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권력의 상징인 청와대, 그곳에선 대한민국호의 운명을 가르는 중요한 결정들이 이루어지는 역사의 현장이다. 그 청와대에서 벌어지는 극히 일부만 언론을 통해 국민들에게 알려질 뿐이다. 과연 청와대, 그 이면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청와대 25시'는 그런 궁금증을 풀어주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관리자
재벌 성장사는 권력 밀착과 비례…건전한 협력관계 지향해야
5년8개월만에 귀국해 곧바로 구속 수감된 대우그룹 김우중 전 회장이 가슴 속에 품고 온 ‘X-파일’에는 어떤 내용들이 들어 있을까. 김우중 회장은 국내에서 왕성한 기업활동을 할 때 대기업 총수들 가운데서도 가장 ‘정치적인 재벌’로 꼽혔던 인물이다. 1992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경기고 동창인 이종찬 의원을 당시 여당인 민자당의 대선후보로 적극 밀다가 나중에는 박태준 민자당 최고위원을 찾아가 현금 1천억원을 내놓겠다며 신당 창당을 권한 사실 등은 꽤 알려져 있다.
나아가 그는 유력 후보를 지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대선 출마를 준비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꿈을 접기도 했다. 그만큼 정치적 성향이 강한 그가 인신구속을 감수하면서까지 귀국한 속사정을 놓고 지금 정치권에선 갖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 가운데 하나가 ‘참여정부 청와대와 김우중의 밀약설’이다. 바로 각종 게이트 등으로 벼량끝에 몰린 참여정부 청와대가 범(汎)구여권에 밀리기만 하는 지금의 국면을 전환하기 위해 김우중 회장 귀국 카드를 빼들었다는 것이다.
즉, 노태우·김영삼 정부 때 전성기를 누리다가 김대중 정부 초기에 퇴출당한 김우중 회장이 간직하고 있는 ‘로비 정치인 리스트’가 구여권의 덜미를 잡는 데 유효하다는 판단에 따라 반대세력 견제 차원에서 김우중 회장 귀국을 기획했다는 설명이다. 이 경우 김우중 회장이 받을 반대급부는 ‘조기 석방, 사면’이 될 수 있다. 물론 참여정부 청와대 참모들은 이 말을 들으면 “3류 소설을 쓰고 있다”고 펄쩍 뛴다.
그럼에도 이런 해석이 설득력 있게 나올 수 있을 정도로 우리 헌정사에서 대통령과 재벌들은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반목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적절히 이용해 왔다.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인 강금원씨 등 불법 대선자금 사건에 연루됐던 기업인 12명이 지난 5월15일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특별사면됐다. 또 분식회계 혐의로 집행유예형을 받았던 전문경영인 19명도 이날 특별사면·복권됐다. 시민단체와 야당, 심지어 수사를 담당한 검찰에서조차 ‘재벌과 측근 봐주기’가 아니냐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지만 소용없었다.
당시 특사에는 강금원씨 외에 이학수 삼성 부회장·강유식 LG 부회장·김동진 현대차 부회장·박찬법 금호아시아나 사장·신동인 롯데쇼핑 사장 등 대기업 고위층들이 포함됐다. 불법 대선자금을 제공한 기업인 가운데는 재판이 진행 중인 SK의 최태원·손길승 회장만 빠졌다. 그러나 이 두 사람도 재판이 끝나는대로 ‘면죄부’를 받을 게 틀림없다.
이같은 기업인 사면이 단행된 다음 날인 16일 공교롭게도 노무현 대통령이 4대그룹 총수들을 청와대로 불러 함께 만났다. 3월부터 대기업 총수들과의 연쇄접촉을 해 온 일정을 마무리 짓는 의미에서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토론회’에 참석한 이건희 삼성회장·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구본무 LG회장·최태원 SK회장 등 4대 그룹 총수들을 만난 것이다. 마치 석탄일 경제인 특사가 대기업 총수들과 만나기 직전 분위기를 잡는 차원에서 단행된 것처럼 돼버렸다.
복잡한 함수관계 유지
노무현 대통령은 이처럼 최근들어 재벌들과 자주 접촉하고 있다. 지난 3월에 구본무 LG 회장을 청와대로 초청, 부부동반으로 2시간 동안 만찬을 함께 했고, 삼성그룹의 리움 미술관을 관람하면서 이건희 회장 부부와 티 타임을 가진바 있다. 같은 달 국가에너지회의 때는 현대차에서 제작한 연로전지차를 정몽구 회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시승한 데 이어 4월 터키 순방 때는 이스탄불의 현대차 공장을 방문해 정 회장과 또 만났다.
