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야할 자와 받아들여야 할 자아는?
네, 목사님. 아주 중요한 구분입니다.성경과 엘렌 G. 화잇의 사상을 종합하면, "자아를 버리라"는 말은 내 존재 자체를 버리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신하려는 타락한 자아를 버리라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저는 이것을 “버려야 할 자아”와 “회복하여 받아들여야 할 자아”로 구분하면 설교적으로도 매우 선명해진다고 봅니다.
1. 버려야 할 자아 — 하나님 자리에 앉으려는 자아
버려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나 자신이 아닙니다.
버려야 할 것은 하나님 없이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려는 자아입니다.
예를 들면,
"내 뜻이 가장 중요하다."
"내가 인정받아야 한다."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내가 원하는 것을 가져야 한다."
"다른 사람보다 내가 높아져야 한다."
"하나님보다 내 판단을 신뢰하겠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옛 사람, 육신, 자아중심성과 연결됩니다.
특히 죄의 본질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하나님께 속한 왕좌를 내가 차지하려는 것"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루시퍼의 문제도 결국 이것이었습니다.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사 14:13)
죄는 존재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왕좌의 문제입니다.
2. 받아들여야 할 자아 —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나
반대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나의 존재 자체는 거부할 대상이 아닙니다.
창세기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죄인이지만 무가치한 존재는 아니다."
이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죄는 나의 가치와 나의 품성을 손상시켰지만, 나의 존재 자체를 무가치하게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셨고,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받아들여야 할 자아는
하나님께 사랑받는 나
하나님이 창조하신 나
하나님께서 주신 고유한 개성을 가진 나
용서받은 나
성장하고 변화될 수 있는 나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수 있는 나
입니다.
3. 이것을 "자아의 왕좌"와 "자아의 존재"로 구분하면 아주 명확합니다
제가 목사님이라면 설교에서 이렇게 표현하겠습니다.
버려야 하는 것
자아의 왕권
받아들여야 하는 것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나의 존재
즉,
자아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자아의 왕권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이것이 굉장히 중요한 차이입니다.
4. 그래서 자기 부인은 자기혐오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 16:24)
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자기 부인"을
"나는 아무 가치가 없어."
라고 이해하면 복음과 멀어집니다.
예수님의 자기 부인은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겠다는 권리를 내려놓겠습니다."
라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부인의 반대는 자기 사랑이 아니라 자기중심성입니다.
그리고 자기 부인의 반대편에는 그리스도 중심성이 있습니다.
5. 이것을 세 종류의 '나'로 구분하면 더 재미있습니다
① 창조된 나
하나님께서 만드신 나.
받아들여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존재다."
② 타락한 나
죄로 왜곡된 나.
십자가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나는 내 욕망과 교만의 주인이 될 권리가 없다."
③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된 나
성령께서 회복시키시는 나.
기뻐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다." (갈 2:20)
6. 여기에서 아주 아름다운 역설이 생깁니다
자기를 버릴 때 진짜 자기를 발견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역설입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마 16:25)
자기중심적인 가짜 나를 내려놓으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진짜 나가 회복됩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구원은
"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 안에서 본래의 나로 회복되는 것"
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께서 앞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연결하면 아주 아름다운 구조가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
↓
"나는 사랑받는 존재다."
참된 자기 수용
↓
"나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귀한 존재다."
자기 부인
↓
"그러나 나는 하나님이 아니다."
그리스도 중심
↓
"내 삶의 왕좌를 예수님께 드린다."
이웃 사랑
↓
"내가 받은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흘려보낸다."
이것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저는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나를 미워하지 말라. 그러나 나를 하나님 자리에 앉히지도 말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나를 받아들이되, 하나님이 되려는 나를 십자가에 내려놓으라."
이것은 목사님께서 지금 연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 자기 이해 → 자기 부인 → 이웃 사랑'의 핵심 명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엘렌 화잇의 《정로의 계단》과 《시대의 소망》에서 '자아를 버리라'는 표현이 실제로 어떤 의미로 사용되는지 문장들을 직접 뽑아 대조해 보면, 이 구분이 단순한 현대적 해석인지, 아니면 그녀 자신의 사상에 실제로 근거하는지를 상당히 정밀하게 검증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