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께서 엘리사벳을 방문하시다
미카 5,1-4; 히브 10,5-10; 루카 1,39-45 / 대림 제4주일; 2024.12.22.
⒈ 말씀의 초점
우리가 묵주기도를 할 때 환희에서부터 빛, 고통, 영광의 신비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이 주어로나 목적어로 등장하지 않는 유일한 단이 있습니다. 바로, 환희의 신비 제2단입니다: “마리아께서 엘리사벳을 찾아보심을 묵상합시다.” 오늘 독서와 복음 말씀은 이 두 여인의 만남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제1독서인 미카 예언서 5장의 말씀은 그 배경을, 제2독서인 히브리서 10장의 말씀은 그 의미를 밝혀줍니다.
⒉ 마리아의 방문 신비
마리아는 요셉의 청혼과 수락, 약혼식에 연이어 자신을 찾아온 천사에게서 성령의 은총으로 구세주를 잉태하리라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전갈을 통보받았습니다. 아직 정식으로 혼인하기도 전에 아기를 임신하게 된 그가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올린 사람은 사촌 언니 엘리사벳이었습니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라고 알려졌던 그 언니가 아기를 가진지 벌써 여섯달이나 되었다고 천사가 알려주었으니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곧 해산하게 되면 도우미가 필요하기도 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겠지만, 혼전임신이라는 이 놀라운 소식을 부모님이나 약혼자에게 알릴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서둘러 길을 떠나 유다 산악지방에 살던 엘리사벳에게로 찾아갔던 것입니다.
⒊ 엘리사벳의 인사말
그런데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맞이하면서 놀라지 않았습니다. 성령께서 천사를 시켜 알려주셨으므로(루카 1,41). 그는 놀라움보다는 부러움과 기쁨으로 마리아에게 이렇게 인사하였습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루카 1,42). 불과 며칠 전에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1,28) 하고 천사가 인사하면서 마리아를 한밤중에 느닷없이 찾아왔던 방문의 실체가 밝혀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구세주의 잉태.
⒋ 엘리사벳의 처지
엘리사벳도 늙도록 아이를 낳지 못하다가 남편 즈카르야가 어느 날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던 중에 천사의 방문을 받고 하느님께서 아이를 낳게 해 주시리라는 뜻밖의 전갈을 받은 후 임신한 지 여섯달이 된 처지였습니다. 자신도 자연의 섭리로는 도저히 임신할 수 없는 나이에 하느님의 섭리로 임신하게 되었으므로 태어날 그 아기가 하느님의 사람이 되리라는 것은 각오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세상에 오시기로 된 메시아께서 자신보다 더 특별한 방법, 즉 동정의 몸이라 하더라도 성령의 기운으로 오심에 대해서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엘리사벳의 믿음이 두드러졌습니다.
⒌ 미카 예언자가 내다본 아나빔의 처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왕이나 사제들, 궁정 예언자들이 어떻게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게 처신했는지에 대해서는 재야에서 출현한 여러 예언자들이 이미 공개적으로 경고한 바 있었습니다. 하지만 미카를 비롯한 많은 예언자들은 그런 거짓 목자들과 달리 하느님을 겸손하게 섬기며 살아온 이름없는 민중, 가난하지만 경건하게 하느님을 섬겨온 이들, 즉 아나빔과 영적으로 통공하며 하느님께서 보내주실 메시아를 예고한 바 있었습니다. 이사야와 같은 시대에 활약한 미카 예언자 역시 메시아 시대가 오면 아나빔 가운데에서 이스라엘의 새 역사가 펼쳐질 것을 내다보았으며, 그래서 메시아가 오시기 7백 년 전에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이라는 보잘것없는 마을에서 탄생하시리라고 구체적으로 적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엘리사벳이나 그의 남편 즈카르야, 마리아는 물론 그 약혼자인 요셉, 또 마리아의 부모인 요아킴과 안나 등은 모두 미카와 같은 예언자들이 전해준 하느님의 말씀을 굳게 믿고 수백 년 동안이나 한결같이 메시아를 기다려오던 아나빔이었습니다. 그들의 믿음이 아니었다면 메시아는 세상에 오실 수 없었습니다.
⒍ 인사말에 담긴 축복의 의미
엘리사벳이 마리아에게 건넨 축복의 인사말은 히브리서 10장에서 그 이유가 밝혀집니다. 마리아께서 잉태하신 아기는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 약속과 축복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거짓 목자들로 말미암아 뒤틀려온 역사를 바로 잡으실 분이고, 더 나아가서는 이스라엘 민족뿐만 아니라 온 인류를 구원하실 구세주가 되실 분이기 때문에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실 마리아께서 여인 중에 복되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번제물이나 속죄 제물 따위로가 아니라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시는 단 한 번의 제사로써 인류가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을 열어서 인류를 거룩하게 하실 분이시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⒎ 샤를르 드 푸꼬의 영성
젊은 시절 출세를 지향하며 몹시 방황하던 샤를르 드 푸꼬는 뒤늦게 복음을 깨닫고 회개한 후에 이 방문의 신비에 주목하여 일생을 낮은 자리에서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그가 주목한 바는 그 때 마리아께서 홀몸으로 엘리사벳을 방문하신 것이 아니라, 이미 태중에 아기 예수님을 모시고 갔다는 점이었습니다. 그처럼 푸꼬는 예수님을 알리기보다 모시고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보기보다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기를 원했습니다. 방문과 만남의 초점이 누가 누구를 만나는가 하는 인간관계에 있지 않고 그 관계가 모시고 있는 분에 대한 것이라고 푸꼬는 굳게 믿었습니다.
⒏ 인간 관계와 만남에 대한 성찰
우리도 무수히 많은 이들을 만나며 살아갑니다. 모든 일이 만남에서 비롯되지요. 그런데 인간 관계도, 만남도 천차만별입니다. 지금은 시성을 앞두고 있는 복자 푸꼬 신부의 깨달음은 성탄을 기다리는 우리에게도 하나의 빛입니다. 우리가 이루고 있는 인간 관계의 내용과 일상적으로 하고 있는 만남의 질에 대해서 눈을 돌리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나, 우리가 입으로 하는 말이나, 우리가 전하는 글 이전에, 우리네 삶이 예수님을 모시고 있는지에 대해 성찰하도록 이끌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성찰이 귀한 이유는, 이미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분을 모시고 살고 있다는 이 엄연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내세우지 않아도 세상 사람들이 우리네 삶을 보고 우리가 그분을 모시고 살고 있음을 알게 하는 일, 이 대림 제4주일에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묵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