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 도료 '옻칠'
옻칠은 '옻자'와 '칠자'가 결합되어 이루어진 낱말로서, 옻은 옻나무 줄기나 가지에서 뽑은 수액이나 독기를 뜻하는 순수 한국어이다. 칠(漆)은 『설문해자주(說文解字注)』 칠자조(漆字條)에 의하면, 칠(漆)자는 칠(桼)자의 의미로 옻칠나무 자체를 뜻하여 그 형상이 칠(옷)나무가 물방울을 흘리는 모습이고, 칠(漆)자는 칠(옷)액의 명칭으로 칠나무에서 흘러내린 칠(옷)즙을 일컫는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엄격한 의미에서 칠(漆)자와 칠(桼)은 서로 다르지만, 예나 지금이나 칠(桼)자와 칠(漆)자는 같은 의미로 사용하였다. 그런 까닭에 칠(漆)자는 옻칠의 수액 뿐 아니라 옻나무 자체까지도 의미한다.
옻나무(Rhus verniciflua stok)는 함경북도 일부 지방을 제외한 전국 어디에서나 잘 자라기 때문에 우리 겨레는 오래 전부터 옻나무에서 채취한 천연 도료인 옻칠을 사용하여 왔다.
우리나라에서 옻칠이 언제 유입되어 이용되었는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으나, 한반도에서 발견되는 칠의 흔적으로 보아 청동기 시대 말기인 B.C 3세기경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는 충남 아산 남성리 석관묘에서 청동기와 함께 발견된 칠박편에 근거를 두고 있는데, 이 유적이 청동기 말기에 속하는 만큼 옻칠의 유입은 그보다 수세기 앞서는 시대로 추정할 수도 있다.
그 밖에도 황해도 서흥 천곡리 석관묘에서 발견된 칠편, 평양 정백리 고분에서 발견된 흑칠한 칼집, 평양 석암리 왕근묘에서 발견된 흑칠 칼자루 등에서 옻칠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1988년 경남 의창군 다호리 유적에서 발견된 흑칠로만 된 원형칠두와 방형칠두를 비롯한 20여 점의 칠기가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이렇게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는 옻칠의 제작 과정을 살펴보자.
먼저 목기나 나전 칠기 등의 용기에 생칠을 묽고 얇게 발라준 후 칠장에서 건조시킨다. 이어 표면을 갈아 낸 후 초칠과 중칠을 하게 된다. 초칠과 중칠은 자개가 붙은 면이 바탕 면보다 올라오게 할 것인지(凸형), 편평하게 할 것인지, 바탕 면보다 들어가게 할 것인지(凹형)에 따라 방법을 달리한다.
凸형은 선정한 옻칠을 희석제와 적당한 농도로 배합하여 초칠하고, 칠장에 건조 후 숯이나 사포로 면을 갈아준다.
평면형은 선정된 옻칠과 희석제에 적당한 농도로 배합하여 자개면과 평면이 될 때까지 10회 이상 발라 준다. 이때 매회 칠장에서 건조 후 갈아준다.
마지막으로 凹형은 자개면과 평면이 될 때까지 10회 이상 바르고, 평면이 된 뒤에 중칠하여 칠장에서 건조시키고 숯이나 사포로 면을 갈아준다.
이후 완성시키고자 하는 선정된 양질의 옻칠을 희석제와 적당한 농도로 배합하여 칠지로 티 하나 없이 걸러 내서 얇고 고르게 칠하여 칠장에 건조한다. 이렇게 상칠이 다 마르게 되면 상칠면을 박달나무나 소나무 등으로 만든 숯으로 물을 부어 가며 곱게 갈아준다. 그 후 옻칠면에 드러나지 않은 자개면을 칠칼을 이용하여 긁어낸다.
이러한 작업이 끝나면 이제 마무리 과정에 들어가게 된다. 토분과 콩기름을 배합하여 머리카락 뭉치와 솜에 묻혀 오랫동안 문질러 광을 내준다. 이 과정은 표면 광내기뿐만 아니라 미세한 흠을 제거해 주는 역할도 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두 번 광내기를 하고, 생칠을 묽게 하여 솜에 묻혀 전면에 문지른 후 고운 마른 헝겊으로 깨끗하게 문질러 준다. 그런 다음 기름칠을 없애기 위해 밀가루나 녹각분을 이용하여 문질러 준다. 밀가루를 헝겊을 이용하여 닦아 내면 드디어 완성이 되는 것이다.
옻 채취 방법
① 긁기낫으로 옻나무 껍질에 수평으로 흠을 낸다.
옻 채취 방법
② 흠 낸 부분의 옻액구를 긁기낫 뒷부분으로 자른다.
옻 채취 방법
③ 주걱칼로 흘러나온 옻액을 받아낸다.
옻 채취 방법
④ 주걱칼로 받아낸 옻액을 옻통에 담는다.
옻 채취 방법
⑤ 옻나무 껍질을 정리한다.
