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윤두서는 고산의 증손자이며 다산의 외증조로 조선 중기 문인이며 화가다. 그가 종이에 옅게 채색하여 그린 자화상은 국보 240호로 해남 연동마을 윤씨 고택에 있다. 이 그림은 화폭 전체에 얼굴만 그려지고 몸은 생략된 채 시선은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탕건을 쓰고 두툼한 입술에 수염은 터럭 한 올 한 올까지 섬세하게 표현하여 아래로 길게 늘어진 수염이 위로 얼굴을 떠받치는 듯하다.
서양에서 자화상으로 유명하기는 윤두서보다 조금 뒤에 나타난 괴짜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그림이 있다. 후기 인상주의 시대 그가 남긴 자화상은 무려 마흔 개나 이른다고 한다. 유화인 그의 자화상은 구레나룻이 특징인데 일부는 모자를 쓰거나 깔끔히 면도한 얼굴도 있다. 생활고에 시달린 천재는 권총으로 생을 마감하기 전 스스로 귀를 자르고 붕대를 동여맨 자화상도 남겼다.
한 때 집권 여당 대표를 지낸 어느 국회의원은 지난 번 총선 때 서울에서 낙선했다만 지방의 광역단체장으로 복귀하여 연임에 도전하고 있다. 그가 당 대표 시절 희미한 눈썹을 짙게 칠해 나와 방송의 카메라에 잡힌 얼굴이 나왔다. 그는 일회용 화장을 한 것이 아니라 아예 지워지지 않는 눈썹 문신을 새겼다. 이목구비 가운데 어느 하나 소중한 것 없겠지만 눈썹도 무시 못 하는 모양이다.
흑백사진으로 본 미국 16대 대통령 링컨은 구레나룻에 광대뼈가 불거져 그렇게 잘 생긴 얼굴이 아님에도 나이 마흔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은 져야한다고 했다. 공자는 일찍이 나이 사십에 이르니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림이 없더라고 했다. 링컨이나 공자가 살던 때보다 인간의 평균수명은 많이 길어졌다. 생물학적으로는 옛적 마흔이 오늘날 쉰이나 예순에 이른다고 할 수 있지 싶다.
나는 그간 얼굴이나 치장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젊은 날부터 탈모가 와 이마 경계가 어디까지인지 불분명하다. 남성들이 이발하는 평균 횟수는 대개 한두 달에 한 번이다. 그러나 나는 일 년에 두세 번으로 그친다. 설날과 추석을 앞두고 한 번 깎고 중간에 부모님 기제사가 오면 한 번 더 깎기도 한다. 내가 머리를 단정히 하는 이유는 산 사람이 아니라 조상님한테 잘 보이려는데 있다.
이발관에서 머리를 깎고 면도를 하고 나선 이발사가 로션을 발라주려고 한다만 나는 정중히 사양한다. 이상한 냄새에다 끈적끈적한 로션은 내 체질에 질색이다. 대중목욕탕 탈의실 거울 앞 로션도 거들떠보질 않는다. 여태 살아오면서 나는 집에서도 로션이나 크림은 한 번도 찍어 바른 적 없다. 우리 집 안방 거울 앞에 집사람 쓰는 화장품이야 예외겠지만 남성용 화장품이라곤 일절 없다.
이렇게 외모에 신경을 쓰지 않던 나에게 오십 중반에 이르자 조금씩 변화가 왔다. 요즘은 주말이나 방학 때 산행을 다닐 때 어김없이 모지를 쓰고 나선다. 겨울철 찬바람을 막아줄 털모자를 쓰고 나서면 집사람은 군밤장수 같다고 했다. 여름철이면 뙤약볕을 가려줄 차양이 넓은 모자를 써야 했다. 이것 역시 외양이나 미용을 위해서가 아니라 더위를 막아내고 비를 피한 실용적 면에서다.
언제부터인가 겨울이면 출근길도 모자를 쓰고 나선다. 양말이야 외출 할 때 사철 신는다만 날씨가 추우면 나는 머리에도 면으로 된 모자를 쓴다. 늘 걸어 출퇴근하니 찬바람에 이마가 시려 모자를 썼더니 한결 따뜻해 좋았다. 재작년 겨울엔 수 년 간 써 온 낡은 모자를 버리고 모양이 그럴듯한 헌팅캡을 사서 잘 쓰고 다닌다. 늦가을부터 겨우내 쓰고 초봄 쌀쌀한 날까지 눌러 쓰고 다녔다.
나는 작년 여름부터 출퇴근길 여름날에도 모자를 쓰고 나선다. 산행도 아닌 근무지 학교로 쓰고 갈 모자이니 디자인에 신경이 쓰였다. 어느 날 백화점에 들러 이 가게 저 가게 기웃거리다가 회갈색 중절모자를 하나 골랐다. 둥글게 테두리를 지은 차양이 햇볕을 알맞게 가려주었다. 중절모 갓은 성글은 면직이라 바람이 숭숭 통해 시원했다. 여름날 뙤약볕이 쨍쨍 내리쬐어도 아무 염려 없다. 14.05.27
첫댓글 중절모 쓰신 모습 멋졌어요 선생님!
가락 모임 상습 불참으로 지명 수배된 자의 최신 인상착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