빛 목소리로 장난스럽게 울었샀더니 그 소리가 요런 맛으로 바뀌었을까? 풋밤을 까먹으면서 껍질을 벗기면서 생각하는 즐거움 보늬를 벗기면서 생각하는 즐거움 노란 속살 보면서 그것을 입에 넣어 씹고 또 씹으면서 생각하는 즐거움 깨닫는 기쁨 앞뜰에서는 벌레들이 저렇게 고운 목소리로 우는데 아, 나는 정말로 이 밤을 먹을 자격이 있는가? 이 깨끗한 산의 정기 하늘과 땅의 선물을 이렇게 공짜로 먹을 수는 없는데. 공짜로 먹어서는 안 되는데. 1981.10 ↑위로가기 산딸기 포장된 찻길 옆 밭둑에 산딸기가 지천으로 익어 불같이 새빨갛다. 그 딸기를 따먹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내 어릴 적 모심기며 보리베기 다 해 놓으면 산딸기 따러 도시락 다래끼 메고 10리 길 높은 재를 땀을 흘리며 올라갔던 유월이 생각난다. 요즘 사람들은 왜 산딸기를 안 먹나? 아이들이고 어른들이고 두 발로 걸어다니는 사람을 보기 힘들다. 학교 갈 때나 무슨 학원 갈 때 아이들은 차를 타고 다닌다. 그러나 걸어간다고 하더라도 이런 산딸기를 옛날 사람들, 배고프고 돈 없고 무지몽매했던 시대 사람들이나 짐승들같이 먹는 것인 줄 안다. 어른들도 논밭에 갈 때는 경운기나 트럭을 타고 간다. 호미나 괭이 들고 들로 가는 사람 정말 보기 어렵다. 어쩌다가 있어도 이제는 딸기 같은 것 안 먹는다. 돈 몇 푼 주면 길가에서 얼마든지 사먹을 수 있는 콜라와 목구멍을 시원하게 적셔 주는 온갖 달콤한 음료수 그런 것 먹어야 이런 시골에 사는 보람을 느낀다. 그러니까 하지가 지난 지 벌써 한 주일이 되어 이제는 딸기가 익을 대로 익어 꼭지채 떨어질 판이 되어도 찾아오는 사람 하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하루 한 번씩 지팡이 짚고 그 길을 지나면서 딸기 따먹는 것이 일이다. 딸기 따먹는 것이 낙이다. 천지 간에 이런 은혜 또 어디 있는가? 내가 딸기를 따먹으려고 밭둑에 가면 새빨간 딸기들은 얼굴을 쳐들고 어서 오셔요, 부디 나를 따 잡수셔요 하고 서서 소리치고 다툰다. 그러면 나는 그 중 가장 탐스럽고 고운 것만 골라 따먹는다. 그렇게 따먹어도 다 따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딸기를 따먹으면 뻐꾸기들도 반갑다고 여기저기서 뻐꾹뻐꾹 울어 주고 산비둘기도 꾸구욱 꾸구욱 제법 멋을 부려가며 울어 주고 꾀꼬리도 저쪽 참나무숲에서 나를 제 동무로 알고 '니하래비꼬끼달래 용' 하고 장난스런 목소리를 보낸다. 오냐, 오냐, 너희들 참 반갑구나. 이 맛있는 딸기를 나 혼자 먹어서 미안하구나. 이 딸기 속에는 뻐꾸기 뻐꾹뻐꾹 소리도 들어 있고 비둘기 꾸구욱 꾸구욱 소리도 들어 있고 꾀꼬리 고 차랑차랑 맑은 목소리도 들어 있고, 보리매미 소리도 솔바람 소리도 다 들어 있고 산나리꽃 향기도 들어 있고 하여튼 이 산천의 온갖 풀과 나무와 새들의 소리와 향기 바위와 물과 흙의 기운 그것이 다 들어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지. 그 산천과 초목의 불같은 기를 내가 이렇게 따먹는데 꿀떡꿀떡 삼키는데 내가 어찌 기쁘지 않겠나. 나는 이렇게 딸기를 따먹고 날마다 산천의 모든 기를 먹고 나도 산이 되고 싶다. 나무가 되고 풀이 되고 새가 되고 매미가 되고 잎이 되고 열매가 되고 노을이 되고 무지개가 되고 흙이 되고 돌이 되고 싶다. 정말로 정말로 너희들과 같이 되고 싶다. 2001.6.28 ↑위로가기 홍시 아침에 감나무 밑에 가서 바알간 홍시 하나 단풍잎으로 받쳐 먹고 쪽빛 하늘 쳐다보니 아, 우리 하느님 하느님도 내 머리 위에서 홍시 먹고 짹짹짹짹 좋아라 날아다니고 있었네. 꿈에도 잊지 못할 금수강산 나의 조국 그 하늘에! 2001.10.22.밤중에 ↑위로가기 플라스틱 통 엄마, 엄마 이거 이 통에 큰일났어요. 이봐요, 귀뚜라미가 빠져 죽었네요. 거미도 죽었네요. 귀뚜라미는 두 마리 거미 한 마리 언제 이렇게 빠졌을까요? 이 통지옥에서 헤어나오려고 얼마나 애썼을까요? 