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Ⅱ-12]‘세로드립’을 아시나요?
서울을 갈 때마다 꼭 들르는 곳이 인사동 ‘진공재갤러리’이다. 이런저런 글에서 여러 번 언급했지만, 그가 ‘국보급 전각篆刻예술인’이라는 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사실이다. 그의 제자격이라 할 수 있는 또다른 전각서예가도 자연스레 종종 만난다. 그는 오리온 초코파이 ‘정情’이라는 글자를 쓴 작가이다<사진>. 그제(금요일) 그의 '코구멍 작업실'에 들렀더니, 족자 하나를 가지시라며 건넸다.
어느 공모전에 입선한 ‘우남雩南찬가’라는 장시를 실소를 머금고 심심풀이로 써봤다고 한다. 그에게서 ‘세로드립’이라는 말을 처음 듣고, 검색을 통해 확실히 알았다. 세로드립은 문장 각 행의 첫 글자를 세로로 읽어 숨은 뜻을 내포시키는 네티즌들의 놀이법이라고 한다. 2016년 ‘세로드립’의 최대 해프닝은 ‘자유경제원’이라는 단체가 <제1회 대한민국 건국대통령 이승만, 시 공모전-잊혀졌던 거인의 발자취를 다시 그리다>을 개최했는데, 20대 후반의 유저가 출품한 작품이 입선을 하여 상금 10만원을 받은 사건이다. 이승만을 찬양하는 것같아 입선을 시켰는데, 알고 보니 세로드립으로 이승만을 능욕하는 내용이었다는 것. 주최측은 얼마나 놀라고 화가 낫겠는가. 뒤늦게 세로드립 영어판도 찾아내 최우수상을 취소했다고 한다. 감상할 가치도 없지만, 전문을 옮기니 훑어보시기 바란다. 세로드립은 ‘니가가라하와이NIGA GARA HAWAII’이다. 절묘하다. 이런 시를 ‘이합체시離合體詩’라고 하는데, 영어 'acrostic'은 각 행의 첫 글자 또는 마지막 글자를 짜맞추면 하나의 말이 되는 희시戱詩(희롱시)라는 뜻이다. 솔찬히 재밌다. 짱구를 상당히 많이 굴렀을 것이다
Now you rest your burden
International leader, Seung Man Rhee
Greatness, you strived for;
A democratic state was your legacy
Grounded in your thoughts.
And yet, your name was tainted
Right voice was censored
Against all reason
However, your name lives on
And your people are flourish
With and under ideals you founded
And so dearly defended
Indebted, we are,
In peace, you are.
굳이 번역할 필요도 없다. 제목은 <To the Promised Land(약속의 땅으로)>였다. 오죽했으면 '자유경제원'은 유저(27세 대학생)에게 손해배상 청구(무슨 근거로 5700만원을 제기했을까) 소송을 제기했을까? 당연히 소송거리가 안되므로 패소. 입선한 유저는 상금을 받아 여친과 고기파티를 즐기며 얼마나 통쾌하고 고소했을까.
굳이 전체를 전재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궁금하시면 ‘우남찬가’ 검색을 해보시라. https://click21net.tistory.com/4970
전문을 다 볼 수 있다. 7연에 걸친 장시의 첫 머리 글자를 보자. 한반도분열, 친일인사 고용, 민족반역자, 한강다리폭파, 국민버린도망자, 망명정부건국, 보도연맹학살. 젊은 친구의 아이디어가 기발하고 참신하고 당돌하다. 한 고교생은 현정부의 리더를 ‘미친 기차’에 비유한 만화를 그려 창작예술의 자유 등 이슈와 논란이 된 적도 있지 않던가. 우남을 건국대통령으로 찬양하려는 기관의 의도를 간파하고 숨은그림찾기식 세로드립으로 이승만의 흑역사黑歷史를 비꼬며 마음껏 능욕을 하고 있지 않은가. 일면 통쾌하기도 했고, 이런 젊은이가 있기에 우리가 아직 절망하기에는 이르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남찬가’ 세로드립사건을 계기로 우남 이승만 초대 대통령 이야기를 좀 했으면 좋겠지만, 삼가는 까닭은 논란이 있어서가 아니고, 언급할 가치가 없다는 말로 대신하겠다. 유튜브의 공과도 있겠지만, 어느 역사학자(역사를 가장 역사답게 가르친다고 자부하는 황현필)의 특강 ‘이승만이 국부國父로 떠받들어지며 안되는 25가지 이유’를 듣고 많이 놀랐다. 우리의 지식은 정말 ‘황우일모黃牛一毛’, 대체 그 알량한 지식들이 무슨 쓸모가 있단 말인가? 한심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