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낮 동안의 햇살 속에도 가을빛이 느껴지고
아침 저녁으로는 선선한 공기를 호흡합니다.
계절의 흐름 속에 하나님의 약속을 생각하며
신실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정결한 마음 주시옵소서.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본문 주해)
12~13절 : 아담이 범죄 이후에 한 일은 하나님을 피하여 숨고 자신을 가린 것이다.
자신을 가린다는 것은 인간의 이성과 양심과 법과 도덕과 과학과 교육 등을 가지고 치장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런 인간의 모든 것-혼, 영, 관절, 골수, 마음의 생각, 뜻-을 다 드러내어 해체시키시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말씀 앞에서 다 해체되어서 벌거벗은 듯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해서 우리 인격과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다.
그러므로 말씀 앞에 벌거벗겨지기를 기꺼워하라는 것이다.
‘우리의 결산’(13절)이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것이다.
그때 하나님이 보시기를 원하시는 것은 얼마나 말씀의 원리를 삶에 결부시켰느냐하는 것이다. 얼마나 복음에 순종하기 위해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졌느냐는 것이다.
14~15절 :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으로 악한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다 드러나서 벌거벗겨지면 부끄러운 것들뿐이다.
이러할 때에 그냥 제사장이 아니요, 대제사장도 아니요, ‘큰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 것이다.
인간 제사장과 대제사장은 다 흠이 있는 인간일 뿐이지만, 우리에게 있는 큰 대제사장은 하늘 보좌를 버리신 하나님의 독생자이시고, 인간의 모든 죄를 다 지고 십자가를 지신 분이시다.
그래서 예수님은 ‘큰 대제사장’이시다.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을 다 아실 뿐만 아니라 동정하시며 우리와 같은 시험을 다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신 것이다. 즉 시험에 넘어가지 아니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의 완벽하고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시는 것이다.
16절 : “그러므로 우리는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로 나아갑시다. 그리하여 우리가 자비를 받고 은혜를 입어서, 제때에 주시는 도움을 받도록 합시다.”(새번역)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에 맞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 한다.
은혜의 보좌 앞이란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나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날마다 쪼개지고 부수어지고 벌거벗은 듯이 드러날지라도 담대하게 나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늘’ ‘항상’ ‘영원히’ 살아계셔서 우리의 연약함을 아실 뿐만 아니라, 함께 하여 주시고, 지금도 자기 백성을 중보하시는 우리의 큰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이다.
(나의 묵상)
본문의 말씀을 파레시아의 은혜라고 배웠다.
복음과 생명 캠프 때 기쁨으로 알게 해 주신 진리 중의 하나이다.
나는 복생 캠프 이후 즉시 말씀 앞으로 나아갔다.
성경에서 증거하는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해서는 하나도 알지 못했던 시절이다.
그러니까 내 죄가 무엇인지도 몰랐고, 또 그러니 십자가에 대해서도 깜깜이였다. 더구나 하나님 아버지와 나와의 관계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해 보지 못한 내용이다. 멀고 먼 곳에 계신 하나님과 나의 관계라니......
단지, 비록 멀리 계신 하나님이시지만 현재 나의 열심의 결과를 보시고 이 땅의 것으로 내게 보상해 주실 것을 믿었던 것이다.
내가 만든 하나님-우상-을 섬기던 시절이었다.
어쨌든 복생 캠프 이후 달라진 것이 있다면 무조건 열심히 말씀 앞으로 나아간 것이다.
그런데 말씀 앞에 나아가는 것조차도 자기의 열심으로 나아간 나, 자기의가 가득한 나를 불쌍히 여기셔서, 그 첫걸음부터 성령님께서 함께 해 주셨다.
어린 아이가 블록을 쌓을 때 넘어질 위기 때마다 눈치채지 못하게 슬쩍 바로 세워주시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모르고 나는 모든 것을 다 내가 한 것이라 자랑하며 말씀 앞에 나아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말씀 앞에서 머리가 조아려지고 눈물만 났다.
윤리도덕적인 죄만 생각하던 자가 나의 모든 행실뿐만 아니라, 마음속 생각까지 죄투성이임을 알게 되었다.
아담 안의 실존, 그 암담함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런데 구스인의 피부처럼, 표범의 가죽처럼 절대 벗겨낼 수 없는 그 죄를, 아무 죄도 흠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죽어 흘리신 보혈로 덮어주심으로 완전히 깨끗하게 해 주신 것이다.
소망이 없었는 죽음의 존재가 생명의 빛 안으로 들어가게 되어 아들의 생명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창세전의 아버지의 약속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약속을 이루신 하나님을 보게 되니 너무도 감격스러운 것이다.
9년의 세월 속에서 말씀 앞에 해체되고 해부된 나는 크고 놀라운 말씀의 능력을 믿는 자가 되었다. 듣고 또 들은 복음의 말씀, 보고 또 보는 복음의 말씀이 나를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그 변화라는 것이 내가 무슨 수준 높은 인격자가 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죄악의 세상을 살아가는 곤고한 자일 뿐이다.
그러나 말씀 앞에 나아가 비참한 나 자신을 보니, 그리할수록 더욱 주님께 연합되어 살기를 원하는 자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십자가, 그 보배를 붙들게 되었다.
말씀이신 주님 앞에 감출 것이 없다.
부끄럽고 민망한 짓을 되풀이하는 한심한 존재이지만, 낯 두껍게 매일 주님 앞으로 나아간다.
이것이 나를 세상의 물결에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잡으시는 성령님의 손길이 되며, 이것이 이 땅에서 영원한 안식의 맛을 누리는 은혜이다.
나의 큰 대제사장이신 주님의 품에 매일 달려가 안기는 일이다.
파레시아의 은혜이다.
(묵상 기도)
주님,
말씀의 능력이 어떠한가를 진실로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저로 하여금 복음을 알게 하시고
아들의 생명을 누리는 자 되게 하신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함께 하시니 제가 얼마나 행복한 존재인지요!
그 인도하심에 따라
날마다 주님 앞에 담대히 나아갑니다.
저의 부정성과 연약함을 다 아시는 주님께서
저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품속에 안아주시니
언제나 몸 둘 바를 모릅니다.
주님께 받은 이 사랑을 의지하여
복음을 전하는 자로 살아가기를 원하오니 인도하여 주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