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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믿음이 우리속에 있는 의지에서 난게 하니라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시는 선물
엡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살후3:2 "또한 우리를 무리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 "
엡1:19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살후 1: 11 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
((레마님 글))
성경을 전혀 엉뚱하게 해석하시는군요.. 엡2장을 자세히 보세요.. 성경 어디에 믿음을 선물이라고 했는지????? 엡2:8절은 믿음을 선물이라 한 것이 아니라 구원을 선물이라고 한 것입니다.. 왜 구원이 선물이 됩니까? 십자가의 도가 깨닫아 지지 못하면 이해가 않되겠지요..
아랫구절들도 믿음이란 것이 하나님이 독재적으로 지옥갈자, 천국갈자를 정해서 믿음이란 화살을 구분해서 쏘아주겠다는 의미의 말씀들이 아닙니다..
--->엡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은혜와 믿음 사이에 [인하여]라는 격조사가 붙어 인과관계가 성립합니다.
..즉 앞에 있는 은혜가 원인이고 뒤의 믿음이 결과됩니다..이 정도는 아시겠지요?
그럼 구원과 믿음 사이에 있는 [말미암아]라는 단어를 볼까요....이 또한 구원의 원인은 믿음이고 구원은 믿음의 결과라는 인과관계가 성립하는 조사이지요
여기까지는 이해가시죠?..
결론은 믿음은 구원의 입장에서 보면 원인이고 은혜의 입장에서 보면 결과라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은혜가 없으면 믿음도 없고 믿음이 없으면 구원도 당연 없는거겠지요...은혜가 모든 결과의 출발점이라는것을 알수 있지요
그 은혜는 누가 주시나요?..룰룰랄랄님이 레마님한테 주나요?..아니면 레마님 마음속에 스스로 생겨나나요?
구원만 달랑 선물이고 그 원인이 되는 은혜와 믿음은 선물이 아닐까요?..사과박스만 선물이고 그 속에 있는 사과는 선물이
아니나요?..
위 말씀은 은혜,믿음,구원은 분리할수없는 하나의 연결고리로 묶여있기 때문에 모두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가끔 님 글을 보고있으면 말도 안되는 소릴 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종종 들곤 합니다
엡2:8절에 대하여 님께선 전혀 왜곡된 해석을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기초는 믿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은혜입니다.. 성경 에베소서는 이렇게 증거합니다.. 우리가 은혜로 구원을 얻었노라구요..
*엡2:5 -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은혜는 구원의 실제를 말하는 것입니다.. 은혜로 말미암는 구원을 우리편에서 받는 통로가 되며 비유로 말한다면 그 선물을 받는 손을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헬라어 원문도 이를 증명하고 있습지요...
님의 해석은 우리말 개혁성경에 근거한 다소 어거지적 해석법이나..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해석이십니다.. "은혜"라는 용어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신다면 이런식으로 해석할 수도 없습니다.. 엡2장 8절의 해석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은혜로 구원하셨다는 것이고.. 우리는 믿음이라는 통로를 통해 그 선물의 은혜를 받았다는 의미이지.. 믿음에 무슨 공의를 돌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은.. 무슨 신비한 무엇이 아닙니다.. 믿음에 대한 말씀은 요한복음에서 우리 주님께서 수없이 많이 제시해주셨습니다.. 주님이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나는 하늘로써 온 산 떡이니 나를 먹는 자는 영생을 얻는다"하지 않았는지요? 믿음이란 것을 무슨 신비주의나 명제적 철학으로 만들려 해선 않됩니다.. 이들은 믿음을 제대로 아는 자들이라 볼 수 없습니다..
믿음은 말씀그대로 먹는 것이고 마시는 것이며 아멘하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우리 주님의 십자가의 도를 통해 은혜로 구원이 이루어진 어떠함을 우리는 아멘 하는 것이고 먹는 것이고 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아무나 이렇게 되는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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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셔야만 예수님한테 올수있음
요6: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요6:65 "또 가라사대 이러하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레마님 글))
아버지께서 이끄시는 자들이 누군인가? 강팍하고 교만한 자들을 이끄신다?? 첫만에입니다..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자들을 이끄시지요.. 이런 답답적 성경구절만 인용해놓고는... 그 이면은 절대 보지 않으려 하니.. 삼위일체론같은 거짓된 삼신론 사상을 그것도 제대로 답변을 하지도 않았으면서도 대답했다고 우기는 것과 하등 다를게 없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이끄시는 자들에 대해.. 주님은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씨뿌리는 비유를 통해.........
