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 수원교구 오늘의 말씀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살레시오회
꼭 기억하십시오! 나는 존재 자체로 주님께 기쁨이랍니다!
피정 센터 내에 휑한 공간이 있어, 어쩔까 고민하다가 예쁜 꽃나무 묘목을 몇 그루 사다가 심었습니다. 묘목을 구하기 위해 꽤 발품을 팔았습니다. 이리저리 시장을 다니던 중 제 눈길을 확 끄는 친구들이어서 제가 직접 선택했습니다.
뿐만아니라 제가 직접 자리도 고르고 구덩이도 파고 식재를 했습니다. 거름도 넉넉히 주고 매일 물을 주고 있습니다. 피정 센터 내에 수많은 나무들이 있지만, 제가 직접 선택하고 심은 나무이기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더 큰 관심과 애정을 건네고 있습니다.
며칠전 깜짝 놀랄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심은지 불과 한달 밖에 지나지 않은 어린 묘목이었는데, 봄비가 흠뻑 내리고 난 다음날 아침 지나가면서 보니, 세상에 그 여린 줄기에 벌써 초록빛 이파리들이 새록새록 돋아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죽지 않고 살아준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여리디 여린 그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얼마나 대견스러운지? 오가시는 피정객들에게 늘 자랑하고 있습니다. 저 예쁜 묘목 보이죠? 제가 사 와서 제가 심은 나무랍니다. 정말 예쁘죠?
아마도 우리를 손수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생명의 숨결을 불어 넣어주신 우리의 주님도 똑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아마도 그분 눈에 우리 각자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사랑스러운 존재일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은 존재가 바로 우리 각자일 것입니다.
이런 우리 주님의 마음이 오늘 요한 복음에 잘 표현되고 있습니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보십시오. 우리 주님의 기쁨이 우리 각자 안에 있답니다. 보잘것없는 죄인인 우리, 내세울 것 하나 없는 한심한 우리 각자이지만, 주님께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기쁨이랍니다.
세파에 지쳐 쓰러질 때마다,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치이고 배신당할 때마다,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나를 배신해도 주님만은 언제나 내 편이라는 것을. 오늘 내 삶이 아무리 비참하고 부끄럽다 해도 나란 존재 자체가 주님께 기쁨이라는 진리를.
※전삼용 요셉 신부님, 조원동주교좌 주임신부님
내가 신앙생활 잘하고 있는지 알아보는 법
우리가 무언가를 지속하려고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기쁨입니다. 내가 기쁘면 다른 사람이 아무리 뭐라 해도 그만입니다. 어차피 행복해지자고 사는 인생, 지금의 삶이 기쁘다고 하는데 누가 뭐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신앙도 그래야 합니다.
신자들을 보면 ‘고해성사’가 어려워서 신앙을 포기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고해성사는 저도 지금까지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그래도 하는 이유는 그 어려움을 감수할 만한 기쁨이 기다림을 알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부활의 희망 없이는 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앙생활의 기쁨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오늘 복음에서 그 해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기쁨은 결국 주님의 계명에 순종함에 있습니다. 제가 십일조를 내는 것도 주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인데 그 기쁨이 지속되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이어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제가 공부에 흥미를 잃게 되었을 때가 있는데 바로 인정받지 못할 때였습니다. 유학 가서 성서 석사 논문을 쓰는데 많은 질책을 하는 지도교수 신부님이 좋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차피 인정받지 못하는 것, 여기서 끝내고 더는 공부를 이어서 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모두 저의 잘못인데, 저를 인정해 줄 분에게 순종하지 않고 나의 뜻을 고집했기 때문에 공부라는 것을 이어갈 수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신부님도 논문 발표 때 낮은 점수를 주어 의욕을 완전히 꺾어주었습니다. 만약 주교님께서 강요하지 않으셨다면 저는 다시 유학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시 공부해서는 새로운 지도교수 신부님께 인정받았습니다. 이전에 실패한 것을 생각하며 무조건 순종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나의 논문이 아니라 교수님의 논문을 써 주자’라고 생각하니 모든 것을 그분 뜻대로 썼습니다. 다른 교수님들이 하라는 것도 군말 없이 했습니다. 그러자 그분들은 모두 저에게 좋은 점수를 주었고 저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한국 와서 여러 책도 자신감 있게 쓸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저를 믿어주고 책을 내라고 하신 주교님의 인정도 있었습니다. 이런 기쁨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게 합니다.
