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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디셔날 닥터는, 옛날 의원을 뜻하는 바로서 양약의 중독에 빠진 현대인들에게 현대의학의 위험성을 알리고, 한방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인간의 몸에 온갖 치료물질이 발생한다는 것을 알리는 취지가 있다. 병에 대처하는 현대인이 먼저 깨달아야 할 것은 병이 닥쳤을 때 공포심으로 인해 잘못될 것이라고 굳게 믿는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과 더불어 인간의 몸에는 인간의 마음, 정신 상태에 따라서 온갖 치료 호르몬이 발생하여 어떠한 병도 모두 치유가 된다는 사실이다. 양약은 화학물질로 몸속의 병균에 반대되는 병균을 침투시켜 몸안에 전쟁을 일으키는 역할을 하므로 몸이 바로 전장이 되고 만다는 사실을 먼저 인지해야 한다. 그러나 한약은 몸에 기운을 북돋아 주는 역할을 하므로 몸에서 치료호르몬이 적절하게 발생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약이 몸의 기운을 재생시키므로 몸이 낳는 이치는 양의학과 성격이 멀지만 우리는 절대 서양의 전시(1,2차세계대전) 생체실험에 사용되던 약품에 노출되어서는 안 될것이다. 엔돌핀이나 세로토닌이란 호르몬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늘 하는 이야기지만 그들은 의학자가 아니라 바로 사상가임을, 메트릭스에 빠져있는 인간들을 계몽하는 운동가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트래디셔날 닥터(2)
잠에서 깬 임연주는 눈앞에 있는 박도진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흐릿한 눈만 깜박일 뿐이었다. 도진은 임연주의 손을 꼭 붙잡고 순간이동하자 그들은 어느새 어떤 가정 집 소파에 앉아있었다. 거실에 서있던 여인은 도술을 부리며 나타난 박도진과 임연주를 보며 의아한 표정만 지을 뿐 그리 신기해하지 않는 눈치였다.
넓은 단독주택 거실에 대여섯 명의 이삼십대 여인들이 옹기종기 모여 소파에 앉아서 TV의 저녁대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에 임연주가 말똥말똥한 눈빛으로 드라마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스스로 자신이 왜 그곳에 그 여인들과 함께 있는지 이유를 모르고 있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그곳에 옮겨준 것 같은데 꿈속에서 헤맨 것 만 기억할 뿐 다른 것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왠지 그녀들과 함께 있는 것이 기분이 나쁘지 않았고, 왠지 항상 접하던 사람들처럼 편했다. 게다가 다들 친절하고 눈빛이 선해서 마음이 더욱 놓였다.
보라색 추리링을 입은 한 여인이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난 피곤하니, 먼저 쉴께요. 다들 즐감하삼."
연주의 옆에 있던 여인이 고개를 숙여 인사하며 그녀에게 대답했다.
"네, 최선생, 푹 쉬세요."
임연주는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옆에 있는 여인에게 물었다.
"혹시 무슨 일을 하세요?"
여인은 생글생글 웃으며 연주에게 친절하게 답해주었다.
"저분은 한방의대 교수이고, 전 복지사에요. 시흥의 사립 요양원에서 일하고 있어요. 아가씨는 저 최선생이 데려왔어요. 저희와 함께 생활하며 마음의 병을 치유해야 한다고 하던데..."
"네에... 제가 최선생님과 함께 왔군요. 전 기억이 잘 안 나서요."
"제가 듣기로 삼성병원에 입원했다가 정신적 문제로 최선생이 치료하게 됐다던데요."
"아, 예..."
그 여인의 말에 자신이 왜 그곳에 있는 지 대략 이해를 한 연주는 그저 연신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전 이효정이라고 해요. 앞으로 잘 부탁드릴께요."
임연주는 고개를 넙죽 숙이며 그녀의 악수를 받았다.
"네, 선생님."
이정환은 운전하면서 차량 내 탑재된 VOD를 재생시켜 다시 한번 이성희의 프로파일을 확인했다. 그는 곧장 시동을 걸고 이성희 집으로 향했다.
자신의 딸이 병원에서 사라진 사실을 알게 된 이성희의 어머니 박인화는 아연질색한 표정으로 정환에게 물었다.
"그럼 우리 딸은 어찌되는 거죠?"
"일단, 사라진 그녀를 찾는 것이 우선입니다. 병이 더 퍼지기 전에 백신을 개발해야 하는 실정이라..."
박인화는 하체의 힘이 풀리더니 거실바닥 위로 쓰러지며 손바닥으로 바닥을 짚었다.
"괜찮으십니까?"
갑자기 쓰러지는 이성희의 어머니에게 정환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괘, 괜찮아요. 갑작스런 일이라, 서있을 수가 없어서..."
"걱정 마십시오. 저는 이런 일에는 전문이니 반드시 성희양을 찾아서 병원으로 데려가겠습니다."
성희의 집에서 나온 정환은 근심 어린 눈빛으로 그의 차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그는 시동을 걸고 동네 한 바퀴를 돌기 시작했다. 그는 이성희의 집 대문이 보이는 먼발치의 골목길에 잠시 정차 한 후 유심히 대문을 지켜보았다. 잠시 후 박인화가 대문을 열며 나타나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시내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정환은 박인화가 눈치채지 못하게 조심스럽게 차를 몰며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박인화가 서울로 향하는 9919버스를 타자 그는 버스 뒤를 미행했다.
박인화는 중랑구에 위치한 진산한방병원 출입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녀는 병동에 누워있는 성희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엄마 여긴 뭣 하러 왔어."
"그게 말이다. 오늘 우리 집으로 국가 요원인가 뭔가가 찾아와서 널 찾지 뭐니? 내가 꼭 잃어버린 것처럼 연기를 해서 깜박 속고 돌아갔다. 아무튼 호락호락한 세상이 아니니 몸조심하거라."
"네, 엄마, 어쨌든 제가 이렇게 무사히 있잖아요. 걱정 마세요."
박인화는 딸이 잘 있다는 것을 확인한 뒤 발걸음을 다시 집으로 옮겼다. 박인화가 병원을 나간 후 앰뷸런스 한대가 병원 앞에 정차하더니 흰 가운을 입은 장정들이 들것을 들고 병원 안으로 들이닥쳤다. 한방병원 의사들과 간호사들은 갑작스럽게 사람들이 몰려오자 매우 당황한 기색을 보이기 시작했다. 한 간호사가 그들을 저지하자 그 뒤에 나타난 이정환과 몇몇의 요원들이 그녀를 붙잡으며 말했다.
"저희는 국가정보원에서 온 변형바이러스 보균자인 이성희씨의 이송을 전담한 요원들입니다. 이러시면 공무방해죄로 체포할 수 있습니다."
이산인 원장은 들것에 실려가는 이성희를 두고 볼 수가 없어서 이정환에게 따졌다.
"저희 병원에서 검사한 자료에 따르면 이성희 양의 병은 병원의 약물 치료가 아니어도 충분히 회복이 가능한 것으로 나왔습니다. 그녀는 스스로 이곳에서 병을 치료하기를 원하는데, 국가에서까지 나서면서까지 원치도 않는 치료를 강요하며 개인의 권리를 이렇게 마구 짙밟아도 되는 겁니까?"
이정환은 눈살을 찌푸리며 이산인에게 말했다.
"이보세요. 신형바이러스가 뉘집 개이름인 줄 아십니까? 그것으로 인하여 사망한 사람은 현재까지 전국 사천오백팔십명으로 집계됐으며, 세계적으로 백만을 초과했습니다. 지금이 바이러스 소강상태라고 방심했다가 더 심각한 상황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이럴 때 신속하게 병원을 근절하는 것이 의사의 의무이자 질병관리국의 의무인 것입니다. 지금이 2011년이며 최첨단 과학시대를 구가하는데도 아직 인간은 병을 다스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 같은 의사들이 이런 식으로 안일하게 상황을 몰고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
이산인 원장은 깊게 숨을 한번 쉬며 최대한 침착을 유지하고 그의 뚜렷한 의사를 전달했다.
"당신은 지금의 의학으로 인간의 병을 다스릴 수 있다고 보시는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현재의 의학기술로도 인체의 신비를 풀지 못하고 있습니다. 메스로 갈라서 보이는 게 다인 줄 아는 것이 현대의 의사들인데, 검은 암덩어리를 절개해 들어낸다고 그 병이 낫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현재의 의사들입니다. 하지만 암은 떼어내도 다시 생기고, 떼어내지 않아도 스스로 사라집니다. 왜냐하면 불균형에서 암이 발생하여, 균형에서 암이 사라지기 때문이죠. 인간의 몸은 균형으로 병을 다스리지 약물과 수술로 다스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균형을 이루는 것은 바로 우리의 정신이기도 합니다."
이정환은 이성희가 현관 밖으로 실려나가는 것을 확인한 후 여러 요원들에게 철수하라는 손짓을 하며 이산인 의사에게 말했다.
"당신 말이 옳다면 세상은 당신의 옳은 판단을 따르겠지요. 하지만 국가나 질병관리국은 인간을 다스리기 전에 병을 다스려야 합니다. 그리고 병이 또다른 국민의 안방을 기습하는 것을 막는 것이 국가의 책임이기도 하고요. 아시겠습니까?"
할말을 잃은 이산인은 돌아서는 이정환을 쳐다보며 우려의 눈빛을 보냈다.
이정환과 요원들 및 이송담당직원들이 떠나자마자 이산인의 휴대폰에서 벨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2011년 3월 13일 밤 9시경
국가정보원 건물 6층 어두운 정보처리실 내부에 강태신 요원이 열람실 책상에 엎드린 채 잠에 깊이 빠져 있었다. 그는 미국의 X-파일의 실례가 담긴 자료 위에 이마를 기대고 있었다. 태신은 정신을 차리며 마취 후 깨어난 사람처럼 무거운 상체를 일으켰다. 간신히 의자를 밖으로 밀어낸 그는 어지러운 듯 비틀거리며 어두운 정보처리실 출입문을 찾기 시작했다.
태신은 모든 상황을 신속하게 기억해 내며 뭔가 일이 틀어졌음을 깨달았다. 전한수 국장으로부터 엑스트라올디너리 프로젝트를 지시 받고 지난밤 차량 실종사건을 처리하던 중 정보처리실에서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든 사실은 결코 스스로도 납득이 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곧장 경비실로 가서 근무중인 경비차장에게 물었다.
"제가 여태 정보처리실에 있었는데, 저를 보지 못하셨나요?"
"어? 보지 못했는데요?"
" CCTV 좀 확인해봐요. 제가 거기에 여태 쓰러져 자고 있었어요."
경비는 좀전까지 녹화되던 CCTV 자료를 돌려서 확인했다. 모니터를 통해 열람실 책상에 엎드려 있는 강태신을 확인한 경비는 상당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이구, 어찌 저걸 내가 못 봤지?"
"차장님은 눈 씻고 모니터를 쳐다봐도 저를 인식하지 못했을 겁니다. 왜냐하면 저는 지금까지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기이한 현상에 노출되어 있었으니까요. 일단 제가 여기서 자고 있었다는 동영상 자료를 제 휴대폰에 저장해가겠습니다."
경비차장은 이해할 수 없는 듯 고개를 가로 저으며 녹화 원본을 태신의 스마트 폰에 다운로드했다.