집권 중반기를 맞은 노무현 대통령의 재벌 친화정책을 어떻게 파악해야 할지, 김우중 전 회장의 귀국을 계기로 과거 정권의 사례를 들어 살펴본다.
우리 헌정사에서 대통령과 재벌은 매우 복잡한 함수관계를 유지해 왔다. 권력을 잡은 측에선 재벌을 견제하거나 아예 무력화시키려고 시도해 보지만 그들의 협력을 받지 않고는 나라를 제대로 경영하기 어렵다는 한계에 부닥친다.
가령 국민의 정부를 출범시키면서 김대중 대통령도 재벌과 선을 그으려 했지만 막상 자신의 최대 목표였던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선 재벌의 힘을 빌리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햇볕정책을 시행하기 위해선 그만큼 햇볕이 필요했고, 현대의 자금이 북한에는 햇볕이 됐다.
그러나 어느 경우를 막론하고 재벌은 정권의 ‘밥’이었다.
현대의 경우처럼 과거에 정권이 바뀔 때마다 ‘뜨는 재벌’과 ‘지는 재벌’이 있었다. 이는 특정 정권이 탄생하는 데 있어서 어느 재벌이 어느 정치세력에 ‘배팅’을 더 많이 했느냐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재벌은 정권의 ‘밥’
김우중 전 회장이 DJ 시절 몰락한 뒤 외국을 떠돌았던 것도 근본적인 이유 역시 정치적인 논리에서 찾는 분석이 없지 않다.
그는 DJ정권과 밀월관계를 형성했던 현대가(家)와 오랫동안 맞섰다. 경쟁사업 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사사건건 부딪치다가 대북사업 주도권을 현대에 빼앗기면서 완전히 등을 돌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우중 전 회장이 1992년 대선 출마를 검토했던 것도 당시 정주영 현대 회장의 출마에 맞서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 때 김우중 회장은 자신의 소유인 힐튼 호텔 등 두 곳에 캠프까지 설치하고 대선 출마 결심을 굳혀갔지만 자체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가 ‘1등 김영삼, 2등 김대중, 3등 김우중, 4등 정주영’으로 나오자 결국 출마를 포기했다. 자신의 당선 가능성이 희박한 것도 이유였지만 정주영 회장이 꼴찌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자신의 모든 것을 올인해 ‘정주영 잡기’에 나설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대권을 직접 잡아 정권과 금권을 완전 장악해보려고 직접 시도한 측은 역시 ‘밀어붙이는 스타일’의 현대가였다. 고 정주영 회장이 1992년 통일국민당을 창당, 14대 대선에 출마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당시 그는 “집권자에게 수십, 수백억원씩 갖다 바치는 돈이 아까워 내가 한번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출마의 변을 밝혀 충격을 줬다.
정주영 회장이 돈을 갖다 바친 대상은 물론,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같은 그 이전의 권력자들이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수천억원대의 비자금을 형성하는데는 재벌들이 갖다 주는 뭉치돈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어쨌든 정주영 후보는 선거과정에서 곳곳에서 탈이 날 정도로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부었지만 결국 그의 꿈은 실현되지 않았다.
이후 꼭 10년이 흐른 2002년 대선에서 그의 아들 정몽준 의원이 꿈을 완수하기 위해 국민통합21을 창당하고 출사표를 던졌지만 막판에 민주당 노무현 후보와의 후보단일화를 위한 여론조사에서 뒤져 중도하차했다. 정몽준 의원도 선거과정에서 대통령 후보로서 자신의 강점을 설명할 때 종종 “다른 것은 몰라도 내가 대통령이 되면 기업을 포함해 여기저기서 돈 뜯어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버지 정주영 회장과 마찬가지로 어지간히 역대 대통령에게 돈을 뜯긴 경험이 있는 듯했다.
권력과 결탁해 성장한 재벌
물론 재벌이 항상 권력에 이용만 당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권력을 등에 업고 축적한 부의 크기를 따지면 권력에 뺏긴 돈은 새발의 피일 수 있다. 삼성·현대·대우 등은 모두 권력과 결탁해 성장했다.
김우중 회장도 지금와서 권력의 피해자처럼 비쳐지지만 그는 권력 때문에 대기업 군단을 일군 대표적인 재벌이다. 그의 아버지가 박정희 대통령의 옛 은사였고, 정권을 잡은 박 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에게 특별히 지시해 무명의 청년 사업가인 김우중을 물심양면 돕도록 했다는 것은 재계에 잘 알려진 얘기다.
