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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옥의 개념,역사적 유래, 비판
1. 연옥의 개념
가톨릭교회에서는 연옥설을 주장한다. “연옥”이란 라틴어로 "Purgatorium"이며, “깨끗하게 하다”, “정화하다”는 뜻이다. 즉 연옥이란 “정화의 장소”를 말한다. 고린도전서 3장 15절에서 그 유래를 찾고 있으며, 인간의 영혼이 머물고 있는 정화 받는 장소가 있다고 주장한다.
2. 초대교회 교부들이 진술한 비슷한 개념들
가톨릭교회가 공적으로 연옥을 교리로 확정하기 이전 초대교회 교부들의 진술에서 나타난다. 그러나 초대교회 교부들의 진술들은 연옥을 말하기보다는 죽음 후에 인간의 영혼이 정화의 과정을 거친다는 믿음을 보여준다.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는 마태복음 5: 26을 해석하면서 영혼이 부활하기 위하여 그의 죄에 대한 대가를 한 푼도 남김없이 치러야 할 교도소에 대하여 말한다. 키프리아누스(Cyprianus)에 의하면, 믿음 속에서 세상을 떠난 성도들, 특히 순교자들은 죽음 즉시 궁극적 구원을 얻지만, 박해로 인하여 그리스도를 공적으로 부인하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이기를 원하였던 사람들은 죽음 후에 정화를 받을 것이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Clemens)에 의하면, 살아 있는 동안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었던 정화의 과정은, 죽음 후에도 계속되어야 한다. 오리게네스(Origenes)는 클레멘스의 뒤를 이어, 야웨신이 죄 된 인간을 위하여 설치한 "채무 구류소"(Schuldgefangnis)와 "지혜로운 불"에 대하여 말한다. 이 불을 통하여 죄로부터 깨끗해지는 정화의 과정이 일어난다. 이 과정은 인간의 죄에 대한 복수가 아니라, 죄에서 인간을 깨끗이 씻고 부활의 영원한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한 야웨신의 자비로운 행위로 이해되어야 한다. 니사의 그레고리(Gregory of Nyssa)에 의하면, 인간 안에 있는 야웨신의 형상이 회복되기 위하여 정화의 고통스러운 과정이 필요하다. 이 과정을 그레고리는 정화하는 불로써 묘사한다. 이 정화의 과정이 죽음 이전까지 실현되지 않을 때, 그것은 부활 후에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이 끝난 후, 인간은 야웨신의 삶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3. 중세 가톨릭교회의 연옥의 교리화
중세기에 이르러 연옥설은 가톨릭교회 내에서 크게 발전하였다. 이 시대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죽은 자들의 영혼이 땅 위에서 지은 죄와 벌에서 정화의 불을 통하여 깨끗하게 된다고 주장하였다.(Albert, Thomas v. Aquinas, Bonaventura, Skotus, Durandus) 본래 정화의 불이 물질적인 것인지 아니면 영적인 것인지, 그 의미가 분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정화의 불을 물질적인 것으로 파악하였다. 이리하여 정화의 불은 하나의 장소로 생각되었다.
1274년 리용(Lyon) 공의회는 연옥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발표한다. 참으로 참회할 뜻이 있는 자들이 참회의 열매들을 통하여 그들의 행위와 게으름에 대한 보상을 하기 이전에.. 사망하였을 경우, 그들의 영혼은 죽음 후에 정화의 벌을 통하여 (poenis purgatoriis seucatharteriis) 깨끗하게 될 것이다. 그들의 벌을 면케 하기 위하여, 살아 있는 신자들의 중재의 기도, 미사 성제(聖祭)와 기도와 헌금, 그리고 교회의 질서에 따라 신자들이 행하는 경건의 여러 사역들은, 그들의 벌을 면케 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연옥설은 1336년 교황 베네딕트 12세(Venedikt XII)의 교서를 통하여 가톨릭 교회의 공적 교리가 되었다. 이 교서에서 교황은 마지막 부활이 있을 때까지 죽은 자들이 잠자는 상태에 있다는 교회의 전통적 이론을 거부하고, 죽은 자들은 죽음과 동시에 야웨신의 심판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각 사람은 죽음과 동시에 야웨신의 심판을 받는다. 이 상태에서 영원한 삶에서의 자신이 어떻게 되는 지에 대한 모든 것은 인간 영혼 자신의 결단으로는 되돌이킬 수는 없는 상태가 된다. 마지막 죽음의 순간까지 야웨 신을 거부하는 자는 지옥으로 떨어지는 반면, 믿음 가운데서 죽는 자는 죄의 용서를 받는다.
믿음 가진 신자는 그러나 야웨 신의 얼굴을 볼 수 있을 만큼 죄로부터 완전히 깨끗할 수 없다. 그는 자기의 죄에 상응하는 벌을 받지 않았고, 자기의 죄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죽은 자들의 영혼은 그들의 죄를 완전히 벗기까지 연옥의 불 속에서 정화되어야 한다. 지옥은 모든 희망을 버릴 수밖에 없는 장소이지만 연옥은 죽음 후의 미래와 희망으로 가득한 장소이다.
