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고사기간이 지나고 체전기간 중에 두 번째 실습이 있었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스포츠댄스 수업은 그대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수업에 늦게 되었다. 이론을 확실히 듣고 실습에 임해도 어려울 판인데 자꾸 늦을 수밖에 없어 아쉽다. 오늘의 주제는 장국죽과 탕평채, 오이선이랑 마지막으로 가장 기대되는 돼지 갈비찜이었다. 체전의 여파로 우리 조를 포함해 다른 조에 오지 못 한 학생들이 많아서 조를 통합해서 실습을 했다. 잠깐 같은 조가 되었던 4조 조장형이 학교로 갈 때 차를 태워주셔서 좋았다. 나도 03년도 1학년 때는 차를 가지고 다녔다. 그런데 반대로 내가 제대를 하니까 집에서 차를 빌려주시질 않는다. 이유는 두 가지일 것이다. 하나는 나를 믿지 못 하시거나 아버지 말씀처럼 능력이 되기 전에 차를 운전해 버릇하면 습관이 되서 겉멋이 들어 죽을 때까지 딱 차 한대만 굴릴 능력밖에 되지 못 한다는 이유에서이다. 아무래도 첫 번째 주장에 더 비중이 쏠린다. 그러니 평소에 잘 해서 점수 좀 따 둘걸 그랬다. 다른 요일은 몰라도 수요일은 아침에 스포츠댄스 수업이 있는데 그것도 실기 위주로 하는 수업이라 일정 시간 전에는 끝날 수 없기 때문에 조리실까지 가는데 버스를 타러 내려가고 버스를 타고 하는 시간이 있으니 수업에 늦게 되고 또 이어지는 볼링수업도 구갈의 볼링장까지 가야하는데 조리실습도 긴 시간을 요하고 안 그래도 늦는데 버스로 가야 하는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나마 체전기간이라 볼링 수업이 미뤄져서 다행이지 다음주가 또 괴롭다. 그래도 이번엔 우리 조가 교수님차를 타는 날이니 조금은 수월할 것이다. 다시 한번 아버지께 정중히 부탁드려봐야겠다. 수요일 딱 하루만 차를 쓰게 해주시면 안되겠냐고.
서두가 너무 길다. 오늘은 장국죽은 다른 한 조의 재료가 고스란히 남은 관계로 소고기가 많이 들어갔다. 교수님 말씀처럼 건강한 사람이 별미로 먹는거라면 괜찮겠지만 아픈 사람이 먹을 때는 반드시 주의해야할 점이다. 고기가 너무 많이 들어가게 된다면 소화 기관이 약해진 환자가 먹기에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죽에는 고기 외에 표고도 들어갔다. 물은 밥을 만들 때와는 달리 쌀의 6배가량을 넣는다. 처음에는 중간 불로 끓이다가 쌀알이 퍼지기 시작할 때 쯤 주걱으로 여러 번 저어준다. 냄비에 눌러 붙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불을 약하게 하고 서서히 끓인다. 마지막으로 죽이 잘 어우러지면 간장으로 색을 내고 소금으로 간을 하는 것인데 죽은 만드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오늘 만든 네 가지 음식 중 가장 처음에 만들기 시작했는데 갈비찜이 완성되고 나서야 마지막 간을 보고 불을 껐을 정도니까. 우리가 만든 장국죽은 정말 요즘 여러 국민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본죽에서 파는 것보다 더 맛이 있었다. 양이 너무 많아서 버려야 하는 것이 아쉬워서 내가 동아리사람들이랑 친구들 주려고 한 사발을 싸왔다. 약속대로 다음주에 그릇은 반드시 반납해 드릴거다. 우리 학교가 잘 한다는 칭찬을 들을 수 있도록.
