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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광역시 개관 1. 삼국(三國) ․ 통일신라시대(統一新羅時代) 삼국시대(5세기말~6세기초) 대구의 옛 이름은 다벌(多伐), 달벌(達伐), 달불성(達弗城), 달구화(達句火), 달구벌(達句伐)이라 표기 되었는데 ‘화(火)’와 ‘벌(伐’)은 촌락, 읍성을 뜻하는 말이며, 달(達)은 원(圓), 주(周) 등 넓은 공간을 의미한다. 삼국통일 이후 대구지역은 1개 군-수창군(壽昌郡)과 4개 현 - 대구현(大丘縣), 팔리현(八里縣), 하빈현(河濱縣), 화원현(花園縣)으로 구성되었으며,1) 현재의 대구시역과 당시의 군현(郡縣)을 결부시켜 보면 대구 분지의 중앙을 관류하는 신천(新川)을 경계로 그 동쪽은 위화군의 관치(官治)지역이었으며, 서쪽은 달구화현으로 편성되었고, 금호강(琴湖江)을 경계로 팔공산(八公山) 기슭에 해당하는 그 동북쪽의 동촌(東村)지역 일원은 압량군(押梁郡) 추성화현(椎省火縣)으로 편성되었으며, 현재 대구시역에 편입된 고산(孤山)지역은 압량군의 군치(郡治)의 일부를 형성했던 것으로 판단되며, 시역의 서쪽과 북쪽지역 가운데 월배(月背)지역은 설화현의 일부였으며, 성서(城西)지역은 다사지현의 일부, 칠곡(漆谷)지역은 팔거리현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2) 삼국통일 이후 군현제 실시와 함께 많은 변화를 겪었던 대구지역은 그 과정에서 정치, 사회적 비중이 높아져 신문왕 9년(689년)에 새로운 도읍의 후보지로 부각되어 천도(遷都)의 시도가 있었으나 실현되지는 못했다.3) 신라 경덕왕 16년(757년) 당(唐) 문화의 영향으로 신라의 문물제도가 중국식(中國式)으로 정비해 가는 과정에서 벼슬이름이나 지방이름은 원칙적으로 2자의 한자로 개칭하였으며, 개칭의 방법은 음을 딴 것, 뜻을 따르는 것, 글자를 줄이는 것 등이 있었는데 달구벌이 대구(大丘)로 바뀐 것은 음을 딴 경우에 해당한다 하겠으며, 성주군, 수창군의 영현(領懸)으로 소속되어 고려초까지 계속되었다. 2. 고려시대(高麗時代) 통일신라시대를 이어 건국된 고려왕조가 수도(首都)를 송악(松岳)으로 정하자 대구지역은 그동안 지니고 있던 지리적인 측면의 비중은 약화되지 않을 수 없었다. 건국 초에 고려 왕조는 신라의 지방제도를 답습하다가 현종대에 이르러 대대적인 지역개편을 시작으로 몇 번의 변천을 거쳐 결국 5도양계(道兩界), 4도호부(都護府), 8목(牧), 15부(府), 129군(郡), 335현(縣), 29진(鎭)으로 확정되었다.4) 고려의 체제개편은 현종 9년(1018년)의 지방제 개편에서, 통일신라시대와 같이 대구현의 영현은 수창군이었지만, 수창군이 통일신라시대의 9주(州) 5소경(小京) 하에서의 양주(良州)에 속했다가 이때에 경상도 상주목(尙州牧)의 경산부(京山府 )관내가 되었다. 그리고 고려시대의 속현․속군 등의 임내(任內)에는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고 지방 향리(鄕吏)들의 자치에 맡겼다 하지만 예종대(代) 부터의 대량적인 유민(流民) 발생이 지방관 파견의 필요성을 제고하였고,5)6) 뿐 만 아니라 수창군의 영현이었던 화원현과 하빈현이 대구에 이속되고7)8)9) 3. 조선시대(朝鮮時代) 대구는 조선 초기만 해도 농업지대로서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으나 행정적 도시로서의 중요성이 인식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군사적, 교통적 요지로서 그 중요성이 인식되어, 선조 34년에는 감영(監營)이 설치되었으며 이로서 대구는 영남(嶺南)을 대표하는 정치․행정․군사․경제적 중심지(中心地)로 발전하게 되었다. 태조(太祖) 3년 감무(監務)가 있었던 수성현(壽城縣)과 해안현(解顔縣)을 대구에 영속시켰다가 그 이듬해에 경주(慶州)에 이속시켰으나, 태종(太宗) 14년(1414년)에는 다시 수성현과 해안현을 대구에 귀속했다. 이때 해안현은 잠시 직촌(直村)이 되었다가 태종 17년에는 다시 해안현이라 칭해지고 대구현의 속현이 되었다. 고려말기에 이미 대구의 속현이었던 화원현은 그동안 대구에서 성주목(星州牧)에 이속되어 있었고, 세종(世宗) 원년(1419년) 5월에는 대구현이 대구군(大邱郡)으로 승격하였는데 당시 대구본군(大邱本郡)과 수성․하빈․해안의 3개 속현을 합친 호구(戶口)는 1,249호(戶)에 8,629구(口)에 달했다.10) 세조(世祖) 12년(1466년)에는 대구군이 도호부(都護府)로 승격하였는데 이는 대구의 교통․군사․경제적 중요성이 가중된 것을 보여주며, 선조(宣祖) 23년(1590년)에는 당시 지방행정관서가 있는 행정단위의 상징인 대구읍성(邑城)이 토성으로 축조되었다가 임진왜란으로 파괴되었다. 