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회 교리서와 함께 “교리 문해력” 높이기 (23)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 – 강생(육화)
전능하신 천주 성부께 대한 신앙 고백에 이어 우리는 하느님의 외아들이며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신앙을 고백합니다. 예수님께 대한 신앙 고백들 가운데 먼저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사람이 되신, ‘강생’에 대하여 살펴보려 합니다.
사도신경은 예수님의 이름에 대한 언급 이후 곧바로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셨다는 간략한 고백이 이어지지만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은 다음과 같은 표현이 먼저 나오고 그 뒤에 성령으로 인한 잉태가 이어집니다. “성자께서는 저희 인간을 위하여, 저희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오셨음을 믿나이다. 또한 성령으로 인하여….” 하느님의 외아들이라는 표현과 더불어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임을 다시 한번 강조함과 동시에 그 의미를 밝히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사람이 되신 이 사건, 요한 복음 사가의 표현에 의하면 ‘말씀’이 사람이 되신 것을 우리는 ‘강생’이라고 부릅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461항). 라틴어로 이 말은 incarnatio라고 하는데, 이를 글자 그대로의 의미로 보면 ‘육신이 되다’라는 의미이기에 ‘육화’라는 말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교회 용어 가운데 하나의 단어를 우리말로는 서로 다른 두 단어 이상으로 번역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강생과 육화가 바로 그렇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우리와 함께 사신 것을 강조하느냐, 인간의 영혼만이 아닌 육신까지 취하시어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다는 사실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두 용어 모두 사용합니다만 결론적으로 동일한 의미를 가진 말로 알아두시면 되겠습니다. 참고로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서는 ‘강생’을 사용합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것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의미들을 전해 줍니다.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에서도 분명하게 언급한 대로 첫 번째 중요한 의미는 바로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그렇게 되셨다는 점입니다. 죄로 인해 타락한 인간을 용서하고 하느님과 다시 화해하여 구원될 수 있게 하기 위해 성부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할 속죄 제물로 당신 아드님을 우리에게 보내 주셨다는 것입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457항). 하느님이신 분께서 다른 모든 인간을 대신해 그 죄를 짊어지는 제물이 되시기 위해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 이 놀라운 사건을 통해 우리는 또한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당신의 아드님마저도 인간을 위해 기꺼이 보내주시는 사랑, 인간을 위해 기꺼이 하느님으로서의 모든 것을 잠시 내려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신 사랑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신 이 놀라운 사건은 또한 우리에게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그 모범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성부의 뜻에 따라 당신 자신을 온전히 내려놓고 인간이 되셨으며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명하신 예수님의 삶을 교회는 ‘자기비움’의 삶으로 바라봅니다. 하느님과 같아지려 했던 아담과 달리 온전히 자신을 비우며 하느님의 뜻에 순종했던 이 모습은 우리에게 거룩한 삶의 모범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참된 행복의 모범이시며 참된 사랑의 모범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참된 사랑의 길을 따라 걷는 사람, 자기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는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459항).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이 놀라운 신비를 통해 우리 모든 인간은 마침내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2베드 1,4) 됩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460항). 참 하느님이시며 동시에 참 사람이신 예수님을 통해 이제 우리들도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넘을 수 없는 간격을 뛰어넘어 하느님께서 이루시는 사랑의 일치 안에 함께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마지막 내용은 다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다루며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QR코드로 가톨릭 교회 교리서 이북을 보실 수 있습니다.
교리서 200~203쪽, 456~463항을 함께 읽어보시면 좋습니다.
[2024년 9월 8일(나해) 연중 제23주일 춘천주보 4면, 안효철 디오니시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