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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 5일(화)
* 시작 기도
주님...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마른 땅을 밟았던 이스라엘처럼 오늘 예수에 속하여 죄의 홍수를 지나 영원한 나라를 사는 주의 자녀들이 여기 있습니다.
하오나 여전히 내 뜻과 내 생각대로 살려는 의지가 강합니다.
나를 쳐서 주님의 손아귀에 장악되게 하옵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나의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게 하옵소서.
요동하는 바다가 솟구쳐내는 진흙과 더러운 것 같은 내 안의 정욕을 제하여 주사 말갛게 씻어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히 3:12-19
제목 :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 주의 말씀이 나를 강권하신다.
12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14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할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15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격노하시게 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으니
16 듣고 격노하시게 하던 자가 누구냐? 모세를 따라 애굽에서 나온 모든 사람이 아니냐?
17 또 하나님이 40년 동안 누구에게 노하셨느냐? 그들의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범죄한 자들에게가 아니냐?
18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가 아니냐?
19 이로 보건대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 나의 묵상
우리의 사도요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여 그를 육신적이고 인간적인 차원에서만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바꾸라고 명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므로 집주인으로서 본질을 담당하셨다.
본질이란 다름 아니라 복음의 본질로서 그 자신이 복음의 본질이 되셨고 그 복음은 곧 십자가에 죽으심과 무덤에 장사되심 그리고 아버지의 영광 가운데서 부활하심이 그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형제요 한 가족이라고 하면 자신을 잘 돌아보아 복음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지 살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복음에 합당한 열매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악한 마음이란 남을 때리고 욕하고 죽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지 않는 그 불신앙을 말한다.
따라서 오늘 하루 영적 하루살이가 되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사는 것이 진정한 믿음이요 복음에 합당한 삶인 것이다.
이 믿음이 변치 말아야 할 것은 내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란 다름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그 길을 따라 함께 걸어가는 자요 그것이 믿는 자임을 본문은 강조한다(14절).
주의 음성을 듣는 자는 그 마음을 완고하게 하여 하나님의 분노를 사지 말 것이다.
주의 복음을 들었음에도 믿지 않고 자기 생각과 뜻대로 행하던 이들은 모세를 따라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었다.
게다가 이들은 40년 동안 광야에서 범죄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다 엎드러져 죽고 말았다.
하나님께서는 들었음에도 믿지 않고 주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던 자들로 하여금 주의 안식 곧 그 나라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셨다.
이는 한 마디로 믿지 않았기 때문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다.
오늘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너도 나도 그리스도인으로 자처하며 교회에 드나든다.
그리스도인은 곧 그리스도를 따라 사는 자들이요 주님을 닮아가는 이들이다.
내가 입으로만 믿는다고 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그 안에 아들의 생명이 있어 그 생명으로 사는 자를 말한다.
아들의 생명이란 곧 영원한 생명인데 이는 처음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은 모태로부터 태어날 때 예외 없이 아담의 생명으로 태어난다.
아담의 생명은 그 자체로 죽은 생명이다.
따라서 아담 안에 있는 생명은 죽음의 길을 가는 것이며 결국 죽음으로 귀결되지만 아들의 생명 곧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얻는 생명은 삶 곧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
(고전 15: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영생)을 얻으리라.
잠시는 생명을 얻은 자처럼 살 수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선한 일을 하고 남을 도와주며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그런 삶, 말이다.
그러나 속사람인 생명이 바뀌지 않으면서 겉껍데기만 바뀐다고 그것이 거듭남이 아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불꽃같은 눈으로 지켜보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눈은 결코 속일 수 없다.
오늘 하루 또 오늘 하루 곧 매일 매일을 주의 생명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서로 권면하여 죄의 유혹으로 넘어지지 않도록 할 것이다.
그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삶의 모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생명이 어떤 생명인지를 말하는 것이다.
(13절)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서로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아담의 생명을 가진 자는 아담처럼 살게 되어 있고 아들의 생명을 가진 자는 아들처럼 살게 되어 있다.
좋은 나무인지 나쁜 나무인지는 그 열매를 보면 알 수 있다.
(마 7:15-20)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현재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적으로 복음이 왜곡되어 전해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온전한 복음 곧 참된 복음이 아니라 거짓 복음이 진짜처럼 전해지는데 마치 요원의 불길과 같이 번져나간다.
왜냐하면 그것이 듣기에 좋고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들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창세전 언약을 선포하셨다.
(딛 1:2)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이 영생이란 아들의 생명을 가지는 것이다.
이 영생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이미 창세전에 아들을 보내시기로 약속하셨다.
(벧전 1:20)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벧전 1:20 쉬운 성경) 이것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세상이 시작되기 전부터 그리스도를 택하시고, 이 마지막 때에 여러분을 구원하시고자 보내 주셨습니다.
첫 사람 아담이라도 아들의 생명을 받아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아담은 아들이신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 이미 에덴에서 범죄하고 말았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명하신 계명을 어기면 반드시 죽는다고 하셨다.