옻 채취 방법
⑥ 옻 채취 후 벌채한 옻나무.
옻칠은 안정된 특성을 가진 화합물로 존재할 뿐 아니라 외부 습기를 흡수하거나 방출하여 항상 일정한 수분을 머금어 유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무로 만든 생활 용구나 금속기류 등에 옻칠을 하면 표면에 견고한 막을 형성할 뿐 아니라 광택이 나고 오랫동안 사용하여도 변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옻칠은 내구성이 뛰어난 천연 도료로 인정받게 되었다.
옻칠의 주성분은 우루시올[칠산(漆酸), 옻산]과 수분이고, 그밖에 고무질과 함질소물질 등을 함유하고 있다.
우루시올은 옻칠의 주성분이기 때문에 옻칠 도막을 형성하는 주성분이 된다. 즉, 우루시올의 화학적 구조에 따라 옻칠의 품질이 결정되는 것이다. 양질의 우루시올은 좀 더 견고한 결합과 강한 접착력, 그리고 건조 시간의 단축을 이루면서 광택을 증가시킨다. 특히 광택의 증가는 결합된 조직이 치밀하며, 중국산은 이에 비해 질이 떨어진다. 우루시올은 트리엔(triene) 성분과 모노엔(monoene) 성분이 약 80%를 차지하고, 카테콜(catechol) 성분은 약 70%를 차지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고무질은 아세톤에 녹지 않고 남아 있는 부분을 물에 녹여 수분을 증발시키면서 엽록색이나 담황색으로 남게 된다. 고무질은 옻칠을 할 때 탄력을 유지하는 주요 기능을 갖고 있으며, 칠이 고르게 퍼져 도막면을 평평하게 종성시키는 성분이다.
옻칠의 성분 중 아세톤과 물에도 녹지 않는 갈색 분말이 소량 존재한다. 이 분말은 질소를 함유하는 여러 종류의 화합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를 통틀어 함질소물질이라 한다. 함질소물질은 옻칠 속에 미세하게 구성되어 있으며, 칠산, 고무질, 수분 등이 분리되지 않고 골고루 분산되도록 한다. 이 물질은 칠의 퍼짐을 고르게 하는 기능을 갖고 있어 매우 중요한 성분이다.
이런 옻칠은 도료 및 약용으로 이전부터 한국, 중국, 일본 등지에서 이용되어 왔다. 옻칠은 다른 도료와는 달리 특이한 효소 반응에 3차원 구조의 고분자를 형성하고 있다. 또한 자연 상태에서 존재하는 여러 도료 중에서 가장 안정된 특성을 가진 화합물이다.
옻칠은 각종 산과 알칼리에도 부식되지 않으며, 내염성, 내열성 및 방수, 방충, 방부, 절연의 효과가 뛰어난 내구성 물질이다. 따라서 예로부터 가구, 칠기, 공예품 등에 널리 사용되어 왔으며, 그 도막의 우수성이 높이 평가되어 앞으로 해저 케이블선, 선박, 비행기, 각종 기기 등 산업용 도료로 이용 범위를 넓힐 수 있다. 또한 연필꽂이, 필통, 명함 상자와 같은 사무 용품에도 옻칠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옻칠이라고 하면 막연히 가구나 그릇에만 쓸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 생각과 달리 우리의 일상생활 어디에서나 충분히 옻칠을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현대 산업에 있어서 도료는 공해와 같은 여러 가지 가혹한 환경에서 내부 재질의 보호를 위하여 꼭 필요한 요소이다. 요즈음 페인트, 에나멜, 니스 등의 화학 도료가 많이 사용되는 것은 다양한 색상을 만들기 쉽고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화학 도료를 생산해 내는 데는 석유 등 많은 에너지 자원이 소모되며, 그 과정에서 많은 공해 물질이 발생된다. 또한 화학 도료들은 금속과의 친화력이 거의 없어 금속과 도료의 계면(서로 맞닿아 있는 두 물질의 경계면)에 산화가 일어나는 경우 박락 현상(돌이나 쇠붙이에 새긴 그림이나 글씨가 오래 묵어 긁히고 깎이어서 떨어지는 현상)이 잘 생긴다. 따라서 어떠한 가혹한 조건에서도 견딜 수 있는 새로운 도료의 개발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겨레가 오래 전부터 도료로 사용한 옻칠은 전혀 공해 물질을 만들지 않는다. 옻칠을 칠하는데 용제로 사용되는 것은 페인트에 사용되는 신나와는 전혀 다른 천연 식물성 기름을 사용하기 때문에 칠 조건도 훨씬 양호하다. 옻칠은 에너지적으로 매우 안정한 상태로 존재하고 외부 습도의 변화에 따라 흡수 또는 방출을 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또한 옻도막과 금속과의 부착력이 우수하여 환경 조건의 변화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이 분석 결과 밝혀졌다. 따라서 이 사실을 근거로 적합한 도포 조건을 찾는다면 새로운 무공해 천연 도료로서 개발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