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14일 성 십자가 현양 축일
본당 신부에게 하루 휴식은 월요일 새벽 미사 후의 시간입니다. 저 역시 온전히 쉬기 위해, 월요일만큼은 약속을 잡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종종 어쩔 수 없이 모임에 나가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 모임이 중요하기에 빠질 수도 없습니다. 이때 기분이 좋을까요? 좋지 않을까요? 당연히 좋지 않습니다. 유일하게 일주일 중에 하루 쉬는 날인데, 굳이 이날 모임을 해야 하냐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막상 모임에 참석하고 나서는 기분이 좋아집니다. 모임 전에는 짜증이 나지만, 모임 후에는 기쁨을 갖게 됩니다.
우리의 지향은 대부분 편안함에 있습니다. 그래서 불편함을 느끼게 되면 힘들어하면서 화를 내기도 합니다. 이 불편함을 실패처럼 생각하기도 하고, 반대로 편안하고 쉬운 삶을 성공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삶 안에서 보면, 불편함을 피해서는 안 됨을 깨닫습니다. 불편함을 무릅쓰고 일단 뛰어들었을 때, 더 좋은 상황을 맞이할 때가 더 많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그 안에서 더 발전된 ‘나’를 맞이하게 됩니다.
사실 뇌는 게을러서 편안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려 합니다. 문제는 이를 선택했을 때, 당연히 더 나은 상황을 맞이할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성당 가는 일이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굳이 가야 하나 싶고, 하루의 편안함이 사라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편안함보다 불편함을 선택하면서 얻는 기쁨이 훨씬 큽니다.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모습을 많이 봅니다. 얼굴에 미소가 가득합니다. 행복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스마트폰을 보고, 또 이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는 것이 가장 편안한 순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스마트폰에 빠져서 하루를 보낸 뒤에, “오늘 좋은 하루였어.”라고 말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어렵고 힘든 삶을 보낸 뒤에야 “그래도 잘 산 하루였어.”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오늘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속량하시려고 몸소 지신 십자가를 묵상하고 경배하는 날입니다. 십자가의 주님을 굳게 믿을 때, 우리의 죄와 상처는 치유되며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주님만이 우리의 구원자이고, 우리에게 참된 기쁨과 행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 말씀하시듯, 모세가 광야에서 들어 올린 구리 뱀을 본 사람만이 살아난 것처럼, 주님을 보고 주님을 믿는 사람만이 살아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보내신 목적은 심판이 아니라 구원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바로 우리 각자를 위해서도 반드시 주님을 보고 믿어야 합니다. 하지만 주님보다 다른 것에 더 집중합니다. 진정한 편안함은 주님 안에 있는데, 그냥 순간의 만족이 진짜 편안함인 것처럼 착각합니다.
주님을 선택하고 따르는 것을 영원한 불편함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분의 사랑에 집중하면서 진정으로 편안함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강인한 사람만이 너그러울 수 있다(레오 로스톤).
첫댓글 빠다킹(조명연 마태오)신부님 강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