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 샤넬 (1883~1971)
파리 리츠 호텔에서 누군가가 쓸쓸하게 죽었다. 한 시대를 풍미한 블랙 스타일의 창시자 코코 샤넬이다.
밤에는 샤넬 넘버 5을 입고 잔다는, 마르린 몬로의 말로 유명해진 그 향수를 만든 장본인이다.
식사는 뭘 드세요? "아침에는 제스민꽃을 먹고 저녁에는 장미꽃을 먹어요."라고 대답하는 매력적인 여인이었다.
그녀는 12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장똘베기인 아버지에게 버림을 받고, 언니와 함께 고아원에서 자랐다.
고아원이란 폐쇄된 공간에, 잘 적응하지 못해서, 성격이 비뚤어진 반항아가 되었다.
청소와 바느질보다는 춤과 노래를 좋아한 그녀는, 군인들이 드나드는 싸구려 바에서 가수 겸 댄서로 일했다.
이곳에서 즐겨 부르던 노래 ‘코코’에서 이름을 따서 ‘코코 샤넬’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원래 이름은 가브리엘 샤넬이었는데, 어두웠던 과거를 상기시키는 가브리엘은 버리고, 새롭게 비상하기 위해 새로운 이름을 지은 것이다.
평생 따라다니던 후회
첫사랑인 남자는 아침 물안개처럼 떠나버리자, 샤넬에게 찾아온 시련은, 사랑하는 아들의 폐렴이었다.
몽마르뜨 뒷골목 어느 양장점에서 알바이트를 하던 때였다.
병원에 입원시킬 돈이 없어, 인적이 드문 파리의 밤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내를 붙잡고 '나를 사세요!.'
자신을 팔아서 아기는 살렸지만, 단 한 번 몸을 팔았던 일로 평생 괴로워했다. 그래서 잊을 수 없는 수치를 가슴에 안고, 기어이 성공하리라! 맹세했다.
샤넬은 분노의 에너지를 꿈으로 바꾸어, 패션에 매진한 결과, 세계 톱클래스의 디자이너가 되었다.
블랙 드레스
검정색은 죽음과 슬픔, 불행을 나타내는 우울한 색이다.
상복이라면 모를까? 당시 검은 천으로 옷을 만든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샤넬은 미적 감각이 뛰어나. 벌써 20대에 검정색으로 패션에 아름다움을 입혔다.
천박한 검정색을 가치 있는 검은색으로 바꾼 신선한 시도였다.
샤넬은 기존 관념을 과감하게 타파하고, 검정색으로 실용성과 활동성을 의복에 도입하여, 생명을 불어넣은 것이다
샤넬의 검은 옷은 군계일학이었다.
무더운 날씨는 여성들에게 노출을 강요한다. 그래서 밤의 연회는 모두가 흰색 드레스였다.
와! 샤넬은 검은 비로드 드레스 차림으로 연회장에 나타났다.
패션잡지 보그는 샤넬의 블랙 드레스를, 포드 자동차의 탄생과 비견한 충격이라고 극찬했다.
일화
한여름이었다. 아랑 드롱이 ‘태양은 가득히’라는 영화 시사회 참석차 일본에 왔다.
무슨 옷을 입고 비행기에서 내릴까? 초미의 관심사였다.
당시에는 하얀 중절모와 흰색 정장에 백구두가 대세였다.
그런데 검은 티 차림이었다.
명품 브랜드의 대명사는 샤넬이다.
유명 백화점의 가장 좋은 코너는 샤넬 매장이 자리 잡고 있다.
향수 의류 구두 핸드백 등 유명 상품에는, 샤넬 상표가 붙어 있다.
샤넬의 1 년 매출은 112억 달러, 순이익만 30억 달러. (15년 전 통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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