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완동물 / 전윤호
시골에서는 개를 키운다
집이나 밭에 목줄로 묶고
평생 경비를 서게 한다
밤새 짖어대고
산책은 없다
고양이를 키우는 가게도 있다
쥐를 잡으니 밥도 준다
새끼를 낳으면 귀찮다 한다
가난한 나도 애완동물은 있다
슬픔이었다
돈을 주고 사지 않아도
제 발로 걸어 들어왔다
사료를 주지 않아도 내 기분을 먹고
집을 만들어주지 않아도
내 가슴에 붙어 잤다
놈이 사라진 건
내가 늙었기 때문일 것이다
슬픔이 사라지자 침묵이 찾아와
두 번째 애완동물이 되었다
침묵은 눈치가 빨라서
먼저 나대지 않는다
우리는 종일 붙어 있지만
불편하지 않다
저녁놀이 지는 창을 바라보며
우리는 불을 켜지 않는다
밤도 제법 잘 어울리는 집이다
가끔 의심도 한다
혹 내가 애완동물이 아니었을까
진짜 주인은 머리 위에서
나를 보고 웃는 건 아닐까
그러나 덕분에
나는 외롭진 않다
- 시집 『애완용 고독』 (달아실, 2024)
--------------------------
* 전윤호 시인
1964년 강원도 정선 출생. 동국대 사학과 졸업
1991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 『늦은 인사』 『봄날의 서재』 『슬픔도 깊으면 힘이 세진다』 『밤은 깊고 바다로 가는 길은』 『애완용 고독』 등
우화집 『애완용 고독』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 2020년 편운문학상, 제7회 시와시학상 수상
******************************************************************
*
지난 주에는 올 상반기 나올 원고들을 살피는 데 집중했는데,
그중 하나가 오월에 나올 전윤호 형의 신작 시집 원고였습니다.
어떤 시편은 사랑인데 슬프고
어떤 시편은 물컹 물컹 애닯고
어떤 시편은 아라리 아라리 아리고
오늘은 그중에서 한 편 골랐습니다.
지난해 <철학이 있는 우화 시리즈>로 펴냈던 우화집 『애완용 고독』에도 들어 있는 작품이지요.
- 애완동물
백석은 일찍이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내린다"고 했고,
서정주는 일찍이
"가난은 한갓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는데,
신경림은 일찍이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라고 했는데,
전윤호 시인은
"가난한 나는 가난해서 슬픔을 애완동물로 키운다"고
"가난한 나는 가난해서 침묵을 애완동물로 키운다"고 합니다.
시인이라고 해서 가난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난이 시인의 숙명일 필요는 없지만
가난이 시의 필요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겠지만
시와 시인과 시인의 가난에 대해 생각해보는 아침입니다.
2025. 3. 10.
달아실 문장수선소
문장수선공 박제영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