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것으로든 간에 목표를 설정한다는 것은, 삶에 생기를 불어넣고, 현재의 삶보다 보다 나은 삶을 향한 동기부여로 작용한다. 나는 그것을 지금까지 항상 느껴왔고, 이번 학기 또한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자자격취득이라는 전 학기에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던 덕이라고 해야 할까, 탓이라고 해야 할까.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과 약간의 패배감, 다시금 독기를 보며 품어가는 오기...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가 전에 달성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한 재도전이라는 것에 있어서, 의미를 부여하기로 했다. 사실 이번 학기는 전 학기보다, 더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목표를 재설정한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목표달성의 실현이 어려울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지금의 나로써 불가능 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아직 전반전 시작이 채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쉬는 시간이 다가오려면 멀었다. 그럼에도, 쉬는 타임이 찾아오기도 전에 휴식을 갈구하게 된다면, 돌연 선수교체 해달라고 외칠지도 모른다. 일상에서 페어플레이와 정직한 경기를 주장하면서도, 가끔씩 마음 저 깊은 곳에서는 벤치클리어링이 끓어오르니 말이다.
<뷰포인트> 훈련을 통한 전체적인 느낌을 나열하자면 이렇다. 조화, 헌신, 기여, 집중 등등. 다른 사람을 배려하면서 전체적인 상황을 끌어가기란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았다. 모든 감각들을 활성화 시키는데 집중을 쏟으려고 했고, 나로 인해, 그리고 상대로 인해 서로가 움직여가면서, 가장 단순하게는 시각에서 오는 화각의 극대화부터, 내가 동작을 하려는데 앞서서 준비동작을 크게 해주어, 상대방들이 좀 더 쉽게 받아드릴 수 있게 하려는 방법까지, 다양한 방법들을 생각하고 시도했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나와 가장 근접하게 있는 한 사람에게만 모든 집중을 쏟게 해서, 물론 모든 사람이 그러한 상태라면 도미노처럼 반응할 수 있고, 그것이 점점 민첩해지면, 가장 단순하고 수월하며 확실한 방법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지만, 중간에 한 사람이라도 집중을 하지 않고 있다면, 모든 게 무너진다는 리스크가 생겨났다. 결과적으로, 뷰포인트를 통한 훈련들은, 자기인식 통해서 상대와 잘 어울러 질 때 가장 이상적인 훈련이 아닌가 싶다. 훈련 중에 전시관이라는 상황 속에서 전시품들을 하나하나 찾아서 봐야하는 훈련이 인상에 남는다. 그렇다. 배우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듣고, 느끼지 않는 것을 느낄 줄 알아야 한다. 이 훈련에서는 참 재미있고 나름 철학적인 상상들도 많이 했던 것 같다. 아주 잠깐 이었지만, 상상을 하면서 진짜 내가 생각한 의도의 전시품이 보인다고 생각하니,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서,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내 모습이 나의 눈에 비춰졌으며, 뿌듯함인지 신기함인지 알 수 없는 오묘한 감정들이 뒤섞였었다. 하나를 꼽아보자면, 벽 하단 부에 전압장치처럼 작은 사각형 모양으로 패여 들어간 곳이 있다. 난 그것을 보고서는 어릴 적 읽었던 걸리버 여행기가 떠올랐는데, 소인국에서 소인들이 쓰는 무대라고 느껴졌다. 양옆으로 접착력이 약해져 너덜너덜한 천들은, 막을 가리는 커튼이라고 생각했고, 쓰레기처럼 놓여있는 종이조각은 무대 위에 배우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무대가 작다고 배우가 작은 것인가라는 심심한 철학적해석도 곁들여봤다. 상상력이 인간을 즐겁게 해주기란 한계가 없는 듯하다. 그 외에도, 문 위에 있는 비상구에 ‘내가 들어가는 걸까, 나가는 걸까?’라는 제목을 붙여서 예술품으로 승화시켜보기도 하고, 나란히 붙어 있는 에어컨조종기 두 대가 데칼코마니라는 예술품으로 현대인들의 획일적인 사고방식과 삶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는 예술품이라고 생각해보기도 했다. 오늘 참 많은 것들을 느낀 것 같다. 매 순간 느끼는 것이지만, 무언가에 집중하고 상상하고 빠져들었을 때, 난 참으로 큰 희열을 느끼는 인간인 것 같다. 그것은 어쩌면 배우가 되기 위해서는, 당연히 느껴야 할 과정인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