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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수처에 붙어 있는 현판. 남 마리베로니카 은수자가 로고를 고안했다. 원은 우주, 청색은 성부, 적색은 성자, 노랑은 성령을 상징하고 원 밑을 바치는 M자는 마리아를 뜻한다. (사진/고동주 기자) | 기도하고 일하라? 일하면서도 기도하라! 척박한 사막에도 샘솟는 물처럼 은총이 있어
"베네딕토 성인이 기도하고 일하라 그랬잖아요. 그런데 저는 기도하고 일하면서도 기도한다. 이렇게 돼요. 만약에 이만큼 풀을 뽑아요. 그냥 풀을 뽑는 게 아니라 풀을 뽑으면서 세상이 이만큼이 밝아진다는 지향으로 풀을 뽑으니까 모든 것이 기도가 되지요."
삼위일체 은수공동체를 설명해 주세요.
은수는 초세기에 순교가 끝난 다음에 시작됐어요. 자기 목숨까지 버리는 순교는 하느님 사랑의 절정인데 순교가 끝나니까 하느님 사랑이 깊은 사람들이 사막이나 산에 고생을 자처해서 들어가는 거였지요. 그게 은수의 시작입니다. 저희 삼위일체 은수공동체는 파코미우스 식으로 다섯 여섯명으로 은수생활을 시작하려 합니다.
삼위일체를 삶에서 적용하는 것은 자신보다 상대편을 바라보고 내어주는 삶을 살 때 이뤄집니다. 이곳 은수공동체에서 행하는 기도와 삶도 이 원리대로 이뤄지겠지요.
은수생활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사진작가로서 '시성시복위원회' 소속으로 1983년 재의 수요일부터 1984년 5월 6일 한국 103위 순교성인 시성식까지 촬영을 담당했습니다. 시성식 전날인 5월 5일 요한바오로 2세를 알현하는 순간 '로마에 가장 좋은 선물을 하고 싶다는 약속'을 해버렸습니다. 시성식 후에 바로 관상수녀원에 들어가서 12년을 지내다가 프랑스의 수도원에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더 깊은 은수의 삶을 접하게 됐어요.
수도생활을 하면서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가 하느님만을 위한 삶을 살고 싶었던 저에게 프랑스에서 접한 은수의 삶은 저에게 은수의 예행연습을 시켜줬습니다. 특히 12세기 은수공동체 자리를 방문했을 때는 잠이 많은 제가 사흘 동안 잠을 자지 않고도 아무렇지 않았어요. 활동수도회가 보이는 나무요 보이지 않는 뿌리가 관상수도회라면 은수는 더 밑으로 내려간다는 생각이 들었고, 굉장히 넓어진다는 체험을 했습니다. 그때 더 깊은 은수의 삶으로 이끌리는 은총을 받았습니다.
삼위일체 공동체의 특징은?
저는 바오로 6세 교황께서 “수도생활은 영혼을 꽃 피우는 삶”이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해요. 저는 2천년 전 성교회를 이루신 예수님의 가족을 모델로 생각합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완전히 기도할 수 있도록 요셉 성인과 성모님께서 도와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한 사람이든 두 사람이든 만약 8일 동안 피정을 한다면, 나머지 사람이 뒷받침하고 똑같이 돌아가면서 기도를 하도록 할까 생각합니다. 15일, 30일, 40일까지 이뤄지는 피정에서도 같은 방식을 적용할 것입니다.
여러 명이 모이면 어디에서나 갈등이 생길 수 있습니다. 수도자들이라고 갈등이 없을까요? 그래서 저는 파코미우스 식 은수자의 삶은 다섯 명까지를 적정 인원으로 보고 있습니다. 다섯 명이 넘으면 분원을 낼 예정이에요. 그리고 필요 없는 분심을 가지지 않도록 똑같이 소임을 돌아가면서 맡되, 각자 하느님께 받은 영혼을 꽃피울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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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사를 마치고 나서 성모동산에서 묵주기도를 바쳤다. 옆에는 임진강이 흐른다. (사진/고동주 기자) |
일과는 어떻게 되는지요?
베네딕토 성인이 기도하고 일하라 했지요. 그런데 저는 기도하고 일하면서도 기도한다. 이렇게 돼요. 그러기 때문에 눈 뜨자마자 기도가 시작되는 거죠, 호흡처럼. 만약에 이만큼 풀을 뽑아요. 그냥 풀을 뽑는 게 아니라 풀을 뽑으면서 세상이 이만큼이 밝아진다는 지향으로 풀을 뽑으니까 모든 것이 기도가 되지요.
원래 은수자들은 자기 은수 생활도 본인에게 맞게 기도 일정을 정해서 주교님께 허락을 받습니다. 삼위일체 은수공동체는 여러 은수자가 함께 하므로 기둥처럼 아침기도와 저녁기도, 미사는 고정으로 함께할 것입니다. 나머지 시간은 각자 깊이 기도할 수 있도록 배려할 생각입니다.
은수자님께서 특별히 기도하시는 지향이 있는지요?
1983년 6월 14일 한국의 103위 순교성인 시성의 확정 발표가 로마에서 오던 날부터 이제 한국에서도 103위 순교성인뿐만 아니라 사랑의 증인으로 산 성인을 우리에게 주시라는 기도를 시작했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교회의 드러나는 성화를 시성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교회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성인이 나오기를 바라고 이를 기도드립니다.
제가 드리는 기도의 다른 지향은 우리 각자의 성화입니다. 이번에 새로 지은 피정의집도 개개인들의 내적치유를 도와 성화를 향해 가도록 지은 것입니다. 감히 제가 드리는 이러한 기도의 몫이 요한바오로 2세 교황을 알현할 때 했던 약속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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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기 전 임진강은 물안개를 피워냈다. (사진/고동주 기자) |
은수공동체의 운영은 어떻게 합니까?
프랑스의 아쌈시옹이라는 수도원을 창립한 창립자도 처음에 부모님께 도움을 받았다고 합니다. 저도 그동안 어머니께 나오는 아버지의 연금을 나눠 썼지요. 처음으로 이번 은수기도처 공사를 하면서 몇분에게 도움을 청해야 했습니다, 아직도 반절도 못 드렸지만. 제일 어려운 게 돈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이더군요. 지금까지 기도하고 살아온 대로 하느님의 섭리를 바라고 있습니다.
은수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은수 지원자가 있어야 할 텐데요?
은수자는 교구장의 허락을 받아야 은수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2007년 3월부터 전 의정부교구장이신 이한택 주교님으로부터 허락을 받았고, 현 교구장이신 이기헌 주교님도 미사와 행정담당으로 조원행(야고보) 신부님, 영적지도로는 이종환(요한) 신부님을 지정해주셨습니다. 두 주교님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수도회가 만들어지려면 세 명 이상의 수도자가 있어야 하므로 함께 할 동반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은수공동체가 시작단계이기 때문에 굉장히 어렵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만큼 하느님께서 은총을 주신다는 것이 모든 수도회 창립의 공통된 이야기입니다. 척박한 사막에도 샘솟는 물이 있듯이 이곳 삼위일체 은수공동체에서 이같은 은총을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