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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100명산을 가다③
가고시마현 가이몬다케(開聞岳·924m)
일본의 땅끝마을에 솟은 ‘작은 후지산’
글·사진 곽영조 기자·협찬 몽벨 montbell.co.kr 타오투어 taotour.co.kr
인천공항을 날아오른 비행기가 그 기수를 남쪽으로 돌린다. 대한해협을 건너 도착한 곳은 열도의 남쪽에 위치한 규슈(九州) 지방 최남단 가고시마 현. 인구 54만여 명의 가고시마에는 ‘사쿠라지마’라는 대표적인 화산 이외에도 7개의 활화산이 있다. 기후가 온화하고, 온천이 발달하여 한겨울 관광지역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16세기 중엽에 프란시스코 자비엘이 상륙해 일본에 처음으로 기독교를 전파한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중국과 남태평양의 여러 섬들과 가깝다는 지리적 조건으로 일찍부터 무역이 발달하고 대륙문화와 유럽문화의 교류의 장이 되었으며 근대에는 유럽의 새로운 기계문명을 일찍부터 받아들여 일본공업 근대화의 전진기지 역할을 했던 곳이다.
입국심사를 마치고 아열대 기후의 야자나무들이 심어져 있는 가고시마 공항을 나서자 일행인 김영호씨의 오랜 친구인 사토씨가 뜻밖의 마중을 나와 주었다. 부인이 한국인인 그는 18년 동안 서울에서 살았다고 한다. 친구가 가고시마에 들린다고 하니 시간을 내어 나온 것이다. 그가 가져온 미니버스로 차밭에 둘러싸인 가고시마 공항을 나선다. 1시간여를 달려 가고시마 시내 호텔에 도착해서 여장을 풀고 곧바로 사쿠라지마로 이동한다.
가이몬다케 전경. 원추형 화산으로 그 생긴 모양이 마치 후지산과 닮았다고 하여 사츠마후지라고 불린다.
가고시마 만(灣)에 우뚝 서 있는 이 화산은 30회가 넘는 큰 폭발을 반복하고 있고 지금도 계속 분화되어 타오르고 있다.
“가고시마의 상징적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사쿠라지마는 높이 1117m로 분화에 의해 거대한 용암고원이 생겨났으며, 쿠로카미(黑神)에는 당시 분화 때 세 부락이 함께 매몰되어 이를 기리는 비석이 있다”고 사토씨가 설명해 준다. 그 둘레가 52km, 면적이 80㎢에 달하는 사쿠라지마는 오스미(大隅)의 해협이 연결되기 전까지는 3개의 봉우리가 이어져 있는 섬이었다고 한다. 2000년에 작은 폭발 조짐이 있었던 사쿠라지마는 아직도 화산활동이 계속되고 있는 지역으로 가고시마 페리터미널에서는 페리로 이동이 가능하며, 가고시마 만 연안 일대에서 그 웅장한 모습을 어디서든 감상할 수 있다. 가고시마 시에서 사쿠라지마로 가는 페리는 24시간 운행한다. 페리에 차량을 실어서 이동할 수 있는데 그 비용이 승용차 기준으로 1대당 1480엔, 사람은 1인당 150엔이다. 같은 현에 속하는 다루미즈시 쪽은 화산 폭발로 섬과 육지가 연결되어 있어서 차로 운행이 가능하다.
224번 국도를 이용해 사쿠라지마 항에서 아리무라 용암 전망대에 도착했다. 활화산 사쿠라지마의 한 가운데에 서있는 이 용암전망대는 사쿠라지마의 아름다움과 웅장함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화산활동으로 인한 유황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단체로 출사를 나온 듯 외국인들이 하얀 연기를 뿜어내고 있는 사쿠라지마를 열심히 사진에 담고 있다. 사쿠라지마 방문객 센터에 들리기 위해 전망대를 나섰다.
사쿠라지마 방문객 센터는 항구 근처에 자리하고 있는데, 10여분 동안 사쿠라지마의 생성과정과 과거의 분출 사진 및 사계를 생생한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한국 관광객을 위한 한국어 가이드북도 있다. 가고시마 시에서 가이몬다케가 있는 이브스키 시까지는 관광열차로 이동한다.