말씀이 떨어져도.. 길가밭과 같은 자들은 마귀가 가로채어 버리지만.. 옥토와 같은 자들은 그 말씀이 생명과 과실을 맺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말씀이시며 씨이시며 생명이신 분이지요.. 그분이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의 생명이 되고 능력이 되고 구원이 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옥토와 같을때 가능한 것입니다.. 이런 자들을 아버지는 기억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 님 요점을 잘못파악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이끈 대상자들이 누구인가가 궁금해서 위 말씀을 올린게 아닙니다
그리스도안에 들어와 믿는게 먼저인가.. 아니면 아버지께서 먼저 이끌어주셔야만 그리스도안에 들어오는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즉 우선순위의 문제이지....대상의 문제가 아니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살피시는 분이시고 폐부를 살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주님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강팍한 마음을 보셨고 악한 양심도 보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책망하셨고 독사의 새끼라고 즉 마귀의 자녀들이라고까지 하시면서 그들을 엄히 훈계하셨습니다..
그러나, 당대의 천하고 비난받던 자들은 우리 주님께 은혜를 입는 장면들을 성경에선 곳곳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주님은 강팍한 심령과 낮아진 심령을 보실 수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강팍한 자들을 향해 주님은 부드런 음성으로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비록 기생이고 세리고 죄인이라 할지라도... 낮아진 마음 말씀을 받고 아멘 될 수 있는 겸손한 마음들에는 한량없는 은혜를 배푸시더라는 것입니다..
님 말대로 아무나 믿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앞에서 낮아진 옥토가 되었다 인정될때에 주님의 말씀과 주님의 복음과 십자가의 도는 마음에 아멘이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이들을 기억하시고 이들을 이끄십니다.. 어디로 이끄십니까? 우리의 마음밭에 그 말씀의 씨앗이 생명이 되고 능력이 되도록 이끄시는 것입니다...
내 아버지가 보내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내게로 올 수 없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를 어떻게 보시나요?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육신의 안목과 초등적 낱말 해석으로 밖에는 보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성경은 육신의 안목만으로는 결코 볼 수 없는 생명적인 말씀임을 저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주님이 사역하실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주님을 모함하고 함정에 빠뜨리기 위하여 그리스도께 수도 없이 왔고 찾아왔습니다. 성경이 뭐라고 말했는지 다시 상기해드리겠습니다.. "내 아버지가 보내 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내게로 올 수 없다"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정죄에 빠뜨리고 모함하기 위해 찾아온 자들을 하나님이 보내셨기 때문에 그들이 왔을까요? 성경을 육신의 방식으로만 해석하다보면 어거지적으로 해석하게 됩니다..
"내 아버지가 보내 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내게로 올 수 없다"는 말씀은... 이런 단순한 의미의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단순히 주님께로 온다는 의미가 아니라 주님의 생명과 말씀과 복음과 십자가의 도에 연합된다는 구원의 의미를 표현하는 말씀입니다.. 귀가 있는 자는 깨달을 것이라 봅니다...
(4) 먼저 믿어야만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한게 아니라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자만 믿는다는 사실
행13:48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레마님 글))
행13:48절에 대해선 전에 한번 토론을 거친 것으로 아는데...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이 믿어 구원얻기를 갈망했으나.. 그들은 배척했고 거부했지요.. 그리하여 바울이 말합니다.. "너희가 구원얻어 영생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이방으로 간다고..." 이러한 과정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던 이방인들이 많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이미 바울이 전하는 십자가의 복음을 들은 자들이였지요...
그들은 유대인들처럼 강팍한 심령들이 아니였습니다.. 그들은 마치 옥토와 같이 마음밭이 갈린 자들이였지요.. 하나님이 영생을 주시고자 작정하는 것은.. 이방인들뿐 아니라 유대인들도 속하고..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구원얻기를 바라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의 작정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구원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처럼 스스로 거부하고 자처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은혜를 내리지 않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 위말씀이 지금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자들이 누구인지 궁금해서 올린걸까요?......
