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친구를 찾아서
육십 년대 끼니를 예사로 거르던 시절에 시골 중학교에 들어갔다. 그래도 부모님을 잘 만난 덕의 행운이었다. 그 시절 학동들이 일흔 고개를 넘어 힘겹게 고지를 오르고 있다. 뿔뿔이 흩어져 세월의 무게에 견디며 가끔은 안부도 전하고 만나서 그 시절의 추억을 꺼내 되씹곤 한다.
벽에 붙어 있는 달력도 달랑 하나가 한 해의 마지막을 알리고 있다. 주위는 온통 형형색색으로 물들어 겨울을 재촉하고 있다. 북쪽에는 첫눈이 내려 천지가 하얗게 변했다. 가끔은 멀리 흩어진 친구를 찾아가기도 하기에 일전에 모임에서 멀리 있는 친구를 만나기로 언약했다. 친구 몇몇이 이른 아침에 북쪽으로 떠났다.
세월에 무딘 감정이 일상에서 벗어나니, 시골 저녁에 굴뚝의 연기가 솟아나듯 한다. 우리 산야의 아름다움에 한껏 마음이 고조되어 산야를 넘실거리며 줄타기에 혼(魂)이 달아날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네.’를 되뇌었다. 학동 시절을 되새기며 한바탕 웃고 즐기는 동안에 옛 벗과 만나기로 한 곳에 이르렀다.
친구를 만나 영덕의 바다 갯마을 노물리에 갔다. 그곳 횟집은 우리가 가끔 찾는 곳이다. 허리끈을 느슨하게 풀고 큼직하게 썬 회를 초장에 찍어 소주와 함께 마음껏 먹었다. 역시 회는 소주라며 먹고 마셨다. 다들 질리도록 먹고 나도 회는 남았다. 나는 막걸리를 찾았으니 주인장은 횟집에 무슨 막걸리를 찾느냐며 의아하게 나를 쳐다봤다. ‘꿩 대신 닭’이라고 맥주를 주문했다.
술이 몇 순배 돌아가자 모두 숫처녀 부끄럼타듯 얼굴이 홍당무처럼 피어났다. 주거니 받거니 하며 까마득한 옛 시절 얘기 보따리를 풀어 쏟아냈다. 듣고 들어도 재미있어 한바탕 웃기도 하고 잊혀가는 추억을 되뇌게 했으며 술맛을 돋우었다. 매운탕에 밥을 비우고 횟집을 나와 바닷가로 갔다. 거기는 ‘블루 로드(해파랑길 21)’가 바닷가를 따라 길게 설치되어 있었다. 한참을 걷다가 되돌아왔다.
그곳 마을이 노물리였다. ‘노물(老勿)’은 늙지 않아 붙여진 이름으로 예부터 장수마을이었다. 왜 오래 살았을까 궁금했다. 벽의 그림에서 그 이유를 찾은 듯했다. ‘월월이 청청’이라는 민속 고유의 놀이가 그곳에서 시작되었다. 그 놀이는 15세에서 갓 시집온 새댁에 이르기까지 정월 대보름은 물론 매달 보름에 달빛을 받으며 둥그렇게 원을 그리며 춤과 ‘동애 따기’ 등의 노래를 부르며 즐겼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함께 나와 춤도 추고 노래를 즐겼으니 그 기쁨과 행복으로 오래 살지 않았을까 싶었다.
겨울 낮은 짧아 그새 해는 서쪽으로 많이 기울어져 갈 길을 재촉했다. 내년 꽃필 때는 많은 친구와 함께 동해안 여행을 오자고 하며 친구와 아쉬운 작별을 했다. 곧장 쉬지 않고 아래로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