대통령이 해외순방을 나갈라치면 재벌들이 쭉 따라붙는다. 과연 그것이 정권의 필요에 의해서만일까.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과거엔 재벌들이 해외에서 대통령 일행의 뒤치다꺼리를 다 했다. 수행원들의 저녁 밥값이며 술값, 심지어 호텔 숙박비까지 일괄 계산해 버렸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 해외순방에 수행취재하던 기자들을 ‘접대’하는 것도 기업인들의 몫이었다.
이처럼 열과 성을 다해 대통령 일행을 수발하는 데 드는 비용은 그들 기준으로 볼 때는 그야말로 ‘푼돈’이다. 푼돈을 투자해서 권력 주변 사람들에게 확실히 얼굴도장을 찍기 위해 대통령 해외순방 때면 수행기업인단에 끼이기 위해 전방위 로비를 벌이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 들어서는 그런 분위기가 상당히 달라졌다. 수행기업인단을 구성하는 기준을 마련해 원칙대로 하려고 노력하는 데다, 외국에 나가서도 청와대 사람들이나 기자들이 기업인들의 신세를 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수행기업인들을 특별대접하지도 않아 왕왕 뒷말이 나오기도 한다. 다음은 지난 2004년 9월19일부터 4박5일 동안 노 대통령의 러시아·카자흐스탄 순방 때 수행했던 한 기업인의 회고다. 당시 이건희 삼성회장·구본부 LG그룹회장·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 등 기업인 50여명이 수행했다.
“모스코바에서 대통령 일행과 함께 대기업 총수들이 크렘린궁으로 들어가야 하는 데 기업인용 차량이 봉고차 하나만 달랑 배정됐다. 경호상의 문제 때문에 일일이 승용차로 들어가지 못한다고 했다. 할 수 없이 대기업 총수들이 좁은 봉고차에 구겨타고 크렘린으로 들어갔다. 가는 도중에 만일 그 봉고차가 사고라도 난다면 각 기업의 주가가 폭락하는 등 우리나라 경제가 휘청거릴 것이라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이런 애증의 관계에 있지만 역대 대통령가와 재벌가들은 여러 갈래로 혼맥을 맺어 그들만의 로열패밀리를 형성했다. 이 역시 서로가 자신들이 갖지 못한 상대방의 권력이나 돈에 대한 환상을 잡으려는 데서 기본적으로 출발한다.
가장 대표적인 사돈관계가 노태우 전 대통령과 SK다. 잘 알려져 있지만 최태원 SK 회장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위다. 최 회장이 SK의 2세일 때 노 대통령의 딸 소영씨와 결혼했는데, 당시 혼례식이 청와대에서 열려 화제를 낳았다. 노 대통령 임기 중 SK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이동통신사업자에 선정되는 등 알게 모르게 특혜를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노소영씨는 지난 1999년에 재계 주요인사의 부인과 딸, 며느리가 만든 불우어린이 돕기 모임인 ‘미래회’의 회장을 맡아 왕성하게 활동하는 등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청와대와 재벌 은밀한 유착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도 청와대 시절 한때 재벌과의 혼담설이 오갔었다. 박 대표의 동생 서영씨는 1982년 모 재벌그룹의 아들과 결혼 재벌가의 며느리가 됐다가 얼마 못가 결별했다.
대통령과 재벌이 건전한 협력관계만 유지하면 국민생활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 차원이라면 대통령과 대기업총수들의 빈번한 만남을 색안경을 끼고 볼 필요도 없다. 국가통수권자와 이 나라 현장경제를 실질적으로 이끌어가는 재벌들이 스킨십을 갖고 서로를 이해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일선 정치인 시절과 대선 후보 때 ‘재벌개혁’을 강도높게 주창했던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하자 재벌들이 바짝 긴장했다가 어느날 노 대통령의 오랜 후원자가 운영하는 삼계탕집(서울 효자동 ‘토속촌’)에서 함께 모인 다음부터 관계가 부드러워졌다.
다만 역대 대통령을 거치면서 청와대와 재벌의 은밀한 유착관계를 식상할 정도로 많이 봐 왔기 때문에 국민정서 속에 그런 우려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게 사실이다. 또 대통령과 대기업총수들의 만남 자체로 재벌개혁이 유야무야되는 것 아니냐고 염려하는 시각도 탓할 수 없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도 재벌개혁을 주창했지만 결국은 한계에 부닥쳐 용두사미로 끝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