임란(壬亂)이 끝난 선조 34년(1601년)에는 감영을 안동부에서 대구부로 옮기게 되면서 대구부는 경상도의 중심지가 되어 조선조말까지 계속 확대되면서 우리나라 대도시의 하나가 되었으며11)12) 선조 40년(1607년)에 경산현, 하양현은 대구도호부 관할에서 분리되고13)14) 하지만, 숙종(肅宗) 10년(1684년)에 이르러 감사의 부사(府使)겸임이 허락되고, 별도로 판관(判官)을 두면서 풍각현(風角縣)의 4개면인 각북(角北), 각현내(角峴乃), 각초동(角草洞), 각이동면(角而東面)이 대구대호부에 편입되었고, 대구도호부의 관할지역은 대구본부(大邱本府), 해안현(解顔縣), 수성현(壽城縣), 하빈현, 화원현, 풍각현에 걸치는 34면 253리에 이르게 되었다. 영조(英祖) 11년(1735년)에 당시 경상도 관찰사(觀察使)겸 대구도호부사로 부임했던 민응수가 영조의 윤허를 얻어 영조 12년(1736년)에 석성(石城)으로 대구읍성(邑城)을 축조(築造)하였는데 영영축성비(嶺塋築城碑)에 의하면 읍성의 규모는 총둘레 2,124보(步), 높이 10~22척(尺)으로 동서남북의 4개 정문이 있었으며 동(東)은 진동문(鎭東門), 서(西)는 달서문(達西門), 북(北)은 공북문(拱北門)이라 하였고 남문(南門)에는 영남제일관(嶺南第一關)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었으며, 오늘날의 동성로(東城路), 서성로(西城路), 남성로(南城路), 북성로(北城路)가 성벽이 위치한 자리였다.15) 대구에는 고종(高宗) 32년(1895년) 지방제도의 개편이 이루어질 때까지 경상도 감영이 계속 상주 하였으며, 그 후에 있어서도 한일합방시(韓日合邦時)까지 지방제도의 변천에 관계없이 대구가 경상도 도치(道治)였던 점에는 하등의 변화도 없었다.16) 한편, 영조 26년(1750)에는 대구(大丘)의 유생(儒生) 이양채(李亮采)가 대구의 구(丘)자가 공자의 이름인 구(丘)와 같은 자이므로 공자의 이름을 직범(直犯)하여 인심을 불안하게 할 우려가 있다 하여 이를 바꾸고자 상소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정조(正祖), 헌종(憲宗)때는 대구(大丘)와 대구(大邱)가 혼용되다가 철종(哲宗) 이후에는 대구(大邱)만을 사용하게 되었다.17) 4. 대한제국시대(大韓帝國時代) 도제(道制)를 중심으로 한 조선의 지방제도가 갑오개혁(1894년)을 계기로 혁파되어 1895년 지방제도 개정에 관한 건(칙령 제98호 1895. 5.26)에 의하여 전국의 8도제를 폐지하고 23부제(府制)로 개편 시행함에 따라 대구도호부(大邱都護府)는 대구부(大邱府)로 개칭되었으며, 대구군 등 23개군을 관할하게 되었다. ※ 대구부의 관할구역 - 23개군 대구군, 경산군, 칠곡군, 인동군, 성주군, 지례군, 고령군, 선산군, 개령군, 금산군, 의성군, 의흥군, 군위군, 비안군, 밀양군, 청도군, 영천군, 자인군, 신령군, 하양군, 창녕군, 영산군, 현풍군 ※ 전국 - 23개부 한성부, 인천부, 충주부, 홍천부, 공주부, 전주부, 남원부, 나주부, 제주부, 진주부 동래부, 대구부, 안동부, 강릉부, 춘천부, 개성부, 해주부, 평양부, 의주부, 강계부 함흥부, 갑산부, 경성부 부제(府制)는 일년 동안 명맥을 유지하다가 고종 33년(1896년) 칙령 제36호(1896. 8. 4)로 전국 23부(府)를 폐지하고, 도제(道制)를 부활하여 13도로 개칭함에 따라 대구부는 경상북도에 속하게 되었으며, 당시의 경상북도 관할구역은 대구군 등 41개군을 관할하게 되었다. ※ 전국 - 13도 경기도, 충청남․북도, 전라남․북도, 경상남․북도, 황해도, 평안남․북도, 강원도 함경남․북도 ※ 경상북도 관할구역 - 41개군(507개면) 상주군, 경주군, 대구군, 성주군, 의성군, 영천군, 안동군, 예천군, 금산군, 선산군 청도군, 청송군, 인동군, 영해군, 순흥군, 칠곡군, 풍기군, 영덕군, 용궁군, 하양군 영주군, 봉화군, 청하군, 진보군, 군위군, 의흥군, 신령군, 연일군, 예안군, 개령군 문경군, 지례군, 함창군, 영양군, 흥해군, 경산군, 자인군, 북안군, 현풍군, 고령군 장수군 광무(光武)10년(1906년) 통감부령(統監府令)에 의거 12개 도시에 이사청관제(理事廳官制)를 실시함에 따라 대구에 대구이사청18) ※ 이사청이 설치된 12개 도시 인천, 부산, 대구, 마산, 군산, 목포, 평양, 진남포, 신의주, 원산, 성진, 청진 5. 일제강점기시대(日帝强占期時代) 1910년 8월 일제의 강압적인 수단에 의해 한일합방이 단행되자, 일제 식민통치(植民統治)의 권부인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가 설치되었으며, 1910년 10월 1일에는 ‘조선총독부지방관제(地方官制)’가 실시되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고유의 지방행정제도(地方行政制度)가 일방적으로 개정되었으니, 감영제가 폐지되고 경찰행정권이 강화되었으며 새로운 부서가 설치되었다. 