경비실에서 나온 그는 곧 휴대폰을 들고 이정환의 번호를 눌렀다.
"태신, 어쩐 일이야, 이밤 중에..."
"오늘 삼성병원에 다녀왔나?"
"무슨 소리야? 아까 같이 갔잖아?"
"난 그곳에 간 적이 없어."
"이 사람이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내가 너와 함께 병원에 갔단 말이야?"
"참나,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 그럼 내가 오늘 아침에 같이 간 사람이 네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란 말이야?"
"그래, 나는 지금까지 정보처리실에서 쓰러져 있었어. 누군가가 나를 위장하고 병원에 간 걸 꺼야."
"믿을 수가 없군. 그걸 말이라고 하나?"
"사실 내가 현재 조사하고 있는 것은 어젯밤 성남의 국도변에서 발생한 차량 실종사건이야. 그 차량들이 갑자기 사고가 나면서 어디론가 사라졌는데, 자네는 그 것을 믿을 수 있겠는가?"
"그, 그거야, 당연히 믿을 수 없는 엑스파일같은 사건이지."
"우리가 그것을 극히 이례적인 사건으로 정의하고 자료조사에 나섰지 않는가? 불가능하면서 발생하는 그 사건을 내가 맡고 있는 이 와중에 나에게 또 다른 사건이 터진 거야. 혹시 삼성병원 격리동에 임연주라는 환자가 있지 않았는가?"
"그래, 있었지. 그 여자를 신형바이러스 보균자라고 했지만, 실제로 그녀의 몸에서는 일반인플루엔자 바이러스밖에는 검출된 것이 없었어. 오진이 있었던 거지. 그런데 태신이 네가 전한수 국장으로부터 특별지시를 받은 것으로 그녀를 취조하지 않았는가?"
"이봐 난 그곳 근처도 간 적이 없어. 분명 자네와 함께 간 사람이 내가 틀림없었나? "
태신의 질문에 한참 생각에 잠겨있던 정환은 다시 말문을 열었다.
"그럼... 자네가 병원에 있어야 할 그 시간에 정보처리실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할 자료를 보여줘 봐."
"내가 정보처리실에서 잠든 모습이 찍힌 CCTV를 내 스마트폰에 저장했네. 지금 바로 동영상을 보내줄 테니 확인해보게."
이정환은 삼성병원에서 만난 강태신이 일을 처리하던 시간대와 또 다른 강태신이 정보처리실에서 잠들어있는 시간대가 같은 것을 확인하며 꽤나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이거 삼성병원 CCTV도 확인해봐야 할 것 같군."
강태신은 이정환의 생각에 동의를 하며 곧바로 삼성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한 두 사람은 곧바로 격리동의 경비실을 찾았다. 강태신은 경비 근무자에게 신분을 확인시켜 준 후 오전 10시에서 11시 사이의 CCTV를 확인할 것을 부탁했다. 경비가 재생한 녹화원본에서 김영찬과 담당의사가 10시 10분경에 A동 1002호 앞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나타났다. 잠시 후 화면에서 이정환이 등장하여 김영찬과 담당의사에게 신분증을 보여주는 장면이 나타났다. 그러나 이정환의 등 뒤쪽으로 함께 온 남자가 서있는 것이 눈에 띄었지만 그자의 검은 머리칼만 보일 뿐 얼굴모습이 나타나지 않았다. 답답한 강태신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검은 머리칼을 향해 손가락으로 지적했다.
"저자가 나로 보였단 말이지. 놈은 CCTV 카메라를 피해 교묘하게 사각지대 위치에 있었군."
"난 도저히 믿을 수가 없네. 분명 난 자네와 함께 갔는데,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지?"
"일종의 최면술이야. 자세한 것은 더 조사해봐야 할겠지만. 일단 임연주를 찾아서 그녀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내야 하네. 그리고 김영찬 연구원을 만나봐야겠어. 그는 항체백신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을 가진 연구원으로 알려져 있네. 그런 김영찬 연구원이 감기백신도 구분을 못할 리가 없지 않는가? 그에게 어떤 비밀이 있는지 확인해봐야겠네."
정환은 휴대폰에 시간을 확인하며 태신을 쳐다보며 말했다.
"지금은 시간이 늦었네. 내일 아침에 김영찬 연구원이 이곳에서 변형바이러스와 항체백신을 추출할 예정이라 실험 과정을 감시해야 해. 위에서도 상당히 민감하게 신경 쓰고 계시거든."
"그럼 오늘 밤에 임연주를 만난 후 내일 자네와 함께 이곳으로 와야겠군. 김영찬 연구원부터 만나야 하니."
"그래, 몸조심하게."
이정환이 떠난 후 태신은 투산에 몸을 실으며 차량에 탑재된 터치형 PC 모니터를 열어 임연주에 대한 파일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모니터에서 자동적으로 그녀의 집주소를 입력시켰고, 화면이 네비게이션으로 전환되어 위치를 표시하기 시작했다.
강태신은 임연주의 집까지 찾았지만, 여전히 그녀의 부모님은 실종신고를 해제하지 않은 상태였으며, 그녀를 찾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임연주가 아직 귀가하지 않았다는 점으로 미루어 그 정체 불명의 사나이가 그녀를 데려갔다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았다.
'미스테리한 사건을 맡은 후 더욱 미궁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야.'
2011년 3월 14일 새벽 6시경
여전히 철통경비로 삼엄한 삼성병원의 분위기는 그곳 환자들에게 위압감을 느끼게 할 정도였다. 변형바이러스 백신연구의 초읽기에 들어간 신형바이러스 특별팀 연구원들은 새벽부터 삼성병원에 출근하여 백신실험 준비에 몰두하고 있었다. 8시로 잡혀 있던 실험일정이 갑자기 앞당겨져 6시부터 전개되기 시작했다. 김영찬 연구원은 다른 연구원들과 함께 모든 준비를 마친 후 김병연 실장에게 통보했다. 원장실에 있던 삼성병원 원장과 오석만 소장, 김병연 실장이 수술실로 빠른 걸음으로 이동했다.
수술실로 이성희가 들것에 실려 들어왔다. 수술대로 옮겨진 이성희는 몇 시간 전 링겔에 전신 마취제가 첨가되어 이미 잠들어 있는 상태였다. 수술실을 관통하는 커다란 통유리창 밖에는 오석만 소장과 김병연 실장, 병원 원장이 서 있었고, 그 옆에 이정환 요원이 조용히 나타나 실험광경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실험이 끝난 후 이성희는 안전하게 병실로 옮겨졌고, 김영찬 연구원이 이성희로부터 추출한 변형바이러스와 이성희 항체로 제2실험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수술실에서 연구원들은 필요한 모든 자재와 기구들을 실험실로 옮겼으며, 김영찬은 백신 실험을 위한 바이러스와 항체가 담긴 실린더를 튜브에 옮겨 담은 후 실험실로 이동했다.
그리고 한 시간 가량 진행된 실험...
백신과 변형바이러스가 보관된 튜브는 보안설정이 된 사각형 가방에 담겨 보안 요원들에 의해 이동되기 시작했다.
김병연 실장은 이정환 요원에게 백신과 바이러스의 안전을 확인하듯 물었다.
"서울병원으로 옮겨야 하는 거 알고 계시죠?"
"국정원 특수보안팀입니다. 걱정마세요. 안전하게 관리국으로 옮겨드릴 것입니다."
김병연은 오석만 실장에게 이정환에게 들은 내용을 귓속말로 전하더니 신속한 걸음으로 엘리베이터로 향해 걸어갔다.
김영찬은 실험을 마친 후 서울병원으로 출발하려고 그의 자가용에 탄 뒤 시동을 거는 순간이었다. 조수석 문이 열리며 강태신이 차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시죠?"
김영찬이 화들짝 놀라며 경계심에 몸을 움츠렸다. 강태신은 그의 신분증을 김영찬에게 보여주었다.
"예고도 없이 불쑥 들어와서 죄송합니다. 전 국정원 요원 강태신입니다. 선생님께 확인할 것이 몇 가지 있어서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게 됐습니다."
"확인할 것 몇 가지라뇨?"
"삼일 전 성남검역소에 출근을 안 하고 어디에 계셨습니까?"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하는 겁니까?"
"대충 정황을 알고 왔습니다. 김영찬 선생님에게도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요. 감추려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어서 말씀해 주십시오."
잠시 뜸을 들이며 난처한 표정을 일관하던 김영찬은 강태신의 느닷없는 질문에서 언뜻 자신의 처지를 동감한다는 느낌이 사뭇 들었다.
"혹시... 제게도 이상한 일이 있었단 말씀은 다른 누군가에게 무슨 일 이 있었다는 말씀이십니까?"
"어제 아침에 임연주 병실 앞에서 만났던 요원은 제가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국정원 정보 처리실에서 잠들어 있었습니다. 그것도 하루 종일 말입니다."
김영찬은 태신의 말에 약간 놀라운 듯한 표정을 지으며 경계심을 풀고 삼일 전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사실 저도 잠들어 있었어요. 아침에 출근하기 전 시간이 일러 몸이 덜 풀려 동네 찜질방에 들렀는데, 그만 잠이 들어 하루 종일 그곳에 있었습니다."
강태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짐작한 대로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일단 서울병원으로 출발합시다. 저는 제차로 이동하겠습니다. 그곳에 CCTV를 확인하면 선생님을 대신한 남자를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를 대신한 사람이요?"
"선생님을 대신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자를 선생님으로 알고 있었고, 그자는 감쪽같이 김영찬연구원으로 그날 하루를 보낸 것입니다. 불가사의한 일이지만 정황상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저 역시 같은 상황에 처했으니까요."
"그래요 그 생각을 못했군요. 그저 별일 없이 일이 지나가서 신경을 쓰지 않으려 했는데, 정부에서 조사하는 사건과 연관된 줄은 몰랐습니다. 그럼 일단 서울병원으로 가시죠."
강태신은 김영찬의 차에서 내린 후 자신의 차로 옮겨 탔다. 그때 그의 차 앞으로 국정원 마크가 차 허리에 선명하게 그려진 보안팀 승합차 한대가 지나가고 있었다. 검은 승합차의 조수석 쪽으로 선굵은 인상에 노란색 머리의 미국인 남자가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강태신은 무심코 그 미국인을 쳐다 보았다. 두 사람이 눈이 마주치자 남자는 곧 검은색으로 코팅된 창문을 닫아버렸다.
지하 주차장에서 보안팀이 백신가방을 들고 특수 제작된 승합차에 탑승하자 이정환은 안심하고 자신의 차량에 몸을 실었다.
보안 승합차가 주차장 밖으로 나가자 그 뒤를 이정환이 따라갔다. 차량이 교차로 신호등 앞에서 멈추자 이정환 역시 멈추었다. 그때 검정 양복차림을 한 노랑머리의 미국인 남자가 창문 밖에서 문을 두드렸다. 이정환이 의아해 하며 문을 열자 소음기가 달린 시커먼 베레타 권총이 창문 안으로 불쑥 밀고 들어왔다.
"무슨..."
피슝
이정환은 최대한 몸을 비틀며 총구를 피했지만 총알은 이미 정환의 옆구리를 관통한 후였다.
