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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 원문보기 글쓴이: 박물관
[일상탈출] 가덕도 등대 '1박 2일' |
100살 등대가 내어 준 넉넉하고 포근한 하룻밤 |
부산 가덕도 등대의 체험 숙소. 간밤을 뜬눈으로 지새운 등대의 노곤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바다가 시작되는 땅끝에서 맞는 아침이 마냥 즐겁기만 하다.
부산 가덕도 등대가 이달 초 100주년 기념행사를 가졌다. 지난해 12월 25일이 만 100살 되는 날이었지만 기념관 개관이 늦어지면서 생일 잔치까지 미뤘던 것. 어쨌든 지난 100년 동안 묵묵히 뱃사람들의 길잡이 노릇을 해온 셈이다. 그러나 정작 등대 자신의 100년은 외로웠다. 등대의 일이란 게 땅길의 끝에서 바닷길을 비추는 것. 말 그대로 외진 땅끝에 홀로 서있기 마련이다. 가덕도 등대도 마찬가지. 어쩌면 자신의 외로움을 태워 어둠을 밝힌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등대는 성인(聖人)을 닮았다.
100살 된 가덕도 등대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혼자 묵기엔 왠지 허전했다. 성인(聖人)과는 전혀 다르다. 그래서 지인의 가족을 함께 불렀다. 지인은 "아이들에게 등대의 고마움을 알려줄 좋은 기회"라며 흔쾌히 승낙했지만, 수화기 너머 전해 오는 들뜬 목소리는 자신이 더 흥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보태지는 질문. "술은 얼마나 있으면 될까?"
1 등대 숙소에서 바라본 가덕도 앞바다.
가덕도 등대에 여장을 푼 시각은 오후 5시30분께. 직원들 숙소 중 일부를 체험객들에게 내어준 공간이다. 2층의 넓은 방은 여느 펜션 못지 않다. 특히 전망은 어느 펜션도 따라올 수 없다. 땅길의 끝이 조금 외롭긴 해도 경치 하난 최고다. 두 방향으로 바다가 보인다. 맑은 날이면 일본 대마도까지 보인다는데, 날씨가 심술을 부린다. 그래도 거제도는 손에 잡힐 듯하다. 현재 공사 중인 거가대교도 보인다.
어느새 어두워진 하늘. 오후 6시30분께, 등탑 꼭대기에서 불빛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한 바퀴를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48초. 불빛이 모두 네 방향으로 뻗어 나가니 결국 바다에서는 12초마다 한 번씩 등대의 불빛을 볼 수 있는 셈이다. 날이 어두워지면 자동으로 불이 들어온다.
등대의 불빛은 양면적이다. 때론 고향집의 향수를, 때론 낯선 동경을 자아낸다.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 후 10년 만에 돌아온 고향 이타카 앞 바다에서 등대 불빛을 발견했다고 상상해 보자. 그 불빛은 이국땅 낯선 항구의 멋진 술집을 고대하는 선원의 눈에 들어온 등대 불빛과는 전혀 다른 것일 테다.
그러나 공통점도 있다. 그것은 모두 '이제 힘든 여정은 끝났으니 편히 쉬어도 된다'는 의미다. 그래서일까? 아무리 처음 가 본 등대라 해도 우리는 등대에서 포근함을 느낀다. 가덕도 등대의 하룻밤도 그랬다. 색다르면서도 편안한 밤이었다.
다음날 아침. 아침밥을 지어먹고 등대를 견학한다. 등대에서 일하는 직원이 친절한 설명을 덧붙여준다. 우리는 흔히 등대지기라고 부른다. 정식 명칭은 항로표지원으로, 지방해양항만청 소속 공무원이다.
가덕도에는 등대가 둘 있다. 현재 불을 비추는 등탑 바로 옆에 또 하나의 작은 등대가 있다. 옛 가덕도 등대다. 100살이 된 것 또한 이것이다. 가덕도의 전략적 중요성을 인식했던 일본 제국주의 세력은 1909년 이곳에 등대를 세웠다. 그리고 그 다음해, 한일병합이 이뤄졌다. 이후 여러 역사의 질곡 속에서도 등대의 불빛은 꺼지지 않았다.
옛 등대는 작지만 단아하다. 부산시 유형문화재 50호. 사각형 건물에 작은 팔각형 등탑을 이고 있는 모습이 근대 서양건축 양식이란다.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한 사람이 겨우 올라갈 수 있는 층계를 오르면 등탑. 층계 너머 여닫이문을 열면 작은 부엌과 온실방이 있고, 아궁이에는 가마솥이 놓여있다. 서양식 외형 속 한국의 가마솥이 반갑다.
2 가덕도 등대 100주년 기념관 내부.
100주년을 맞아 기념관도 문을 열었다. 기념관은 생활문화, 등대 조명인 등명기(燈明機), 어로 기구, 가덕도 민속품 등 자료 250여점을 보관하고 있다.
기념관까지 둘러본 후 여장을 챙긴다. 애써 가덕도까지 온 김에 등대 밖 섬 구경도 하고 싶어서다. 사실 요즘 가덕도는 섬 전체가 공사 중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신항 공사, 거가대교 건설 등으로 분주하다. 그러다보니 어수선하다. 포클레인으로 파헤쳐진 도로와 여기저기 들어선 부동산중개업소들이 조만간 변할 가덕도의 모습을 짐작케 한다.
선창으로 향하는 길에 위태롭게 서있는 300년 된 팽나무 두 그루도 조만간 가덕도에선 사라질 풍경이다. 율리마을을 지키던 이 오랜 나무들은 신항 공사로 더 이상 이곳에 살 수 없게 됐다. 생애 처음으로 해운대로 이사를 하게 됐다고. 늙은 나무들의 힘든 이사가 무사히 잘 이뤄졌으면 좋겠다.
3 천가초등학교 안에 서있는 척화비.
4 곧 다른 곳으로 옮겨 갈 팽나무.
척화, '외국 세력과의 화친을 거부한다'는 의미로 당시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이 드러난다. (당시 그것이 옳았는지의 판단은 제쳐두고라도)쇄국의 상징이었던 척화비가 세워진 곳에, 이제 세계 교류의 관문인 공항을 유치하려는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세월은 가치마저 변화시킨다.
아무리 가덕도 전체가 공사장으로 변했다고 하더라도 최근 들어 이 섬을 찾는 사람들은 더욱 늘고 있다. 지난해 뭍과 다리가 연결된 이후 많은 부산 시민들이 연대봉(459.4m)을 오르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등산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등대에서 하룻밤을 묵은 후 일찍 서둘러 연대봉까지 올라봐도 좋겠다.
1박 후 오후 늦게까지 가덕도 근처에서 놀 요량이면 점심식사가 문제. 널린 게 자연산 횟집이다. 어느 집에 들어가도 횟감의 싱싱함은 보장된다. 간단히 끼니를 때우고 싶을 땐 가덕도를 양분하는 중국집 두 곳 중 하나인 '장춘반점'(051-972-2250)의 자장면을 맛보자. 자장이 구수하다. 인근 뭍사람들에게까지도 유명할 정도. 낚시꾼들이 종종 배달을 시킨다고.
가덕도를 빠져나오면 인근에 부산경남경마공원이 있다.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올 때쯤엔 등대 1박 후 이곳에 들러보는 것도 강추. 2만여평의 유채꽃밭에선 조만간 노란 꽃망울들이 활짝 터질 기세다.
글·사진=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