정상 바로 직전의 나무 계단 날씨가 좋으면 다네가섬과 야쿠섬, 이오섬까지 한 눈에 볼 수 있다고 한다.
후지산과 닮아 ‘사츠마후지’라고 불리는 가이몬다케
가고시마 현에는 기리시마야쿠 국립공원이 넓게 자리하고 있다. 1934년 일본 최초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 공원은 기리시마 연봉의 최고봉인 ‘가라쿠니다케’를 선두로 ‘다카치호노미네’, ‘신모에다케’ 등의 화산군과 화구호가 밀집되어 있다.
우리가 찾은 가이몬다케(開聞岳·924m)도 기리시마야쿠 국립공원에 속해 있는데, 가고시마 만의 시작점이 되는 사츠마 반도의 남단에 위치한 이 원추형의 휴화산은 그 생긴 모양이 마치 후지산과 닮았다고 하여 ‘사츠마후지(薩摩富士)’라고 불린다. 높이는 해발 924m이며 일본 100대 명산 중에 99번째로 이름을 올린 산이다. 874년과 885년에 대분화가 있었으며 최근은 2000년 12월 12일부터 하순에 걸쳐 분기가 관측되었다고 한다.
가이몬다케는 나선형의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4시간 정도면 여유있게 산행을 할 수 있다. 산의 이름은 가고시마 만의 출구에 있기 때문에 배들이 이 산을 목표로 하여 돌아 왔다는 데서 유래한다. 그래서 옛날에는 ‘바다의 문’이라는 뜻의 가이몬다케(海門岳)라고도 불렸다.
규카무라 이브스키 호텔에서 출발한 차량은 해안도로를 따라 20여분을 달리자 바다 한가운데 원추형 모양의 가이몬다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주변으로 거칠 것이 없는 해안가에서 단연 돋보이는 모습에 일행들이 다들 놀라워했다. 일행을 실은 버스가 이브스키 종합운동공원 주차장에 도착했다. 공원 주차장에서도 보이는 흰구름을 이고 있는 가이몬다케의 모습이 이채롭다. “후지산과 정말로 닮았다”는 이준형씨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주차장에서 2층 건물인 관리사무소를 지나면 나오는 넓은 잔디광장을 가로질러 서 산행 초입에 접근했다. 산행 초입은 2합목서부터 시작된다.
전날 많은 비가 내렸던 터라 산행길이 미끄러울 것으로 예상했다. 다행히 화산지형이라서 빗물을 머금고 있지 않아 산행하기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대신 초입에서 1km구간 정도 모래지대처럼 신발이 쑥쑥 빠지는 구역을 지나야 한다. 모래지대와 다른 것은 모래보다는 크지만 화산에서 분출된 작고 가벼운 화산돌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라산을 성판악 휴게소 오르다보면 만나게 되는 지형이라고 하면 이해가 빠르다. 대신 바닥에 깔린 흙은 어제 호텔에서 체험했던 이브스키의 스나무시(해안가에 용출된 온천을 이용한 모래찜질)의 검은 모래와 같은 색이다.
길가로 울창한 밀림지대가 형성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화산암은 물을 잘 배출시키는 걸로 알려져 있지만 무성하게 자란 나무들이 이 삭막한 화산에 생명의 불어넣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조림사업 등을 통해 정비를 했을 것 같았지만, 일본은 자연을 자연 그대로 두는 것에 더 주안점을 두고 있어서인지 삼림이 울창하다 못해 빽빽할 정도인데도 그대로 방치(?)되고 있었다. 시간은 아침나절이지만 나무들이 해를 완전히 가려 눈만으로는 아침인지 확인할 수 없을 정도다. 땅이 심하게 파인 계곡길도 한 몫 한다. 사람 키를 넘는 계곡길을 갈 때면 나무뿌리들이 눈 높이에 와 있었다.
일본에서 길조로 여기는 까마귀가 근처에서 낯선 이방인의 낌새를 느꼈는지 연신 울어대지만 위치는 나무에 가려 역시 보이질 않는다.
