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바람 부는 날, 파도소리와 함께 (울산 정자에서 포항 양포까지 35km)
4월 4일, 간밤에 내리던 비가 그치고 바람이 차다. 아침 7시, 전날 저녁을 먹은 다원 식당에서 콩나물해장국으로 아침을 들고 8시에 뉴 하이야트 호텔을 나섰다. 3일 동안 약간 덥던 날씨가 쌀쌀하여 옷차림이 두껍다. 해안길을 따라 한 시간 넘게 걸으니 쉴만한 곳이 나타난다. 볼일을 보고 간식을 들기에 적당한 곳, 오늘 간식은 이숙자 회원이 택배로 부쳐온 호도과자다. 도중에 참여하기로 하였는데 사정이 있어 못 온다며 성원의 뜻을 표한 것이다. 모두 한 봉지씩 받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맛있게 든다. 오영란 회원이 전화를 걸어 일행들의 마음을 전한다.
두 시간쯤 걸으니 울산광역시에서 경주시로 접어든다. 해안길에 억겁 파도에 씻긴 바위가 많고 그 틐새를 비집고 들어선 소나무의 생명력이 경이롭다.그 중의 압권은 경주시 양남면의 와상 주상절리, 자연이 빚어낸 걸작품 주상절리는 마그마에서 분출된 용암이 수축하면서 오각형, 육각형의 틈이 생기며 형성되는데 제주도 서귀포의 주상절리가 수직인 것과 달리 누워 있는 모습이다. 인근의 읍천 주차장에 대형관광버스와 승용차들이 꽉 들어차서 이곳을 탖는 이들이 많은 것을 알겠다.
오전 11시,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읍천항의 횟집에서 횟밥으로 점심을 들고 인근에 있는 월성 원자력발전소로 향하였다. 선상규 회장이 사전에 연결하여 경내를 통과하도록 배려한 터. 12시 경 정문에 도착하니 관계자들이 홍보관으로 안내한다. 처음 들룬 곳은 영상실, 서경석 홍보팀 차장이 환영인사를 겸하여 개랴적인 설명을 한다. '우리나라에 고리, 월성, 울진, 영광 네 곳에 24기의 원자력발전소가 있다. 이곳에는 중수로 4기, 경수로 2기가 있고 근무자는 한국수력원자력 직원 1300명, 협력업체 직원 1200명 도합 2500명이 평생직장으로 알고 위험의식 없이 근무한다. 중요보안시설이어서 일반인의 통행이 제한되나 한일우정걷기의 취지에 공감하여 통행을 허용하였으니 뜻깊은 행진 되기 바란다,'
이어서 20여분 영상물을 보고 2층의전시실을 돌아보며 원자력발전의 실상과 대응방향을 소상히 이해할 수 있어서 유익하였다. 이규찬 홍보팀장이 경내를 통과하는 동안 동행하며 경내의 환경과 발전시설 등에 보충시설을 곁들이고. 덕분에 우회로보다 짧은 코스로 이동하게 되어 일석이조의 좋은 기회였다.
원자력 발전소 홍보관에서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와 북쪽으로 약간 올라가니 문무대왕릉이 나타난다. 죽어서 호국의 용이 되어 나라와 백성을 지키겠다는 문무대왕의 꿈이 천년 넘게살아있구나. 유골을 화장하여 바다 속 바위에 묻었다는 문무대왕의 숭고한 정신을 모든 위정자들이 본받았으면.
문무대왕릉에서 감포까지 6-7km 아름다운 해안길이 이어진다. 그 중의 백미는 감포의 송대말 등대주변, 파도에 씻기는 바위들과 100년 전의 항구 모습을 담은 사진들을 전시해 놓은 것도 볼만하다.
감포항을 지나 31번 국도에 올라서니 로후 6시가 가깝다.비좁은 해파랑길을 오르내리며 경관 좋은 곳에서 사진을 찍는 등 포장도로보다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주행거리도 늘어난다, 목적지까지는 8km, 두 시간쯤 지나야 도착할 수 있어서 지친 몸으로 어두운 국도를 계속 걷기는 무리라 여겨 걷기를 종료하고 차량을 이용하여 숙소로 향하였다.
포항시 기장면 양포에 있는 숙소는 교회에서 운영하는 YPC수련원, 구내식당에서 아침과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어서 편리하다. 객실에 TV와 컴퓨터가 설치되지 않아 모처럼 일찍 잠자리에 들어 숙면을 취할 수 있어 좋다, 며칠 동안 강행군하였으니 푹 쉬자.
6. 복사꽃 화사하고 큰 파도 일렁이는 해파랑길(포항 양포에서 호미곶까지 32km)
4월 5일, 밤에 비가 내리더니 아침은 맑다. 오전 8시에 숙소를 나서 해안길에 들어서니 곧바로 산길로 이어진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언덕에 올라 예고도 없이 기합주네 하니 모두들 웃는다. 앞장서서 리드하던 홍순언 이사가 스트레스 날리자며 바다를 향하여 야-하고 큰 소리로 선창하니 복창으로 화답한다. 멀리 일본까지 그 소리 들리게.