이정환은 괴한의 권총을 붙잡아 비틀어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그는 괴한의 팔이 창에 걸친 상태에서 차문을 거세게 열어 제꼈다. 괴한이 급히 팔을 빼는 사이에 정환은 총에 맞은 옆구리를 움켜쥐고 차량 뒤쪽으로 신속하게 피했다. 괴한은 미리 준비했던 다른 권총을 옆구리에서 빼내더니 차량 뒤쪽으로 돌아 들어가는 이정환을 향해 계속해서 방아쇠를 당겼다.
탕탕탕탕탕
수십 알의 총알이 땅바닥으로 튕기자 이정환은 몸을 굴리며 차량 반대편으로 돌아 숨었다.
이정환은 그의 권총을 꺼내 차 밑으로 보이는 미국인의 다리를 노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탕탕탕
그러나 그가 방아쇠를 당기기도 전에 괴한의 다리는 사라지고 없었다.
괴한은 차량의 지붕을 붙잡고 점프를 한뒤 가볍게 차 지붕 위에 올라 섰다. 그는 곧 이정환의 머리를 향해 권총을 정조준 했다.
괴한이 지붕에 있는 것을 늦게 발견한 이정환은 노랑 머리 괴한을 똑똑히 쳐다보며 소리쳤다.
“넌 누구냐? 왜 나를...”
탕
이정환의 머리에서 구멍이 나며 검은 피가 바닥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서양인 남자는 차의 지붕에서 신속히 뛰어내린 뒤 앞에 서있던 보안차의 조수석에 탑승했다. 그리고 운전사와 조수석에 있던 요원이 옆 차선에 바로 도착한 똑같은 보안 승합차로 옮겨탔다. 보안차의 뒷좌석에 타고 있던 요원 두 명이 차에서 내려 이정환의 시체를 차 뒷좌석에 태운 뒤 콘크리트 바닥에 번진 피에 스프레이를 뿌려가며 흰 천으로 닦아내기 시작했다. 그는 곧 이정환의 차 운전석에 타고 완벽하게 바꿔 치기 한 두 승합차와 함께 교차로를 벗어났다.
도로 위에서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것처럼 무심한 차량들의 왕래만 있을 뿐이었다.
김영찬과 강태신은 국립병원 중앙 통제실에서 김병연 실장과 여러 연구원들이 모인 사무실을 촬영한 CCTV를 확인하는 중이었다. 강태신의 염려대로 CCTV안에는 김영찬이 존재하지 않았다.
"미스테리한 그 인물은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군요. 제가 있던 곳에서도 마찬가지였어요. 중요한 것은 저 자리에 연구원님이 없다는 점입니다."
김영찬이 그를 보며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그럼 이 사건을 어떻게 다루실 예정이십니까? 사람이 죽은 큰 사건도 아니지 않습니까?"
"사람이 죽은 큰 사건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사라진 이상한 사건과 연루돼 있다고 봅니다."
"어쨌든 저와는 상관 없는 듯 하네요."
강태신은 통제실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며 김영찬에게 그의 국정원 명함을 내밀며 말했다.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도 혹시 이상한 일이 있으시면 연락부탁합니다."
김영찬 역시 자리에 일어서며 대답했다.
"그러죠. 이 일이 혹시 제게 위협이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꼭 도움 부탁하겠습니다."
"물론 적극적으로 제가 도와 드리겠습니다."
김영찬은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와 책상에 앉으며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바이러스와 백신 보관의 표시가 나타나는 제어프로그램이 자동으로 모니터에 떴다. 제어프로그램에 백신, 바이러스 보관소 목록이 뜨며 변형바이러스와 백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 표시가 없는데다가 그 아래 부재에 대한 메시지가 확인됐다. 국립병원에 도착한 즉시 충북 청원 오송 본부로 이송됐다는 표시였다.
"뭐 이래? 오늘 완성한 백신과 바이러스가 바로 본부로 갔다니... 뭔가 좀 이상하잖아."
강태신은 이정환에게 수십 차례 전화를 넣었지만, 전화는 여전히 불통이었다. 처음에는 신호가 가더니, 한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걸었을 때는 아예 전화가 끊겨 있었다. 국정원 본부로 돌아온 그는 이정환의 사무실에 그가 없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주위 동료들에게 물어보았지만 모두 한결같이 대답하고 있었다.
"특수보안팀과 백신과 바이러스를 이송하는 임무를 수행하던 중 실종됐어요."
"특수보안팀은요?"
"누구로 구성됐는지는 이정환만이 알고 있었는데..."
특수보안팀 명단마저 함께 일하는 국정원 요원들 조차도 알 수 없는 극비로 진행되었던 임무였던 것이다.
강태신은 국정원 국장에게까지 찾아가서 물었다.
"국장님 제가 원장님께 찾아가서 여쭙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미안하네. 임무 수행 중 사라졌네. 그 이상은 우리도 알 수 없는 일이야. 결코 어떤 음모도 극비의 프로젝트도 관련되지 않았음을 맹세하네."
"뭔가 이상합니다. 갑자기 일을 수행하던 요원이 사라지다니요. 수사를 진행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 안 그래도 자네에게 일을 맡기려던 참이었네."
"그럼 엑스트라올디너리는요?"
"그일 또한 자네가 처리해야 할 부분이고..."
"그럼 이중 일을 부담할 적절한 조치를 취해주십시오. 예를 들어 뛰어난 실력을 가진 조수를 붙혀 준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전 국장은 그의 요청을 거부할 수 없었다.
"알았네. 그렇게 하지."
김영찬 연구원은 변형바이러스와 백신이 오송병원에 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그곳 동료이자 담당자인 박경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박 연구원 잘있었나?"
"어, 그래, 그런데 어쩐일인가?"
"다름이 아니라, 오늘 항체백신 수술 및 실험이 진행됐지 않은가?"
"그래. 그런데?"
"추출된 항체와 바이러스가 모두 오송병원으로 옮겨졌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인지 확인하려고 전화했네."
"잘 도착했어. 급하게 백신을 싣고 오는 바람에 내가 정신이 없었다.”
“다행이군, 그런데 해당 연구원에게 한마디 언질도 없이 그렇게 갑자기 이송하다니 좀 기분이 안 좋아.”
“나라에서 하는 일이 다 그렇지. 그러려니 생각하라고.”
“그래. 잘 알았다. 다음에 연락하지.”
전화를 끊은 김영찬은 문득 강태신이 말했던 그 미스테리한 일이 떠올랐다.
‘요즘 들어 도통 이해가 안 가는 일이 자꾸 발생하는 것 같아.’
그때 그의 연구실로 김병연 실장이 느닷없이 노크도 없이 문을 벌컥 열었다.
"잠시 할 얘기가 있네."
김병연이 심각한 얘기를 꺼낼 것 같은 긴장된 분위기를 조성하자 김영찬은 불안감이 엄습해오는 것을 느꼈다.
“배양연구는 일단 다른 연구원에게 넘겼으니 자네는 다른 연구에 몰두하게.”
“갑자기 왜 연구원이 바뀐 거죠?”
“그건 상부지시니 너무 자세히 알려고 하지 말아.”
“다른 연구는 무슨 연구를 하란 말씀이십니까?”
“신종플루를 맡게. 그것도 내성을 말일세. 요즘 내성 신종플루 감기환자가 발생한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어. 위에서도 자네 능력을 믿고 신종플루 내성백신을 개발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네.”
“그런 건 제약사에나 맡기라지, 무엇 하러 질병관리국 연구원에게 그 독한 약을 만들라는 겁니까?”
“변종바이러스 백신처럼 자네가 인체의 치유호르몬을 통해 새로운 의약품을 개발하란 말이야.”
“그것 참 어려운 임무네요. 신종플루의 내성 숙주도 없는 이마당에 무슨 인체호르몬을 이용한 백신을 만들라는 겁니까?”
“자네는 할 수 있네. 한번 시도해보게. 시간은 넉넉히 줄 테니, 천천히 연구하게.”
김병연 실장의 말은 그에게 마치 성공해도 실패해도 관계없으며 변형바이러스로부터 관심을 끊으라는 이야기처럼 들렸다.
‘변종플루 인체호르몬 백신이라니… 참, 어이가 없군, 어이가 없어.’
해미의 가야산 여러 개의 높은 봉우리 가운데 민간인이나 군인의 출입까지도 통제된 오래 전에 폐쇄된 채석장 위의 거대한 기지는 인공위성에 조차 표시되지 않는 비밀스러운 장소이다. 담장이 무려 30미터인 기지 내부는 2400야드의 넓은 평야 위에 비행기 활주로와 헬기 정류장 및 여섯 개 동의 건물들이 위치해 있었다. 그곳에는 외부에 미군들의 출입이 이뤄지고 있었고, 간혹 유럽인이나 미국인으로 구성된 흰 수의를 걸친 연구원들이 건물과 건물 사이로 들락거렸다.
여섯 개 동의 건물 중 중앙의 본부로 보이는 건물 가장 위층에 해당하는 5층 넓은 통 유리 안으로 검은 양복 차림의 한 간부는 길쭉한 테이블에 군복을 입은 몇 명과 연구원들, 그리고 몇몇 양복차림의 임원들과 함께 모종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제 호스 요원이 변형바이러스와 백신을 탈취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한국정부 요원의 희생으로 이뤄진 결과물이기에 더욱 숙연히 사용 되야 할 것입니다. 배양이 끝나면 살포가 남았으니, 시기를 나누어 적절히 각 국가에 인편으로 보내도록 하십시오."
짙은 갈색의 양복차림인 유럽의 인터폴 한국지사 사무국장인 램버트 하슬이 미국 CIA국장인 제임스 블레이드에게 물었다.
"국장님, 그 임무가 한국정부요원까지 희생시킬 정도의 수준이었습니까? 한국정부에 심기를 건드릴만한 사건이지 않습니까?"
"일단 뒷수습은 한국정부의 동조로 마무리 됐으나 사무국장님의 염려 또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입니다. 문제는 국정원에서 모든 증거를 소멸시켰다 해도 강태신 요원이라는 자가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강태신 요원은 조금 특이한 케이스의 사건을 맡는 인물이더군요."
CIA 부국장이 말하자 제임스가 다시 부연 설명을 했다.
"그래요. 그는 유에프오같은 비밀병기나, 외계생명체같은 엑스파일 사건들을 주로 담당하는 요원입니다. 이번에 순간이동 실험에서 발생한 사고를 수사 중이지요. 문제는 그가 상부의 지시를 잘 이행하지 않고 독단적인 스타일을 추구하여 자칫 연방정부의 일급비밀까지 파헤칠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CIA부국장이 물었다.
"어째서 골치 아픈 그를 지목한 것입니까?"
"그를 지목한 것이 아니라 그가 선택한 것이지요. 우유부단한 전한수 국장이 제대로 하는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주한미군 사령관인 알렉스 위락은 순간이동 프로젝트에 대한 궁금증에 입을 열었다.
"순간이동 프로젝트는 미완적이긴 했지만 어쨌든 99퍼센트 성공적인 실험이 아니었던 가요?"
여자 연구원장인 새라 캠벨 교수가 말했다.
"전자기력을 발생시켜 순간이동 포트를 생성하는 실험은 성공적이었습니다만, 우리가 선정한 위치가 어긋났어요. 아직 성공하려면 몇 차례 더 실험을 반복해야만 합니다."
국장이 모든 대화를 마무리하듯 말했다.
