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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한 총각 네 야채가게에 대한 이야기이다. 신문에도 수없이 나오고, 입소문을 통해서도 상당히 유명한, 그래서 장사도 잘되고 점포도 자꾸만 늘어간다는 그 유명한 총각네 야채가게.
처음에는 평범한 총각들이 세상물정 모르고 그저 젊음만 믿고 시작한 야채가게처럼 보였다. 장사가 그리 쉬운 것일라구... 그러나 그들은 젊음 외에도 하나를 더 가지고 있었다. 남들과는 약간 달랐던 다른 장사에 대한 관념이다. 바로 차별화 정신이다.
그저 그기서 그기 같은 야채가게. 야채가게에서 차별화를 이룰것이 뭐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아이템.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기에 오히려 그곳에 길이 있었다. 진정한 이노베이션은 바로 그런 곳에서 발생한다. 남들이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그들이 시작한 그런 차별화된 서비스는 까다롭기로 소문난 강남에서 단번에 유명세를 얻었다. 일단 유명세를 얻은 가게가 번창하기 시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까지만 가는 사람들이 더 많다. 한 가게의 성공이 한 기업의 성공이 되기 힘든 한계말이다.
그러나 총각들은 그 한계를 넘었다. 유명세를 타면 느슨해지가 쉬운 마음을 추스렸다. 그들은 자신들이 성공한 이유가 무엇인가를 정확히 알았던 것이다. 또한 언론을 이용하는 방법도 알았다. 그들의 성공담을 취재하려는 사람들을 박대하지 않고 잘 활용할 줄 아는 지혜가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성공은 준비된 성공이었던 셈이다. 준비가 되고 능력이 있는 사람은 야채가게에서도 몸을 일으킬 수 있다. 그들이 세상을 향해 보내는 메시지는, 사람이 어디에 있든지, 아무리 낮은 곳에 몸을 눕히고 있더라도 남다른 노력만 있으면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는 것이다.
*aladdin 푸른하늘님의 리뷰입니다 /원문보기
총각네 아채가게 이영석 사장의 가락시장을 평정한 성공 사례
‘자연의 모든 것’이라는 이름의 야채 가게에는 하루에 천 여 명의 손님이 온다.
겨우 18평 규모에 품목도 과일·야채·어물로 한정되어 있는데도 이토록 많은 사람이 들르는 것이다.
물건을 매장에 다 들여놓지도 못하고 앞에 쌓아 두었지만 그것도 모자라 다시 시장에서 들여와야 할 정도다.
10년 전 트럭 한 대로 무점포 행상을 시작했던 이영석은 이제 야채 장수로 백만장자가 되었다.
‘총각네 야채 가게’에는 도대체 무슨 비결이 숨어 있는 것일까.
레크리에이션을 전공한 이영석이 한 이벤트 회사에 들어갔을 때였다.
한번은 며칠 밤을 새우며 작성한 기획안을 선배가 가로채는 일이 벌어졌다.
이벤트 업계에서는 원래 기획안 표절, 뒷거래 등이 많았다.
일에 환멸을 느낀 그는 직장을 그만두고 ‘정말 정직한 일’이 없을까 고민했다.
어느 날 한강 둔치로 바람을 쐬러 나갔는데, 오징어를 실은 트럭이 눈에 들어왔다.
문득 그 오징어를 팔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오징어 행상에게 부탁해서 원가로
오징어 2만 원어치를 샀다.
그리고 “오징어 사세요!”를 외치며 돌아다녀 30분 만에 다 팔았다. 다시 오징어를
떼다가 팔자 8만 원이 수중에 떨어졌다. ‘장사야말로 정직한 것이다’라고 생각한
이영석은 그 오징어 행상을 무작정 1년 여 동안 따라다니면서 장사를 배웠다.
1994년 그는 독립하여 1톤 트럭을 몰고 전국을 돌아다녔다. 또 좋은 야채와 과일을
고르는 법, 보관하는 법, 팔다 남은 물건을 처리하는 법 등을 배우기 위해 상인들을
부지런히 따라다녔다. 상인들이 귀찮다며 뿌리치고 때리기도 했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어느 지방의 무슨 과일이 좋다고 하면 밤을 새워서라도 찾아갔다. 눈으로 직접 보고
만져 보기 전까지는 누구의 말도 믿지 않았다.