이 세상에 사는 신자들의 삶이 끊임없는 참회와 정화의 과정 속에 있는 것처럼, 죽은 자들의 영혼도 연옥의 불 속에서 참회하며 죄에 대한 벌을 받고 정화되어야 한다. 정화의 불 곧 벌과 정화의 상태가 있다.
무거운 죄들과 시간적인 죄의 벌에 묶여 있는 영혼들은, 이 상태 속에서 정화된다. 이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이 규정한 법에 상응할 수 있는 데까지 인격이 완성되어진다. 연옥에서 인간의 영혼은 두 가지 벌을 받는다. 첫째는 저주의 벌이다. 하나님을 동경하고 있는 영혼들에게 하나님을 보는 기간이 연기되어 고통을 받게 하는 벌이다. 둘째는 감각의 벌이다. 하나님과 분리시키는 죄를 참회하고 고난을 받으면서 정화하는 벌이다.
살아 있는 신자들은 연옥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하여 트렌트 공의회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연옥에 있는 영혼들은 "신자들의 중보의 기도를 통하여, 무엇보다 먼저 야웨신의 마음에 드는 제단의 제물을 통하여 도움을 받는다" 즉 신자들은 죽은 자들을 위한 중재의 기도와 교회에 바치는 제물을 통하여 정화의 과정이 빨리 끝나도록 도와줄 수 있다.
가톨릭교회는 살아 있는 신자들이 연옥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할 수 있는 길을 ‘성도의 교통’이라는 개념에서 찾아낸다. 살아 있는 성도와 죽은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 있는 성도와 죽은 성도의 교통이 가능하며 성자의 중재가 가능하며 대신 보상을 제시 할 수 있다고 본다. 죽은 성도를 위하여 성만찬 즉 죽은 사람을 위한 미사를 하거나 살아 있는 성도가 죽은 자를 위하여 기도함으로 보상을 제시할 수 있다고 본다. 연옥이 어디 있는지, 연옥의 고통과 정화 과정이 얼마나 오래 걸릴 것인지, 연옥의 장소와 시간적 길이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그것은 신적 신비에 속한다.
4. 연옥설의 문제점
첫째는 성경에 명백한 증거가 없다.
그들이 제시하는 구절은 마태복음 12장 32절과 고린도전서 3장 11절에서 15절이다. 마태복음 12장 32절에서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 하리라”는 말에서 사람이 지은 죄를 용서하는 과정이 죽은 후에 분명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본문은 용서 받지 못 하는 성령을 거역하는 죄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본문으로 이 세상과 저 세상의 중간 개념인 연옥에 대한 설명이라기보다는 성령을 거역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에 대한 강조의 의미가 더 중요하다.
고린도전서 3장 11절에서 15절에서는 한 개인의 특수한 심판에 대한 언급이라고 말한다. 한 개인의 선한 일과 악한 일에 대하여 심판이 있을 것에 대한 언급이라고 보는 데, 그러나 이 본문은 거짓된 이론을 불에 타버리지만 복음의 참된 이론은 영속성을 가진다는 것에 초점 맞추어져 있다.
둘째는 기존 교회에서 행하는 일들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교리를 만들었다.
박해 시에 그리스도를 공적으로 부인 한 자들에 대한 연민으로 이들을 위한 설명을 시작했고, 살아 있는 성도들이 죽은 자신의 친지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연민, 걱정들로 인하여 중재 기도와 헌금 등을 드리는 것을 합리화하고, 또한 그것으로 교회의 재정이 마련되어지는 것을 정당화 하기 위하여 이 교리가 만들어졌다. 문제는 교회의 편리를 위하여 교리가 만들어져 합리화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셋째는 죽음 이후 신자에 대한 정화가 신자의 대리적 보상을 한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인간이 죄의 사함을 받는 것은 인간의 노력으로 얻을 수 없다. 인간이 어떠한 노력을 하더라도 자신을 정화시킬 수 없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인간은 하나님에 의해서 용서되는 것이다.
넷째는 영원한 생명을 얻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은 인간의 업적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인간은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되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다섯째는 인간의 죽음은 육체가 죽는 것이다. 육체의 죽음과 함께 의식이나 인지, 의지도 함께 죽는다. 따라서 육체가 결여되지만 의식과 의지와 인지를 가진 영혼이 있다고 말하는 주장은 현실적인 죽음의 현상을 거부하는 것이다.
1. 연옥설이란?
“천국과 지옥 사이에는 연옥이라는 것이 있는데 사람이 죽은 다음에 죄의 그림자도 없는 깨끗한 영혼이 되면 천국으로 가고, 대죄 중에서 하나님을 영영히 등진 사람은 지옥에 가고, 소죄나 불완전한 죄는 연옥에서 보속해야 한다. 연옥에서 죄를 충분히 속량 받거나 합당한 형벌을 받기까지 고통을 당해야 한다. 그들의 고통을 땅위에 있는 사람이 대신 드리는 미사, 헌금, 기도, 그 밖의 선행 등으로 단축시킬 수 있다” 이렇게 주장하는 근거를 외경인 마카베오 하 12:43-45에 두고 있다.
