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분주했던 지난주를 보내고
부활절 미사를 드리고 집에 돌아온 한가한 일요일 오후,
전화기 속에 켜켜이 쌓인 사진들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최근의 시간들로부터 거슬러 올라가며 남겨진 흔적 중
남겨야 할 것과 지워야 할 것을 가려낸다.
지난주 월요일, 테메큘라 꽃동네 수녀원에서의 하루가
사진 속에 고스란히 스며 있다.
레지오 단원들과 함께한 ‘십자가의 길’,
바람에 흔들리던 야생화들,
빛을 머금은 나무들 사이로
그날의 공기가 다시 살아난다.
그중 한 장의 사진.
엉겅퀴 잎 위에
무당벌레 한 마리가 앉아 있다.
너무도 작은 몸이 눈길을 붙잡는다.
어릴 적에는 흔하디 흔했던 풍경인데
그동안 너무 오래 만나지 못한 얼굴처럼
반가웠다.
그 모습을 찍고 있는 나를 보며
어느 자매가 웃으며 말했다.
“아녜스는 소녀 같네.”
나는 그 말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
소녀였던 나는
무당벌레를 좋아하지 않았다.
왜 하필 이름이 ‘무당벌레’일까.
그 낯선 이름이 마음에 걸려
한참을 생각하던 아이였다.
붉은 등에 찍힌 검은 점들이
무당의 화려한 옷과 오색천을 닮아서일 거라고,
혼자서 그럴듯한 이유를 붙여보기도 했다.
아무리 작은 생명체라도
내게는 두려움으로 다가왔었다.
손에 닿으면 묻어나던
주황빛의 끈적한 흔적,
그리고 설명하기 어려운 냄새.
그 모든 것이
어린 나에게는
조금은 불쾌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그래도 그날은 반가운 마음으로
전화기를 가까이 대고
살며시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다가
문득, 이 작은 벌레를
이곳에서는 무엇이라 부르는지 궁금해졌다.
‘ladybug’.
그 이름의 시작은
중세 유럽,
사람들의 밭을 지켜주던 작은 생명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진딧물을 잡아먹으며
조용히 제 몫을 다하던 이 벌레를 사람들은
성모 마리아(Our Lady)의 보호와 겹쳐 보았고,
그래서 ‘Our Lady’s bug’라 불렀다는 이야기.
그 오래된 이름 속에는
작은 생명이지만 사람들의 믿음과 기대가 담겨 있었다.
어떤 곳에서는
이 벌레가 사랑과 행복의 징표라 하고,
어떤 문화에서는
다가올 인연을 알리는 신호라 여긴다고 한다.
그날,
수녀원의 오솔길에서 만난
그 한 마리의 무당벌레는
어쩌면 내게도 작은 축복이었을까.
어린 시절,
미운 눈으로 바라보던 것들이
이제는 이토록 다정하게 다가오는 것은
나 역시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폭이
조금은 넓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름 하나로 가려져 있던 의미들이
두려움에서 평안함으로 바뀌어 간다.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은
세상에 있는 모든 생명체가
저마다의 이유로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이 작은 생명을
이제는 미워하지 않기로 한다.
그 사진은 지우지 않고 그대로 남겨두었다.
그 안에 담겨 있을지도 모를
사랑과 행운,
아직 오지 않은 어떤 기쁨을
조용히 기다려보기로 한다
PS:
사진 속 무당벌레가 앉아 있던
엉겅퀴 역시
내가 한때 싫어하던 식물이다.
거칠게 느껴지던 이름,
잎과 줄기를 지키던 가시들,
그리고 사납게만 보이던 보라색 꽃.
이제는
그 엉겅퀴 꽃도
반갑고 곱게 보인다.
첫댓글
ㅎㅎ 세상은 살아 보아야 연륜이 들어봐야,
지혜도 늘어나고 삶의 이치도 깨달음을 느낍니다.
엉겅퀴는 거칠어 보였지요
그래서 무서웠습니다.
무당벌레는 무당이라는 이름 그 자체가
무서웠지요.
등에 빨강 껍질에 까만 점이 예뻐 보였지만.
아녜스님, 글 잘 읽고 갑니다.^^
콩꽃님께서 공감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연륜이 쌓여 가면서 무릇 세상일은
다 이치가 있음을 깨닫습니다 .
무당벌레도 ~ 엉겅퀴도
무당벌레가 영어로 Lady bug이군요.
아녜스님. 부활 축하합니다.
푸른비님도 부활절 잘 보내셨겠지요?
하나의 작은 곤충에 무당 , 성모 마리아 ,
대입이 참 절묘합니다 .
무심코 관심없이 지나쳤던 무당벌레가 그런 고마운 곤충이군요.. 조물주가 만들어 놓은 작은벌레지만 저마다 역할이 있음을 알게되니 자연의 신비함을 다시금 느낍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
무당벌레의 생김새도 이젠
귀여워 보이더군요 .
크든 작든 해충은 다 싫어하는 쪽이었고, 무당벌레같이 해충이
아니고 유익충이라도 곤충은 거의 안 좋아하는 편인데,
미물의 곤충에게도 소중한 가치를 두고 대하는
아녜스 님의 심성에 자못 반성하게 됩니다.
무당벌레의 미국명이 'lady bug'군요.
그 이름에 담긴 의미를 알게되니, 무당벌레에게 가졌던
불호의 감정이 미안해지네요.
무당벌레를 실지로 못본지가 몇십 년 된거 같은데,
언젠가 만나면 좀 따뜻한 시선(?)으로 봐줘야겠네요.
비록 사진이지만, 무당벌레를 얼마만에 보는지...
저 작은 생물이 지금은 어느 풀숲에 서식하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아녜스님에게 사랑과 행운의 메신저가 되기를
빌어봅니다.
저도 오랜만에 만나니 반가웠어요 .
무당벌레도 거의 청정지역에 산다고 들은것 같은데
산속에서 발견을 하니 반가웠답니다 .
지금도 만지라면 못 만져요 .
어릴때처럼 무섭진 않지만요 .
사랑과 행운의 메신저가 제게 온다면
우린님께도 나누어 드릴거예요.
느낌으로 안 좋아했던 곤충들이
있었던가 생각해보니 '땅강아지'란
곤충이 생각나네요. 하수구 주변
땅을 파보면 나오곤 했는데...
생긴게 하도 지저분하게 생겨서. ㅎ
무당벌레는 무늬가 예뻐서 저는
자주 잡아서 살펴보다가 놔주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무늬가 예뻐서도 레이디버그라고
불리나 봅니다.
맞아요 "땅강아지도" 도 있었어요.
저는 그것을 무서워 하진 않았는데
왜 색깔이 저럴까 그생각은 해 봤어요 .
아마 보호색이어서 그런거 같죠 ?
땅색과 같이 만드느라 ㅎㅎㅎ
곡식의 해충을 잡아 먹어서 자애로운
성모님을 연상해서 그런 이름을
갖게 되었다 하네요 .
시나브로 나이가 들어가면서 매사 보는 시각의 폭도 넓어집니다.
관대해진다고 말해도 맞는 말일 것 같습니다.
무당벌레 고운 색감 때문이었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제게는 그닥 비호감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이 되네요.
앞산에서 옆집 오빠가 잡아주었던 검은색 사슴벌레도 별로 무서워하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이 되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