■ 가락시장에서 ‘칼잡이’로 불리다
그가 처음 트럭 행상을 다닌 곳은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 주변이었다.
이영석의 트럭이 자리잡고 손님을 모으자, 근처 노점상에서 몇 명이 와서 시비를 걸었다.
트럭에 실린 야채와 과일을 바닥에 내동댕이친 것이었다.
다음날은 아예 이영석을 두들겨 팼다.
그래도 이영석은 꾹 참고 다음날도 그 자리로 트럭을 몰고 나갔다.
그러자 이번에는 주위 노점상에서 구청 단속반에 이영석을 고발했다. 다른 노점상들은
단속이 시작되는 걸 미리 알고 자리를 떴지만, 이영석은 야채와 과일을 빼앗기고 그걸
찾아오는 데 벌금 20만 원을 물어야 했다.
그런 일이 몇 차례 반복되었지만 이영석은 포기하지 않고 악착같이 그 자리를 지켰다.
결국 근처 노점상들과 구청 직원들이 두 손을 들고 말았다.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에서 이영석은 일명 ‘칼잡이’로 통한다.
이 별명을 얻게 된 과정에는 오늘날 이영석이 야채 장수로 성공하게 된 이유가 담겨 있다.
이영석은 초창기에 과일이나 채소를 모양만 보고 샀다가, 나중에 알고 보니 품질이 많이
떨어져 속이 상하곤 했다.
과일을 사면 박스 밑바닥에는 썩고 상한 과일들이 깔려 있기도 했다.
팔지도 못하고 바로 갖다 버려야 할 때도 있었다.
그래서 이영석은 자신이 직접 맛을 보고, 상자를 뒤집어 밑바닥의 과일을 확인하기로
마음 먹었다.
새벽에 과도 하나 달랑 들고 가락시장으로 간 이영석은 1500개의 과일 도매 가게를 차례로
방문해 과일을 쪼개 맛을 보았다.
대량으로 물건을 파는 도매상에서는 원래 맛을 보고 사는 법이 없었다.
사든지 아니면 그냥 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영석은 멋대로 맛을 보고, 과일 박스를 뒤집어서 바닥에 있는 과일의
상태를 살폈다.
맛이 없으면 과일 값도 안 치르고 그냥 가 버렸다.
산전수전 다 겪은 도매상인들이 그를 가만 놔둘 리가 없었다.
그들은 이영석을 흠씬 패 주었다.
이영석은 대들지도 않고 그냥 맞기만 했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 나가서 같은 일을 반복했다.
하도 맞다 보니 집에 가면 온 몸이 뻐근했다.
새벽 2시에 자명종 소리가 들려오면, 몸이 아프고 잠이 부족한 건 둘째치고,
다시 시장에 나가서 두들겨 맞을 걸 생각하니 그대로 주저앉아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하지만 3년이 지나자 마침내 상인들이 그를 인정했다.
이제는 과도를 휘날리며 시장을 돌아다녀도 그를 제지하는 상인이 없다.
이영석은 한 번 구매하면 대량을 구매하며, 결제도 현장에서 바로 해주기 때문에,
상인들이 모셔야 할 고객이 되었다.
이제 상인들은 멀리서 이영석이 오는 것만 보아도 불안해지고, 그가 칼을 들어 과일
맛을 볼 때는 어떤 평가를 내릴지 조마조마하다고 한다.
맛이 없으면 도매 상인이 맛이 없다고 먼저 털어놓는다.
■ 재고율 0퍼센트에 도전한다
이영석이 과일을 고르는 기준은 무척 까다롭다.
확실히 맛있지 않으면 구입하지 않는다.
다른 상인들은 겉모양만 봐도 70~80퍼센트는 과일 상태를 알 수 있다고 하지만,
이영석은 모양으로는 50퍼센트밖에 판단할 수 없고, 맛을 보아야만 확실하게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가게를 찾는 손님을 대표해 시장에 왔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입맛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어차피 팔지도 못할 터, 구매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일곱 시간 동안이나 과일을 이것저것 맛보다 보면 화장실도 여러 차례 들락거리게 된다.
또 여러 가지 과일을 맛보기 위해서는 종종 생수로 입을 헹구어야 한다. 입맛을 지키기
위해 담배나 술은 결코 입에 대지 않는다.
