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는 배터리에 저장된 전기에너지가 모터를 구동해 차를 움직인다. 반면 내연기관차는 휘발유나 디젤, LPG 등의 화석연료를 동력원으로 한다. 전기차는 가속페달을 밟는 순간 모터가 돌아가므로 초반 가속이 시원하다. 하지만 내연기관차처럼 화끈한 배기음을 내뿜진 못한다. 그래서 가상으로 배기음을 만들기도 하지만 내연기관차가 주는 뿌듯한 사운드를 따라올 순 없다. 가짜로 만든 새소리가 실제 새소리를 따라올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문득 궁금했다. 출력이 같다면 내연기관차가 나을까? 전기차가 나을까? X7 M50d와 I 페이스의 이상한 비교시승이 성사된 배경이다.
둘은 모두 최고출력이 400마력으로 같다. X7 M50d는 나란히 붙은 여섯 개의 실린더에 네 개의 터보차저가 달려 최대토크 77.5kg·m, 최고출력 400마력을 낸다. I 페이스는 바닥에 90kWh 리튬이온 배터리를 촘촘히 깔고 앞뒤 액슬에 전기모터를 달았는데, 두 개의 모터가 각각 35.5kg·m의 최대토크를 낸다. 최고출력을 마력으로 환산하면 400마력이다. 시승차로 온 X7 M50d는 프로펠러 샤프트로 앞뒤 바퀴에 동력을 전달하는 뒷바퀴굴림 기반 네바퀴굴림 시스템을 얹었다. I 페이스는 두 개의 모터가 각각 앞뒤 바퀴를 구동하는 네바퀴굴림 시스템을 얹었다. 두 차의 0→시속 100km 가속 시간은 X7이 5.4초, I 페이스가 4.8초다.
둘의 제원상 스펙은 꽤 비슷하다. 하지만 실제로 운전석에 앉아 운전대를 돌려보면 주행감각이 꽤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X7은 럭셔리 7인승 SUV를 지향한다. 그래서 모든 것을 ‘럭셔리’에 집중했다. 럭셔리한 주행감각과 승차감을 위해 서스펜션을 나긋나긋하게 세팅하고, 조향감각을 매끄럽게 다듬었다. 디젤 모델이지만 엔진 소리가 들이치지 않게 꼭꼭 단속했다. 그래서 실제로 달려보면 최고출력 400마력이 실감이 되질 않는다. 게다가 서스펜션이 너무 나긋한 탓에 커다란 SUV가 출렁출렁 움직인다. SUV 특성상 무게중심이 높아 코너를 돌아나갈 땐 출렁이는 느낌이 상당하다. 주행 모드를 스포츠와 컴포트, 에코 프로, 어댑티브의 네 가지로 바꿀 수 있지만 스포츠 인디비주얼에서 댐핑과 스티어링을 모두 스포츠로 하고, 엔진과 변속기를 스포츠 플러스로 바꿔도 정말 스포티한 느낌은 받을 수 없다. 그저 조금 엔진 소리가 거칠어지고 살짝 서스펜션이 단단해질 뿐이다. M50d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다.
반면 I 페이스는 시트부터 평범한 SUV임을 거부한다. 앞자리에 머리부터 엉덩이까지 이어진 스포츠 시트를 달았다. 달릴 줄 아는 SUV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서스펜션과 운전대를 단단하게 세팅했다. 가속페달을 힘껏 밟으면 ‘이이이잉’ 하는 전기모터 소리가 작게 실내로 들이치면서 속도계 숫자가 빠르게 올라간다. 바람 소리도 적당히 들이쳐 달리는 기분이 화끈하다. 특히 코너를 돌아나가는 폼이 일품이다. 배터리를 바닥에 깔아 무게중심이 낮은 데다 뒤에 달린 인티그럴 링크 서스펜션이 양쪽 뒷바퀴를 노면에 착 붙이는 덕에 매끈하게 코너를 돌아나간다.
배터리를 절약하기 위해 에너지 회생제동 시스템을 갖췄는데 위쪽 디스플레이에 있는 ‘내 EV’에서 ‘높음’을 고르면 에너지를 적극적으로 회수하기 위해 제동장치가 깊게 개입하고, ‘낮음’을 고르면 일반적인 내연기관차와 비슷하게 반응해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도 서서히 속도가 줄어든다. 이렇게 세팅하면 전기차의 이질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주행 모드를 다이내믹으로 설정하면 시종일관 활기차고 민첩한 달리기를 즐길 수 있다.
400마력은 결코 낮은 수치가 아니다. 국산차 가운데 400마력을 내는 모델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런데 X7에서는 오롯이 400마력을 느낄 수 없었다. X7이 지향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I 페이스에서는 400마력을 즐겁게 경험할 수 있었다. 전기 SUV도 충분히 재미있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참고로 X5 M50d의 최고출력도 400마력이다. X7 대신 X5가 왔다면 좀 더 제대로 둘을 비교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어쨌든 운전 재미만 놓고 보자면 내 선택은 I 페이스다.
