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일로 바쁜 분들께 심심한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저께 학교 개교기념일이었습니다.
이런 날, 남들은 출근하는 것 처럼 아내를 속이고, 삼삼오오 모여 놀러를 간다지만,
순수한 영혼을 간직하는 저주를 받은 탓에
아내에게 전날부터 이실직고하고, 처분을 기다렸습니다.
딸을 어깨동무에 데려다 주고,
아들을 치과 진료후 햇살가득에 데려다주라는 하명을 받든 후,
젖을 배불리 먹인 갓난이를 어머니께 맡기고,
오랜만에 아내와 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무슨 영화를 하는지도 모르고 갔는데,
기다리지 않고 관람가능한 영화가 전도연 나온다는 '하녀'였습니다.
어깨동무 엄마님들로부터
이정재 몸 빼고는 볼 것이 없다는 모진 평가를 받은 임상수 감독의 그 영화입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영화 씹는 맛이 다 다른 모양인지, 저는 첫 장면부터 끝장면까지 무쟈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하녀...
이 시대 극소수 몇 몇의 직업을 일컫는 제목인 것 같지만,
이 시대 모든 사람들이 가진 단 하나의 직업을 일컫는 제목입니다.
영화 구조도 절묘하게 탄탄하며, 배우들의 연기도 일품입니다.
이 생각 저 생각 해보도록
보는 사람 머리에 상처를 내는 솜씨도 세련되었습니다.
대저택의 두 하녀만 하녀가 아니라,
훈(이정재)의 권력과 재력에 기생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장모와 그 딸(해라)이 진정한 하녀이며,
'근본이 없는 것들' 위에 군림하며,
한번 뿐인 삶을 권력, 성, 돈의 노예로 살아가면서도
그 세계에 의심을 품지 않는(어쩌면 품을 수 없는) 훈(이정재) 스스로가 지성세계의 하층민입니다.
주변과의 관계를 철저히 힘과 돈과 성의 대상으로 삼을수록,
그 힘을 휘두르는 자신은 더욱 폼 나는 삶의 주체(주인)가 될 것 같지만,
그 스스로가 하녀의 삶에 기생해야 하는 욕망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서로 주체인 세상이 아니라 홀로 주체인 세상에서는 모두에게 하녀의 삶만 허락됩니다.
영화가 막바지에 이르면,
하녀인 이들만이 오히려 하녀가 아니게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합니다.
이 시스템(대저택)을 거부하고 나가는 늙은 하녀,
진정한 하녀들에게
목 메달아 타오르는 죽음을 선물했던 은이...
그 죽음 이후,
진실한 삶의 언어를 잃어버린 대저택 사람들,
껍데기만 주인인 그들은
모처럼 딸의 생일날을 맞아
피폐한 삶의 주름을 떡칠한 화장으로 감추듯,
고가의 미술품으로, 공허한 언어(영어)로 생일의 즐거움을 연기합니다.
전도연을 지칭하는 말인 줄 알았던 하녀는 영화 속 다른 인물들에게도 적용되고,
영화를 보고나서는 우리 사는 세상 이 곳 저 곳으로 확장되고 증폭됩니다.
...
어제 조선대에서 김용철 변호사 강연이 있었습니다.
며칠전부터 어디서 메시지로 연락이 오더군요.
그런데, 행사 몇 시간 전 장소가 운동장으로 바뀌었습니다.
나중에 보니 조선대에서는
'대외 이미지도 나빠지고, 학생들 취업에 지장이 있다'는 이유로 당일 대관을 불허했다더군요.
기업이 대학의 학문적 양심을 눈치보는 것이 아니라,
대학마저 밥줄을 쥔 기업을 눈치보는 하녀들의 사회입니다.
하녀를 보면,
훈(이정재)이 만삭의 해라와 성관계를 갖는 장면이 있습니다.
동등한 성적 관계라기 보다는,
성적 만족을 얻을 수 없는 몸을 가진 해라가 성적 노예로서 일방적으로 봉사하는 것이라 보아야겠습니다.
그런데, 조선대 이야기를 듣고, 그 장면이 겹쳐지는 것입니다.
알아서 흔들고 빨아주니 삼성, 참 얼마나 행복할까요?
영화 아직 안 보셨으면, 투표하시고, 영화 한 번 보세요.~
삼성에 겁먹은 조선대, 찌질하다
첫댓글 오늘 학교에서 연우아빠를 보았네요. 왜 오셨나 했더니만, 자살한 비정규직 교수에 대한 기사 취재차 들르셨던 모양입니다. 본관에 들어가서야 알았습니다. 조선대에 교수되려면 3억 있어야 한다더군요. 자살한 비정규직 강사님은 다른 교수 논문 대필만 45편이나 해주었다는군요. 조선대, 찌질하다에서 끝나면 좋게요. 침 한 번 뱉고 끝나버리는 세상이면 얼마나 좋을까요. 낼 투표가 제대로 될 지 참 답답하고 암담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