지금 새벽 두시 반을 향해 가고 있다. 레포트의 압박은 생각보다 심하지 않다. 수업 시간에 배우고 만들었던 것을 되새기면서 이렇게 쓰는 것이 의외로 즐겁다. 역시 모든 일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솔직히 위에 말한 여러 가지 악조건들로 인하여 내가 과연 이 수업을 잘 수료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조리실습 수강료를 낼 때도 걱정됐었다. 하지만 이렇게 정리를 해보니 역시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 힘들게 듣는 수업이니만큼 더 애착을 가지고 열심히 할 것이다. 잠깐 삼천포로 빠졌는데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레포트의 압박이 아니라 배고픔 허기짐이다. 그 때 해 먹었던 장국죽과 갈비찜, 탕평채, 오이선들이 눈에 아른거린다. 특히 많이 남은 죽과 맛있지만 배가 부르고 시간이 없어서 남겨야했던 갈비찜은 너무 너무 아쉽다. 다음주에 가서는 국물하나 남기지 않고 다 먹던가 싸올 용기를 챙겨가야겠다. 사실 내가 말은 이렇게 해도 입이 짧아서 아주 배가 많이 고프다가도 막상 맛있는 걸 많이 먹지 못 한다. 아쉬운 점이다. 다 친구들끼리 같이 돈을 걷어 무얼 먹어도 나만 손해보는 기분이다. ㅋㅋ 이건 좀 과장이 심한거고 많이 먹지 않아서 좋은 점도 있다. 일단 용돈에서 식비가 많이 안 나간다. 내가 잘 먹으면 핸드폰 비에 차비에 정말 살기 어려울 것이다. 생존능력이 강하다고 해야 하나. 학교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도 거의 친구랑 같이 먹고 양이 부족하면 리필해서 또 먹고 그런다. 어떨 때는 미리 먹은 친구의 식판만 받아다가 내 식판인양 밥을 먹기도 한다. 비위생적이라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사실 이게 더 우정을 돈독히 하고 이렇게 먹어야 밥맛도 좋고 더 많이 먹게 된다. 아무튼 지금 눈앞에 장국죽이 계속 어른거린다. ㅠ.ㅜ
그 다음은 탕평채이다. 난 탕평채를 왜 신선로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화로가운데서 불이 송송 올라오고 주변에 진귀한 음식들이 가득한 수라상에나 오를법한 신선로를 왜 탕평채로 오해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탕평채를 백과사전에서 찾아보니 --- 묵청포라고도 한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의하면 탕평채라는 음식명은 조선왕조 중엽에 탕평책의 경륜을 펴는 자리에서 청포에 채소를 섞어 무친 음식이 나왔으므로 탕평채라고 하였다. 녹두묵은 매끈한 감촉이 있어 주안상에 꼭 오르는 음식이다. 녹두묵 가장자리의 더껑이를 얇게 베어 내고 길이 4∼5 cm, 나비 1 cm, 두께 0.5 cm 정도로 썰고, 숙주는 머리와 꼬리를 떼고 끓는 물에 소금을 약간 넣고 데쳐 낸다. 미나리와 물쑥도 다듬어 씻어서 끓는 물에 소금을 약간 치고 데쳐 내고, 쇠고기는 가늘게 채썰어 양념장에 쟁인다. 달걀은 황백 지단을 갈라서 부쳐 가늘게 채썰고 김은 구워서 가늘게 채썰거나 잘게 부순다. 이와 같이 준비가 끝나면 번철에 기름을 약간 두르고 뜨거워지면 양념한 쇠고기를 넣고 바싹 볶는다. 물쑥과 미나리는 물기를 짜서 3~4 cm 길이로 썬다. 넓은 그릇에 묵 ·볶은고기 ·숙주 ·미나리 ·물쑥을 함께 넣고 초간장으로 고루 무쳐 접시에 담고 달걀지단 ·김채 ·실고추 등을 웃기로 얹는다. 미리 무쳐 놓으면 묵이 풀어져 맛이 좋지 않다. 초간장은 간장 ·식초 ·설탕 ·깨소금 ·참기름을 섞어 만든다. --- 이렇다. 오늘 탕평채를 맡은 우리 조에 임시 편입된 4조 조장형이 묵을 데치는 법을 잊어버려서 그냥 웰빙식으로 먹기로 하였다. 교수님도 모르고 넘어가실 뻔했는데 형이 갑자기 얘기하는 바람에 들통이 났다. 하지만 묵은 본래 그냥 먹을 수 있는 것이니 큰 지장은 없을 것이다. 초간장에 묻힌 탕평채는 새콤달콤 별미였다.