글_서인수
400마력은 일반 승용차를 훌쩍 뛰어넘는 고성능으로, 고급차의 영역에 들어선다. BMW M이나 슈퍼카의 영역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승용차 라인업에서 최고급 모델로 볼 만하다. 벤츠는 지난 몇 년간 이런 차를 AMG 아랫급 모델로 편입시켰다. 같은 400마력도 로터스같이 작은 차는 하늘을 날게 하고, 커다란 SUV에서는 우아한 몸짓을 만들어낸다. 어느 차에서나 400마력은 빨리 달리는 것뿐 아니라, 여유로운 힘으로 우아한 몸놀림을 가능케 한다. 힘이 여유로운 엔진은 또 조용해서 고급차를 만드는 데 꼭 필요하다.
BMW M50d의 직렬 6기통 3.0ℓ 엔진은 네 개의 터보차저를 달아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6기통 디젤 엔진이 됐다. 첨단의 디젤 엔진은 비교적 높은 4400rpm에서 최고출력을 뿜어댄다. 공차중량 2460kg의 X7에서도 400마력은 거세게 가속하고, 또 조용하고 우아하게 달린다. 2000rpm부터 만들어지는 77.5kg·m의 최대토크 덕에 출발부터 불끈 솟구치는 토크 맛을 즐길 수 있다. 저속에서 강하게 뿜어 나오는 토크는 디젤 엔진의 큰 매력 중 하나다.
X7은 조용한 차체와 안정감으로 속도에 대한 감각을 느슨하게 한다. 시속 150km로 달려도 시속 100km로 달리는 듯하다. 가속하는 데 스트레스가 없어 가감속이 수월하다. 힘이 여유로운 차는 내 마음 먹은 대로 움직여 엔진을 달랠 필요가 없다. 순간적으로 등을 떠미는 것 같은 가속 순간도 즐길 수 있다. 내연기관 자동차의 매력은 우렁찬 엔진 소리와 배기음에 있다. 펑펑 터지는 배기음이 좋아 고성능차를 타고 싶다. 그런데 최상의 럭셔리를 추구하는 X7은 워낙 고급스러워 거친 숨으로 계속 몰아칠 수 없었다. 잠깐의 포효 후에 아늑하고 풍요로운 대형 SUV로 돌아간다. 비교 대상이 I 페이스와 비슷한 무게의 X5 M50d였다면 그 느낌이 많이 달랐을 거다.
그렇다면 I 페이스에 대한 내 생각은? 솔직히 전기차는 애정이 가지 않았다. 운전에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전기차에 관심을 가진 건 테슬라 모델 S로 급가속을 했을 때다. 평범하게 생긴 4도어 세단이 몸을 뒤틀며 순식간에 시속 100km에 이르는 성능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평범한 차가 슈퍼카처럼 내쏘다니. 그날 이후로 내 머릿속에 전기차는 급가속이 재미난 차로 각인됐다.
두 개의 모터로 달리는 I 페이스는 최고출력 400마력, 최대토크 71.0kg·m로 X7과 비슷하다. 크기는 X7보다 작지만 배터리 때문인지 무게 차이는 200kg 남짓이다. 그럼에도 달리는 감각은 가볍고 운동성능이 뛰어나 마치 스포츠카를 몰아가듯 한다. 가속페달을 밟는 순간부터 최대토크를 내뿜을 수 있는 게 전기모터의 특성이다. 차는 조용한데 반응이 즉각적이다. 내 마음 가는 대로 차가 움직인다. 다이내믹 모드로 놓고 급가속을 하니 내 몸이 훅 내던져지듯 한다. 등을 밀어붙이는 가속감에 F-16 전투기의 조종사가 된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급가속에 비행기 이륙하는 소리도 난다. 0→시속 100km 가속 시간이 4.8초라지만 그보다 빠르게 느껴진다.
낮게 깔린 배터리로 무게중심이 낮은 차는 안정감도 뛰어나다. 앞뒤로 무거운 엔진도 없어 50:50의 이상적인 무게배분을 이루었다. 결과적으로 핸들링이 뛰어나고, 네바퀴굴림은 주행안정성을 더한다. 적당히 누르는 무게 덕에 차가 방정맞지 않게 움직인다. 어느 순간에도 최대토크로 밀어붙이는 차는 전혀 새로운 종류의 차를 대하는 기분이다. AMG나 M에서 누리는 가속감을 전기차에서 누린다. ‘슝’ 하고 쏘아대는 I 페이스는 어느 순간에도 추월 가속이 쉬웠다. 내가 마음먹은 곳으로 순간 이동이 가능하다. 가속이 너무나 빨라 차원이 다른 세계를 달리는 것 같다. 내연기관보다 빠른 모터의 응답성이 운전을 쉽게 한다.
I 페이스는 일반적인 내연기관차를 몰아가는 것 같았다. X7은 대형 SUV처럼 달리고 I 페이스는 스포츠카처럼 달린다. 두 차는 감성적으로 내게 익숙한 ‘자동차’였다. 전기차를 시승하면서 문제도 없지 않았다. 충전소를 찾아 여기저기 헤매고, 제대로 충전이 안 돼 마음고생을 했다. 전기차는 주행거리 문제로 생각할 것, 신경 써야 할 것이 너무 많다. 하지만 I 페이스는 멋진 디자인과 성능으로 미래의 차를 약속한다. 시승을 하면서 I 페이스가 점점 좋아졌다. 전기차에서 이런 기분도 처음이다. 어차피 다가올 전기차 시대라면 충전 문제도 익숙해져야 할 거다. I 페이스가 마음에 들었기에 다짐할 수 있었다. I 페이스가 SUV라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 I 페이스는 스포츠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