그러나 제국주의 침략에 항거하는 민심의 동요나 부작용을 우려한 나머지 관청의 소재지나 종래 시행되어온 도․군․면의 행정구역(行政區域)과 그 호칭은 계승되었다. 이에 따라 경상북도 관할구역은 종전 그대로의 구역으로 되었고, 도청의 소재지도 원래대로 대구에 두어졌다. 다만 경상북도 대구군은 경성, 인천, 군산, 목포, 부산, 마산, 평양, 진남포, 신의주, 원산, 청진 등과 함께 부(府)로 개칭되었다. 당시 대구부(大邱府)의 행정구역은 종래 대구군의 관할구역과 동일하였으며 대구부는 29면 260개 동을 두었다19) ※ 대구부의 관할구역 - 29개면 260개동 동상면(14개동) 화전동, 후동, 전동, 남일동, 사일동, 사이동, 남성동, 신동, 용덕리, 칠성리, 신상동 신중동, 신하동, 가암동 서상면(14개동) 남일동, 남중동, 남하동, 쇄환동, 서내동, 북내동, 남산동, 남외동, 계산동, 동산동 전동, 후동, 신동, 달성동 동중면(6개동) 산격동, 옥산동, 신기동, 침산동, 복현동, 검단동 동하면(5개동) 동변동, 서변동, 이곡동, 연경동, 도덕동 해서촌면(12개동) 상리동, 덕산동, 도성동, 송정동, 택리, 대거동, 중리, 신천동, 용진동, 지묘동 시지동, 연경동 해북촌면(25동) 내동, 옥정동, 미대동, 구암동, 국곡동, 신기동, 무산동, 수일동, 용천동, 상중심동 시곡동, 임전동, 백안동, 목리동, 외학동, 내학동, 도장동, 진정동, 양방동, 당동 인산동, 용성동, 평리, 북광동, 남광동 해서부면(13개동) 봉무동, 독암동, 외남동, 단산동, 도동, 구성동, 불로동, 현상동, 상향동, 하향동 지저동, 도신동, 입석동 해동촌면(13개동) 칠동, 상동, 일암동, 연천동, 둔산동, 구명동, 월천동, 부동, 격양동, 평리 신덕동, 방촌, 검사동 수북면(7개동) 범어동, 소계동, 황청동, 지계동, 만촌동, 검정동, 효목동 수동면(3개동) 두산동, 지상동, 범물리 수현내면(4개동) 상동, 중동, 하동, 신동 하수남면(14개동) 흥덕동, 퇴계동, 신전동, 부정동, 전평동, 창산동, 박곡동, 상원동, 단산동, 대일동 중촌, 상촌, 냉천동, 대천동 상수남면(10개동) 내주동, 외주동, 하주동, 상백동, 하백동, 우녹동, 녹문동, 금동, 옥분동, 단양동 상수서면(12개동), 정대동, 대암동, 매계동, 양오동, 음오동, 용계동, 파남동, 파북동, 봉산동, 덕산동 대명동, 검암동 서중면(8개동) 원대동, 용천동, 조야동, 노곡동, 부암동, 외비동, 내비동, 평리 달서면(9개동) 상리, 괘동, 이현동, 중리, 신기동, 내당동, 외당동, 감삼동, 성당동 성서면(10개동) 파산동, 파호동, 금회동, 신당동, 율제동, 이곡동, 고림동, 용상동, 용하동, 죽전동 하동면(7개동) 이천동, 달서동, 박곡동, 방천동, 서제동, 내촌, 세천동 하북면(9개동), 금천동, 현내동, 겸동, 무등동, 성당동, 두천동, 지산동, 대평동, 기곡동 하서면(8개동) 감문동, 우육동, 동곡동, 봉촌, 하산동, 적산동, 성곡동, 묘동 하남면(7개동) 문산동, 문양동, 서부곡동, 부곡동, 죽곡동, 강정동, 매곡동 감물천면(8개동) 갈산동, 망정동, 장동, 장기동, 감천동, 본리, 작촌, 송현동 조암면(3개동) 상동, 하동, 대천동 월배면(7개동) 상인동, 제정동, 본리, 원덕동, 도원동, 오복동, 진천동 인흥면(5개동) 본리, 쌍학동, 송정동, 대곡동, 상리 화현내면(11개동) 천내면, 현내면, 신기동, 부진동, 외촌, 구라동, 검곡동, 현기동, 성산동, 서촌 설화동 옥포면(3개동) 간경동, 본리동, 대방동 법화면(5개동) 신당동, 교정동, 본리, 시저동, 강림동 성평곡면(8개동) 만촌동, 금흥동, 만수동, 기세동, 원전동, 반송동, 지산동, 능전동 그 후 일제는 경상북도 고시 제38호(1911.11.14)로 동상면(東上面)과 서상면(西上面)을 폐합(廢合)하여 대구면(大邱面)을 설치하였으며, 관할구역의 28개 동명(洞名)을 일본식으로 개칭하였는데 우리나라 고유의 동리명은 무시되고 명치정(明治町)이나 대화정(大和町)과 같이 일제의 군주나 정신에서 따온 명사가 그대로 사용되는 파렴치가 자행되었다.20) 또한, 도의 위치와 관할구역 및 부군 명칭, 위치, 관할구역에 관한 부령(조선총독부령 제111호 1913.12.29공포)으로 도의 관할구역과 부군의 명칭, 위치, 관할구역이 대폭 개편․병합되어 대구부 관할구역의 29개면을 13개면으로 재편하여 12개면을 달성군(達城郡)에 편입하고 대구면(종전의 동상면, 서상면)만을 관할하게 되었다. ※일본식동명개정내역
