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개입과 리더십
판관 13,2-7.24-25; 루카 1,5-25 / 대림 제3주간 화요일; 2024. 12.19.
하느님께서는 성령으로 구세주를 세상에 보내시기 전에 자신들의 힘으로는 출산하기 어려운 부부에게 개입하셨습니다. 독서에 나오는 삼손과 복음에 나오는 요한이 그 인물입니다. 판관 시대에 간헐적으로 하느님의 영을 받은 인물들이 나타나서 이스라엘 백성을 지도했지만, 이 백성이 하느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지르면 판관 없이 지내는 기간도 있었습니다. 오늘 독서로 들으신 판관기에 의하면 악행을 저지른 이스라엘 백성을 하느님께서 필리스티아인들에게 넘겨 버리신 마흔 해 동안 이스라엘에는 판관이 없었는데, 단 지파에 속하는 마노아의 아내에게 주님의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임신할 수 없는 몸이어서 자식을 낳지 못하던 그 여자에게 천사는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태어난 이가 삼손입니다. 장성한 그는 이십 년 동안 이스라엘의 판관으로서 사자도 제압하는 강한 힘으로 필리스티아인들을 대적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했습니다.
오늘 복음이 전하는 또 다른 인물은 요한입니다. 레위 지파에 속하는 아론의 자손이었던 엘리사벳은 역시 레위 지파 소속으로서 사제였던 즈카르야와 함께 하느님 앞에서 의롭게 살아왔지만 엘리사벳이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였습니다. 하지만 오랜 동안 아이를 가지고 싶어 청원하던 차에 즈카르야가 당번 차례가 되어 성전에서 제사를 지내는데 분향 제단에서 나타난 주님의 천사를 만났습니다. 천사는 이 부부의 청원에 따라 아들을 낳게 되리라고 알려주었습니다. 태어날 그 아기는 장차 큰 인물이 될 것이며, 삼손처럼 포도주도 독주도 마시지 않고 태중에서부터 성령으로 가득 찬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임을 알려주었습니다. 하지만 즈카르야는 믿지 못했습니다. 자신도 아내도 나이가 많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천사는 믿지 못하는 즈카르야에게 아기가 태어날 때까지 말을 못하는 벌을 주었습니다. 이는 인류 역사에 개입하시는 구원의지가 그만큼 절박하고 또 강력함을 반증합니다.
엘리사벳이 아기를 잉태한 후 여섯 달이 되었을 때,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를 찾아가서 구세주를 잉태하리라는 놀라운 소식을 전하면서, 쉽사리 믿지 못하는 마리아에게 엘리사벳이 그 늙은 나이에도 아기를 가진 지 벌써 여섯 달이나 되었음을 알려주었습니다. 이 소식은 아직 처녀였던 마리아가 천사의 전갈을 받아들이게 하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엘리사벳을 찾아가 석달 가량 함께 지내며 대화도 하고 시중도 들어주었습니다. 나이가 들었다 해도 남편이 있는 엘리사벳과 달리 마리아는 약혼만 했을 뿐 그 당시까지 처녀였기 때문에, 그 놀라운 소식을 듣고 마땅히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부모님이라해도 처녀가 아이를 임신한 일을 이해해주기는 어려웠을 것이고 약혼자였던 요셉으로서는 더더욱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런 고립무원의 처지에서 마리아의 대화 상대는 늙은 나이에 임신을 한 엘리사벳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삼손과 요한의 탄생을 통해서는 임신하기 어려운 늙은 나이의 임신으로 개입하셨지만 이러한 단계를 거친 다음에는 성령으로 인한 동정녀 잉태라는 사건으로 개입하셨습니다. 그래서 비약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의 역사에 개입하시는 방식은 이렇듯 단계적이면서도 필요한 경우에는 비약적으로 이루어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삶에 개입하시는 경우에도 이러한 단계와 비약이 작용합니다. 어렴풋이 그분의 부르심을 알아가는 과정은 단계적으로 차근차근 이루어지지만, 막상 응답을 해야 하는 막바지 상황에서는 비약적인 개입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살아가는 봉헌의 삶에 있어서도 이러한 단계적 준비와 비약적 실현 양식은 유효합니다. 종종 인간의 상식적 차원을 넘어서서 일어나는 하느님의 개입을 알아보는 눈은 오직 믿음 하나뿐입니다. 우리가 보내고 있는 이 대림시기는 이러한 하느님의 개입을 상기시켜주는 은총의 때입니다.
인간 사회가 하느님의 계획대로 진보하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섭리를 알아듣고 믿을 뿐만 아니라 이를 실천하고자 앞장서는 지도자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지도자를 몸소 보내심으로써 인류 역사에 개입하시고 이끄십니다. 바로 오늘 독서와 복음의 공통 주제가 이것입니다. 그리고 현대 사회에 들어와서 이러한 지도자는 삼손과 요한 같은 특출한 개별 영웅이 아니라 교회적인 공동체임을 공의회 교부들은 식별해 낸 바 있습니다. 이 공동체가 발휘하는 지도력, 즉 리더십은 믿음을 바탕으로 사회적인 공동선에 헌신하는 행동에서 나옵니다.