“소죄 (하나님의 법과 교회의 법을 작게, 용서받을 수 있게 범한 죄)를 짓고, 세상을 떠난 자들의 영혼은 연옥으로 가게 되며, 지은 죄들로 인해 속세에서 받아야 하는 형벌의 빚을 다 갚지 못한 자들의 영혼은 그에 상응하는 보속을 받기 위해 연옥으로 가게 됩니다” (교리문답 107쪽)
“나는 연옥의 존재와 그곳에 감금되어 있는 영혼들이 신실한 자들의 대도(代禱)에 의해 도움을 받는다는 사실을 확고히 믿느라” (교황 피우스4세, 신조 6항)
“죽은 이의 영혼은 살아 생전에 닦은 행실을 따라 하느님 앞에 천국 혹은 지옥, 그리고 연옥(천국에 가기전 단련받는 중간 처소)의 심판을 받는다. 교회는 천국에 들지 못하고 연옥에서 보속하고 있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기를 바란다” (천주교를 알려 드립니다 - 38p)
2. 연옥설 비판
가. 연옥이란 말은 성경에 한번도 나오지 않는 말이며 전혀 근거도 찾아 볼 수 없다.
나. 연옥설은 믿음으로 구원받는 성경의 진리를 반대하는 이론이다. 그리고 주님께서 하신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나니”라고 하신 믿는 자의 구원을 부인하는 것이다(요 6:48)
다. 연옥설로 말미암아 교황의 면죄권, 면죄부 판매, 죽은 자를 위한 미사, 기도, 자선, 헌금을 하게 하였다.
라. 연옥설은 공덕 축적설을 말하며, 이는 본인의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공로로 구원 얻는 것을 말한다.
마. 교황은 하늘에 쌓여 있는 수많은 공로를 나누어 줄 수 있다고 주장하였으므로 결국 지옥에 간다는 것은 교황의 인색함 때문이기에 교황이 지옥을 보내는 특권이 있게 된다.
바. 죽은 자를 위한 제사를 용납한다. “유교에서 주장하는 ‘죽은 이 섬기기를 산 이 섬기듯이’하라고 권장하고 있다. 조상 제사는 미신이 아니라 관습이며 이를 허용한다”고 하지만 제사는 분명히 성경에서 금한 행위이다(고전 10:20). 뿐만 아니라 그들 스스로 주장하기를 1791년 신해년 천주교 박해는 조상 제사 문제로 박해를 받았다고 하였다. 오늘날 에큐메니칼 운동으로 모든 종교를 하나로 생각하기 때문에 과거에 반대했던 것들을 지금은 다 용납하고 권장하는 것이다. 심지어 천주교 신부가 절간에 가서 설법을 하고, 중이 천주교 성당에서 설교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가톨릭의 연옥설
연옥설 과연?
성 경에는 연옥이 없다. 천주교의 연옥 교리는 정경(正經)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니다. 이 연옥설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를 교회사의 초기 수세기 동안에는 찾아볼 수 없다. 성경은 사람이 죽은 후에 거하는 영원한 처소는 천국과 지옥 두 곳뿐이라고 분명히 언급되어 있다. 그러므로 천주교의 연옥 교리는 로마가톨릭교회가 고안해 내어 만든 비성경적인 거짓 교리이다. 여기서는 이러한 비성경적인 연옥에 대해 그 정의와 유래 그리고 근거와 문제점 등을 살펴보자. 또한, 전직 가톨릭 사제들의 연옥에 대한 견해에 대해서도 알아보자.
먼저 비성경적인 연옥의 정의에 대해 살펴보자.
(1) 국어사전에서 연옥은 천주교에서, 죄를 범한 사람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불에 의한 고통을 받음으로써 그 죄가 씻어진다는 곳. 천국과 지옥 사이에 있다고 쓰여 있다.
(2) 천주교 용어집에서 연옥이란 하느님을 철저하게 등진 사람은 지옥의 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 외에 하느님께 귀의하여 죄를 용서받았으나, 다소간의 흠이 있는 자는 세상을 떠난 후 하느님 대전에 나아가기 전에 스스로 정화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정화되는 상태를 장소로 표현하여 연옥이라 일컫는다고 쓰여 있다(<천주교 용어집>, 최형락, 성신출판사, 242쪽).
(3) 가톨릭교회 교리서에서 연옥은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죽었으나 완전히 정화되지 않은 사람들은 영원한 구원이 보장되기는 하지만, 하늘나라의 기쁨으로 들어가기에 필요한 거룩함을 얻기 위해 죽은 후에 정화를 거쳐야 한다. 교회는 선택된 이들이 거치는 이러한 정화를 연옥이라고 부른다고 쓰여 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제1편>,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389쪽).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연옥 교리의 비성경적인 면을 살펴보자.
(1) 가톨릭 성경이나 개신교 성경에는 연옥이 없다. "예수님께서 그(십자가의 강도)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루카 23:43)." 이 말씀처럼 강도에게도 연옥은 없다.
