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내전-그 후 2】
23-F
스페인은 1955년 UN에 가입한 뒤 親서방 정책을 채택하면서 1957년부터 경제도 개방체제로 전환됐다.
스페인은 관광산업에 눈을 돌렸고 1970년대에 벌써 1년 방문객이 3.000만 명이 넘는 관광대국으로 발전한다.
관광산업에 붐이 일면서 스페인 사회도 크게 변화하는데 전통적인 농업국가인 스페인에서 인구가 대도시와 휴양지로 이동하여 농민은 더욱 가난해지고 해변의 어민은 내륙으로 밀려나고 그들의 터전엔 고급 호텔,리조트가 들어선다.
이와 함께 국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지 못하게 해서 독재권력을 굳히기 위해 정치에 관심 갖는 언론은 철저히 검열하고 영화,라디오,TV 등 인기프로를 많이 제작해 국민의 관심을 돌렸는데 특히 축구를 크게 활성화해서 지역대결을 대리 충족시켰다.
스페인같이 지방색이 강하고 지역마다 심한 경쟁의식을 갖는 나라에서 축구는 대리 전쟁과 같았다.
엄격한 통제와 감시 속에 스페인에서 가두시위,파업이 사라졌고 경제는 비약적인 발전을 하지만 경제발전은 반드시 민주화 욕구를 건드리게 마련이고 1956년 마드리드에서 첫 학생시위가 일어난 이래 사회불만도 커지더니 1970년대 들어오자 파업,시위 등으로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1975년 11월 20일 프랑코는 세상을 떠난다.
프랑코는 생전에 그의 후계자를 직접 지명했는데 스페인의 마지막 국왕이었던 알폰소 13세의 손자인 후안 카를로스1세가 바로 그 사람이다.
프랑코가 세상을 떠난 이틀 뒤인 11월 22일 카를로스 1세가 즉위한다.
이는 1939년 그의 祖父 알폰소 13세의 퇴위 이후 44년만에 다시 왕을 맞이하게 된 것이며 부르봉 왕조의 재건이기도 했다.
카를로스 1세는 프랑코와는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
세계의 이목이 '프랑코 이후의 스페인'에 집중된 가운데 스페인의 민주화는 빠르게 진행되는데 1978년 민주화된 헌법을 새로 제정하고 바스크,갈라시아,카탈루니아 등 지금까지 금지됐던 '민족의 자치권'을 인정했고 프랑코 시대 내내 금지되고 탄압받던 노동조합,정당 활동이 헌법으로 보장되었으며 정당정치의 틀을 확립해서 쿠데타를 막는 장치가 마련됐다.
스페인의 민주화가 빠르게 진행되자 세계가 스페인을 보는 눈도 크게 달라지고 이제 스페인은 당당하게 서유럽 선진국 대열로 올라서게 된다.
1981년 2월 스페인 의회에서 신임 수상 인준문제를 논의하고 있던 중 쿠데타가 일어나 현재 진행 중인 민주화를 즉각 중단하고 프랑코같은 절대 권력자의 선출을 요구한다.
軍은 불안한 정치판을 뒤엎고 군정을 위해 봉기한 자신들을 지지해줄 것을 국왕에게 요구했으나 카를로스 1세는 다음 날 새벽 군통수권자인 총사령관 복장으로 TV생중계를 통해 단호한 어조로 민주절차를 힘에 의해 저지하려는 어떠한 세력과의 싸움에서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것을 선언한다.
국왕의 단호하고 확고한 민주 수호 의사에 기가 꺾인 반란군은 스스로 물러났고 이 사건으로 스페인의 민주주의가 완전히 뿌리내렸으며 더 이상의 쿠데타,반란,폭동은 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스페인은 이 날을 '23-F' 민주주의의 중요한 이정표의 날로 기억하고 있다.(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