영암 2리라는 어촌마을 지나니 수직으로 이어지는 큰 절벽에 복사꽃이 만발이다. 먼발치서 바라보니 너무나 화사한 빛깔, 혼자보기 아까워 여성들에게 손짓으로 가리키니 환호성이 터진다. 옆에 걷던 엔요 교코 씨의 입에서는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의 노래가 저절로 흘러나오고. 같은 시간, 반대편에서는 바다에서 일렁이는 파도의 물살이 해파랑길 방파제 넘어 옷자락에 튀긴다. 좁다란 바위 틈서리로 몰려드는 하얀 물결이 눈부시고. 시인은 이를 어떻게 표현할까, 대동강 부벽루 바라보며 아름다운 경관에 취해 말을 잇지 못한 김황원이 떠오른다. 일본인들이 아내에게 묻더란다. '일본에서는 나이들면 부부가 따로 노는데 어째서 늘 함께 하는가?' 이처럼 아름다운 길 동행하니 그 아니 좋을손가.
점심식사 메뉴는 물회밥, 횟밥에 물을 부어 먹는다는데 식성따라 다른 듯, 물을 붓지 않고 회덥밥처럼 먹다가 물을 부어보니 싱거워서 별맛이다. 엔도 야스오 씨도 회덥밥처럼 그냥 먹었다기에 잘 했다고 말하였다. 아내는 음식값(12,000원)에 비하여 반찬이 너무 부실하다며 좀더 성의 있는 서비스였으면 좋겠다고 평하네.
오후 2시경에 구룡포항에 도착하였다. 광복 전에 일본인들이 거주하며 방파제를 쌓고 주거지역도 잘 정돈되어 이를 기리는 구룡포근대역사문화거리가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언덕 위에는 항구개발에 힘쓴 일본인의 송덕비가 세워졌는데 비문의 내용을 시멘트로 덮었다. 역사의 흔적은 그대로 보존하는게 낫지 않을까, 일본에서 조선통신사가 지나간 길을 조선인가도라 명명하고 수백년 흔적을 고스란히 보존하는 것과 대비된다. 주말을 맞아 가족들과 함께 캠핑나온 이들이 많고 작은 포구에 무리지어 앉아 있는 갈매기 모습이 평화로운데 남북의 대립이, 한일간의 갈등이 그칠날은 언제런가?
구룡포에서 나와 길게 이어진 해파랑길 따라 두어시간 걸으니 멀리 호미곶의 등대가 눈에 들어온다. 한 시간 여 넓고 평탄하게 조성된 시멘트길이 걷기에 쾌적하다. 호미곶은 지도에서 익숙하게 보아온 한반도 동편의 끝자락 , 2000년대가 시작되는 날, 이곳에서 새 천년의 빛을 밝혔다는 새천년 기념관 앞의 넓은 광장에 전국에서 찾아온 인파가 북적인다. 한반도를 형상화한 큰 조형물 아래에는 대동여지도를 만든 고산자 김정호가 일곱번이나 이곳을 찾아 한반도 최동쪽임을 확인하였고 육당 최남선은 연해주를 호령하는 호랑이 꼬리를 상징하는 이곳의 해맞이가 조선 10경의 하나라고 평하였다는 기록이 적혀 있다. 유서 깊은 곳에서 기념촬영하며 마무리 하니 오후 5시 반, 32km를 걸었다.
모텔에 여장을 풀고 저녁 먹으러 나오니 구름 속에서 얼굴 내미는 낙조가 눈부시다. 일출명소에서 낙조를 감상하누나. 인근의 충청도 식당에서 해물탕으로 저녁을 들고 숙소에 들어와 컴퓨터에 앉아 기록을 정리하는 중 천둥소리 들리더니 컴퓨터 전원이 꺼진다. 한 시간 작업이 사라졌네. 핑게김에 침대에 누웠다. 못한 일은 내일 새벽에 하자.
7. 해안길 따라 종일 살핀 제철도시의 위용(호미곶에서 포항 북구까지 35km)
아침 6시, 한반도 최동단의 해맞이를 하러 새천년기념관 앞 광장으로 나갔다. 안타깝게도 동쪽 하늘에 구름이 끼어 일출의 장관은 볼 수 없네. 잠시 산책하다가 식당으로 향하였다. 황태해장국으로 아침을 들고 나오니 아침해가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민다.
8시에 숙소를 나서 포항으로 하는 해변길에 접어들었다. 멀리 포항의 시가지가 시야에 들어오고 영일만의 깊숙한 바다가 가이 없이 펼쳐진다. 한 시간쯤 걸으니 해안길은 끝나고 산을 넘어가는 국도로 이어진다. 다른 곳에 비하여 해파랑길이 덜 개발된 듯, 국도를 오르락 내리락 하는 사이에 호미곶면에서 10여 km 지나 동해면에 들어서고 동해면이 포항시계까지 십수km 이어진다. 중간의 시골밥상이라는 음식점에서 비빔밥으로 점심을 들고 동해면소재지를 거쳐 포항시계에 들어선다.
호미곶에서 바라본, 수평선 너머 포항시
공항을 옆에 끼고 시내로 걸어가니 청포도문화공원이라는 휴식공간이 나타난다. 간식을 들며 쉬다가 일어서니 이고장 출신 애국시인 이육사의 시 '청포도'를 새긴 나무판이 보인다. 그 앞에서 한국인들이 합창으로 이를 낭송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