(2) 성경에 예수님은 천국과 지옥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있다고 말씀했다. "우리와 너희(천국과 지옥)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 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루카 16:26)." 이처럼 예수님은 연옥에서 천국으로 가는 것을 언급하지 않았다.
(3) 성경에서 기회는 단 한 번이다. "사람은 단 한 번 죽게 마련이고 그 뒤에 심판이 이어지듯이(히 9:27)." 이처럼 죽은 뒤에는 곧 바로 심판이 있으며 연옥이 있지 않다.
(4) 성경에 하나님의 용서는 모든 죄를 포함한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이들은 단죄를 받을 일이 없습니다(롬 8:1)." 이처럼 예수님 안에서 죽은 자들에게는 연옥이 필요 없다.
(5) 성경에는 예수님을 통해 연옥 없이 하느님과 화해한다. "곧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면서, 사람들에게 그들의 잘못을 따지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화해의 말씀을 맡기셨습니다(2코린 5:19)." 이처럼 하느님의 은혜로 하느님과 화해한다.
(6) 성경에 예수님은 완전한 희생 헌물을 드렸다. "한 번의 예물로 거룩해지는 이들을 영구히 완전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히 10:14)." 이처럼 연옥을 주장하는 것은 예수님의 희생 예물이 완전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7) 성경에 신자들은 값없이 의롭게 된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느님의 영광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롬 3:23~24)." 그러나 천주교는 값없이 의롭게 됨을 믿지 않는다(<천주교 사상 평가>, 마틴 로이드 존스, 그리스도예수안에, 190~192쪽).
다음으로 천주교에서 주장하는 연옥의 유래와 근거와 문제점에 대해 알아보자.
연 옥 교리는 주후 593년에 교황 그레고리 1세가, 죽은 사람이 일시적으로 가는 정화(고통)의 장소인 연옥이라는 교리를 만들어 냈고, 1439년에 열린 플로렌스 공의회에서 이 교리를 공인했다. 그리고 16세기에 열린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연옥에 관한 교령을 통해 분명하게 공표했는데, 그 이유는 연옥 교리는 가톨릭이 종교개혁이라는 위기의 돌파구를 모색하던 시기에 신교와는 다른 구교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내부 체제와 교리를 정비하기 위함이었다.
상 기처럼 연옥 교리는 주후 600년경에 시작되어 15세기에 와서 공의회의 결정을 거쳐 정식으로 천주교 교리로서 자리를 잡았다. 왜 오랜 기간 동안 교회의 교리로서 제정되지 못하다가, 중세 시대 면죄부의 판매가 심화될 즈음에 교리로 제정되었는가? 많은 사람들은 종교개혁의 직접적인 원인이 면죄부 판매에 있다고 보는데, 면죄부 판매는 루터 당시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연 옥은 면죄부 판매를 위한 도구로, 적절히 이용되는 잘못된 교리로서 그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한 셈이 된다. 따라서 연옥의 교리는 가톨릭의 대사부 교리와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이 증명이 된다. 연옥의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한 대사부 교리, 즉 조건부로 뭔가를 바쳐야 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은 대사부 교리와 관계가 있으며, 연옥에서 고통을 당하는 영혼들을 위하여 대사부 교리에 의한 면죄부 판매가 1190년에 본격적으로 허용되어 실시되었다.
이 렇게 연옥 교리가 실행되면서 교회는 신자들로 하여금 거액의 헌금을 거뒀고, 또 교회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구원을 결정해 주는 결정권자로서 권한을 행사했다. 16세기 종교개혁 당시에도 로마가톨릭교회는 천국과 지옥의 중간 지점인 고통의 세계인 연옥에서, 평신도가 헌금을 통에 넣는 순간에 연옥에 있는 영혼들이 천국으로 옮겨진다고 거짓 교리로 신자들을 속였다.
오 늘날 그러한 면죄부 판매는 사라졌지만 연옥은 여전히 그들의 교리로 존재하며 죽은 자들의 구원을 위한 사제들의 가르침에 따라서 신자들에게 더욱더 많은 선행을 강조하여 구원의 대가를 치르도록 가르치는 도구로 작용하고 있다. 그리하여 가톨릭 신자들은 구원을 위한 대가로써 연옥에 있는 조상이나 형제나 자매들을 위해서 선행을 나타내고, 또 자신들을 위한 보속을 위한 대가로써도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성경적 관점으로 본 로마 가톨릭>, 양향진, 가나다출판사, 131~136쪽).
그럼 이제 전직 가톨릭 사제들의 연옥에 대한 견해를 들어 보자.
(1) 스페인 출신의 호세 리코 신부는 가톨릭 신앙과 연옥 교리에 대해 이렇게 간증했다.
나 는 로마가톨릭 사제가 되어 19년 동안 한 순간도 난파의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화목하는 평온한 항구에 도착했다. 나는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개신교의 공세에 위협을 느낀 남아메리카의 주교들에게 초빙을 받아 조국 스페인을 떠났다. 스페인 사람들의 영혼에는 본능적으로 개신교를 반대하게 만드는 어떤 것이 자리 잡고 있다.