그 후 1914.3.1(조선총독부령 제111호 1913.12.29공포) 새로운 부제가 실시됨으로써 그 행정구역은 7.6㎢로 축소되었는데 이는 당시의 빈약한 일제 재정으로는 광역의 도시를 지탱해가기가 힘겨웠으므로, 수탈의 거점인 축소된 일본인 중심의 시가지를 마련하여 여기에 집중적으로 도시시설을 갖추기 위함이었다. 이에 따라 대구부가 관할하게 된 지역은 대구면 즉 이전의 동상면과 서상면에 해당하는 구역에 불과하게 되었으니 그것은 오늘날의 대구 중구(中區) 대부분에 칠성동(七星洞)을 포함하는 소규모로 축소된 셈이다. 이렇게 축소되기 전 구(舊)대구부의 관할 하에 있었던 28개면 중 대구면을 제외한 나머지는 신설된 달성군(達城郡)의 관할에 두게 되었고, 1917.4.1 부군관할구역 변경에 관한 부령(조선총독부령 제9호 1917.2.15공포)에 의거 경상북도 달성군 수성면(壽城面) 대명동(大明洞)과 봉덕동(鳳德洞)의 일부를 대구부에 편입시켜 대봉정(大鳳町)을 신설하였으며, 이러한 대구 지역의 상황은 1938년까지 약 24년 정도 지속되었다. ※ 대구부의 관할구역 - 52개 정(町) 대구성곽이 철거되기 이전의 동상면과 서상면 즉 대구면 (단, 대구면 중 신천․신암동과 남산동 일부, 신동 일부는 제외) ※ 달성군의 관할구역 - 16개면 173개동 현풍군 일원(4개면), 대구부 동중면, 동하면, 해동촌면, 해서부면, 해서촌면 해북촌면, 수동면, 수북면, 수현내면, 상수남면, 하수남면, 상수서면, 하수서면 서중면, 원서면, 성서면, 하동면, 하남면, 강서면, 강북면, 감물천면, 조엄면, 인흥면 화현내면, 원배면, 옥포면, 법화면, 성평곡면, 대구면 중 대구부에 속하지 않는 지역 그러던 중 1938.10.1 부군의 명칭, 위치, 관할구역 개정(조선총독부령 제196호 1938.9.27공포)로 1914년 달성군으로 편입되었던 3개면 28개동을 대구부로 환원하였으며, 이때 새로 편입된 지역은 성북면(城北面)의 4개동, 달서면(達西面)의 10개동, 수성면의 14개동으로 대구부의 총면적은 9,269,486㎡에다 새로 편입된 106,413,010㎡를 합하여 총 115,682,496㎡에 달하며, 인구는 168,463명이 되었다.21) ※ 편입지역 현황 - 성북면 : 침산동, 산격동, 복현동, 검단동 - 달서면 : 원대동, 비산동, 이현동, 상리동, 조야동, 노곡동, 평리동, 중리동 내당동, 성당동 - 수성면 : 중동, 하동, 신천동, 신암동, 효목동, 만촌동, 범어동, 황청동, 지산동 범물동, 두산동, 상동, 봉덕동, 대명동 이러한 행정구역은 1945년 광복(光復) 당시까지 유지되었으나 부세 확장에 따른 지역의 확대와 인구의 증가로 말미암아 효율적인 행정기능의 수행을 위해 부출장소(府出張所)의 설치 필요성이 대두되어, 대구부출장소설치조례 제22호(1938.11.2공포)부령 제196호에 의하여 새로 편입된 3개면(28개동)을 관할하기 위해 동부(東部)(수성면), 서부(西部)(달서면), 북부(北部)(성북면) 등 3개 출장소를 설치하였다. ※ 출장소별 관할 구역 - 대구부 동부출장소(14개 동) - 대구부 중동 492번지의 1 ․ 종전의 수성면 대명동, 봉덕동, 두산동, 지산동, 범물동, 황청동, 범어동, 효목동, 만촌동, 상동 중동, 하동, 신암동, 신천동 - 대구부 서부출장소(10개 동) - 대구부 평리동 707번지 ․ 종전의 달서면 원대동, 조야동, 평리동, 비산동, 노곡동, 성당동, 내당동, 중리동, 상리동, 이곡동 - 대구부 북부출장소(4개 동) - 대구부 산격동 851번지 ․ 종전의 성북면 침산동, 산격동, 검단동, 복현동 6.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大韓民國 政府樹立 以後) 1) 출장소제(出張所制)의 대구시 미 군정(軍政) 시기인 1947.4.1 경상북도령으로 53개 일본식 동명을 새로운 우리말 식 동명으로 개칭(81개 동) 하였다. ※ 일본식 동명 개정 내역
1948.8.15 정부수립 이후 지방자치법 실시에 따라 행정구역에 관한 법률 제32호(1949.7.4공포)로 대구부를 대구시로 개칭하였으며, 대구시출장소설치조례 제10호(1951.6.9공포)제정으로 기존 3개 출장소 이외에 종전의 시 직할지역 중 남산(南山), 대봉, 봉덕, 대명동을 관할할 남부출장소를 신설하여 출장소는 총 4개가 되었다.22) 대구시출장소설치조례 제11호(1951.6.12공포)로 북부출장소 관할의 조야동(助也洞)이 서부출장소 관할구역으로 변경되었으며, 1952.1.16 대구시 조례로 동인동(東仁洞), 삼덕동(三德洞), 칠성동을 분동함으로써 81개 동에서 87개 동으로 관할 동의 수가 늘어났고, 대구시출장소설치조례 제26호(1953.4.1공포)로 동서남북의 4개 출장소 이외에 종전의 시 직할동을 관할할 중부(中部), 종로(鍾路), 양 출장소를 증설함으로써 전체6개 출장소 87개 동이 되었다. ※ 출장소별 관할구역 - 중부출장소(17개 동) - 대구시 동인동 2가 1번지 동인동 1․2․3․4가, 삼덕동 1․2․3가, 봉산동, 교동, 태평로1가, 용덕동, 상덕동, 완전동 문화동, 공평동, 동성로2가, 동문동 - 종로출장소(37개 동) 대구시 