올라오다가 미끌어지고 발 붙일 틈 하나 점 하나 없는 미끌미끌한 천지 사방 아, 이 괴상한 지옥엔 타는 목을 추길 물 한 방울도 없어 온종일을 빙빙 기다가 밤새도록 미끌어지고 기어오르다가 또 미끌어지고 그러다가 그만 기진맥진 쓰러졌구나. 불쌍한 것들! 엄마, 엄마 이 귀뚜라미한테 잘못했다고 사과해요. 그리고 이 통을 요렇게 엎어 놓아요. 다시는 빠져 죽는 것들이 없게. 그리고 이 귀뚜라미와 거미를 담 밑에 묻어 주러 가요. 담 밑에 묻어 주고 기도해요. 내년 봄 노오란 민들레 꽃으로 다시 살아나라고, 파아랗게 냉이가 되어 피어나라고. 2001.11.1 ↑위로가기 배추 이야기 1 한 손님이 들어와서 말했다. "보리밥 두 그릇 주세요." 그 손님은 보리밥 두 그릇을 다 먹고 말했다. "돈 대신에 배추를 드리면 안 될까요?" "돈이 없습니까? 우린 배추가 많이 있어요." "돈이 없는 건 아닌데 배추를 못 팔아서요." "그러면 그렇게 하세요. 밥값만큼 내려놓고 가세요." 밖에 나간 그 손님 트럭에 한가득 실린 배추를 가리키며 "그만 이 배추 다 드리죠. 모두 내려놓겠습니다." "아이구 안 돼요. 밥값만큼만 주세요." 이래서 보리밥 두 그릇 값으로 배추 200포기를 받았다. 정우가 이 얘기를 하고 나서 계산했다. 보리밥 한 그릇은 4천 원, 두 그릇이면 8천 원. 8천 원을 20으로 나누면 2*2는 4라, "한 포기 40원 맞네요. 요새 배추 한 포기가 40원, 40원이라도 사 주는 사람이 없어 그냥 버려요." 2001.11.9 ↑위로가기 배추 이야기 2 저녁을 먹으면서 정우가 또 배추 이야기를 했다. "오늘 고든박을 올라가는데 배추밭에서 배추 뽑던 마을사람이 불러요. 가 보니까 엄청나게 큰 배추를 경운기에 실으면서 '이 배추 좀 가져가요.' 해요. '우린 오늘 김장하는 걸요? 필요 없어요.' '왜 우리 배추 사 가지 않았어요?' '뭐, 공짜로 집에 갖다주는 사람까지 있는데 밭의 배추 돈 주고 누가 사가요?' '그럼 이거 한 포기라도 가져가요.' 그 배추 한 포기가 얼마나 크고 무거운지 안고 오는데 그 사람 뒤에서 또 하는 말이 이러잖아요. '뭘 하면 돈 벌 수 있을까요.' 그 사람 몇 해 전에도 배추를 그렇게 많이 심어서 값이 폭락이 됐을 때 제가 몇백 미터나 되는 찻길에다가 '배추 한 포기 150원'이라고 걸개막을 수없이 내걸었어요. 그래서 하룻만에 다 팔아 주었더니 광고한 걸개막 값도 안 줘요. 이제 그런 사람 절대로 생각해 주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어요." 내가 말했다. "'어떻게 하면 살 수 있을까요.'가 아니고 '뭘 하면 돈 벌까요'라니, 그런 사람들 자꾸 더 망해야 된다. 그렇잖으면 온 나라 온 땅이 다 망한다." 2001.11.9 ↑위로가기 무우 이야기 1 이웃마을에 무우 300평 심은 사람 있어 항아리만큼 굵은 무우를 누구든지 공짜로 뽑아가라고 이 마을까지 전달이 왔는데 이틀 뒤 겨우 한 집에서 경운기로 한 차 뽑아가고는 다시는 아무도 가져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럴 것이다. 집마다 먹을 만큼 다 심었는데 그걸 가져가 어찌하겠는가. 모두 서로 아는 처지에 공짜로 준다지만 그냥 가져올 수도 없을 테지. 오늘 밤으 얼음이 언다는데 그 무우 다 얼어 버리겠다. 그 농사꾼 마음 다 얼어 버리겠다. 2001.11.14 ↑위로가기 무우 이야기 2 여기서 30리 되는 곳 무극에서 비닐하우스 10동이나 무우 농사를 한 사람이 있어 정우한테 무우 좀 가져가라고 알려왔다. 아는 처지에 그냥 있을 수 없어 한 동 10만 원 주고 사서 며칠 뒤 한 차를 뽑아 와서 길가에 두고 누구든지 가져가라고 해서 다 나눠주고 또 한 차를 싣고 와서 그렇게 하고 모두 열 몇 차를 싣고 왔는데 아직 많이 남아 있다고 한다. 그걸 정우가 계산해 보더니 무우 한 개에 60원쯤 치인다고 했다. 그 항아리 만큼한 무우 1개가 60원이란 것은 그렇게 그 농사꾼을 생각해서 값을 쳐준 것이다. 공짜로 가져가라고 해도 가져가는 사람이 없으니 무우값은 1원도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이 모두 누구 탓인가? 