오이선도 보기와는 달리 손이 참 많이 가는 음식이다. 오이에 어슷하게 칼집을 내는 이유는 그래야 그 사이에 달걀지단이나 쇠고기, 표고버섯을 많이 끼워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조원들은 촛물이 새콤하다고 못 먹겠다고 했지만, 나는 장국죽을 먹으면서 김치가 무척이나 그리웠기 때문에 오이소박이거니 하고 맛있게 먹었다. 역시 한국 고유의 음식은 맛뿐 아니라 외관과 건강에도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한 듯하다. 우리나라가 강해지면 이런 음식들도 세계적으로 빛을 발할 날이 오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아니, 꼭 강대국이 아니더라도 일본의 스시나 베트남의 쌀국수, 인도의 카레처럼 전세계를 대상으로 끊임없는 판촉 전략을 편다면 우리의 음식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본다. 내가 여섯 개의 오이선 중에 네 개를 먹었다.
기대되던 갈비찜은 생각보다 조리가 간단해서 나중에 나도 만들어보고 싶었다. 고기에 양념이 잘 베이도록 고기에 칼질을 하는 것은 내 담당이었다. 주로 큰 기술을 요하진 않지만 조금 힘든 일. 예를 들어 마늘이나 양파나 고기를 다지는 일이나 이렇게 돼지고기에 칼집 내는 일등은 주로 내가 맡았다. 여자 조원들은 요리의 핵심부분을 담당하기 때문에 정신이 없고 이런 일도 꼭 필요하고 누군가는 해야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시 한번 실력이 없으면 결국 기술이 필요 없이도 할 수 있는 노가다나 노숙자밖에 될 수 없다는 인생의 진리를 되새겨본다. 실력을 갖추도록 열심히 살아야겠다. 조리실습을 통하여 또 한번 큰 교훈을 얻는다. 최고급 호텔에도 요리를 하는 주방장이 있으면 만날 설거지를 하는 아르바이트생도 있고 음식을 배달만 해주는 택배회사 직원도 있을테니...
오늘 자꾸 다른 말을 많이 한다. 하지만 항상 포인트와 요점을 놓치지 않는다. 매 수업시간을 성실하고 열심히 집중해서 임하기 때문이다. 갈비찜에서 우리조가 실수한 것은 감자와 당근을 밤톨만한 크기로 다듬는답시고 정말 밤처럼 만들었기 때문에 조리는 과정에서 당근과 감자가 뭉게져 버렸다는 것이다. 우리는 칼로 열심히 감자 당근을 조각하며 진짜 밤처럼 생기게 잘 깎았다고 좋아했었는데. 교수님도 완성된 갈비찜을 보고 그러셨다.
“너희 여기다가 진짜 밤넣었니?”
너무 수업에 충실하다가 빚어진 실수니까 교수님도 애교로 봐주실 것이다. 갈비찜도 다 조리기 전에는 색깔도 허옇고 싱거웠는데 다 만들고 보니 색깔과 감촉도 좋고 무엇보다 아주 맛있었다. 아 또 먹고 싶다. 다음 실습시간에는 어떤 음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해본다.
이 날 수업이 끝나고 축제기간이라 친구들이랑 주점에 들러 안주도 먹어보고 여자친구랑 밥도 사먹고 했지만 우리가 만들어서 먹은 음식보다는 훨씬 맛이 없었다. 비교할 수 없었다. ^^
첫댓글 래포트이기도 하지만 글쓰는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