자꾸 우선순위문제를 대상의 문제로 왜곡하시는데..
계속반복해서 하는 말이지만 작정(예정)이 먼저냐 믿음이 먼저냐하는 문제아닙니까..
레마님! 믿으닌까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되는 겁니까???
그러므로 마음밭이 기갈되지 않은 강팍한 자들은 하나님께서 채찍질 하시고 내버려 두시고 방임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준에서 준비되고 기갈된 자들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부르시고 찾으십니다.. 이미 행13장 말씀은 소개를 드렸기에 다시 참조하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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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처음부터 택한게 먼저이고 믿음은 나중..
살후 2: 13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
((레마님 글))
살후2:13절의 말씀은 번역상 오류적 해석이 상당히 가미된 해석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헬라어원문을 번역하면... "사랑받은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 대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함이 마땅하나니 이는 그가(하나님께서) 성령의 거룩케 하심과 진리의 믿음 안에서 구원을 얻게 하시려고 너희를 택하셨음이라(직설법 과거 중간태)"
--> 가끔 헬라어원문에 그건 그게 아니다 헬라어 원문은 그렇게 써있지 않다라는 분들을 가끔 보게됩니다
막상 헬라어원문의 뚜껑을 열어 보면 그들의 주장에 무언가를 of the Spirit and belief of the truth:빼먹거나 잘못된 것임을 깨달곤 하지요..
본론으로 넘어가서 살후2:13절의 헬라어원문을 보이겠습니다
살후2:13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
(영어)we are bound to give thanks alway to God for you, brethren beloved of the Lord, because God hath from the <<beginning>> chosen you to salvation through sanctification
(헬라어)JHmei'"< de; ojfeivlomen eujcaristei'n tw'/ qew'/ pavntote peri; uJmw'n, ajdelfoi; hjgaphmevnoi uJpo; kurivou, o{ti ei{leto uJma'" oJ qeo;" ajp j <<ajrch>>'" eij" swthrivan ejn aJgiasmw'/ pneuvmato" kai; pivstei ajlhqeiva",
* ajrch= beginning : 처음부터
살후2:13절에 대해서도 이미 원문을 통해 제시해 드렸으며.. 님께선 아무런 근거를 갖고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셨으니.. 넘어가겠습니다.. 다만, 제가 한 말씀만 더 아뢰드립니다..
히브리서 말씀입니다...
*히3:8 - "노하심을 격동하여 광야에서 시험하던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히3: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히4:7 -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날을 정하여 오늘날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케 말라 하였나니"
성경은 우리에게 이르기를...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피차 권면함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고 피하라고 제시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너 이렇게 돼.. 넌 이렇게 돼.. 이러시는 분이시라면.. 사도는 강퍅케 되지 말라 명할 이유도.. 강퍅케 됨을 면할 방법론까지 제시하면서 가르칠 필요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뿐 입니까? 또 봅시다..
*히4:2 -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
믿음이란... 복음을 이루는 요인이 아니라 복음의 유익을 우리에게 적용시키는 통로에 불과함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다에서 고기를 잡고 수고하는 사람은 아버지요 그 고기를 맛있게 요리하는 수고를 하는 분은 어머니시지만.. 어린 자녀들은 그분들이 수고하고 노력하고 완성한 매운탕이라는 요리를 다만 먹고 취하며 소화하고 즐기면서 유익을 얻는 것 뿐입니다..
믿음이란 누군가 수고한 것이나 수고 할 것에 동참하고 참예하며 은혜로 유익을 얻는 실상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정의를 오늘날 교회들이 전혀 잘못 가져가고 있으며.. 은혜의 정의도 오늘날 교회들이 전혀 잘못 가져가고 있습니다.. 이뿐입니까? 십자가의 도에 대해서도 전혀 엉터리 육신적 안목정도의 수준에도 못미치는 지경입니다..