청량 음료를 비롯해 자극적인 음료수나 음식은 되도록 삼간다.
또 아침에 배고픈 상태에서 과일을 먹으면 다 맛있게 느껴지기 때문에 반드시 배를 채우고
나간다.
새벽에 하도 과일을 많이 먹다 보니 다른 데서는 과일을 먹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고 한다.
간혹 술집에서 과일 안주가 나오면 바로 마른 안주로 바꾼다.
이영석은 하루에 열 여덟 시간을 일한다.
새벽 2시면 잠자리에서 일어나 시장에 나갈 채비를 차린다.
3시에 가락시장에 도착하면 일이 바로 시작된다.
일곱 시간 가량 발품을 팔아 과일과 야채, 생선을 고르고 구매를 결정한다.
구매가 다 끝나면 가게로 돌아가 직원들과 장사를 시작한다. 6시면 영업이 끝난다.
그러면 간단한 회의를 하고 그 날을 마감한다. 서두르면 8시, 늦으면 10시에나 잠자리에
들 수 있다.
한편 총각네 야채 가게에는 재고가 없다.
그렇다면 그 날 들여올 분량을 어떻게 알아내는 것일까. 거기에는 나름대로의 노하우가 있다.
주변 학교에서 소풍을 간다고 하면 시금치·단무지·김 등을 많이 들여놓는다.
주변 아파트에서 바자회가 열린다고 하면, 거기에서 취급하는 품목들에 대해서는 구매 수량을 줄인다.
비가 온다고 하면 부추나 파를 더 많이 구매한다.
파전을 많이 먹기 때문이다.
재고를 만들지 않기 위해 이 가게에서는 그 날 팔 수 있다고 생각한 양의 90퍼센트만을
구매한다.
예기치 못한 변수로 팔리지 못할 경우를 대비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고가 있으면 주변 식당에 저렴하게 판다.
그렇게 모든 상품은 재고 없이 완전히 그 날로 소진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가게는 생선을 취급하지만 그 흔한 냉장고가 없다. 모든 생선은 그 날을 넘기지
않는다는 의미다.
■ 입원하면 병원에서 출퇴근한다
손님들은 다른 행상이나 가게에 가면 더 싼 과일이나 야채를 살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이영석은 다른 가게에서 팔지 못하는 것을 팔고 있다. 그것은 바로 ‘신뢰’다.
총각네 야채 가게에서 사면 뭘 사도 품질이 확실하다는 인식을 심어 주었기에, 가격 때문에
다른 데서 물건을 사지는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이 곳을 찾는 손님은 품목은 고르지만 품질은
고르지 않는다.
과일이나 야채의 상태를 잘 묻지 않는다. 살 것을 선택하면 가격을 치르고 가 버리는 식이다.
여기서는 가격을 깎아 주는 일이 없다.
다른 가게에서는 깎아 달라는 흥정이 자연스럽지만, 이 곳에서는 처음 오는 손님이나 가격
흥정을 벌인다.
고정 고객은 이 가게가 마진을 특별히 많이 남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흥정을 아예 하지
않는다. 가격을 깎아 달라고 하면, 덤을 얹어 줄지언정 깎아 주지는 않는다.
늘 최상의 품질을 우선하지만 고객 항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손님이 제품을
잘 보관하지 못하여 벌어진 일인 경우가 많지만, 그런 경우에도 100퍼센트 교환·환불 처리를
해준다. 먼저 환불을 해주고 나서, 어떻게 보관해야 하는지 설명해 준다.
‘총각네 야채 가게’라는 이름은 이 가게 직원들이 다들 총각이라고 해서 고객들이 붙여
준 애칭이다. 이처럼 손님과는 가족처럼 친밀하게 지낸다. 대부분 주부들이 이 곳을 찾는데,
직원들은 ‘어머니’라는 호칭으로 친근하게 대한다. 그냥 가게 앞을 지나는 동네 주민에게도
인사를 건넨다.
직원들은 고객 카드를 작성하지 않고도 수백 명의 손님을 기억하고 있다.
총각네 야채 가게가 유명해지면서 1년에 200여 명이 일하겠다며 찾아온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별로 버티지도 못하고 돌아간다. 즐겁게 일하는 겉모습과는 달리 일이 쉽지
않음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만큼 할 일이 많다.
그런데 일 외에도 어렵게 하는 요소가 있다면 야채 가게에 대한 낮은 인식이다.