"우리가 그 실험을 다시 성공적으로 이룩하기 위해서는 우선 강태신의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도록 수를 써야 합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강태신의 가장 절친한 동료가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가 그의 동료에 대한 수사를 진행한다면 그것이 가장 우리의 정체가 위협받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강태신은 경찰이나 검찰이 풀어내지 못한 미스터리 한 많은 사건들을 풀어낸 전적이 있습니다. 그는 온갖 심령술이나, 귀신 같은 잡다한 현상까지도 파헤치는 집요하고 특이한 요원입니다. 아마 이번 사건을 빌미로 국정원에서도 강태신의 활동을 제제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 명심하셔야 합니다."
주한미군 사령관 위락이 말했다.
"국정원에서는 순간이동 사건을 모두 강태신에게 의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강태신이 순간이동으로 실종된 사람들과 차량들을 찾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가 이정환 요원에 대한 사건을 독단적으로 진행한다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곳까지 나타날 수 있다는 점 명심하셔야 합니다. 설사 제가 완벽한 알리바이와 범행 경로를 재구성했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CIA부국장이 말했다.
"그럼 그가 물 수 있는 모든 꼬리들을 다 제거해야겠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제임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서 먼저 강태신의 증인이자 순간이동실험에 생존자인 임연주를 사고로 위장해 제거해야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서는요? 그래도 강태신은 계속해서 파헤칠 것 아니겠습니까?"
"그럼, 하는 수 없이 강태신 그자를 제거해야겠죠."
회의실 한쪽 귀퉁이에 있는 통풍구에는 김덕수가 쭈그린 채 그들이 하는 모든 대화를 듣고 있었다. 수뇌부들의 긴 대화가 끝나자 새라 캠벨은 제 4동에 해당하는 연구동으로 신속히 몸을 옮겼다. 새라 캠벨 교수가 회의실을 나가자 김덕수는 신속히 순간이동을 하며 머물던 곳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연구동으로 가기 위해 지름길인 3동 1층의 큰 격납고를 거쳐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붉은 삼파장 조명들이 천장의 군데군데에 붙어서 넓은 격납고를 비췄다. 그곳에는 검은 투명 천으로 덮힌 덤프트럭과 여러 대의 승용차, 그리고 허리가 찌그러진 버스 한대가 있었다.
연구동에 도착한 새라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10층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의 층수는 무려 지하 35층까지 있었다.
실내 천장과 벽이 온통 하얀 병실 가운데 김덕수가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투명한 유리문 밖에서 새라 캠벨이 병실 안을 바라보며 경비를 서고 있는 남자요원에게 그간 상황을 전해 들었다.
"저 상태로 세 차례 사라졌다가 나타났습니다. 마지막 한번은 한 시간하고 이십 삼분간 사라져 있었습니다."
"알겠어요. 그래도 다시 돌아오는 것은 우리가 설정해 놓은 주파수 때문이지요. 어차피 그의 의지대로 하는 것이 아니니 말이에요."
그녀는 병실문을 열며 김덕수에게 다가가며 생긋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그의 눈동자를 볼펜만한 후레쉬로 확인한 후 체온을 재며 그에게 서투른 한국말로 다정히 물었다.
"어디를 갔다 오셨어요?"
김덕수는 능청스럽게 거짓으로 미리 생각해 놓은 말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큰 바닷가가 있는 백사장이었어요. 또 한번도 바닷가였는데 넓은 초원 위에 있었고요. 마지막으로는 제 아내와 딸 민예가 있는 집 앞이었는데, 도저히 집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어요. 한 시간을 넘도록 주위를 배회했어요."
새라 캠벨은 그의 모든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상황은 카메라에 녹화되고 있었고, 새라 캠벨의 한쪽 귀에 꽂힌 무선 이어폰으로 그의 말이 정확히 영어로 통역되고 있었다.
진산 한의원 원장 이산인은 그가 간혹 명상을 하는 방에 혼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는 고요히 눈을 감고 양손을 무릎위에 놓은 채 김덕수를 생각했다. 잠시 후 그는 꿈을 꾸듯 김덕수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산인 원장님, 그간 있었던 상황을 보고하겠습니다."
김덕수의 목소리가 이산인의 귓전을 울렸다. 김덕수는 그가 보고 겪은 모든 것들을 이산인에게 전하고 있었다.
가리봉동의 낯선 집에서 일주일간 거처하던 임연주는 최유정으로부터 한방의학을 뛰어넘은 온갖 종류의 시술을 받자 서서히 그녀의 병세인 불안증상이 호전되기 시작했다. 최교수의 시술은 침술만이 아니라 명상과 심신 수련과 더불어 끊임없는 교화로 연주에게 몸과 마음의 균형을 되찾게 해주고 있었다.
"침술만 놓게 된다면 인간자신의 강인한 면역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만 초래할 뿐입니다. 그래서 명상으로 자신의 마음을 안정케 하고 자신이 그 동안 살아오면서 후회스러운 일, 죄스러운 일 등 모든 허물들을 생각하며 스스로 풀어내야 합니다. 그리고 더불어 자신의 병은 곧 사라질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책상다리의 편안한 자세에서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겨 있던 연주는 궁금한 점이 떠올라 침착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병을 낫는데 지나간 모든 허물을 생각하고 풀어내는 일이 그토록 중요합니까?"
임연주 맞은 편에 같은 자세로 명상을 하던 최유정이 그녀의 질문에 답해주었다.
"연주씨가 걸린 병은 일종의 우울증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어요. 그 마음이 지속된다면 정말 연주씨는 당신 스스로가 생각하고 있던 병에 걸리고 말 거에요. 하지만 그 병의 원인을 안다면 그것을 바로잡으려 하겠지요. 제 말인 즉, 당신의 지난 허물이 그 병의 원인이라는 점이에요. 또한 전생을 믿는다면 전생에 지은 죄 역시 지금의 병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을 거에요."
"교수님의 말씀이 옳으신 것 같아요. 잘은 이해가 가지 않지만 말씀하신 대로 하니까 정말로 마음이 편해지고, 제가 왜 신형바이러스에 걸렸다고 생각했는지 이해가 가요. 이젠 정말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아요."
"연주씨 그것 말고도 연주씨는 정말 불안한 것이 많더군요. 하지만 그런 것들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마음의 병이니 그 동안 제가 가르친 것을 잊지 말고 항상 힘들 때마다 떠올리도록 해보세요."
"네, 교수님."
"연주씨 개인적인 부탁인데 앞으로 선생으로 불러주면 안될까요? 교수님이란 말이 너무 어색해요. 학교에서도 교수라고 부르는 학생에게 전 늘 선생이라고 불러달라고 부탁을 하거든요."
"아, 그러셨군요. 알겠습니다. 앞으로는 선생님이라 부르겠습니다."
"하하, 네, 고맙네요."
임연주는 최교수의 집을 나서면서 문밖까지 배웅해주는 최유정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었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에도 찾아 뵈어도 될까요?"
"그럼요. 언제든지 환영이에요. 다만 주말에만 오도록 해요."
"네. 그런데..."
"그런데 왜요?"
"사실 그 동안 정신이 없어서 여쭙지 못한 것이 있는데요."
"그게 뭐죠?"
"저는 선생님의 집에 어떻게 왔는지 몰라요. 제가 서서히 정신을 되찾으면서 궁금했던 것인데, 좀처럼 기회가 나지 않았거든요."
"아차, 나도 그걸 말하려 했는데, 깜박했네요. 연주씨를 데려온 것은 박도진이에요."
"어머, 도진씨는 저와 학교 동기인데요. 나이는 저보다 많지만... 어떻게 그가 저를 여기에 데려온 거죠?"
"연주씨가 병원에 입원한 걸 이리로 데려왔어요. 전화 통화하고 연주씨가 무의식적으로 병원에 있는 것을 말했는가 봐요."
"그랬군요."
연주는 생글생글 웃으며 다시 한번 최유정을 향해 꾸벅 인사를 했다.
"어쨌든 정말 고마웠습니다. 다음에 꼭 찾아 뵙겠습니다."
"그래요."
연주는 못내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최유정의 집을 등지고 시내를 향해 힘찬 걸음을 걸었다.
최유정은 약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연주의 뒷모습을 보며 그녀가 사라질 때까지 눈을 떼지 않았다. 연주가 시선에서 벗어나자 최유정은 곧 휴대전화를 꺼내 들고 이성일에게 전화를 걸었다.
"원장님, 이제 임연주가 떠났습니다."
"그렇군요. 곧장 집으로 간다고 했던가요?"
"네, 집으로 갈 겁니다."
"정부요원들이 임연주를 살해할 목적을 가진 것 같아요. 그것은 임연주를 찾고 있는 강태신이라는 정부 요원 때문이라는데 최종 목적은 그를 살해하는 것이라는 군요. 그 강태신이라는 자, 집 앞에서 분명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거에요. 분명 그곳이 위험한 장소가 될 겁니다."
"강태신이라는 자는 임연주에게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 걸까요?"
"김덕수와 다른 실종자들에 대한 증언입니다. 강태신이 모든 것을 파헤치면 그들의 존재가 드러날 수도 있다는 점 때문이죠."
"정부도 모두 다 한 패가 아닙니까? 강태신도 정부 수하 사람인데, 왜 그들은 그를 경계하는 걸까요?"
"오히려 정부사람들이 더 모릅니다. 정의감에 사무쳐 열정적으로 일하던지,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면서 편리를 추구하던지, 그것은 그들이 만들어 놓은 울타리 안의 세계를 진짜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위장술을 벌이는 것과 같습니다. 그들이 짜놓은 제도 모두가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보이지 않게끔, 개연성, 리얼리티를 더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모두를 속이지 않고는 그들의 뜻을 이룰 수 없는 것이죠."
최유정은 순간 연주가 걱정스러워졌다.
"임연주가 위험하다니 제가 가서 도울까요?"
"아니에요. 제가 도진에게 전화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은평구청역 1번 출구로 많은 인파들이 오고 가는 틈 사이에 임연주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도진이 그녀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
"임연주 양. 몸은 괜찮아요?"
연주는 놀란 눈으로 고개를 들고 도진을 쳐다보았다.
"박도진 씨...?"
"네. 그 동안 최선생님 집에서 잘 보냈죠?"
"네."
도진은 연주와 함께 그녀의 집이 있는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한참 도진을 따라가던 연주는 갑자기 뭔가 궁금해져서 그에게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 집 가는 길을 잘 아세요? "
"아, 알다뇨. 전 연주양이 걷는 방향을 의식하고 걸을 뿐이에요. 비록 앞에 섰지만..."
"그래요? 그런데 왜 우리집에 가시는 거죠?"
"참 빨리도 물어보시네요. 사실 연주양을 보호하려고..."
부우우웅
좁은 골목으로 갑자기 검정색 승합차 한대가 튀어나오더니 두 사람을 덮쳤다.
도진과 단 1미터 간격의 자동차 앞에서 도진은 갑자기 연주의 손을 꼭 잡았다.
박도진의 몸이 순식간에 사라지더니 승합차 운전석으로 들어가 운전대를 붙잡고 급히 왼쪽으로 꺽었다.
승합차가 연주의 옆을 가까스로 지나치며 그 대로 멈추지 않고 달렸다. 거친 바람이 연주의 긴 머리 결이 날리자 놀란 연주는 소스라치듯 놀라며 소리쳤다.
"꺅!"