북성로 2가 35번지 덕산동, 상서동, 하서동, 수동, 남성로, 계산동1․2가, 사일동, 남일동, 종로1․2가 전동, 동일동, 장관동, 동성로3가, 북성로2가, 서내동, 북내동, 서성로1․2가, 동산동 시장북로, 대신동, 달성동, 수창동, 도원동, 태평로2․3가(1구), 동성로1가, 화전동 북성로1가, 향촌동 - 동부출장소(12개 동) - 대구시 신천동 1165번지 두산동, 지산동, 범물동, 황청동, 범어동, 효목동, 만촌동, 상동, 중동, 신천동, 신암동 - 서부출장소(10개 동) - 대구시 내당동 1033번지 원대동, 평리동, 내당동, 비산동, 성당동, 상리동, 중리동, 이현동, 노곡동, 조야동 - 남부출장소(4개 동) - 대구시 남산동 705번지 남산동, 대봉동, 대명동, 봉덕동 - 북부출장소(7개 동) - 대구시 칠성동 405번지 침산동, 산격동, 검단동, 복현동, 칠성동 1․2․3가, 태평로3가(2․3․4구) 이후, 시․군행정구역변경에 관한 법률 제452호(1957.11.6공포)로 1958.1.1 달성군의 공산(公山) 18개 동, 동촌(東村) 10개 동, 가창(嘉昌) 13개 동, 성서(城西) 13개 동, 월배(月背) 7개 동 등 5개면 61개 동을 대구시에 편입하였으며, 대구시 조례 제106호(1957.11.6공포)로 공산, 동촌, 가창, 성서, 월배 5개 출장소가 신설되어 공산면의 동변동(東邊洞), 서변동(西邊洞)은 북부출장소로, 평광동(平廣洞)은 동촌출장소로, 성서면의 송현동(松峴洞)은 월배출장소로 관할구역이 조정되었으며 대구시조례 제108호(1957.12.31공포)로 동촌출장소의 평리동(平里洞)을 신평동(新坪洞)으로, 시 직할의 하동(下同)을 수성동(壽城洞)으로, 공산출장소의 덕산동(德山洞)을 德谷洞)으로, 월배출장소의 상동(上洞)은 월성동(月城洞) 하동(下洞)은 월암동(月岩洞)으로 개칭하였다. 1958.9.30 제1토지 구획정리사업 환지처분 실시에 따라 일부 법정동 경계 조정이 있었고, 1958.11.14 동의 명칭과 행정구역을 일부 조정하였으며, 1961.5.1 동의 명칭과 행정구역 일부조정과 함께 대구시 동의 명칭과 구역에 관한 조례 제243호(1962. 1.26공포)를 통해 1962.10.1 대구시 148개동의 명칭과 구역을 정하였다. ※ 1962.10.1 기준 동의 명칭 동인동1가, 동인동2가, 동인동3가, 삼덕동1가, 삼덕동2가, 삼덕동3가, 봉산동 동문동, 문화동, 공평동, 동성로1가, 동성로2가, 동성로3가, 태평로1가, 태평로2가 태평로3가, 교동, 용덕동, 상덕동, 완전동, 덕산동, 장관동, 상서동, 하서동, 수동 남성로, 계산동1가, 계산동2가, 종로1가, 종로2가, 사일동, 동일동, 남일동, 전동 포정동, 서문로1가, 서문로2가, 서내동, 북내동, 북성로1가, 북성로2가, 대안동 인교동, 서야동, 서성로1가, 서성로2가, 동산동, 시장북로, 대신동, 달성동, 도원동 수창동, 화전동, 향촌동, 신암동, 신천동, 효목동, 만촌동, 범어동, 황청동, 지산동 범물동, 두산동, 상동, 중동, 수창동, 성당동, 내당동, 비산동, 평리동, 중리동 이현동, 상리동, 원대동, 노곡동, 조야동, 남산동, 대봉동, 봉덕동, 대명동, 칠성동1가 칠성동2가, 침산동, 산격동, 복현동, 검단동, 능성동, 진인동, 도학동, 백안동, 미곡동 용수동, 신무동, 미대동, 내동, 신용동, 중대동, 송정동, 덕곡동, 지묘동, 연경동 서변동, 동변동, 평광동, 봉무동, 불로동, 도동, 지저동, 입석동, 검사동, 방촌동 둔산동, 부동, 신평동, 파동, 용계동, 오동, 정대동, 냉천동 ,행정동, 상원동, 단산동 대일동, 주동, 옥빈동, 삼산동, 우록동, 파산동, 파오동, 고림동, 갈산동, 신당동 이곡동, 장동, 장기동, 용산동, 죽전동, 감삼동, 본리동, 상인동, 도원동, 진천동 유천동, 대천동, 월성동, 월암동, 송현동 2) 區制의 대구시 1963.1.1 대구시 구(區) 설치에 관한 법률 제1174호(1962.11.21공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결)로 출장소 제도를 폐지하고, 구제(5개구)를 실시하여 종전의 종로, 중부출장소 관할구역을 중구(中區)로, 동부출장소와 동촌출장소 관할구역을 동구(東區)로, 서․남․북부출장소 관할구역을 각각 서(西), 남(南), 북구(北區)로 승격시켰다. 