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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연평해전 전사자 추모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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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 • • 자유게시판 무장공비를 단신으로 막아선 종로경찰서장 최규식 경무관 (당시 총경)
▶Φ◀==황== 추천 0 조회 604 03.07.21 00:14 댓글 1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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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3.07.20 21:41

    첫댓글 앞서가신 분들의 나라 사랑은 남아 있는 저희가 뜻을 본 받아 이어나아가야 할겁니다...진심으로 감사드리는 기도를 하려합니다..이자리에 있을수 있게 해주신분들께...

  • 03.07.20 22:11

    돌아가신분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김신조의 자서전과 다소 차이가 있군요. 김신조 자신도 말하길 종로경찰서장은 너무 허무하게 죽었다고 합니다. 홀로 용감히 뛰어든 것이 아니라 딱 와서 하는말 '내가 누구인지 아나? 나 종로경찰서장야 너희들CIC라면서 나를 몰라 보나'했답니다.

  • 03.07.20 22:19

    본인도 말하길 만약 무장 수행원 몇명이라도 있었다면 그리고 검문방식이 좀더 신중했더라면(솔직히 나 종로 경찰서장이야 하면 일반시민들이나 떨지 적군들은 동요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당시에는 일반 시민들은 순경만 봐도 떨었답니다))

  • 03.07.20 22:18

    그렇게 허무하게 죽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한국인된 김신조는 그 당시 권위적인 한국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암울했던 시대모습이었다고 설명하더군요(그리고 권총 빼들지도 않았답니다.) 시내버스 오인은 다 사실이라고 합니다. 한쪽의 이야기 보다 양쪽 모두 비교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한번 써 봤습니다.

  • 작성자 03.07.20 23:30

    네. 저도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지금 김신조목사님은 그때 이후로 새 삶을 사셔서 충남에서 목회를 하고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최규식 총경이 그곳에서 124군부대를 저지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대한민국은 더욱더 큰 재난에 휩싸이게 되었을 것입니다.

  • 03.07.20 23:31

    최규식 경무관....어렸을때 삼청공원에 놀러가면서 동상을 뵈었던 분이지요. 그 동상을 보면서 뭐라고 할까? 개인적인 당시 주변에서 봤던 것과 연결되어서 많은 상념에 잡히더군요..참 대단한 분이셨지요. 서울까지 올때 특수부대라는 호통에 다들 비켜 줬는데 끝까지 안비켜 주었던 분이니까요...

  • 작성자 03.07.20 23:31

    고압적인 자세가 되었던 아니었던 간에 무장공비들을 그냥 보내지 않고 막아선 그분의 용기만은 높이 사야 할 것입니다.

  • 03.07.21 00:01

    깜찍이님의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그리고 몇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1. 경찰에서 거동수상자가 특수부대를 라고 하면서 검문을 통과하려고 하면 현장에 나가서 지휘할 경찰서장이 전국에 몇명이나 될까요? 2. 최규식 총경이 그 곳에서 CIC라고 해서 방법에 상관없이 통과 시켰을 때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 03.07.20 23:41

    질문3. 다른곳은 CIC라는 이야기에 통과시킨 사람과 시키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뭔가요? 만약 최규식 총경이 CIC라는 이야기에 "어서 가십시요"라고 했다면 최규식 총경은 아마 지금도 살아있지 않았을까요? 질문4. 김신조씨는 이땅에 정착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적으로 했던 행동에 대하여는 최대한

  • 03.07.20 23:42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합리화 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드시지 않나요? 질문4를 드리는 이유는 위의 사진에 나오는 기자회견을 지휘했던 당시 방첩부대 외사과장 XXX중령 (대령 예편)님의 말씀과 김신조씨의 자서전과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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