박도진이 사라진 연주의 집 앞에서 그녀는 도진을 찾아 헤맸다. 그런데 그녀 앞에 나타난 남자는 도진이 아닌 강태신이었다. 강태신은 신분증을 그녀에게 보여주며 일단 고개를 꾸벅 숙이며 그의 의사를 전했다.
"실례하겠습니다. 저는 국정원 요원 강태신이라고 합니다. 제가 갑작스럽게 불쑥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연주양에게 결코 피해가 가는 일도 없도록 할테니 우선 안심부터 부탁드립니다."
연주는 그의 정중한 태도에 잠시 생겼던 경계심이 풀렸다.
"저에게 무슨 볼일이 있으신 거죠?"
"이런 이야기는 조금 안정된 곳에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집안으로 초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인하여 결코 임연주씨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부모님께서 계시면 그분들이 있는 자리에서 얘기 해도 되고요."
임연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문 옆 기둥에 붙은 벨을 눌렀다.
강태신이 임연주 시선을 가리며 카메라가 설치된 벨 앞에 고개를 내밀었다.
“연주씨가 갑작스럽게 나타나면 부모님이 놀라실 거에요.”
“누구세요?”
벨 스피커에서 임연주의 어머니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희는 국가 정보국 NSI 소속 요원입니다. 실종됐던 임연주 양을 찾아 함께 왔습니다.”
“어머, 연주가…”
갑작스러운 반가운 소식에 너무 놀란 연주 어머니는 대답도 못하고 급하게 문이 자동으로 열리는 버튼을 눌렀다.
“삑”
대문이 시금장치가 풀리는 소리와 함께 자동으로 열렸다. 연주와 강태신이 대문을 열고 들어가 3층 집으로 오르는 계단을 밟자 3층 현관 문이 열리며 연주의 어머니가 부리나케 마중을 나왔다. 연주 어머니는 강태신 뒤에서 따라오는 연주를 보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동안 연주양에게 벌어졌던 그간 있었던 사건에 대한 진술이 필요합니다. 물론 정보국뿐만 아니라 어머니께서도 확인하셔야 할 부분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래요, 어서 들어오세요.”
연주가 어머니 앞에 서자 근심으로 가득했던 어머니의 얼음장 같은 마음이 한숨에 녹아 내렸다.
“엄마, 저 때문에 많이 걱정하셨죠.”
임연주의 말에 어머니의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그래도 무사해서 천만 다행이구나, 일단 들자꾸나, 들어와서 얘기 하자.”
“네, 엄마.”
연주는 넓은 거실 가운데 고급 소파와 테이블로 강태신을 안내했다.
“여기 앉으세요.”
강태신이 자리에 앉자 연주 어머니가 음료수를 잔에 따라서 소파 테이블 위에 올렸다.
“감사합니다.”
연주와 어머니가 함께 소파에 앉자 강태신은 손을 모은 채 연주를 바라보며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마치 제가 연주양을 찾은 것처럼 느껴지실지는 모르겠지만 이 자리에서 저는 연주양의 실종사건을 맡았던 수사관이 아님을 솔직하게 밝히겠습니다.”
임연주의 어머니가 약간 놀란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아니, 그럼 어째서 연주와 함께 들어 온 거죠?”
“저는 연주양이 나타날 것이라는 점을 예상하고 집 앞에서 며칠을 기다려왔습니다. 그리고 연주양과는 바로 십분 전에야 대문 앞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다시 물으려고 하자 연주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저는 그 동안 병원에 있었어요. 처음에는 삼성병원에 둘째는 한방의료원에요. 삼성병원에서는 신형바이러스를 치료하기 위해 간 것이었고요. 삼성병원에서 제게 병이 없다는 것을 확인해주고 저는 정신을 치료 받기 위해 학교 동기생의 소개로 어떤 한방의료원의 전문의에게 치료를 받았어요.”
어머니는 그녀의 말에 약간 노기를 띄우며 물었다.
“넌, 부모생각은 전혀 없었구나, 그렇게 있었으면서 한번의 전화조차 없었니?”
“죄송해요. 그 당시 제 정신은 겉만 멀쩡했지 거의 혼수상태와 같았어요. 일종의 패닉 상태였죠. 저는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그 치료를 받기 전까지요.”
강태신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저는 연주양이 성남대학교의 버스를 타고 검역소를 지나쳤다는 것을 검역소 관련자로부터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어요. 연주양이 실종되던 날 밤 연주양이 타고 있던 버스와 한대의 덤프트럭, 그리고 두 대의 차량이 사라졌어요. 물론 연주양은 그날 밤 삼성병원으로 입원을 했고요. 연주양, 성남의 검역소에서 백신을 접종 받은 후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어째서 연주양은 실종된 버스에서 사라졌다가 병원으로 나타난 거죠? 그 사이에 무슨 일 벌어진 것인지 알려주세요.”
연주는 한동안 생각하고 있지 않았던 그날의 사건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저도 일부는 생각이 나지 않아요. 정말 그때 전 정신을 잃은 상태였으니까요. 제가 기억하는 것은 덤프트럭이 버스에 부딪혔다는 사실밖에 없어요.”
“그럼 연주씨는 사고 난 버스에서 기어 나와서 스스로 병원을 찾아온 건가요? 그 성남의 도로에서 강남 삼성병원까지 가기 위해 지하철 역까지 가는데도 많은 시간이 걸렸을 텐데요. 그곳에도 많은 큰 병원들이 즐비한데, 어째서 삼성병원에 입원했냐 이말 입니다.”
“저는 덤프트럭이 버스를 치기 전에 김덕수 기사님을 따라 버스에서 나왔어요.”
연주가 김덕수를 지명하며 말하자 강태신의 눈이 커지며 물었다.
“김덕수 기사 역시 살아 있겠군요. 그 역시 바이러스가 검출되어 백신을 접종한 것으로 돼 있던데, 맞는가요?”
“네, 그분도 함께 저와 백신을 접종했어요.”
“그럼 김덕수는 어디에 있죠?”
“제가 버스에 나왔을 때 덤프트럭이 공중에서 날아와 기사님을 친 후 버스의 허리부분에 내리 꽂혔어요. 그 기사 분은 아마 살아남지 못했을 거에요.”
“하지만 버스기사 역시 아직 시체조차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 외에도 두 명의 남자와 그들이 탄 승용차, 부모와 어린 여자아이와 그들이 탄 승합차, 그리고 덤프트럭과 기사 역시 그 자리에서 자취를 감추었죠.”
“그랬군요. 하지만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아요..”
강태신은 연주가 기억을 못하자 매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연주씨, 그럼 왜 스스로 신형바이러스에 걸렸다고 생각한 거죠? 병원에서는 연주씨에게서 신형바이러스도 그 백신도 검출되지 않았고, 그저 감기 백신 맞은 흔적만 발견 됐다고 하던데요. 어째서 그런 일이 벌어진 건가요?”
“모르겠어요. 저는 성남 검역소에서 헌병이 제게 신형바이러스가 있다고 그랬고, 그곳에서 분명 의사에게 백신을 접종 받았어요. 삼성병원에서 입원할 때도 저는 신형바이러스 환자였는데, 다음날 갑자기 제가 환자가 아니라고 하더군요.”
태신은 질문을 통해 자신을 정보국 정보처리실 안에서 잠들게 하고 대신해서 병원으로 갔던 그 불가사의한 인물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그날 저와 제 동료가 찾아갔었어요. 하지만 저는 임연주양을 볼 수 없었죠. 그런데 한 낯선 남자 한 명이 연주양의 병실로 들어가는 것을 발견했어요. 혹시 그 남자가 누구인지 말해줄 수 있나요?”
“그날 아침 담당의사는 제게 퇴원을 해도 된다고 했고, 제가 있던 환자실에 도진씨가 나타났어요. 제가 잠든 사이에 그가 저를 한방의료원으로 데려갔다고 한방치료를 맡으신 선생님에게 들었어요.”
태신은 드디어 자신이 찾아 헤맸던 인물의 이름을 알아내서 여간 기쁜 것이 아니었다. 이정환 요원은 그날 강태신을 위장해 나타났던 남자가 임연주 병실로 들어갔다고 했었다.
“그 도진이라는 사람이 나타난 것은 몇 시 즈음이었죠?”
“그것도 기억이 나지 않아요. 그저 아침이었던 것 밖에는요. 그 당시 제 기억력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아요. 전 꿈꾸었던 것 밖에 기억나는 게 없어요.”
“그 도진이라는 사람의 성이 뭐죠?”
“박도진, 그는 저와 성남대학 2004년 학번 동기에요. 저보다 5년이나 차이 나는 그는 30세 늦은 나이에 대학에 입학했죠. 물론 저도 벌써 졸업했어야 하는 나이인데 휴학을 몇 년하고, 졸업시험에 통과하지 못하는 바람에 아직 4학년을 재학 중이긴 하지만요. 그 역시 저와 같이 4학년에 재학 중이에요.”
“그를 만날 수 있다면 좋겠는데, 방법이 없을까요? 실종사건에 큰 단서를 제공할 수도 있어요.”
“그가 그 실종사건과 무슨 관련이라도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밀접한 것은 그와 대화를 나눠봐야 알겠지요.”
“그를 범인으로 지목하시는 건 아니겠죠? 그는 그 실종사건과 아무런 연관이 없어요.”
임연주가 약간 흥분한 상태로 말하자 태신이 침착하게 그녀를 달래듯 말했다.
“범인이라뇨? 그 실종사건은 범인이 따로 없어요. 정보국에서 다루는 매우 미스테리한 사건이며 미국의 X-파일에 해당하는 그런 사건의 종류입니다. 외계의 유에프오가 나타나서 데려갔다 해도 믿을 수 있는 그런 종류 말입니다. 설마 제가 박도진이라는 남자를 납치 외계인으로 믿는 줄로 아시는 건 아니겠죠?”
“그는 요원님을 만나기 전에 저화 함께 있었어요. 지하철에서 오는 길에 만났거든요. 요원님이 나타나기 바로 전에 사라졌고요. 그런데 신기한 것은 정말 눈 깜박할 사이였어요.”
강태신이 그녀의 박도진에 대한 진술에서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자신이 찾아 헤매던 사건의 한가지 실마리가 풀려가는 듯하여 마음에 흥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갑자기 사라졌단 말씀이신가요?”
“차가 한대 지나갔는데, 그 후로 없어졌어요.”
갑자기 강태신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일단 수사에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연주양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충분한 것 같습니다. 우선 박도진을 만나야 저희 수사에 큰 진전이 있을 것 같습니다."
강태신은 연신 고개를 숙이며 연주 어머니와 연주에게 인사를 하며 부리나케 그녀의 집을 벗어나 대문까지 내려갔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 태신은 주위를 살피며 자신의 차량으로 이동했다.
임연주와 박도진을 차로 치려고 했던 비밀정부요원은 그대로 골목을 벗어나 시내 도로를 향해 진입하고 있었다. 조수석에 앉아있는 김재권 요원이 기겁하며 그를 만류했다.
"지금 어디로 차를 빼십니까? 임연주를 죽이지 못했는데, 임무 수행을 포기하시려고요?"
"임무수행에 차질을 빗지 않기 위함이야. 우리의 정체에 의심이 없어야 하니, 일단 다음 기회를 노리자고."
"오늘 죽이지 않으면 다음기회는 찾아오지 않습니다."
"일단 우리의 타깃이 임연주는 아니지 않는가? 강태신을 최종적으로 제거하는 게 임무완료다. 오히려 임연주를 살려 놓는 게 강태신을 잡는데 수월할 것이야."