내가 진정 내가 하는 일에서 기쁨을 찾는지는 세 가지 정도로 측정해보면 됩니다. 내가 혹시 남을 부러워하지 않는지 살펴야 합니다. 그러면 지금 가는 길은 문제가 있습니다.
저는 일반 대학교 때 이휘재 씨를 부러워하였습니다. 같은 나이인 저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잘 나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전혀 부럽지 않습니다. 그러면 사제로 살아가는 것이 행복하다는 말입니다.
그다음은 내가 하는 일이나 나의 삶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사람들에게 반응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그 사람들의 의견에 흔들린다면 충분히 나의 일에서 행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도 한국에 와서 책을 냈을 때 어떤 책에 대해서는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책을 낸 것이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전혀 그들의 말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계속 또 다른 책을 낼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나의 길을 가려는 사람이 있다면 기쁘다는 것입니다. 며칠 전에 갓 세례받은 청년이 사제가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제가 너무 착해 보여서 몇 번 이야기 했더니 마음이 동요된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생각해 보라고는 했지만, 기뻤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나의 삶을 기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기뻐야 합니다. 그래야 어려움들을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기쁠 방법은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분께 인정받아 그분 사랑 안에 머무는 길밖에 없습니다. 내가 진정 기쁜 신앙생활을 하는지 앞에 예시된 것들로 나 자신을 되돌아봅시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왕곡 주임신부님
복음: 요한 15,9-11: 너희의 기쁨이 충만하도록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9절) 주님께서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즉 사랑의 관계에서 아들에게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시고 아들은 아버지께 모든 것을 드리는 그러한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신다. 아버지의 말씀을, 아버지의 뜻을 행함으로써, 우리도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관계에 참여하라고 하신다.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무른다는 것은 바로 그 사랑을 우리도 실천하며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도록 하라는 초대이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10절) 계명을 지키고 실천하는 것이 사랑의 가장 중요한 표지라면, 사랑이 없을 때는, 우리를 완전하게 하는 믿음과 계명들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랑이 없다면 계명을 지키고 의로운 행위를 하더라도 또한 은총의 놀라운 기적을 행하더라도 그 일들은 단지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 되고 만다. 우리가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우리가 바로 그리스도를 닮으며, 그분과 같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분을 닮으려 노력하는 사람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순명을 변함없이 드리며 항상 감사한다. 이런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으로부터 더 큰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게을러지지 않도록 항상 깨어있어야 축복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라고 하신다. 그래서 “그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8절) 하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11절) 주님께서 아버지와 함께하시며 언제나 기쁨을 가지셨다. 우리도 하느님 안에 살며 충만한 기쁨을 가져야 한다. 주님 안에서 우리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이 기쁨은 바로 그분과 우리의 나눔에서 나온다. 우리가 갖는 기쁨은 그분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총이다. 그분께서는 영원으로부터, 즉 “세상 창조 이전에 우리를 선택”(에페 1,4)하실 때에도 이 기쁨을 두고 즐거워하셨다.