누가 잘못한 것인가? 하늘이 잘못한 것인가? 땅이 잘못한 것인가? 아니다. 결코 아니다. 하늘이 잘못한 것 아니다. 땅이 잘못한 것 아니다. 잘못한 것은 바로 사람이다. 바로 그 농사꾼이다. 2001.11.14 ↑위로가기 자리를 치는 전형 전형은 오늘 밤에도 자리를 친다. 자리를 치면서 글쓰는 사람을 욕한다. "연암이 쓴 글에 글자가 나와서 사람이 모두 병들었다는 말이 있는데 글을 쓰지 말아야 해. 쓰지도 말고 읽지도 말고 책은 다 불살라 없애야 해. 내가 권 선생한테 이 목사 제발 글 그만 쓰라 하라고 말했어. 빈 라덴이나 부시나 똑같다고 하는 이 목사는 노자 흉내를 내는 거야." 내가 전형보고 "그런 생각 제발 글로 써서 좀 알려 봐." 했더니 "난 자리치는 게 좋아. 글 쓰는 사람 한 사람도 바르게 사는 사람 없더라니." 전형 말도 옳고 이 목사 말도 옳고 두 분이 다 편하게 살아가는구나 싶다. 2001.11.25 ('전형'이란 '전우익 님'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위로가기 내 어릴 적 동무들 내 어릴 적 동무들 모두가 먼저 가 버렸네. 눈감으면 그 얼굴 어째서 이렇게도 또렷할까. 그 목소리 이렇게도 다시 살아날까. 우리 앞집 수찬이는 보통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병들어 죽었다. 우리는 수찬이 집 장판 방바닥에 엎드려 신문지를 펴 놓고 (그 신문지는 우체국에 다니는 수찬이 자형한테서 얻어온 것이었다.) 먹을 갈아 붓글씨 쓰는 흉내를 내었다. 수찬이 집 옆 재수는 언제 어디서 죽었을까. 큰물지면 그 시뻘건 흙탕물 찢어진 고무신으로 떠서 구멍난 곳으로 마시고는 동무들을 웃기던 그 재수. 보통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무슨 병으로 죽은 홍배. 아버지가 선생님이어서 공부도 잘하고 대구에 가서 무슨 중학교를 다니던 태동이는 무슨 일로 그만 미쳐서 죽었다. 천한 집에 태어났다고 지원병으로 끌려간 수천이는 해방이 되어도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모두가 착하기만 하던 동무들 그리운 그리운 동무들이었는데, 이제 그 동무들 다시 만나게 될까. 될 것이다. 이토록 내 마음에 깊이 새겨져 있는 그 동무들 어찌 영영 인연이 끊어지겠는가. 그 동무들은 반드시 나를 기다릴 것이다. 내가 이승에서 살아온 동안 언제나 나를 도와 주려고 하면서 기다렸을 것이다. 빛과 노래 가득한 그곳에서. 2003.8.18.아침 ↑위로가기 노아의 방주 지구는 암흑이다. 그 착한 사람들 순한 산짐승처럼, 처럼 살던 사람들 모두 다 죽고 외롭게 살다가 죽고 학살당하고 모조리 돈에 환장이 되어 다만 죽음의 길로만 달려가고 있다. 미친 사람들이 달려가고 있는 앞에는 천 길 낭떠러지. 정우야 너는 알겠지, 하늘과 땅이 없어진 것을. 현우야, 연우야, 너희들은 모를 것이다. 그게 걱정이다. 몇 해 전 과천 우리 밀 국숫집 앞에서 우연히 만났던 모촌 선생, 눈이 어두워 길에서 사람을 못 알아본다던 선생을 내가 먼저 손잡으니 그렇게도 반가워하면서 하시던 말 "이제 앞날에 아무것도 바라볼 것 없어요. 멀지 않아 끔찍한 마지막이 올 겁니다. 지금 우리 요만큼 살고 죽는 것이 가장 좋아요" 정우야, 김매고 보리밥에 풋고추 된장에 찍어 먹는 너는 알겠지. 하늘과 땅이 없어진 것을 무지개와 노을이 사라지고 빛과 물이 없어져 간다는 것을. 그러나 현우야 연우야 너희들이 걱정이구나. 그래서 정우야 부탁한다. 앞으로 다가올 끔찍한 재난을 조금이라도 피하기 위해 노아의 방주를 만들어라. 미쳐서 무섭게 날뛰는 사람의 거리를 멀리 떠나 아무도 살지 않는 깊은 산골에서 감자와 고구마, 옥수수, 산나물 산딸기 따먹으며 살아라. 현우야, 연우야, 너희들은 그런 생각 없느냐. 2004.8.20.새벽 ↑위로가기 |
첫댓글 고맙습니다.^^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