"강태신을 제거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바로 죽이지는 말라는 상부의 지시 잊으셨습니까? 제 2차 명령이 떨어져야지 그를 제거하는 거라고 말입니다."
"나도 알고 있네. 그래서 임연주를 살려두는 거야. 제 2차 명령 시에 조치를 하기 위함이지."
"그럼 위에 뭐라고 보고 하시려고요?"
"내 방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은 오히려 위에서도 인정하려 할 걸세."
한참 김재권 요원을 설득하던 박도진은 은평구를 한참 지난 후 강변북로를 타고 가다가 비상정지 구간에 차를 세웠다.
"차는 왜 세우시나요?"
김재권이 묻는 순간 운전석의 박도진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는 갑자기 정신이 몽롱해졌고, 둔탁한 물건에 머리를 한대 맞은 느낌이었다. 그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정신을 차리려 노력하며 흐릿한 시야로 빈 운전석을 응시했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는 거지?"
그리고 그는 뒤 좌석에 그의 동료요원이 누워 잠들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를 흔들어 깨웠다.
"신동한 요원 어서 일어나세요. 여기서 잠들면 어떡합니까?"
잠들어 있던 요원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 뒤 다시 운전석으로 돌아왔다.
"언제 내가 여기서 잠들었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조금 전까지 타깃 제거에 실패하고 재시도를 보류하자고 하시고는 갑자기 차를 세우신 후 뒷좌석에서 주무시던데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운전을 하다가 뒤로 가서 잠을 자다니, 게다가 우리가 타깃을 놓쳤단 말이야?”
“신 요원 님이야말로 또 왜 그러십니까?”
“이봐 제정신이야? 강태신이 임연주를 당장이라도 만나고 있다면 어쩌려고 그러나? 차를 세워서라도 제거했어야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강태신이 임연주를 만나기 전에 빨리 가서 처리합시다. ”
"우리 인력으로 부족한 것 같다. 내가 수행 요원들을 불러야겠다."
신동한 요원은 곧 시동을 걸고 다시 임연주가 사는 은평구로 차를 돌렸다. 그리고 그는 한쪽 손으로는 휴대폰을 들고 단축키를 꾹 눌렀다.
임연주는 강태신이 떠나가고 난 후 자신의 위층 방으로 들어가서 휴대폰을 들고 도진의 번호를 눌렀다. 한참 전화벨이 울리다가 전화가 걸리는 수신음이 들려왔다.
“연주 씨, 집에는 잘 들어갔죠?”
"아까는 갑자기 어디가신 거에요? 사람 참 이상하게... 갑자기 사라지셔서 놀랬잖아요."
"아까는 어쩔 수가 없었어요."
“뭐가 어쩔수가 없었다는 거죠?"
"누군가가 연주씨를 위험에 빠뜨리려고 하는 것을 막느라 잠시 사라졌던 것입니다."
"믿을수가 없군요. 그런데 집에 정보국에 요원 한 명이 찾아와서 도진씨에 대하여 묻고 갔어요."
그때였다. 연주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연주의 방문이 벌컥 열렸다. 연주는 깜짝 놀라며 갑자기 나타난 박도진을 쳐다보며 소스라치며 놀랐다.
“어머, 박도진 씨?”
“가요, 시간이 없어요. 연주씨는 지금 매우 위험해요. 어머니에게 설명하고 여기를 벗어나야 해요.”
“왜, 왜 그런데요? 왜 내가 위험하다는 거죠?”
“정부요원이 연주씨를 죽이려고 하고 있어요. 좀 전에 집 앞에서 차에 치일 뻔한 걸 내가 놈들의 차를 유인해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거에요. 놈들이 두 번째 시도를 하러 올 거에요.”
“이렇게 느닷없이 무슨 소리에요?”
“이유는 나중에 설명해 줄께요. 우선 이곳부터 피해야 해요.”
강태신이 차에 몸을 싣자 조수석에 최정혜 요원이 앉아 있었다.
“언제 왔어?”
“좀 전에요. 단서는 얻으셨나요?”
“임연주의 동기생인 박도진이라는 남자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어. 김덕수에 대해 알아온 것 좀 읊어봐.”
“네, 그의 나이는 45세로 1999년에 성남대학교에 버스기사로 입사해 지금까지 운전기사로 일해 왔어요. 가족은 아내 윤은자와 일곱 살 나이의 딸 김민예가 있고, 경남 구미에 그의 형님 가족들과 어머니가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습니다. 1998년도에 잠시 집을 비운 경력이 있는데, 당시 직장을 구하지 못해 방황을 하던 시기였어요. 일이 안 풀려 어디론가 잠적을 했었는데. 그 기록은 나와 있지 않습니다.”
“1998년과 1999년 사이에 무엇을 했는지 알아 봐. 나는 박도진을 만날 테니.”
“네.”
최정혜 요원은 차에서 내려 골목 맞은 편에 세워둔 자신의 차로 다가갔다. 그때 골목길이 교차하는 삼거리 맞은 편 길에서 검정색 SUV 차량 한대가 빠른 속도로 지나갔다.
박도진은 자신이 마치 정보국 요원인 것처럼 행세하며 연주 어머니를 설득했다. 연주의 눈에는 박도진으로 보였지만, 어머니의 눈에는 박도진이 아닌 좀 전에 다녀간 강태신으로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요, 그럼 늦기 전에 어서 피해요.”
“예, 걱정 마세요. 그자들도 정보국이라 정해진 목표 외에는 어떤 시민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으니 어머니께서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러니 집에 평소대로 하던 일 하고 계시면 될 거에요. 혹시 나타나서 물으면 정보국 요원과 함께 떠났다고 하시면 됩니다.”
“알았어요.”
연주는 급하게 현관 계단을 내려가는 박도진을 따라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어머니는 걱정스런 눈빛으로 현관 문 앞에서 연주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그때 대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리며 벨소리가 울렸다.
딩동
박도진은 대문 밖을 의식하며 연주의 집 뒤쪽 담을 보며 조용히 말했다.
“뒤쪽 담을 넘자.”
박도진과 연주는 높지 않은 담을 넘어 건너편 주택으로 몸을 옮겼다. 연주의 집에서 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박도진과 임연주는 담을 넘어 연주의 주택 뒷 집 마당을 거쳐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두 사람은 연주를 살해하려는 요원의 추적으로부터 멀리 피하기 위해 최대한 빠른 속도로 골목길을 달렸다. 복잡한 여러 길을 바꿔가며 요원을 피해 달아나던 도진과 연주는 대로로 빠지는 길로 들어섰다. 그때 대로 쪽에서 신동한 요원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 두 사람을 노려보고 있었다.
신동한 요원의 가슴쪽에서 소음기가 달린 베레타가 빠져 나오며 임연주의 이마를 향해 조준을 했다.
그때 신동한의 등 뒤로 강태신이 나타나서 길죽한 발을 뻗어 그의 허리를 밀어 찼다. 신동한의 몸통이 강태신의 공격에 밀리며 정조준한 팔이 흔들리면서 동시에 방아쇠가 당겨졌다.
피융
총알은 임연주 머리 위 간판을 맞추며 네온사인에서 불꽃이 튀겼다. 도진은 재빠르게 연주의 손을 끌고 맞은편 골목길로 뛰기 시작했다.
신동한은 멈칫하며 베레타의 총구를 강태신의 머리에 들이댔다. 강태신은 빠른 속도로 권총이 든 팔을 붙들어 하늘로 치켜세운뒤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을 잡아 비틀었다. 권총이 바닥으로 떨어지자 신동한이 다른 손으로 강태신의 얼굴을 가격했다. 강태신은 재빠르게 그의 주먹을 엇갈린 양손으로 낚아 채고는 반대방향으로 큰 원을 그리며 팔을 꺾었다. 순간 신동한의 몸체가 공중에서 거세게 돌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강태신은 땅에 떨어진 베레타를 집은 후 박도진과 연주가 피신한 골목길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도진과 연주가 골목길의 중간지점도 못 갔을 때 김재권 요원이 맞은 편에서 나타나 연주를 향해 권총을 겨누었다.
박도진은 그 동안 순간이동의 도술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고 숨겨왔었다. 그러나 상황이 매우 급박하여 순간이동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순간 소음기 달린 베레타의 총구에서 총알이 불을 뿜었다.
박도진이 연주의 몸을 가리며 서자 총알의 방향은 정확히 박도진의 이마를 향하고 있었다.
도진은 머리로 날아오는 총알을 손가락으로 살짝 튕겼다. 총알은 곧 골목 담벼락에 박혔다.
그때 다시 도진과 연주의 뒤에서 강태신이 나타나 맞은 편 김재권 요원을 향해 총을 발사했다.
피슝
"윽!"
곧장 총알이 김재권의 어깨를 관통하자 김재권이 비명을 지르며 총알이 박힌 오른 쪽 어깨를 움켜 쥐었다.
강태신은 김재권의 재공격을 막기 위해 그가 떨어뜨린 권총을 향해 계속해서 방아쇠를 당기기 시작했다.
탕탕탕탕
총알이 불꽃을 튀기며 땅바닥에 떨어진 김재권의 총을 맞혔다. 권총은 수십발의 총알 세례로 인하여 무릅을 꿇고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김재권으로부터 멀리 튕겨가고 있었다. 강태신은 날랜 몸동작으로 마치 번개처럼 김재권의 눈앞에 나타났다. 당황한 김재권이 몸을 일으키며 왼쪽 주먹을 휘둘렀지만 그 상황에서 강태신의 상대가 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강태신은 그가 쥐고 있던 총 손잡이로 김재권의 정수리를 가볍게 내리찍었다. 김재권은 가볍게 정수리를 맞은 듯 했지만 급소를 맞았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강태신은 박도진과 임연주를 의식하며 양손을 들어올리며 베레타 권총을 허리 뒤쪽 혁대 안으로 집어넣었다.
"임연주 양, 접니다. 강태신 요원. 우연히 지나가다가 두 사람이 위험에 처한 상황을 확인하고 왔습니다."
박도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임연주의 눈을 응시하자 연주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저를 따라오세요. 제 차로 일단 위급한 장소에서 벗어납시다."
임연주가 걱정스런 표정을 지으며 강태신에게 물었다.
"저희 엄마는 무사하신가요? 저들이 위험한 자들이면 엄마에게 나쁜 짓을 한 거면 어떡하죠?"
"일단 차로갑시다. 제 파트너에게 엄마의 안전을 확인하게 하겠습니다."
박도진과 연주는 뛰어가는 강태신을 쫓아 함께 뛰기 시작했다. 그때 뒤에서 그들을 추격하는 남자들의 구둣 발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강태신이 급하게 자신의 차량 문을 열며 두 사람에게 빨리 타라고 손짓했다.
멀리서 세 명의 장정들이 차에 타는 강태신과 임연주, 박도진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
탕탕탕탕탕
서너발자국 앞에서 총알이 땅에 튀겼다. 다행히 사정거리를 벗어난 거리라서 차 있는 곳까지 총알이 날아오지 않았다.
차에 탑승한 태신은 도진과 연주가 뒷좌석에 몸을 싣자 곧 시동을 걸고 빠른 속도로 골목길을 벗어나 대로로 진입했다.