칠 레의 안토파가스타에 도착한 나는, 주교좌성당 사제로서 개신교를 무너뜨리겠다는 내 계획을 실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개신교 전도지를 보았을 때, 나는 일전을 벌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혐오스러운 심정으로 전도지를 읽었다. 그리고 나중에는 과감하게도 내 서재에 들여놓은 개신교 서적들을 꺼내 읽어 보았다. 그런데 그때까지 개신교에 대해서 쌓아왔던 혐오감이 누그러지면서 조금씩 공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개 신교의 모습이 그동안 들어 왔던 바와 달랐고, 로마가톨릭 신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바와도 현저하게 달랐다. 복음주의 서적들에는 성경의 거룩한 책들에서 이끌어 낸 심오한 가르침이 가득 실려 있었다. 개신교 성경과 로마가톨릭 성경 사이에는 로마의 출판 인가 표기가 없다는 점을 빼놓고는 차이를 발견할 수 없었다. 하지만 복음주의 신자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일반 로마가톨릭 신자들의 삶과 현저하게 달랐다. 내 충실한 교인들이 우리가 혐오하는 개신교 신자들처럼 도덕적으로 단정하게 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 히브리서를 공부하면서 연옥의 무용성과 거짓성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히브리서의 저자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자기 생명을 바치실 때 '죄를 정결케 하는 일(히 1:3)'을 하심으로써 우리를 정결케 하는 일을 완료하셨다고 말하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정결케 하셨다면, 현세에서 구원을 받는 영혼들이 왜 다시 정결함을 받기 위해서 연옥으로 가야 한단 말인가? 연옥이 성경에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데, 과연 로마가톨릭교회가 말하는 연옥이란 어떤 것이란 말인가?
그 뒤 나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구원을 받았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었으며 그분의 피가 내 모든 죄를 씻어 내기에 전능하기 때문이었다. 하나님 앞에서 내 영혼을 깨끗이 씻어 주는 일에 로마교회의 의식들과 행사들과 인간의 전통들이 얼마나 무능하고 무익했던가? 그제야 나는 예수께서 하신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 14:6)"는 말씀이 이해가 되었다. 그토록 오랜 세월을 그릇된 길에서 방황한 일에 대해서 용서를 구했고, 이제는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살기로 작정했다. 19년 간 사제직을 수행해 오는 동안 계속된 비극은 이렇게 해서 막을 내렸다(<교황대신 예수를 선택한 49인의 신부들>, 아가페출판사, 리처드 베닛, 203~208쪽).
(2) 미국 출신의 밥 부시 신부의 가톨릭 신앙과 연옥 교리에 대한 견해를 들어 보자.
나는 1953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예수회에 들어갔다. 모두 13년에 걸쳐 신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이런 저런 강의를 다 들었고, 이런 저런 연구를 다 해 보았다. 마침내 신학 수업을 마치고서 1966년에 사제 서품을 받았다.
로 마가톨릭교회는 미사가 땅에 사는 사람들과 이미 죽은 사람들의 죄를 제거하는 데 효과적인 속죄 제사라고 말한다. 그런 미사를 드리는 사람들은 미사가 연옥에서 체류하는 기간을 줄여 준다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죽은 자를 위하여 미사를 드리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죽으면 즉시 심판이 따른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구원을 받은 사람이라면 즉시 천국에 간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죄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라면 즉시 지옥에 간다. 지옥에 들어간 사람이 천국으로 자리를 옮기는 경우란 없다.
로 마가톨릭교회는 미사가 속죄 제사이기 때문에 연옥에서의 체류 시간을 줄여 줄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죄에 대해서 이루어진 모든 고난과 모든 속죄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으며, 우리는 이 진리를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아직 생명이 있는 동안 영생을 받고 거듭날 필요가 있다. 성경에는 죽은 뒤에 어떠한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는 생각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가 없다.
로 마교회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미사가 예수의 지속적인 제사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 교회는 유아들이 세례 받을 때 거듭나고 영생을 받는다는 교의들을 버리지 않을 것이며, 교인들에게 짐 지운 다양한 요구 조건들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지 금도 나는 로마가톨릭 신자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그들을 돕고 싶다. 그들이 성경을 따르는 데서 오는 구원의 자유와 생명과 복을 발견하도록 도와주고 싶다. 그리고 나는 어느 가톨릭 신자나 사제에게도 반감을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을 결박하고 있는 것은 교의들과 교리들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을 풀어 주시기를 원한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막 7:8)"고 말씀하셨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대치하고 있는 문제이다. 이러한 유전 곧 전승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파괴한다. 그것들은 성경의 진리들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내 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겪은 것 중에서 가장 큰 변화에 직면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까지 로마가톨릭교회를 철저히 믿었고, 인생의 많은 기간 동안 그 교회를 섬겼기 때문에 내게는 그 순간이 대단히 고통스러운 시기였다. 나는 귀국하면서 내가 로마교회를 떠나지 않을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1987 년에 나는 사직서를 쓰고 과거 나의 상관들이었던 사람들에게 내 뜻을 전함으로써 정식으로 로마가톨릭교회를 떠났다.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로마에 편지를 보냈다. 그렇게 한 이유는 그들 모두에게 증거를 하고 싶었고, 그들에게 내가 떠나는 이유를 설명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성경을 따르기를 원했다(앞의 책, 83~94쪽).