이런 지경에... 철학을 논하고 철학을 자랑할 뿐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육신적 안목과 초등적 낱말맞추기에 자긍하고 영적 무지를 오히려 자랑하고 자만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는 자들은 결코 주님을 쫓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죽음을 통과해야 주님의 생명의 말씀.. 영의 말씀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 전에는 오직 세상적 이성과 육신적 안목외에는 성경이 보이지가 않습니다.. 귀있는 자는 들으라 하신 주님의 말씀은.... 이와같이 육신된 자신의 죽음을 통과한 자들.. 곧 부활 생명의 영적인 귀가 열린 자들과 영적인 눈이 열린 자들은 듣고 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다른 것보다 실상은 "자기 십자가"를 연구하고 말씀속에서 발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않된다면... 아무리 신학 사상을 자랑한들... 그것은 결코 자랑거리가 못됩니다.. 자기 눈에 보기 좋고 자기 눈에 옳은것 같고 자기 눈에 그윽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을 파혜쳐보면.. 언어유희던지.. 망상적 철학에 불과하던지.. 혹 육신적 안목과 초등적 안목에 불과한 생명없는 그라페에 불과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암쪼록 우리는 말씀앞에 굴복하고 주님의 십자가를 참으로 발견하게 되기를 전 무엇보다 소망합니다..
첫댓글 님이 헬라어원문을 들어 번역했다는 ... "사랑받은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 대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함이 마땅하나니 이는 그가(하나님께서) 성령의 거룩케 하심과 진리의 믿음 안에서 구원을 얻게 하시려고 너희를 택하셨음이라.....라는 말에 "처음부터"라는 헬라어가 제외된것을 지적한것이고 그로 인해 믿음때문에 선택되어진다는 오류를 바로잡고자 한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본문으로 가지 말고 먼저 본문의 주제를 해결하고 나서 다른 곳으로 가야지요..이게 무슨 나의 오류를 지적한 겁니까??
1번 엡소서말씀의 오류를 다시 지적해드린 것입니다... 2번과 3번 등등도 마찬가지로 님의 다소 억지적인 해석적인 오류임을 지적해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 부분은 '아포 아르케'에 대한 번역을 빠뜨렸군요.. 다시 번역합니다.. "사랑받은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 대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함이 마땅하나니 이는 그가(하나님께서) 성령의 거룩케 하심과 진리의 믿음 안에서 구원을 얻게 하시려고 처음에 대하여서부터 너희를 택하셨음이라"(직설 과거 중간태)
이미 위에도 썼지만... 중간태 구문은 일반적 능동태 구문과는 다릅니다.. 재귀적 용법이라고 주장하는 학자의 견해도 있지만.. 중간적 의미의 용법으로 주장하는 학자의 견해도 있습니다.. 오래전에 저도 한동안 중간태 구문으로 연구를 한적이 있긴했지만... 아직은 결론이 나진 않은 상태입니다만.... 다만, 제가 지금까지 해석하는 중간태적 개념은... 주어의 동사에 대한 능동이 제 3자적 의도나 3자적 어떠함에 중점을 두어 이루어지는 수동적 어떠함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앞으로 중간태에 대해선 더 연구를 해야 겠지만... 제가 현재까지 밝힌 헬라어의 중간태적 관점은 이것입니다.. 그리고 아직은 확실한 단정은 못내리지만... 저의 중간태에 대한 관점이 정확하다고 봅니다...
이제 [처음에 대하여 부터]를 은근슬쩍 끼워 넣으셨군요..불확실한 님의 단정이 정확하다고 해도..해석상 달라지는게 뭐가 있지요?
먼저 믿어서 구원을 받으면 그후에 너희를 택하여 지는겁니까...?
여보세요.. 은근설쩍이라니?? 제가 님 같은줄 아십니까? 미쳐 확인치 못하고 미스한 것이지... 금방 발견될 것 일부러 그럴 이유가 무엇이오이까? 나는 삼위일체론자들이나 다신론자들이나 님처럼 눈속임이나 하고 동문서답이나 어거지 해석이나 하면서 눈가리고 아웅거리는 치졸한 사람이 아니랍니다..
그리고 한마디 더 드리지만... 님같은 분들이 하도 야비스럽게 나오는 행태를 많이 봐왔기에 미리 알고... 나는 본문에 설령 번역상 미스가 났다고 하더라도.. 본문을 수정하지 않았소이다.. 눈이 있으시면 보시지요.. 다만, 댓글에서 번역상 미스가 있었다고 솔직히 시인했을뿐이오이다... 이런 비열한 마음으로 토론하자는겐지요? 어찌 하나같이 다 똑같은지....
헬라어를 아십니까? 레마의 말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