그때 세 명의 장정 앞에 승합차 한대가 멈추었다. 차에 올라탄 그들은 곧 강태신의 차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강태신은 최대한 추격을 피하기 위해서 신호등을 확인하며 전력질주를 했다. 신호등이 좌회전 신호가 뜨자 곧바로 좌회전을 받았다. 그리고 적색 등 앞에서는 우회전을 받아 빠르게 시내를 돌았다. 그러나 그 자들의 실력도 만만치 않았다. 결국 대로에서 간격이 좁아지자 그들이 강태신의 차 뒤를 받으려고 전력질주를 했다. 강태신은 그들의 행동을 빠르게 눈치채고 곧바로 차선을 바꾸었다. 그리고 반대편 차선에 차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곧바로 좌회전을 받으며 상가 사이의 골목안으로 진입했다. 그러자 그들도 재빠르고 과감하게 좌회전을 받아 중앙선을 넘어 달려오는 차를 가까스로 피하며 골목길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들이 한참 달리는데 강태신의 차가 보이지 않자 그 자리에서 멈춰섰다.
"야! 빨리 내려. 여기 어딘가 있다."
수행요원들은 차에서 신속하게 내리며 총을 거머 쥐고 사방을 응시했다. 그때 차 옆에 있는 한 명의 요원 등 뒤로 강태신이 조용히 나타나며 왼손으로 요원의 목을 감아 비틀었다. 요원은 쓰러지며 총을 떨어뜨리자 강태신이 재빨리 권총을 낚아챘다.
"저기 있다."
맞은 편에서 소리치는 요원은 강태신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기 시작했다.
탕탕탕
강태신은 재빨리 낙법 자세로 땅바닥을 굴렀다. 강태신이 지나간 뒷 쪽 벽으로 총알이 튕기며 불꽃이 일어났다.
강태신이 착지를 하는 동시에 들고 있던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요원은 그 자리에서 머리에 구멍이나며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리고 한 발자국 뒤에 있던 다른 요원이 강태신을 향해 권총을 들이댔다. 강태신은 총구 방향에서 먼저 벗어나 그자의 팔을 꺾어 비틀어 권총을 떨어뜨렸다. 강태신은 재빨리 그자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린 후 정확하게 인중을 때렸다. 쓰러진 요원은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
마지막 남은 요원이 달려오며 강태신을 향해 단검을 휘둘렀다. 강태신은 재빠르게 단검의 반경을 벗어 난 뒤 요원의 옆으로 이동해 빠른 잽으로 그의 얼굴을 가격했다. 요원은 강태신의 잽에 맞은 뒤 정신을 못차리며 비틀거렸다. 강태신은 손날을 가볍게 쥐며 비틀거리는 요원의 목젓을 힘껏 때리쳤다. 그는 컥하는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강태신은 곧 권총손잡이에 머리를 맞고 사경을 헤메는 요원을 붙들어 뒤에서 목조르기를 하며 기절을 시켰다. 그리고 그는 그자의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신분증을 확인했다. 하지만 주민등록증과 면허증만 있을 뿐 그들이 소속된 곳을 말하는 어떠한 신분증은 발견되지 않았다.
골목 한쪽길에 주차돼 있던 SUV 승합차에 오른 강태신은 다시 시동을 걸고 그 골목을 벗어났다. 최대한 먼곳으로 벗어난 뒤 강태신은 휴대폰을 들고 최정혜 요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최요원 지금 연주 양의 어머니가 매우 위험한 상황에 처해있으니 곧바로 임연주 집으로 가서 어머니를 안전하게 모시게."
전화를 끊자 뒤에 박도진이 말했다.
"연주의 어머니는 무사할 거요."
운전을 하는 강태신이 궁금한 듯 도진에게 물었다.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강태신 요원 당신이 그걸 모른다면 국가요원이 아니겠지요. 연주를 살해하려 했던 자들 역시 정부에서 파견된 요원들이 틀림없습니다."
"저는 그들을 국정원에서 단 한번도 본적이 없습니다."
"제가 말하는 정부요원은 한국정부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들은 세계정부의 요원들입니다."
강태신은 박도진의 말에 상당히 놀라운 표정을 지으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저들의 목적은 임연주를 살해하는 것이나 최종 목표는 임연주가 아니라, 바로 강태신 요원 당신입니다."
시내도로를 80km이상 달리던 강태신은 더 이상 추적이 없을 것을 판단 한 후 점차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그는 박도진의 놀라운 발언에 촉각을 바짝 곤두세우고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매우 평범해 보이는 남자가 정부의 특수요원 조차 알지 못하는 위험한 비밀을 폭로하자 태신은 여간 혼란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는 성산대교를 넘어가며 서부간선도로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박도진 씨라고 하셨나요?"
"그렇습니다."
"어떻게 그 사실들을 알았죠? "
"질질 끌지 않겠습니다. 어차피 믿거나 말거나 강태신 요원님 마음이니까요. 또한 어떻게 알았냐는 질문은 말아주십시오."
박도진이 잠시 뜸을 들이는 사이에 옆의 임연주가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대유행한 신형바이러스는 인간들이 흔들리는 경제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각 정부와 UN정부에서 고의로 퍼뜨려 왔던 것입니다. 경제가 위태로워지면 병을 퍼뜨린 후 애초에 만들었던 백신을 유통해서 경제를 회생시키는 것이죠. 이번에 이성희 환자를 통해서 변형바이러스와 그 백신이 추출됐습니다. 매우 강력한 바이러스로 배양될 것이고, 곧 배양된 바이러스는 각 나라의 살충용 제트기에 의해 전 세계적으로 퍼뜨려질 것입니다."
"그 사실과 제가 세계정부요원들의 타깃이라는 점과 무슨 관련이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일단 제 얘기를 들어보세요. 분명 당신과 밀접한 연관이 있으니까요. 지금 세계정부는 단계적으로 시나리오를 설정해 하나하나 실시해 나가고 있습니다. 유행병, 지진, 해일을 지금까지 발명된 최첨단 환경무기를 통해 자연재해로 위장하여 고의로 일으키고 있으며, 각 국가간의 분쟁을 조장하고, 내전을 일으켜 군사의 재배치를 이루고, 시위를 조장하여 무리한 경찰진압 통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박탈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전세계 60억의 인구를 지진, 전쟁, 해일을 통해 줄이고 부자들이 잘살고 돈 없는 사람들을 노예처럼 부려먹겠다는 가진 자들의 음모가 전세계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 음모 중에 하나가 바로 변형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일입니다. 그들이 연주를 죽이려고 한 것은 강태신 요원 당신이 조사하는 실종사건 때문입니다. 연주가 실종자 중 유일하게 생존한 사람이라는 점과 강요원님이 연주로부터 얻을 수 있는 모든 정보가 그들에게 위협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럴리가 없어요. 박도진씨 당신은 인터넷에 떠도는 루머를 가지고 말을 하고 있군요. "
강태신은 박도진이 당황해 하자 흥분된 마음을 진정시켰다.
"도진씨 말씀을 모두 틀렸다고 하는 것을 아닙니다. 그자들이 연주양을 살해하려 했기때문에 정황상 제게도 위해를 가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제가 믿지 못하는 것은 세계정부요원이라는 용어며, 명확한 명칭이 없는 부분이 미심쩍은 것입니다. 뭐 인터폴이나, CIA라는 확실한 물증이 없으니 제 직업상 의심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게다가 도진씨가 목격한 점에 대한 명확한 진술도 없는 상항에서 저보고 그 말들을 믿으라고 한다면 무리한 부탁이 아닌가 싶습니다."
박도진은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말했다.
"제가 드린 말씀을 특별히 증명할 방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전 분명히 요원 님께 전달했고, 모든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날 것입니다. 분명 제가 말한 사실들이 현실로 나타난다면 그제야 제 말을 믿으려 하시겠죠. 저들이 인터폴이나 CIA라는 공신력있는 단체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물론 그들은 강요원께서 하시는 일에 방해를 하려는 행동을 할 테지만 쉽게 암살하지는 못할 겁니다. 강요원님을 암살하는 것은 아마도 최후의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요."
"좋습니다. 명심하죠. 그러면 제가 박도진씨에게 질문 좀 해도 되겠습니까?"
"좋습니다."
"어쩌면 도진씨가 제게 진실을 말씀하셔야지 제가 도진씨의 이야기들을 믿을 수 있는 계기가 생길 것 같습니다. 제 질문은 실종사건과 관련이 돼있으며, 약간 상황은 틀리지만 연주양과 지인이기에 분명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됐습니다. 저는 음모설 따위는 믿지 않지만 이상현상, 비과학적인 불가사의한 사건들을 주로 수사해 왔습니다. 귀신을 믿으라면 믿으며, 유에프오역시 실존한다고 봅니다. 물론 제 방식의 수사를 통해 경찰이나 검찰이 큰 도움을 얻고 많은 범인들을 검거하는데 성공한 사례들이 있습니다. 저는 박도진 씨가 이상한 술수를 쓸 수 있다는 잠정적인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왜냐하면 연주양이 삼성병원에서 퇴원하던 그날 박도진씨가 그 병원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날 제가 이정환 요원과 함께 병원에 갔어야 하는데, 저는 그 자리에 없었죠. 다만 저를 대신한 자가 모두를 속이고 그 자리에 있었다는 점만은 확실합니다. 게다가 아까 그자들이 차로 치려고 했던 상황을 연주양으로부터 들었는데, 그 당시 당신이 사라지고 차 또한 그냥 지나갔다고 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 어떻게 설명을 하실 겁니까?"
박도진은 대략 강태신이 의심하는 점을 먼저 예측하고 미리 생각해 둔 말을 꾸미기 시작했다.
"연주가 학교에 나오지 않아 걱정이 되서 전화를 했죠. 그녀는 자신이 병원에 입원했다고 해서 전 삼성병원으로 바로 달려갔었습니다. 그리고 아까 그자들이 우리를 치려고 했을 때 연주와 저는 양쪽으로 차를 피했죠. 저는 차량이 빠지는 길을 빨리 확인하고 차를 잡으려고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차량은 SUV종류에 검정색 투산이고, 차량번호가 분명 경기23라 7591번이었습니다."
강태신은 연주에게 그의 말이 사실인지 물었다.
"연주씨 정말 그때 전화를 받았습니까?"
연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거짓말을 하는 것이 탄로날까봐 걱정하는 눈빛을 보였다. 강태신은 대번에 알아채고 박도진을 노려보자 도진이 연주 손에 쥐어진 휴대폰을 빼앗아 그 당시 기록을 살펴 그와 연주가 3분간 통화한 기록을 보여주었다.
"이래도 못 믿으시겠습니까?"
강태신은 휴대폰에 날짜와 시간, 분, 초까지 명확히 기록되어 있는 휴대폰 액정을 보며 잠시 의심이 들었던 마음이 가라 앉았다.
강태신은 박도진의 얘기를 듣던 중 자동차 전용도로를 빠져 나와 구로역 방향으로 좌회전을 받았다. 그리고 다리 하나를 넘은 뒤 조용한 골목길로 들어가 차를 세웠다.
"제게 박도진씨 휴대전화번호를 알려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박도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휴대폰을 태신에게 내밀었다. 강태신은 휴대폰에 그의 번호를 입력한 후 통화버튼을 눌렀다. 곧 태신의 휴대폰이 울렸고, 그는 끊는 버튼을 누른 뒤 박도진에게 휴대폰을 돌려주었다.