(창 2:16-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여기서 죽는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는 것이며 하나님과의 연합에서 분리되는 것을 의미한다.
아담은 하나님의 아들은 아니지만 마치 아들과 같이 하나님의 품속에서 늘 연합하여 살았다.
그 결과 아담과 그의 아내는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하나님의 계명에 불순종하여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먹고 난 뒤에 벗은 것을 알고 부끄러워서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가렸다.
이것이 죄인 된 자의 실상이다.
따라서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이들은 이런 아담의 생명으로 태어나 아담의 인생을 살아간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런 아담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그에게 복음을 주셨다.
(창 3:15, 21)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이 복음으로 그들은 다시 회복될 수 있었다.
복음은 여자의 후손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시다.
이는 존재적인 복음으로써 예수 그리스도 존재 자체가 복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가죽옷으로 예표되는 복음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건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짐승을 잡아 피를 흘리고 그 짐승의 가죽을 벗겨 그들에게 입히실 때 이미 입고 있던 무화과 옷을 벗겨내시고 입혀주셨다.
이것이 바로 그의 생명이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모두 이 가죽옷을 입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이미 입고 있는 무화과 옷을 벗어야만 한다.
더럽고 추하며 악한 죄의 옷 위에 그리스도의 옷인 가죽옷을 입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갈라디아서는 이렇게 말한다.
(갈 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가죽옷이요 보혈의 옷인 그리스도의 옷을 입기 위해서 세례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 세례는 단순한 물세례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속 사건에 내가 참여하는 것이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되셨던 주님께서 아버지의 영광 가운데서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 또한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고 주님과 함께 무덤에 장사될 때 비로소 아들의 생명으로 태어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롬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매일 새벽 말씀 앞에 나아가는 것 자체가 고난이요 무덤이다.
이 자리가 무덤의 자리이지만 이 무덤에서 아들의 생명으로 주님과 교제하는 것이 새 생명을 얻는 길이다.
왜냐하면 거듭남 곧 위로부터 아들의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은 말씀과 성령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요 3:3,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벧전 1:23-25)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것으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하나님의 나라요 카이로스의 시간은 다름 아니라 나의 무덤이다.
또한 이 무덤은 나만의 무덤이 아니라 주님의 무덤과 연합되는 자리 곧 말씀의 자리이다.
말씀 앞에 서면 나의 실존은 고스란히 다 드러난다.
나의 비참함과 비천함 그리고 죄 된 모습이 가감 없이 드러나고 만다.
그런 나는 죽기에만 합당하다.
그러나 그런 나를 용납하신 주님을 복음으로 나도 받아들인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으로 주님과 연합한다.
이 자리는 비록 무덤이지만 생명으로 나아가는 산실이다.
사람들은 고난의 자리인 무덤을 싫어한다.
그러나 무덤이 없이는 생명을 얻을 수가 없다.
무덤은 생명을 얻는 실재이다.
많은 이들이 십자가복음과 부활복음을 이야기 한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무덤이 없이 부활로 건너뛰면 그것은 상징만 남을 뿐이다.
그림자는 빛이 비치면 사라진다.
그것은 곧 실재가 아니라는 말이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의 실재를 주기 원하신다.
그 나라는 내 안에 있고 우리 가운데 있다.
그 나라는 이런 고난의 무덤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생명이며 영원한 생명이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 무덤에서 부활하셨다.
주님과 같이 우리도 부활의 새 생명을 얻어야 한다.
주님께서 재림하셔서 완전한 부활의 생명을 얻기까지는 이 땅에서 날마다 그 부활을 경험해야 한다.
그렇다면 죽지 않고는 부활할 수 없듯이 우리는 날마다 무덤에 들어가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다시 사는 생명을 얻어야 하는 것이다.
그 생명을 날마다 얻기 위하여 나는 결코 타협할 수 없는 것이 바로 말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내게 있어서 이 자리가 곧 영원에 잇대어 있는 하나님의 나라요 영원한 생명을 얻는 자리이며 하나님과 연합하는 카이로스의 시간이다.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 주의 말씀이 나를 강권하신다.
오직 죄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고 확신한 것을 끝까지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아버지의 나라에 참여한 자가 된다는 것을 말이다.
영원한 생명이 나의 것이다.
관념적이고 지식적인 믿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말씀으로부터 시작되는 참된 믿음을 오늘 나에게 주신 주님께 찬양과 영광을 올려 드린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고난과 무덤을 싫어하던 자가 여기 있나이다.
이런 자가 어디 나 뿐이겠습니까 마는 그 중심에 내가 서 있었음은 결코 부인할 수 없나이다.
내가 바로 죄인이며 죄인 중에 괴수였나이다.
이런 나에게 하나님의 말씀 곧 복음을 주셔서 오늘도 복음으로 주님과 연합할 수 있게 하심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내게 주신 아들의 생명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나를 더욱 말씀으로 강권하소서.
그리하여 오늘 하루 아들의 생명으로 영생을 누리는 자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