(3) 인도 출신의 사이먼 코투 신부의 가톨릭 신앙과 연옥에 대한 견해를 들어 보자.
나 는 로마에서 사제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았다. 그 뒤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인도 코타얌 대학에서 경제학 교수로 활동했고, 인도 우차부르에 있는 스데반대학의 학장을 지냈다. 이런 높은 지위들은 내게 사회적 명예와 물질적 번영을 주었다. 그러나 사제로서 25년을 봉직하면서 다양한 의식들을 집례하는 순간조차도 영적인 기쁨이나 영혼의 평안을 얻지 못했다.
나 중에 내가 로마가톨릭 사제직을 버리고 회심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일을 간증하게 된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강권을 받았기 때문이다. 25년간 나는 로마가톨릭교회의 의식을 엄격히 준수해 온 사제였다. 하지만 사실 가톨릭교회의 의식 체계란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에 대한 어둠과 무지로 이루어진 거대한 난공불락의 요새였고, 나는 그 속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과 거에 나는 아주 심각하게, 끈기 있게, 진지하게 죽은 성인들에게 중보를 간구했고, 연옥에 있는 죽은 자들을 위해서 기도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 2:5)"는 성경의 가르침을 몰랐던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만 신자를 위하여 죽으셨고, 죄에 대한 완전한 보속을 치르셨다. 이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성경에는 죽은 영혼들이 고통 속에서 죗값을 치른다는 연옥이라고 하는 곳이 전혀 언급되지 않은 것이다(앞의 책, 143~145쪽).
(4) 이탈리아 출신의 존 자논 신부의 가톨릭 신앙과 연옥에 대한 간증을 살펴보자.
나 는 이탈리아 북부에서 가난하지만 독실한 로마가톨릭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장성한 후에는 추기경에게 사제 서품을 받은 뒤 미국으로 파견되었다. 미국에 가서 몇 년 뒤 일부 개신교 방송을 들었는데, 설교자들은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는 그리스도의 명령을 정말로 이행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 가 로마가톨릭교회에 있음으로써 얼마나 올바른지, 그리고 그 교회의 밖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그릇된지를 검증해 보기 위해서, 나는 성경을 근실하게 기도하는 심정으로 읽기 시작했다. 성경을 많이 읽고 기도를 더 많이 할수록 로마교회가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요한복음에서 나는 다음과 같은 말씀들을 읽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그리고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우 리의 구원이라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성경은 이보다 더 분명하게 가르칠 수가 없었다. 나는 로마가톨릭 사제였는데도 내 영혼의 구원을 확신하지 못했다. 그런데 성경을 읽으면서 사제로서의 열정과 선행으로 나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경에서 이런 구절을 읽었기 때문이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입 2:8~9).". 이 구절이 로마가톨릭의 가르침에 대한 내 신뢰를 흔들어 놓았다.
지 금까지 나는 로마의 모든 가르침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였다. 로마가톨릭 신자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로마의 교리들을 아무런 의문도 제기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파문을 당하는 길밖에 없었다. 나는 로마교회에 대한 모든 것을 의심하기 시작했으므로 성경을 이전보다 더욱 근실하게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치르신 제사가 인류를 구원하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 10:10)."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히 10:14)." "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히 7:27)." 이러한 말씀대로라면 미사나 고해성사나 연옥이 아무런 필요가 없었다. 유일한 참 교회의 교리라고 말하던 것들이 모두 로마교회가 고안해 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앞의 책, 242~244쪽).
지 금까지 몇몇 신부들의 간증을 통해 그들의 가톨릭 신앙과 연옥의 거짓 교리에 대해 살펴보았다. 결론적으로 천주교의 연옥 교리는 로마가톨릭교회가 인위적으로 고안해 내어 만든 비성경적인 거짓 교리이다. 이것은 상술했듯이 중세 시대에 교회 건축을 위한 면죄부 판매가 심화될 즈음에 교리로 제정되어 시행되었다. 이러한 연옥 교리는 신자들로 하여금 금전을 편취하여 교회를 유지하고 성장시키기 위한 수단과 목적으로써 가톨릭에서 날조하여 만든 비성경적인 거짓 교리에 불과한 것이다.
이 것은 마치 개신교회가 성경에 없는 성직자인 목사 제도를 만들어 내어 평신도와 구분시켜 교회 내에서 일인 사제 노릇을 하게 하고, 또 국내의 개신교회가 신약성경에 없는 헌금 제도인 십일조를 만들어 내어 신자들에게 강요하는 것과 같이, 모두가 다 자기네 교회 체제를 유지하고 성장시키기 위한 수단과 목적에 불과한 것과 다름 아니다. 여하튼 기독교 신자들은 천주교의 연옥 교리가 헛된 속임수(골 2:8)임을 직시하고, 그러한 거짓 교리에 미혹되지 말고 어떤 교리나 제도들도 성경에 나타난 대로 믿어야 할 것이다.