이영석은 야채 장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높이고 싶다고 말했다. 야채를 파는 일도
인정받을 수 있는 전문직으로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그는 직원들에게 여러 가지
혜택을 주고 있다.
일정한 경력이 쌓인 직원에게는 새로운 점포를 차려 주고 운영할 수 있도록 해주고,
해외 연수도 보내 준다.
현재 여덟 개의 야채 가게가 ‘자연의 모든 것’이라는 상호를 쓰고 있다.
힘들어하는 직원에게는 과감하게 휴가를 준다. 하지만 이영석은 일요일을 빼고 하루도
쉰 적이 없다. 그렇다고 몸이 강철 같아서 결근이 없는 것이 아니다. 한번은 위염을 심하게
앓은 적이 있었다. 입원해야 할 정도였는데, 병원에 누워 있다가도 새벽에는 가락시장으로
나가서 물건을 고르고 사들였다. 그리고 다시 병원에 가서 누웠다.
그렇게 15일 동안 병원에서 출퇴근하니까 나중에는 병원에서 그만 나가라고 했다고 한다.
맹장 수술을 받았을 때도, 일주일은 누워 있어야 하는 것을 이틀도 채 안 돼서 퇴원하기도 했다. 그만큼 일에 대한 프로 근성이 강하다.
■ 쉽게 성공하려 하면 쉽게 포기하게 된다
그 동안 다른 상인들에게 숱하게 맞으면서도 남다른 승부욕으로 버텼던 이영석.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속으로는 ‘이젠 정말 그만두어야겠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했다. ‘내가 왜 이런 일 하면서 고생하고 있는 걸까’라는 회의가 들 때면 아무 것도
하기가 싫어졌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여기서 성공하지 못하면
다른 데 가서도 마찬가지일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영석은 원래 장사 기질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쓰던 전자 제품이나 자전거 등을 샀다가 가격을 얹어서 팔곤 했다.
동아리에서 티셔츠를 맞출 때는 자신이 나서서 동대문 시장에 가서 싸게 맞추고 마진을
남기기도 했다. 장사하는 게 재미있다고 말하는 이영석은, 어떤 일을 선택하는 기준이
‘그 일을 즐길 수 있는가’ 하는 것이라고 했다.
즐길 수 없는 일은 오래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하겠다고 찾아오는 사람이 있으면, 이 일을 즐길 수 있는지 먼저 알아보라고
조언한다. 즐길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다면 과감하게 바꿔야 한다는 것이 이영석의 생각이다.
하지만 ‘하던 일을 어떻게 쉽게 바꾸겠는가’라는 의문이 든다. 여기에 대해 이영석은
명쾌한 해답을 내놓았다.
“그건 용기가 없기 때문에 못하는 것일 뿐입니다. 전 각종 레포츠를 즐기는데,
스쿠버다이빙을 10년 동안 해왔습니다.
그런데 10년 전에 시작할 때만 해도 스쿠버다이빙을 할 여력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스쿠버다이빙 장비를 판매하는 가게를 찾아가서, 일하겠다고 했습니다.
거기서 일을 해주고 대신 스쿠버다이빙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골프가 돈이 많이 든다고 하지만, 전 하고 싶으면 어떻게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용기입니다. 돈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영석은 교육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삼성전자 대리점주들을 모아놓고 강연을 하고, 다른 몇몇 회사에도 강연을 나가고 있다.
하지만 그는 많은 교육이나 좋은 강연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사실 길은 이미 다 드러나 있다는 것이다.
서점에만 가도 온갖 길을 알려 주는 좋은 책이 넘쳐난다고 했다. 다만 한 번 듣고 실행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이영석 자신도 배움에 그치지 않고 뭔가 자꾸 해보려고 하다 보니까 오늘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지금은 어떤 분야든지 과포화 상태입니다. 도화지에 비유하자면, 예전에는 흰색
도화지여서 점을 찍으면 점이 나타나지만, 지금은 검정색 도화지라서 검정색을 찍어도 표가
나지 않습니다.
‘나’라는 색을 드러내려면 자신만의 색깔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좀더 많은 노력과 다른 아이템으로 승부해야 합니다.
검정색 속에 묻히면 안 됩니다.
세상에 쉽게 얻을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쉽게 얻으려고 하니까 쉽게 포기하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