"여기서 헤어집시다. 나중에 다시한번 뵙기를 바라겠습니다. 몸조심하십시오. "
박도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차에서 내렸다. 연주는 강태신에게 목례를 하며 차에서 내렸다.
강태신은 그들이 떠난 후 곧 차량에 탑재된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터치스크린으로 검정색 투산 경기23라 7591번 차량조회를 시작했다.
한참 목록이 화면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던 중 화면이 멈추며 일치되는 차량 정보의 차주와 소속이 명확하게 나타났다.
"신동한이라는 개인차로 등록이 되어 있군."
그는 차량 연도와 차량등록된 시기를 확인했다.
"며칠 안 되어 나온 새 차야. 냄새가 나는 군."
강태신은 다시 검색창에 신동한을 입력했다. 국정원 정보시스템은 신동한에 관련된 모든 기록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신동한이라는 모든 정보는 박도진의 진술을 뒤엎을 만큼 지나치도록 평범했다. 그는 일반 회사에의 영업사원으로 결혼해서 8살짜리 아들까지 둔 평범한 남자였다. 강태신은 자세한 내역을 차량 내에 설치된 소형 인쇄기로 뽑아냈다.
'신동한이 소음기 달린 베레타를 들고 임연주를 죽이려 할 정도면 분명 박도진의 말대로 국제적 음모가 담겨 있을 것이다. 정보원 기록에 저렇게 지극히 평범한 사람으로 나타났다는 것이 그것을 증명하지. 비밀이 밝혀지기를 꺼리는 자들이 분명 그녀를 제거하려고 든 것이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시도를 할 것이다. 그 비밀 때문에 임연주가 죽어야 하고, 내가 죽어야 한다면, 도대체 그 비밀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어쩌면 내가 조사하는 사건이 박도진의 설명과 연관시킨다면 분명 이는 비밀정부와 관련이 되어 있을 텐데... 세계정부요원들이 이정환과 그의 팀원 모두를 살해한 후 변형바이러스를 탈취한 뒤 이를 조사하려는 나를 경계하고 유일한 증인인 임연주를 살해하려 든 것일 수도 있지. 그리고 임연주 제거에 성공했는 실패했든 상관없이 내가 계속해서 수사를 멈추지 않고 그들의 존재를 파헤친다면 다음 타깃은 분명 내가 될 것이고 말이야. 결국 변형바이러스가 사라졌다는 것이 그 비밀이며, 그 비밀들을 물고 있는 이정환 실종사건이 단서가 될 것이라는 말인데... 그럼 그 바이러스를 탈취한 이유는 무엇인가? 박도진 말대로 바이러스를 세상에 다시 뿌리려한 단 말이 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바이러스는 놈들의 손에 있겠지?'
임연주는 문득 어머니의 안부가 걱정되어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엄마한테 전화해야겠어요."
박도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빨리 해보라는 듯 손짓을 했다. 임연주는 휴대폰 1번 버튼을 꾸욱 눌렀다. 곧 집으로 연결됐고, 어머니의 안정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금방 국가정보원 여성요원이라는 분이 왔다 가셨어. 넌 괜찮은 거니?"
"네 엄마, 걱정 마세요. 저도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도대체 누가 널 해치려고 한다는 거니? 도대체 왜?"
"아직 몰라요. 제가 실종된 후로 여러 가지 사건이 있었나 봐요. 나중에 모든 일이 해결되면 말씀드릴께요."
"그래, 그래 몸조심하고 알았지?"
"네, 엄마."
전화를 끊은 연주는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도진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젠 어떡하지? 난 어디로 가야 하는 거죠?"
도진은 모든 것을 생각해 둔 사람처럼 그녀의 질문에 대답을 했다.
"이산인 원장님이 계신 진산한방병원으로 갑시다."
변형바이러스를 배양한지 일주일이 지나갔지만 변형바이러스의 전염성이나 바이러스의 독성에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 처음에 추출됐을 때 그대로인 바이러스를 현미경으로 관찰하던 새라켐벨 박사는 매우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성질이 급한 제임스 블레이드는 바이러스 배양이 늦어진다는 보고를 듣고 조바심에 새라캠벨을 그의 사무실로 불렀다. 제임스 앞에 선 켐벨교수는 당혹스런 표정을 일관하고 있었다.
"국장님, 일주일간 배양된 신형바이러스는 형편없고 나약한 병균덩어리라는 게 밝혀졌습니다. "
그녀의 놀라운 발언에 제임스 블레이드는 자리에서 벌떡일어나며 소리쳤다.
"아니, 시간이 걸릴거라고만 보고해놓고서 이제와서 도대체 무슨 소립니까?"
"계속해서 실험을 했지만 소용 없었습니다. 찾아 보고드리려고 하는 찰나에 절 막부르셨더군요."
제임스는 이마를 두 손으로 붙잡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국장님 침착하게 들으세요. 호스 요원이 이정환 요원을 살해하며 얻은 변형바이러스는 애초에 위험성이 전혀 없는 종류의 것이었어요. 우리는 감쪽같이 속은 것이란 말입니다."
분노한 제임스는 이를 꽉 깨물며 비서를 부르는 호출기 버튼을 눌렀다. 사무실 밖에서 미국인 여비서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 제임스가 그녀에게 힘이 들어간 강한 어조로 조용히 지시를 내렸다.
"당장 요원들을 집합시켜, 긴급회의를 진행해야겠다."
새라는 분노한 제임스의 심기를 누그러뜨리고자 또다른 소식을 전했다.
"블레이드 국장님, 이번 일이 잘못됐다고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놈들은 분명 진품을 보관하고 있을 테니 찾아오면 됩니다. 그리고 현재 순간이동 연구프로젝트인 공간 이동문을 만들어내는 LSS(Location selection system) 위치선정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게 됐습니다. 앞으로는 우리 기술로 물건이든 인간이든 우리가 정보를 보내는 곳으로 언제든지 순간이동이 가능합니다."
그녀의 새로운 소식에 제임스는 금새 분노의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의 표정에 회심의 미소가 다시 떠오르며 기쁨을 최대한 억누르며 침착을 유지했다.
"그래도 요원들은 집합해야지. 이번에 진짜 우리 정예요원들이 제대로 활동할 때가 된 거다. 우리의 신기술을 이용할 때가 온 거란 말이지."
새라 캠벨은 다시 연구실로 돌아와 순간이동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기 위해 김덕수가 쉬고 있는 실험실로 들어갔다. 조용히 잠들어있는 그를 내려다보던 새라는 작은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지난 필라델피아 순간이동 프로젝트의 실패는 오늘의 성공을 양산했다. 당신이 순간 이동할 때 발생하는 생체에너지로 우리의 실험이 성공할 수 있었거든. 이젠 더 이상 당신의 존재가치가 없어졌으니 조용히 잠들어주기를 바란다."
김덕수는 눈을 감고 잠을 자는 체 하면서 새라가 하는 영어에 귀를 기울였지만 도통 그녀가 뭐라고 떠드는지 알수 없었다.
'도술 중 언어를 통하는 능력이 없어서 무슨 말인지 영 알아 듣지 못하겠어.'
새라는 직원에게 귀속에 뭐라고 소곤대며 실험실을 나갔다.
실험실 직원은 찬장에서 약품이 든 팩을 꺼내며 링겔 안에 주입한 뒤 김덕수의 왼쪽 팔목에 링겔 바늘을 꽂으려 했다.
김덕수는 갑자기 그들이 자신의 몸에 뭔가를 주입하려 하자 일순간 살기를 느꼈다. 그는 떠나야 할 때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닫고 곧바로 옷을 입기 위해 탈의실로 순간이동을 했다.
그의 몸이 사라지자 실험실 직원은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링겔 바늘을 허공에 찔렀다.
김덕수는 탈의실에 자신의 옷을 찾아 입은 후 가슴 주머니에 달린 작은 카메라 기기를 작동시켰다. 그는 다시 순간 이동하여 연구동 복도를 지나가는 새라 캠벨 앞에 나타났다.
"이봐요, 당신이 뭐라고 지껄이는지 모르겠지만, 나를 띄엄띄엄 보신 것 같습니다. 이제 그만 헤어져야 할 시간이군요."
새라는 당황하며 황급히 복도 벽에 설치된 긴급사이렌 커버를 벗겨 붉은 색 버튼을 손바닥으로 내려쳤다.
왱왱소리가 전 연구동에 울려 퍼지며 주위에 붉은 색 점멸등이 번쩍이기 시작했다. 김덕수는 그녀의 갑작스러운 돌발행동에 놀라며 곧 바로 기지 외부로 이동했다. 밖은 정오를 지난지 몇 시간 안 되어 매우 환했다. 김덕수는 오랜만에 밖으로 나와 기분이 상쾌한 듯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마지막으로 기념촬영이나 해야지."
그는 주머니 속에 직사각형의 스마트 폰을 꺼내 주변을 순간이동하며 사진 촬영을 하기 시작했다. 기지 외부에서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지며 주변으로 주둔 군인들이 완전무장으로 속속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김덕수는 상황이 위험해지는 것을 간파하고 순간 이동할 장소를 빨리 떠올리려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머릿속에 그가 떠나야 할 곳이 생각이 나질 않았다.
완전 무장한 미군들이 달려오며 그를 향해 소총을 들며 정조준하며 발사하기 시작했다. 소총에서 노란 불빛이 스파클을 튀기며 총알들이 김덕수를 향해 날아가자 그는 순간이동을 하여 담 넘어 해미 가야산으로 이동했다. 그는 위험천만하게도 낭떨어지가 있는 바위에 간신히 몸을 의지하며 서있었다.
하늘 위로 헬기 소리가 들려오며 미군의 알파치가 그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낭떨어지 앞으로 헬기가 내려오며 헬기몸체에 장착된 기관총 총구가 강력한 프로펠러 바람에 눈을 뜨지 못하는 김덕수를 조준했다. 그 순간 김덕수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매우 위급한 상황에서 순간 이동해야 할 장소가 떠오르지 않는 덕수는 죽음을 맞이해야만 하는 절망감에 빠져들었다.
마지막으로 그의 마음 속에 떠오르는 것은 그의 아내와 딸, 민예 밖에 없었다.
'하늘의 뜻을 이루려다 이렇게 가는 구나, 능력을 지녔다고 그 능력을 모두 쓸 수 있는 것은 아닌가 보다. 내가 너무 경솔하고 저들을 쉽게 봤어.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지만 내 딸 민예에게만은 면목이 없네."
귀속을 파고드는 헬기소리와 강한 바람이 온몸을 뒤흔들자 그는 중심을 잃은 채 발을 헛 딛으며 허공에 몸을 맡겼다.
그는 눈물을 흩날리며 절벽 아래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김덕수가 낭떨어지로 몸을 던진 순간 헬기의 기관총이 불을 뿜으며 기관총을 쏘아 댔다.
콰콰쾅
사방으로 파편이 튀며 바위는 산산이 부서졌다.
김덕수는 계곡을 향해 떨어졌다.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그의 마음은 평온 자체였다.
그 순간 그의 눈앞에 매일같이 운행하던 성남대학교 맞은편에 있는 큰 한옥집의 명패가 떠올랐다.
눈을 뜬 그는 성남대학교 정문 맞은 편 한옥집 앞 계단 위에서 한참 멍하게 서있었다.
'내가 산 것인가? 아님 저승에 도착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