또한 동일 날짜의 시군관할구역변경 및 면의 설치에 관한 법률 제1175호로 1958.1.1 편입되었던 성서, 월배 전역과 가창면의 파동(巴洞) 공산면의 동변(東邊), 서변(西邊), 장관동(壯觀洞) 등 3개 동과 동촌면의 전역(10개동) 등 14개 동을 제외한 47개동을 달성군에 환원시키고 대구시 동의 명칭과 구역에 관한 조례중 개정조례 제288호(1963.1.22공포)로 구별 관할구역을 조정하여 대구시는 5개구 101개 동이 되어 면적은 463.19㎢에서 181.72㎢, 가구는 125,240가구에서 117,455가구로, 인구는 693,127명에서 647,816명으로 줄어들게 되었다. ※ 1963년 대구시에서 분리된 행정구역(281.47㎢, 7,785가구, 45,311명) - 공산출장소 관할(92.86㎢, 15개동, 2,106가구, 11,997명) 능성동, 진인동, 도학동, 백안동, 미곡동, 용수동, 미대동, 신무동, 내동, 신용동 중대동, 송정동, 덕곡동, 지묘동, 연경동 - 가창출장소 관할(109.20㎢, 12개동, 2,292가구, 12,941명) 용계동, 오동, 정대동, 냉천동, 행정동, 상원동, 단산동, 대일동, 주동, 옥빈동 삼산동, 우록동 - 성서출장소 관할(46.34㎢, 12개동, 1,828가구, 10,928명) 파산동, 파호동, 고림동, 갈산동, 신당동, 이곡동, 장동, 장기동, 용산동, 죽전동 감천동, 본리동 - 월배출장소 관할(33.07㎢, 1,609가구, 9,445명) 상인동, 도원동, 진천동, 유천동, 월성동, 월암동, 송현동, 대천동 ※ 구의 명칭과 관할구역 - 중구(54개 동) 동인동1․2․3․4가, 삼덕동1가, 삼덕동2가, 삼덕동3가, 동산동, 교동 태평로1․2가, 용덕동, 상덕동 완전동, 동문동, 문화동, 공평동, 덕산동, 상서동 남성로, 수동, 계산동1가․2가, 장관동, 사일동, 남일동, 동일동, 동성로1․2․3가 전동, 종로1․2가, 북성로1가․2가, 서내동, 북내동, 대안동, 포정동, 서문로1․2가 서야동, 인교동, 동산동, 시장북로, 대신동, 달성동, 수창동, 도원동, 화전동 향촌동, 서성로1․2가 - 동구(24개 동) 신암동, 신천동, 효목동, 만촌동, 범어동, 황청동, 지산동, 범물동, 두산동, 상동 중동, 수성동, 평광동, 봉무동, 불로동, 도동, 지저동, 입석동, 검사동, 방촌동 둔산동, 부동, 신평동, 파동 - 서구(10개동) 성당동, 내당동, 비산동. 평리동, 중리동, 이현동, 상리동, 원대동, 노곡동, 조야동 - 남구(4개동) 남산동, 대봉동, 봉덕동, 대명동 - 북구(9개동) 칠성동1․2가, 태평로3가, 침산동, 산격동, 복현동, 검단동, 서변동, 동변동 1963.1.16 대구시 조례 제279호로 구(區)직할출장소인 동구 동촌출장소를 설치하여 평광동, 봉무동, 불로동, 도동, 지저동, 입석동, 검사동, 방촌동, 둔산동, 부동, 신평동을 관할하게 하였으며 1963.12.1 대구시의 동의 명칭과 구역에 관한 조례중 개정조례 제333호(1963. 9. 9 공포)로 5개동을 신설하고 일부 경계를 조정함으로써 대구시의 동은 101개동에서 106개 동으로 늘어났고 1964. 7. 1 대구시 구의 관할구역변경에 관한 법률 제1641호(1964. 6. 1 공포)로 북구 태평로(太平路) 3가를 중구 태평로 3가로 관할구역을 변경하였다. 1966.1.1 대구시 동의 명칭과 구역에 관한 조례 중 개정조례 제416호(1965.11.10공포)로 5개동을 신설하고 일부 동 경계를 조정하여 대구시의 동은 111개동으로 늘어났으며 1968.7.20 대구시 동의 명칭과 구역에 관한 조례 중 개정조례안 제501호(1968.6. 5공포)와 1969.6.1 대구시동의 명칭과 구역에 관한 조례 중 개정조례안 제557호(1969. 5.27공포)로 법정동(法定洞)간 경계조정을 통해 행정구역을 정비하고 1975.4.1 대구시 동의 명칭과 구역에 관한 조례 중 개정조례안 제873호(1975.3.7공포)로 토지구획정리사업 시행으로 불일치한 동의 관할 구역 일부를 조정하고 1975.10.1 구의 증설 및 관할구역변경에 관한 규정 대통령령 제7819호(1975.9.23공포)로 구간 경계를 조정하고 대구시 동의 명칭과 구역에 관한 조례 중 개정조례 제918호(1975.10.1공포)로 동간 구역을 조정하였다. 1976.8.1 대구시 조례 제968호(1976.8.1공포)로 동구 동촌출장소를 시 직할(直轄) 출장소로 승격시키고 1977.4.1 대구시 동의 명칭과 구역에 관한 조례 중 개정조례 제1017호(1977.3.23공포)로 법정동 경계를 조정하였으며, 1977.12.1 대구시 동의 명칭과 구역에 관한 조례 중 개정조례 제1086호(1977.11.15공포)로 동구 황청동(黃靑洞)을 황금동(黃金洞)으로 개칭하였고, 1979.5.1 대구시 동의 명칭과 구역에 관한 조례 중 개정조례 제1180호(1979.4.30공포)로 동 경계 일부를 조정하고, 1980.4.1 구 설치와 구의 관할구역변경에 관한 법률 제9630호(1979.9.26공포)로 수성구(壽城區)를 신설하고, 남구 관할구역 일부를 중구로 편입하였다. 이때 동구 관할 구역 중 범어동(泛魚洞), 만촌동(晩村洞), 수성동(壽城洞) 1․2․3․4가, 황금동(黃金洞), 중동(中洞), 상동(上洞), 파동(巴洞), 두산동(杜山洞), 지산동(池山洞), 범물동(凡勿洞) 등 13개 동으로 수성구를 신설하고, 남구 남산동 전역과 대봉동 일부, 대명동 일부를 중구로 편입하였다. 