검은 계곡길을 통과하자 이제는 나무뿌리들이 길 위로 훤히 들어난 곳을 지난다. 웃자란 나무들을 땅이 그 무게만큼을 잡아주지 못하고 해안가의 잦은 바람결에 그만 넘어간 것이다. 그런 나무들이 한동안 계속된다. 더 이상 감출 것이라고는 없는 연약한 모습이지만 놀랍게도 가지끝에는 아직 떨어지지 않은 나뭇잎들이 자라고 있었다. 그 놀라운 생명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2.5합목은 사거리다. 표지판에 양쪽 길은 ‘가지 마시오’와 ‘하산할 수 없다’라고 써 있다. 산행을 시작한 지 20여분이 채 되지 않았는데 일행들 얼굴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열도의 끝자락에 위치한 이곳은 평균기온 20℃, 이제 막 가을의 문턱을 넘고 있다. 일행들 모두 옷을 갈아입는다.
5합목부터 조망이 좋아져
3합목으로 가는 길에 도대체 조망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게다가 눈을 씻을 물조차도 하나 없다. 이제 막 시작되는 가을 경치를 나뭇잎으로 막아서고 있어 위치 확인은 오직 등산로 상의 안내판으로만 가능하고 일본 대부분의 산들이 그렇듯 가이몬다케에서도 산중에서 물을 구할 곳이 없다는 말이다. 이를 위해 산행 전 식수를 준비해야 하고, 가능하다면 잠망경도 하나 챙겨봄은 어떨까. 3합목 역시 원시림으로 둘러싸여 있다.
4합목으로 가는 길도 원시림으로 가득한 길이 계속 이어진다. “5합목부터는 전망이 좋아진다”는 김무환씨의 얘기에 힘이 솟았다. 하늘도 어제 많은 비를 내린 후라 가벼워 보인다. “바닷가인데 바람에 짠 기운이 하나도 없는 게 너무 신기하다”는 이준형씨의 말처럼 진짜로 우리나라의 해안가에서 맡아왔던 바다내음이 여기에는 없다. 오히려 없으니 이상했다. 부는 바람도 물기를 머금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시원한 바람이었다. 어쩌면 나무들이 맑은 공기를 생산하면서도 거름종이처럼 짠 기운을 막아주고 있는 듯 하다.
5합목에 도착하니 조금씩 나무간격이 벌어지면서 자기들끼리도 숨이 트이나 보다. 덩달아 산행도 여유를 찾는다. 울창하다 못해 어둡기까지 했던 나무 덕(?)에 산행하는 내내 급한 마음이 들었었다. 5합목을 지나자 멀리 사츠마 반도의 끝지점인 나가사키바나를 조망할 수 있는 트인 공간이 비로소 나타났다. 그 사이로 우리가 산허리쯤 올라왔음을 알게 된다. 김무환씨는 “나가사키바나는 가이몬다케의 장관과 끝없이 펼쳐진 태평양을 바라볼 수 있는 곳으로 일본의 토말(땅끝)”이라 설명했다. 어제 비를 내렸던 하늘도 조금씩 개이고 있다.
6합목에 도착하니 이제는 제법 사위도 밝아지고 이제껏 보지 못했던 태평양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선다. 오전 9시, 한참 떠오르는 태양이 햇살들을 바다로 내어 보내고 그 빛으로 찬란한 아침을 만들고 있다.
7합목을 지나면 아침이슬을 머금었던 나뭇잎들이 햇살에 마르면서 주위가 짙은 안개로 휩싸이기 시작했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맑은 공기 때문인지 멀리서 뒤따라 산행을 하고 있는 일본사람들의 목소리가 또렷이 들린다. 이제는 보이는 거라곤 오직 바다뿐이다. 지나왔던 나가사키바나를 보려면 달리는 버스에서 창가로 목을 내어야 뒤가 보이듯 고개를 쭉 빼어야 겨우 육지 끝자락이 보일랑 말랑하다.