사회 공동선이란 하느님의 창조의지와 구원경륜을 반영하는 최고선의 가치, 즉 자유와 평등, 정의와 평화에 따라서 인간 사회에서 실현되어야 할 가치를 일컫습니다. 공의회에서는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날로 더욱 긴밀해지고 점차 전세계로 확산되는 상호 의존성에서, 공동선은 ─곧 집단이든 구성원 개인이든 자기 완성을 더욱 충만하고 더욱 용이하게 추구하도록 하는 사회 생활 조건의 총화는 ─ 오늘날 더욱더 전세계적인 것이 되고 거기에 온 인류와 관련되는 권리와 의무를 내포하게 되었다. 어떠한 집단이든 다른 집단의 요구와 정당한 열망, 더욱이 온 인류 가 족의 공동선을 고려하여야 한다. 또한 동시에 인간이 지닌 고귀한 존엄성에 대한 의식이 커지고 있다. 인간은 만물에 앞서고 또 인간의 권리와 의무는 그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보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참으로 인간다운 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에 다가설 수 있어야 한다. 곧 의식주, 생활 신분의 자유로운 선택, 가정 형성, 교육, 노동, 명예, 존경, 적절한 정보, 자기 양심의 바른 규범에 따른 행동, 사생활 보호의 권리 그리고 종교 문제에서도 정당한 자유를 누릴 권 리가 인간에게 주어져야 한다”(사목헌장 26항).
이러한 가르침은 이스라엘 백성이 역사상 처음으로 하느님의 개입을 체험한 이집트 탈출 사건 이래로 예수님께서 메시아로서 인류 구원과 해방을 위하여 지향해 오신 바를 현대인의 용어로 풀이해 놓은 것입니다. 이를 파스카 과업 또는 ‘엑소더스 파라다임(Exodus Paradigm)’이라고도 부릅니다. 이는 공의회의 가르침에서 표현한 대로, 사회의 인간화와 복음화를 종합한 개념이며, 더욱 세분하면, 산업화와 민주화 그리고 복음화의 단계를 일컫습니다.
공의회의 교부듫은 사회적 공동선에 헌신하는 교회적 공동체가 어떻게 출현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렇게 가르친 바 있습니다. 이른바 평신도 사도직입니다.
“평신도는 현세 질서의 개선을 고유 임무로 받아들이고, 그 질서 안에서 복음의 빛과 교회 정신의 인도를 받아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며 확고하게 바로 행동하여야 한다. 평신도는 시민으로서 전문 지식과 고유한 책임감을 지니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협력하며 어디서나 모든 일에서 하느님 나라의 정의를 찾아야 한다. 현세 질서는 그 고유 법칙을 그대로 간직하면서도, 더 높은 그리스도교 생활의 원리에 맞게, 그리고 다양한 시대, 장소, 민족의 상황에 알맞게 개선되어야 한다. 이러한 사도직 활동 가운데 그리스도인의 사회 운동이 가장 중요하다. 거룩한 공의회는 이 운동이 현세의 모든 분야와 문화에 펼쳐지기를 바란다”(평신도 사도직 교령, 7항).
삼손과 요한이 하느님의 역사 개입으로 출현한 성경의 고사(古事)는 공의회의 가르침(사목헌장과 평신도 사도직 교령)에 따라서 파스카 과업을 향한 교회 전체의 사회적 리더십의 소명으로 알아 들을 수 있을 것이며, 특히 현세 질서의 복음화에 기여해야 하는 평신도 사도직의 고유한 소명으로 이해해야만 실현 가능할 것입니다. 또한 백년 박해와 백년 고난에 이어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해 낸 저력으로 이제 복음화를 향하여 나아가야 할 한국교회의 역사적 소명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복음화의 소명을 수행함에 있어서는 복음화 제3천년기를 맞이한 가톨릭 보편교회가 아시아의 복음화와 특히 한국교회의 선도적 역할에 커다란 여망을 걸고 있음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1998년에 열린 아시아 주교 시노드의 건의사항을 받아들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지적하다시피 아시아에는 산업화를 이루지 못해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는 나라들이 아직도 많고, 민주화도 지체되어 정치적 억압에 시달리는 나라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 나라들의 젊은이들에게는 같은 아시아에 속하면서도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하여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대한민국이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한류 열풍의 배경입니다. 이 젊은이들이 자신들 나라의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과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우리가 도울 수 있다면, 한류를 복음화시키는 아주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단계적으로 준비시키시고 또 비약적으로 개입하시는 하느님의 섭리를 삼손과 요한의 출생으로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하느님, 거룩한 동정녀의 출산을 통하여 영광의 빛을 세상에 드러내셨으니, 저희가 언제나 이 강생의 놀라운 신비를 온전한 믿음과 경건한 마음을고 거행하게 하소서.”(본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