한편, 대구시 동의 명칭과 구역에 관한 조례중 개정조례 제1243호(1980.3.18공포)로 수성4가의 신설과 함께 동간, 구간의 경계를 조정하였다. 3) 대구직할시(大邱直轄市) 1981.7.1 대구직할시 및 인천직할시에 관한 법률 제3424호(1981.4.13공포)로 대구시가 대구직할시로 승격되면서 경산군(慶山郡) 안심면(安心面) 전역과 달성군 공산면 전역을 동구로, 달성군 성서읍(城西邑) 전역을 서구로, 달성군 월배읍(月背邑) 전역을 남구로, 칠곡군 칠곡읍(漆谷邑) 전역을 북구로, 경산군 고산면(孤山面) 전역을 수성구로 편입하였다. 1981.7.1 대구직할시 동의 명칭과 구역에 관한 조례 중 개정조례 제1357호(1981.6.29공포)로 편입된 4읍 2면을 관할하기 위하여 안심읍 전역은 동구 안심출장소, 공산면 전역은 동구 공산출장소, 성서읍 전역은 서구 성서출장소, 월배읍 전역은 남구 월배출장소, 칠곡읍 전역은 북구 칠곡출장소, 고산면 전역은 수성구 고산출장소 등 6개 출장소를 설치하였으나 1983.3.15 대구시 조례 제1651호(1983.3.11공포)로 공산, 성서, 고산출장소를 폐지하고 안심, 월배, 칠곡출장소 기구 일부를 조정하여 6개 출장소를 3개 출장소로 축소하였다. 1987.1.1 시․군․구․읍의 관할구역변경 및 면의 명칭에 관한 규정 대통령령 제12007호(1986.12.23공포)로 구간 경계를 일부 조정하고 대구직할시 동의 명칭과 구역에 관한 조례 제20527호(1986.12.31공포)로 일부 법정동 경계를 조정하고 서구 본리동(本里洞)의 일부 편입지역으로 남구 본동을 신설하였다. 1988.1.1 서울특별시 송파구 등 13개 구 설치와 관할구역변경에 관한 규정 대통령령 제12367호(1987.12.31 공포)로 달서구를 신설하여 서구지역 중 성당동, 장동, 장기동, 용산동, 감삼동, 죽전동, 이곡동, 파산동, 고림동, 파오동, 갈산동, 신당동, 본리동, 내당동 일부와 남구지역 중 월성동, 대천동, 월암동, 상인동, 도원동, 진천동, 대곡동, 유천동, 송현동, 본동을 신설된 달서구에 편입함과 동시에 대구직할시 동의 명칭과 구역에 관한 조례 중 개정조례 제2148호(1987.12.31공포)로 달서구에 두류동을 신설하였다. 1992.4.10 대구직할시 수성구 동의 명칭과 관할구역에 관한 조례 중 개정조례 제223호(1992.4.10 공포)로 법정동간 경계를 일부 조정하고 1992.7.20 대구직할시 달서구 동의 명칭과 관할구역에 관한 조례 중 개정조례 제235호(1992.7.18공포)와 1993.5.27 대구직할시 서구 동의 명칭과 관할구역변경에 관한 조례 중 개정조례 제262호(1993.5.27공포), 1993.7.15 대구직할시 달서구 동의 명칭과 관할구역변경에 관한 조례 중 개정조례 제258호(1993.7.15공포), 대구직할시 중구 동의 명칭과 관할구역변경에 관한 조례 중 개정조례 제242호(1993.7.15공포), 1994.3.25 대구직할시 북구 동의 명칭과 관할구역변경에 관한 조례 중 개정조례 제269호(1994.3.25공포), 1994.5.10 대구직할시 수성구 동의 명칭과 관할구역변경에 관한 조례 중 개정조례 제291호(1994. 5.10 공포), 1994. 8.1 대구직할시 달서구 동의 명칭과 관할구역에 관한 조례 중 개정조례 제308호(1994. 8.2공포)로 법정동간 경계를 일부 조정하였다. 4) 대구광역시(大邱廣域市) 1995.1.1 지방자치법 중 개정법률 제4789호(1994.12.20공포)로 대구직할시를 대구광역시로 명칭변경 하였으며 1995. 3. 1 서울특별시 광진구 등 9개 자치구 설치 및 특별시, 광역시, 도간 관할구역 변경 등에 관한 법률 제4802호(1994. 2.22공포)로 달성군 전역을 대구광역시에 편입하여 대구광역시는 7개구, 1개군, 2개출장소, 1개읍, 8개면, 150개동, 1개면 출장소, 885.57㎢가 되었으며 법정 동수는 195개에서 290개로 늘어나게 되었다. 1995.4.20 시․군․자치구의 관할구역규정에 관한 규정 대통령령 제14629호(1995.4.20공포), 대구광역시 서구 동의 명칭과 관할구역에 관한 조례 중 개정조례 제318호(1995. 4.27공포), 대구광역시 달서구 동의명칭과 관할구역에 관한 조례 중 개정조례 제337호(1995.4.29공포)로 구․군간 관할구역을 일부 조정하였다. 1996.1.1 수성구 조례 제339호(1995.12.29 공포)와 달서구 조례 제368호(1995.12.30 공포)로 행정동을 일부 분동하고 1996.1.20 북구 조례 제338호(1996.1.20공포), 1996. 2.1 달서구 조례 제372호(1996.1.6공포)로 동간 경계를 조정하고 달서구 조례 제373호(1996.1.6공포)로 10개 행정동의 명칭을 변경하였다. 1997.1.1 서구조례 제391호(1996.11.30공포)로 과소 행정 운영동을 통합하고 북구 조례 제375호(1996. 12. 30 공포)로 칠곡출장소를 강북(江北)출장소로 명칭 변경하였다. 