권영문/전 경성대 교직원, 현 기독교 칼럼니스트·<성경적 기독교와 엉터리 기독교> 저자
연옥설 교리는 왜 필요했는가?
연옥설은 로마가톨릭교회와 개신교(참 그리스도교)를 완전히 분리시키는 계기가 된 교리이다. 연옥설 교리는 그리스도교를 이방종교화 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면서 아울러 1517년 동안이나 로마가톨릭주의 속에 있다 다시 성경의 그리스도교로 돌아가게 만든 계기를 만든 교리이다.
연옥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면죄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연옥론의 면죄부의 정당성을 위해서 날조된 것이기 때문이다.
면죄부가 로마가톨릭교회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014년 경 프랑스 남부에서였다. 그들은 교회의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무슨 죄든지 사함 받을 수 있다는 면죄부를 신자들에게 비싼 값으로 팔기 시작했다. 마치 부적(符籍)을 파는 것처럼.
면죄부 등장하다.
면죄부 사용의 첫 유명한 예는 프랑스인 교황 우르반 2세가 제1차 십자가전쟁의 참가자들에게 성지(聖地) 탈환에 나서면 그 죄를 완전 면죄한다고 선포하면서부터이다. 면죄부는 예상외로 큰 호응을 얻어갔다. 돈을 내면 모든 죄를 사함 받고 연옥생활도 단축된다니 누군들 혹하지 않겠는가?
교황청은 면죄부를 여러 면으로 활용했다. 성지순례, 교회 건축, 교량·도로 건설 등의 좋은 사업도 면죄부를 사는 일에 해당된다고 하였다.
로마 교황청은 면죄부를 판매하는 한편 연옥을 신학적으로 이론화시켜 나갔다. 로마교회 최대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악인은 죽으면 곧 끝없는 지옥으로 내려가 거기서 영원히 나올 길이 없고, 교회가 제공한 은혜를 충분히 이용한 자들은 곧 천국으로 간다. 교회의 은혜 방법을 완전히 이용하지 못한 대부분의 신자들은 연옥에 내려가 얼마 동안씩 훈련, 징계의 정화를 받아야 천당에 올라간다”고 말했다. 연옥에서 천국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헌금, 고행, 봉사, 구제 등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1300년, 교황 보니파시오 8세는 그해를 희년(禧年)으로 선포했고, 성 베드로 성당까지 순례 여행하는 이들에게 푸짐한 면죄부의 선물을 주는 은택을 내렸다. 그해에 2백만 명이나 되는 사람이 일생일대의 면죄부를 사기 위해 몰려들었고, 두 사제가 성 베드로의 무덤이라 추정되는 곳 앞에서 손에 갈퀴를 들고 밤낮으로 분주하게 돈을 긁어모아 재물을 쌓았다.
교황은 이 긁어모은 것 중에서 거액을 자기 친척에게 주어 부자로 만들었다. 그 친척들은 이 돈으로 수많은 성(城)과 부동산들을 매입하기도 했다(듀란트, 문명 이야기).
면죄부는 갈수록 남용되었고 추악한 형태를 띠게 되었다. 1450년 경, 옥스퍼드대학교의 총장인 토마스 가스코이그네는 “면죄부 상인들이 대학 구내를 돌아다니며 용서의 서류를 떼어 주면서 2펜스를 받는데, 맥주 한 컵에, 매춘부를 사기 위한 금액으로 팔아먹는다.”라고 불평을 털어 놓기도 했다.
면죄부를 통한 수익금은 엄청나게 많아졌고 그만큼 교황청은 부패해졌으며 신자들의 원망과 불평 역시 쌓여갔다. 그러나 로마 교황에게 대항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대역죄임을 누누이 교육받아 왔기 때문에 누구도 이 잘못된 제도를 공공연히 비판할 수가 없었다.
면죄부를 팔아 세워진 베드로대성당
로마 교황정의 부정부패를 보면서도 참아야 했던 백성들의 분노는 드디어 독일의 도시에서 폭발하게 된다.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은 100년 이상 막대한 비용을 들여 공사했으나 공사비용이 얼마나 소요되는지 도무지 교황청의 재정으로 감당할 수가 없었다.
이에 레오 10세는 성당 완성 공사비 조달을 위해 1506년부터 면죄부를 팔기 시작했다. 교황은 수금책임자로 도미닉 교단의 수도사이며 웅변가인 요한 티첼을 임명하였다. 티첼은 웅변조의 언어로 면죄부를 사갈 것을 선전했다.
“사람들아 즐거워하라. 죄 있는 자들은 기뻐하라. 여기 속죄 증서가 몇 만 장이나 있다. 이 면죄부를 사는 순간 그대들은 죄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여러분이여, 지금 맬 수도, 풀 수도 있는 권세를 받은 교회가 천국과 지옥문을 열어 놓았습니다. 면죄부를 사는 사람은 이 자리에서 곧 죄를 용서받을 것이요, 연옥에 있는 자를 위해 이 표를 사면 그 은화가 헌금 궤 속에 떨지는 소리와 함께 그는 곧 천국으로 올라갈 것입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선전이었다. 이 광경을 목도한 사람이 바로 유명한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이다.