그것은 우리가 생겨나기 전에 이미 당신의 지혜로 우리를 보고 기뻐하셨다는 것이다. 당신의 예지 안에서 우리가 그분의 즐거움이었고 그 기쁨은 이미 충만했다는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기쁨으로 충만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언제나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기쁨을 차지하고 충만히 누리기 위해서는 나 자신과의 싸움을 끝까지 해야 얻을 수 있다. 항상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러 있을 수 있도록 나 자신과 끊임없는 싸움을 하여야 한다. 언제나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삶이 되어야 할 것이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인천가톨릭대학교 성김대건 주임신부님
본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특히 자기보다 큰 존재를 제대로 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어렸을 때의 일이 생각납니다. 개미집을 향해 과자 부스러기를 지고 개미를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이 개미를 도와주고 싶어서, 개미와 개미가 진 과자 부스러기를 함께 개미집 앞으로 이동해 주었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개미는 자기가 짊어졌던 과자 부스러기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급하게 도망갑니다. 바로 앞에 자기 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반대로만 향합니다. 가는 길을 손으로 막으면서 개미집으로 들어가게 하려고 했지만, 나중에는 제 손을 기어 올라가서 도망갔습니다.
개미가 이런 저를 제대로 봤을까요?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마 ‘이게 무슨 일이야?’하면서 도망친 것이 아닐까요?
어린 자녀가 부모에게 아픈 말과 행동을 계속합니다. “엄마, 아빠가 내게 해준 게 뭐 있어?”라면서 습관적으로 말합니다. 그런데 이때는 부모의 마음을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너무 작은 존재이기에 부모의 큰마음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어린 자녀가 또 한 아이의 부모가 될 때 비로소 깨닫습니다.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셨구나.”
우리는 과연 주님을 제대로 볼 수 있을까요? 나의 존재가 너무 작기에 볼 수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우리가 큰 존재가 되어야 비로소 주님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기 존재를 키우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주님 안에 머무르면서 그 안에서 성장하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성장하기 위해 영양소가 될 수 있는 것들을 먹어야 합니다. 바로 주님의 말씀을 먹으면서 그 말씀을 실천하면서 살 때 우리는 진정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성장한 사람만이 그 크신 주님을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그 안에서 큰 기쁨을 누릴 수가 있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말씀을 하신 이유를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다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성장하기를 바라는 주님의 뜻을 잊지 않으면서, 나의 존재가 주님 안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온 힘을 다 기울여야 합니다.
주님 안에서 주님의 말씀을 먹고 자라는 우리는 영적으로 튼튼해집니다. 어떤 순간에서도 흔들리지 않으면서 큰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무엇을 견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견디는가 하는 것이다(세네카).
※김혜선 아녜스 - 출처 : 바오로딸콘텐츠, 묵상-말씀이 시가 되어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5,11)
세상에 사는 동안
너희는
나의 품안에서
내가 느꼈던
바로 그 충만한 기쁨을
맛보며 살아야 한단다.
그 기쁨이
너희 안에 머물러 있으면
너희는
구원사업에 실패하고
좌절하게 되더라도
나약함으로
절대 무너지지 않으리라.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요한 15, 10)
계명이란
다름 아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느님의
가장 좋은
생명입니다.
계명은
우리를 살리는
생명을
지향합니다.
계명을 지켜야
하느님 사랑 안에
우리가
머무를 수 있습니다.
계명은
사랑의
생활입니다.
그래서
계명을 지키는
실천은
사랑의 참된
완성입니다.
생활태도와
실행의 자세는
사랑의 기본
발동입니다.
사랑이
오래 가지
못하는 것은
계명을 지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계명으로
우리는
고귀한 존재임을
깨닫게 됩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이
계명입니다.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우리가
내외적(內外的)으로
하느님께
정직하고 진실한
존재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삶의 기본에
충실할 때
사랑의 가치를
지키고
실현할 수
있습니다.
계율을 지키는
사랑의 삶은
지켜야 할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합니다.
그것은
사랑의 관계이며
사랑의 가치입니다.
지키고 머물러야
우리의 악습과
악행을 태워버리는
회개의 삶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회개의 삶은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영향력을
주는 원만한
인격을
갖추게 합니다.
가장 좋으신
하느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가장 좋은 날
되십시오.
지키고 머물러야
익어가는 사랑의
참된 진리입니다.
복음 말씀
<너희 기쁨이 충만하도록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5,9-11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10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11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