가이몬다케는 등산로가 특이하게 큰 원을 그리듯이 놓여있어 산행 중에는 360도를 모두 볼 수 있다. 마치 흙과 물, 육지와 바다, 어둠과 밝음, 사람과 자연 등 상반되는 듯 하지만 뗄 수 없는 존재들에 대한 깊은 성찰의 의미를 산행하는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 같다. 정상에 도착하면 마치 그 궁금증이 풀릴 것 같아 길을 재촉했다.
9합목은 안개 속에 놓여 있다. 날씨가 좋으면 다네가섬과 야쿠섬, 멀리는 연기를 내뿜는 이오섬까지 한 눈에 볼 수 있다고 한다. 나무계단을 올라 바위구간을 지나면 정상이다.
정상에는 한 아름씩 되는 바위들이 자유분방하게 놓여있고, 가이몬다케라고 쓰여진 표지목 하나만 덩그러니 세워져 있다. 드디어 정상이다. 일본 열도의 끝자락, 더 이상 갈 수도 오를 곳도 없는 곳에 도착했다. 오전 10시가 막 넘어서고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시간 때문에 서둘러 하산을 해야 하는데 다들 아쉬움으로 쉽게 발을 떼지 못하던 중 순간 정상이 환해진다. 안개인지 구름인지가 걷히더니 지금까지 걸어온 모든 길을 한 순간에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우와~” 마치 그 단말마 같은 외침이 신호인 듯 눈길이 땅에 채 닿기도 전에 금세 정상을 구름속에 가둔다. 진짜 순간이라는 말을 실감한 채 산을 내려온다. 하지만, 그 짧기에 더 없이 소중한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정상부근에 있는 감옥신사. 이름이 이채롭다.
information
가고시마 현의 둘러볼 곳
이케다 호수
이케다 호수는 둘레 15㎞, 최대 수심 233m로 화산의 분화구에 물이 고여 만들어진 칼데라호이다. 유채꽃이 피어나는 봄에는 그 아름다움이 절정에 이른다. 이브스키역 앞에서 가고시마 교통버스 이케다호, 가이몬다케행으로 40여분 소요된다. 이케다호 버스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 요금은 850엔
나가사키바나
나가사키바나는 아름다운 원추형 화산 가이몬다케의 장관과 광활하게 끝없이 펼쳐져 있는 태평양을 바라볼 수 있는 명소로 알려진 곳이다. 나가사키바나에 있는 나가사키바나 파킹 가든은 약 1000종류의 열대, 아열대 식물과 100여종의 동물들이 있다. 매일 공연되는 플라밍고와 침팬지, 오랑우탄 등의 동물의 쇼가 재미있다. 이브스키 역에서 버스로 27분 소요(450엔) 또는 이브스키 역에서 이브스키 마쿠라자키센을 타고 야마카와 역에서 하차, 가이몬다케 행 버스로 20여분이 걸린다. 개관시간은 08:20∼17:00까지다. 파킹가든 입장료는 1200엔이고 연중 무휴다.
가고시마 중앙역
가고시마 중앙역은 번화가에 위치하며 규슈 신칸센, 구마모토, 하카타 행 특급 열차가 출발하는 중심역이다. 하카타에서 출발하면 이곳이 종착역이며, 이브스키를 갈 때도 이곳을 이용해야한다. 반면에 중앙역의 동쪽에 위치한 가고시마역은 미야자키 방면으로 갈 때 지나는 작은 역이다. 가고시마역은 가고시마항까지 도보로 5분거리이므로 사쿠라지마로 가는 페리 승선에 편리하다. 기리시마나 미야자키를 갈 때에는 가고시마 중앙역이나 가고시마역 두 곳에서 JR 특급 기리시마호를 탈 수 있다.
사쿠라지마
사쿠라지마는 화산 폭발로 형성된 둘레 53㎞의 화산섬. 가고시마 시 앞바다 4km 거리에 웅장한 모습으로 매일같이 연기를 뿜는 활화산은 가고시마의 상징이다. 북에서 남으로 키타다케(1117m), 나카다케(1060m), 미나미다케(1040m)의 세 봉우리가 있으며, 이 가운데 미나미다케는 아직도 활동을 하는 활화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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