1997. 2. 1 달서구 조례 제402호(1997. 1.11 공포)에 따른 동 경계 일부조정, 1997. 3.15 달서구 조례 제408호(1997.3.14 공포)에 따른 분동, 1997.10.10 북구 조례 제392호(1997.10.10공포)로 동 경계를 일부 조정하였고, 1997.11.1 내무부 고시 제1997-20호 및 달성군 조례 제1612호(1997.10.20공포)로 다사면을 다사읍(多斯邑)으로 승격하여 달성군은 3개읍 6개면 151개 행정동이 되었다. 1997.11.11 달서구 조례 제419호(1997.11.11 공포)로 동 경계를 일부 조정하고 1998. 4. 9 중구 조례 제417호(1998. 4. 9 공포), 1998. 7. 1 남구 조례413호(1998. 4.10 공포), 1998. 7.30 동구 조례 제397호(1998. 7. 30공포), 1998. 8.31 중구 조례 제432호(1998. 8.31 공포)로 과소 행정 운영동을 통합하였다. 1998.9.21 동구 조례 제403호(1998.9.21공포)로 안심출장소를 폐지하고 1998.9.25 서구 조례 제440호(1998.9.25공포), 1998.10.12 북구 조례 제426호(1998.10.12공포)로 과소 행정 운영동을 통합하고 북구 조례 제427호(1998.10.12공포)로 강북출장소를 폐지하고 북구 조례 제428호(1998.10.12공포)로 2개 행정동의 명칭을 변경하였다. 1998.12.31 달서구 조례 제455호(1998.12.31공포)로 동경계 일부를 조정하고 1999. 5.24 북구 조례 제451호(1999.5.24공포)로 행정동을 일부 통합하고 1999.6.30 북구 조례 제455호로 법정동의 경계를 일부 조정하였다. 1999.7.13 중구 조례 제459호(1999.7.13공포)로 중구청(中區廳) 소재지를 중구 동인동 2가 78번지에서 동인동 2가 177의 4번지로 이전하였으며, 2000.1.10 서구 조례 제494호(2000.1.10공포)로 법정동의 경계를 일부 조정하고 서구 조례 제495호(2000.1.10공포)로는 행정동 경계 일부를 조정하였다. 2001.2.26 북구 조례 제551호(2001.4.20공포)로 칠곡3동사무소 소재지를 변경하고 2001.3.19 달성군 조례 제1757호(2001.3.19공포)로 달성군 다사읍 서재(鋤齋)출장소를 신설하였다. 2001.6.11 달서구 조례 제540호(2001.6.11공포)로 법정동 경계를 일부 조정하였으며, 2002.1.1 수성구 조례 제512호(2001.12.31공포)로 내환동(內串洞)을 대흥동(大興洞)으로 명칭변경하고, 2002.1.1 남구 조례 제556호(2001.12.10공포)로 남구 대명 3․7동을 대명3동으로 명칭 변경하였고 2002.11.18 북구 조례 제598호(2002.12.30공포)로 침산3동사무소 소재지를 605-4번지에서 521-5번지로 변경하였다. 2003.3.10 북구 조례 제610호(2003.3.10공포)로 행정동 분동 및 명칭 개정을 하였고 2003.3.31 달서구 조례 제584호(2003.1.30공포)로 행정동을 분동하고 2003.4.1 남구 조례 제595호(2003.2.28공포)로 대명2․8동을 대명2동으로 명칭 개정하였으며, 최근에는 2005.4.30 달서구 동의 명칭과 구역에 관한 조례 개정을 통해 파산동(巴山洞)을 호산동(虎山洞)으로 개칭하였다. ■ 참고문헌 『삼국사기』 권 8 『삼국사기』 권 34, 지리지 상주조 『신라본기』 권 8 『고려사』 지리지 『대구부사』, 경성행정학회, 1943. 이수건. 「조선초기 군현제 정비에 대하여」, 『영남사학 1호』, 1971. 『통감부시대의 재정』, 우방협회, 1974 『대구의 향기』, 대구직할시, 1982 김한식, 「대구지명연혁고」, 『시정연구 제10호』, 1990. 『대구시사』, 대구시사편찬위원회, 1995. 하현강, 「고려지방제도의 연구」, 『한국연구총서 제32집』, 한국연구원, 1977. 『행정구역변천사』, 대구광역시, 2003. 『조선왕조실록』, 권 208, 선조실록편 홍순성․정철주, 『대구의 지명』, 계명대학교, 2004.
http://cafe.daum.net/deaguculture/aa1M/4?docid=1J5z6|aa1M|4|20100702122222&q=%BF%D5% B0%C7%B0%FA%20%B4%EB%B1%B8%C1%F6%B8%ED&srchid=CCB1J5z6|aa1M|4|2010070212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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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남지리답사 원문보기 글쓴이: 松河 李翰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