루터 신부에게 교황청의 면죄부 판매는 종교적 사기요, 기만에 불과했다. 그는 티첼 신부가 비텐베르그로 입성하는 것을 금하고 면죄부 반대 설교를 했다. 복음의 본질에 역행하여 돈으로 죄를 용서할 수 있다는 터무니없는 거짓말로 선량하고 무지한 민중의 재산을 사기해가려는 교황청의 기만을 사정없이 공격하다가 1517년 10월 31일에 비텐베르그교회의 게시판에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게시하기에 이르렀다.
이 95개 조항의 요지는 한마디로 하나님의 값없으신 은혜로 용서받고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지 면죄부 따위를 통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면죄부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 95개 조항의 일부를 옮겨본다.
《그리스도가 말씀하신 참회는 일시적 행동이 아니요 일평생 마음의 습관이다. 교회의 참된 보화는 신의 용서하시는 은총이다. 성도는 신의 훈련을 피할 것이 아니라 구할 것이다. 참된 양심의 후회, 가책을 느끼는 신자는 면죄부가 없어도 고통, 죄책에서 벗어난다. 면죄부가 교황청에 지은 죄는 몰라도 신께 지은 죄는 용서할 수 없다. 면죄부는 우리 죄를 사할 수 없다. 회개의 내적 변화가 일어나기 전에는 죄 사함을 받을 수 없다.
우리의 공로나 업적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 구원은 오직 신의 은사이다. 죄를 사하는 것은 속죄권이나 돈이 아니라 회개뿐이다. 신만이 생사의 주님이시다. 죽은 자는 교회의 손에 있지 않고 신의 손에 있다. 그러기에 연옥에 있는 영혼을 위한 면죄부는 무효이다. …》
연옥설의 교리는 성경에도 없고, 초대교회에도 없었다. 이 교리는 이단과 몇몇 신학자들에 의해 가르쳐지다가 6세기 경 교황 그레고리에 의해 받아들여졌고, 1439년 플로렌스 공회에서 이 교리가 선포되었으며 1548년 트렌트회의에서 재확인되었다.
특히 트렌트회의의 경우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불의에서 구출하셨다. 그러나 우리의 죄과에 해당되는 형벌 전체에서 구출하시지는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외에 우리의 죄의 청산을 위하여 연옥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혼은 육체를 떠났을 때 이 고통의 장소로 간다. 누구든지 이를 믿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라고 규정하므로 그들은 그리스도의 속죄의 완전성을 부인하고 자력 구원의 그릇된 교리를 전파하고 있다.
그럼에도 로마교회에서는 “칼빈도 연옥의 존재는 부정하면서도 1600년 동안 그와 같은 가르침이 있었음은 인정했다”는 말로(「가톨릭과 개신교」p.66) 마치 연옥설이 성경에서 나온 것이며, 성경적 그리스도교가 1600여 년 동안 지켜져 온 것으로 오도하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도 지적한 것처럼 초대교회에는 연옥설이 없었으며, 이에 대한 주장들이 간간이 있어 왔으나 단 한 번도 교회의 정통적인 회의에서 인정을 받지 못했다. 이 교리는 그리스도교가 콘스탄틴에 의해 공인되면서 전 세계 교회의 지배권을 얻게 된 로마교회가 이방 종교에서 얻어온 교리에 불과하다.
연옥교리, 속죄사역을 파괴한다.
연옥교리는 그리스도교의 근본진리를 파괴시키는 가장 그릇된 교리이다. 이 교리는 예수 그리스도 속죄의 완전성을 부인하고 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인류의 죄를 사해 주고 구원해 주기에 완전하다고 한다. 인간적인 수행이나 고행이 없이도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믿기만 하면 구원받고 천국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 “다 이루었다!”라고 외치셨다(요 19:30). 무엇을 다 이루었다는 것인가? 인간의 구원문제를 다 이루었다는 것이다. 죄없는 독생자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공의가 풀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저를 믿는 자들은 완전하게 구원받을 수 있음을 주님께서는 선언하고 계신 것이다.
연옥교리는 결코 성경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성경은 내세를 천국(낙원)과 지옥(음부)으로 나누고 있을 뿐이다. 두 곳 사이에 끼인 중간 장소는 없다. 연옥설은 성경이나 사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일반 종교에서 나온 것이다. 불교에도 연옥교리가 있고, 조로아스터교에서도 영혼들이 하늘에 들어가자면 12단계를 통과하며 정화된다며 연옥설을 말하고 있다. 이슬람교에서도 연옥교리를 말하며 사제들에게 돈을 줌으로써 이들이 탈출할 수 있다고 한다.
성경에는 죽은 자를 위하여 돈을 주지 말 것을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신 26:14). 성경에 그 가르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로마가톨릭교리에 연옥과 죽은 자들을 위한 기도가 있다는 것은 성경적 그리스도교가 아님을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로마가톨릭교회는 이방 종교에서 따온 이런 거짓되고 망령된 교리를 버리고 참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완전한 속조와 구원을 말해 주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많은 로마가톨릭의 영혼들이 연옥이 아니라 천국으로 직접 입성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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