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Ⅱ-13]벌써 송년모임, 2題
달나라 옥토끼부부가 우리 부부를 위해 ‘약藥방아’를 찧고 있다는 계묘년 2023년도 달랑 달력 한 장이다. 절기로 소설小雪(11월 22일)도 지났으니, 올해도 금세 세월의 한 자락을 접을 것이다. 아무리 시골에 있다지만, 21세기는 ‘한마을’이 된지 오래여서 sns를 통해 소식을 전하고 안부를 묻고, 그것도 서운해 얼굴 한번 보자고 한다. 최근(17일, 24일) 두 건의 모임이 있었다. 그냥 숨을 안쉬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살아있기에, 그것도 건강하기에 만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두 건의 소회를 기록한다.
# 1976년 3월 솜리의 원광대학교 신입생 입학식이 있었다. 사범대 영어교육학과 남학생 23명 여학생 7명. 나는 고등교육에 실망, 학교를 아예 작파하려고 했다. 고향에 칩거한 나를 찾아온 두 외우畏友 덕분에 전주까지 끌려올라가 편입시험 준비를 3주쯤 했다. 도시락을 두 개 싸들고, 전주시립도서관에서 <영어의 왕도>(경기고 영어선생 김열함 지음)만 파고들었다. 3명은 유명 사립대 편입시험에 도전, 운이 좋았는지, 나빴는지는 현재도 알 수 없지만, 나홀로 영어영문학과에 합격했다(75대1). 그이후에도 원광대 영교과 인연이 끊어지지 않은 건, 두 친구와 내 마음에 쏙 들었던 여자동기들 덕분이었다. 전대미문의 코로나로 3년 만나지 못한 연례행사가 지난 17일 있었다. 방송국 출신 여학생이 쟁글쟁글한 목소리로 참석을 독려했다. 6년 전인가 한번 참석한 적이 있어 낯설지는 않았다.
하여, 만나 13명과 함께한 그 저녁은 좋았다. 대부분 이름과 나이, 출신학교 등도 기억했기에 반갑기도 했다. 웃기고 재밌는 해프닝은, 장소가 ‘전주 벽계가든’이었는데, 바로 옆 식당이 ‘전주밥상-다 잡수이소’였다. 그 집 얘기를 며칠전 sns에서 읽은 게 기억났다. 그 사장이 36번의 창업 끝에 성공했다는 의지의 한국인. 벽계가든을 들어가면서 어디에서 본듯한 식당 상호. 입구에 짧은 시구절을 써놓은 게 인상깊었다. 나태주 시인의 제목 <이 가을에>라는 시. 전문은 이렇다. “아직도 너를 사랑해/슬프다”. 이런저런 방담을 나누며 이 시를 낭송하니, 동기들이 그‘너’가 오늘 참석한 여학생 중에 있느냐? 있으면 누구냐?는 것. 하하. 솔직히 고백할 수는 없어도 “있었다”.
보통은 진즉에 끊어졌을 인연들이 그날 또 이렇게 이어진 것이 신기했다. 한 형은 52년생인 줄 알았는데, 51년생 용띠(73세)여서 놀랐고, 나보다 훨 젊고 건강해보여 더 놀랐다. 그 양반의 건강 비결은 무엇일까? 아직도 턱걸이를 스무 개도 더 한다니? 한 친구는 교장 은퇴후 아프리카아시아 도움주기 친선단체에서 이사장으로 일한다해 후원은 못했으나 칭찬은 많이 해줬다. 한 친구는 몇 년 전 심정지가 왔으나 극적으로 살아났는데, 시력이 좋아져 안경을 안써도 된다고 한다. 웬 열? 시를 쓰던 친구는 이제 기타로 소일하고, 한 여학생은 양가 부모 모시기에 여념이 없다고 했다. 참석지 못한 건설사 사장은 건강이 악화됐다는 소식, 순천에 사는 친구는 종합병원으로 건강이 살얼음 걷는것같다고 한다. 아직도 현역인 두 명은 불참. 내년 1박2일 때 보자며 찢어졌다. 한 해가 가는 실감이 났다.
# 성균관대 동문이자 전라고등학교 동문들의 모임. 이른바 ‘성전회’가 송년모임을 갖자고 난리블루스. 50명도 넘을 텐데, 명단 파악은 38명. 이중 20명이 참석을 했으니 좋은 일이다. 회장과 총무가 달포 전부터 설친 덕분이다. 식당이름이 재밌다.‘잰부닥(다 타지 않은 잉걸불)’. 60대중반 이후 너댓 명을 제외하곤 대부분 현역. 싱싱하다. 캠퍼스에서 한번도 보지 못한 후배들이 명색이 고참(6회)이기에 먼저 인사를 올린다. 쫄병이 23회였던가.
멤버는 아니지만 국회의원(2선, 안호영)이 깜짝 출연하고 전보건복지부 권덕철(9회) 장관도 퇴직 후 첫선을 보였다. 이런 모임할 때마다 신기한 것은, 얼굴 한번 보지 않았으면서도 같은 교문을 3년간 통학했다는 이유만으로 서열이 확실하고 친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국적은 바꿀 수 없어도 학적은 바꿀 수 없다'는 말처럼 학연學緣은 지연地緣보다 훨씬 더 끈끈한 것같다. 5회 선배가 갑자기 불참하는 바람에 최고참이 되었으나 싫지 않았다. 영화배우 문소리의 남편이 띠동갑이자 영문과 직속 후배(장준환). 10여년 전 만났기에 그때 이야기를 잠깐 해줬다. 영화 <1987>로 몇 년전 <독수리 오형제>에 이어 다시 뜨기도 한 영화감독이다. 내년 모임에는 그날보다 더 많은 회원들이 참석하여 ‘전성시대’를 누려보자며 연신 건배사를 띄운다.
이런 모임에는 빠질 수 없는 게, 바로 교가校歌가 아니던가. "노령읭 푸른 줄기/..../새롭게 슬기롭게/ 구원한 이상" 주변에 민폐를 끼치는 몰상식한 행동이건만, 이런 게 허락이 되는 대한민국은 좋은 나라임에 틀림없다. 단, 정치만 제대로 돌아가고 잘 한다면 말이다. 고참은 적당한 기회를 봐 빠져줘야 하는 게 맞건만, 눈치없이 너무 오래 앉아있었다. 미안하다. 후배들아. 다음에도 농사철만 아니면 꼭 올라올게. 마침 그날 오후 10여년 만에 모교 대외협력팀을 방문할 일이 있었다. 명륜당(성균관 교육기능)과 비천당(과거시험장) 그리고 600년 은행나무를 감상하고, 박물관에서 상설 전시하는 서예가 검여 유희강전을 관람한 이야기를 들려준 게 나의 몫이 돼 좋았다.